* 1학년 시헌x하진

* 대충, '이러지 않았을까?'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 여러 기념일이 많지만, 교실에서 제일 인기 있는 기념일은 만우절에 이어 스승의 날이었음. 새로 고등학교에 올라와 2달을 보내며 친해질 만큼 친해진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벌일 생각에 잔뜩 신이 났음.

 

“야, 반장! 우리 반은 내일 아무것도 안 해?”

 

“4반은 케이크랑 촛불 한다더라.”

 

“와, 뭔 촛불까지 해. 누구 아이디어임? 존나 구린데.”

 

스승의 날 전날, 교실은 이벤트 계획으로 시끌시끌해짐. 다른 반에 질 수 없다며 크게 하자는 아이들과 귀찮게 이런 걸 왜 챙겨야 하냐며 시큰둥한 아이들로 반응이 갈림. 하진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 얕은 한숨과 함께 교탁으로 이동함.

 

“이벤트 하는 건 다들 동의하는 거야?”

 

“뭐,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야?”

 

개중 완전히 삐딱선을 타는 이도 있었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박승훈을 힐끗 쳐다본 하진은 무시하며 다시 정면을 응시함. 박승훈을 제외하면, 다들 하면 한다고 말할 뿐이었음.

 

“일단 기본적으로 케이크랑 교실 꾸밀 재료 사려면 얼마씩 걷어야 할 거 같거든.”

 

“얼마?”

 

“이런 건 원래 반장이 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옴. 한마디 할 때마다 꼬투리를 잡는 박승훈 때문에 하진 역시 열이 받기는 마찬가지였음.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그래봤자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아 속으로 모든 말을 삼켜냄.

 

“이런 건 원래 말 꺼낸 사람이 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모든 걸 삼킨 하진과 다르게 모든 말을 참지 않는 차시헌이 있었음. 벽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차시헌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임.

 

“박승훈 네가 쏴야겠다.”

 

“얘기가 왜, 그, 그렇게 되냐, 씨발.”

 

“그러니까.”

 

차시헌은 까딱거리는 다리를 멈추지 않으며 느슨한 말투로 말함.

 

“얘기가 왜 그렇게 되냐고, 승훈아.”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태도와 목소리였지만 박승훈은 찍소리 못하고 입을 닫음. 하진은 이중적인 마음이 듦. 차시헌이 나를 도와준 건가. 차라리 내가 직접 얘기를 할걸. 그가 제 편에 서는 것은 보기 좋았지만, 도움만 받는 건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음. 분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괜히 도움을 받은 것 같았음.

 

“반장.”

 

“……어?”

 

듣기 좋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차시헌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음. 불편하게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하진은 차시헌을 바라봄. 시선이 마주치자 차시헌은 긴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말을 꺼냄.

 

“얼마씩 내면 돼?”

 

하진은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봄. 오롯하게 저를 바라보며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아이들의 주위에서 저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퍽 영광스러워서.

 

“일단……케이크랑 재료값을 정확하게 몰라서. 내가 일단 오늘 가서 사고 내일 걷는 거로 해도 될까.”

 

제 목소리가 어떻게 흘러나오는지도 모른 채로 하진은 대답함.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고개를 끄덕이는 차시헌의 모습에 아, 제대로 대답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함.

 

“누구랑 가?”

 

“혼자 가도 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괜히 다른 아이들까지 번거롭게 하기는 싫었음. 그냥 혼자 자율학습이 끝나면 케이크를 사고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 같았음.

 

“그래도 혼자는 힘들지 않나. 부반장 둬서 뭐 해. 얘 데려가.”

 

곁에 앉은 김정우를 발로 툭 차며 말하는 차시헌은 산뜻한 얼굴을 하고 있었음. 핸드폰을 만지다 상황 파악이 늦은 김정우는 잠시 멍 때리다가 고개를 끄덕임.

 

“어, 뭐, 그래. 같이 가자, 반장. 몇 시에 가?”

 

“자습 끝나고 가려고 했는데.”

 

“9시면 문 닫지 않나?”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봄. 케이크 집과 이벤트 샵 영업시간을 확인한 그는 하진을 향해 핸드폰을 흔들며 말을 꺼냄.

 

“반장, 나 어차피 오늘 자습 빼니까 내가 풍선이랑 이런 거 살게. 여긴 야자 끝나면 늦어서 안 될 듯. 야자 끝나고 반장이 케이크만 사주면 안 되나?”

 

“그래, 그렇게 하자. 고마워. 영수증 뽑아오는 거 잊지 말고.”

 

“오지는 걸로 사 올 테니까 걱정 마라.”

 

씩 웃는 김정우의 모습을 뒤로하고 대충 내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회의를 함. 아침 일찍 모여서 교실 꾸밀 사람 몇 명을 정하고 회의를 끝냄.

 

평소와 같이 수업을 듣고, 급식을 먹고 자습 시간을 보냄. 자습실 바로 옆자리인 차시헌의 존재도 평소와 같았음. 칸막이 너머로 살짝 보이는 그의 옆얼굴을 힐끗 보며 하진은 종이 끝을 이유 없이 색칠함. 검은색으로 칠해진 모양은 마치 못생긴 하트 같았음.

 

문제를 풀고, 차시헌을 보고, 복습을 하고, 차시헌을 보고.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습은 순식간에 끝났음. 끝을 알리는 종소리보다 아이들이 짐을 챙기는 소리가 먼저 울렸음. 빠르게 자습실을 벗어나는 아이들 틈 속에서 하진은 천천히 짐을 챙겼음. 차시헌 역시 마찬가지였음.

 

“내일 봐”

 

먼저 짐을 챙겨 일어난 하진은 용기 내어 차시헌에게 인사를 함. 방금 되게 자연스러웠지 않나. 스스로 그런 만족감을 느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 뒤에서 가방을 당기는 힘이 느껴짐.

 

“……왜?”

 

차시헌이 느슨하게 잡은 가방끈을 내려다보며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킴.

 

“같이 가자.”

 

“어디를?”

 

“케이크 사러.”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라 바로 대답을 못 함. 그냥 얼떨떨해짐. 차시헌이 대체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하지? 라는 생각만 가득 차오름.

 

“왜?”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아?”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모습은 퍽 장난스러웠음. 하진은 그게 궁금한 게 아니었음. 차시헌이 자신과 같이 갈 이유는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음.

 

“아니, 네가 왜 나랑 같이 가는지…….”

 

“같은 반인데 왜 너 혼자 일을 해?”

 

차시헌은 생각도 안 하고 대답을 함. 앞장서라는 듯 턱짓하는 자세는 같이 간다고 마음을 굳힌 것 같았음. 하진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얼떨떨한 건 사라지지 않았음.

 

“같이 가는 거 싫어?”

 

아무 대화 없이 교문을 나선 후에야 차시헌이 질문을 던짐. 하진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음. 절대로 싫은 건 아니었음. 단둘이 그와 있을 수 있다는데 싫을 이유가 있을 리 없었음.

 

“불편해 보여서.”

 

좋고 싫음을 떠나서, 늘 멀리서만 봤던 차시헌과 같이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절대 편하지는 않았음. 심지어 좋아하는 마음을 숨겨야 하는 사람이었음. 긴장이 차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음.

 

“어차피 가는 길이라 같이 가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그런 거 아니야. 같이 가줘서 고마워.”

 

차시헌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살짝 들고 하진을 보며 웃음.

 

“응, 고마워.”

 

이유 모를 감사를 전한 그는 다시 핸드폰을 만짐. 간지럽고 긴장되는 시간은 아쉬울 정도로 빨리 끝남.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거리를 걷자 아직 오픈 중인 케이크 가게가 보였음.

 

“어서 오세요.”

 

스승의 날 때문인지 제작 케이크가 많았지만, 늦은 시간 탓인지 남아 있는 케이크가 많지는 않았음. 무난하게 생크림이 제일 좋으려나. 고민하던 하진은 차시헌을 바라봄. 그 역시 케이크를 내려다보고 있었음.

 

“반장은 케이크 좋아해?”

 

“맛있잖아.”

 

가볍게 대꾸하자 그는 피식 웃었음.

 

“응, 그래서 나도 좋아해.”

 

“…….”

 

“초코가 제일 좋긴 한데……어른들은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무난하게 생크림으로 살까.”

 

“……그래.”

 

예쁘게 웃는 차시헌의 모습을 눈에 새기며 하진은 주인을 부름. 포장된 케이크를 받고 계산을 할 때까지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음.

 

“들고 갈 수 있어?”

 

“응.”

 

“조심해서 가.”

 

사실,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사는 편이 더 편할 것 같아 고민했었는데 오늘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듦. 내일 샀다면 차시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너도 조심해서 가.”

 

“잘 가, 반장.”

 

인사하는 그를 뒤로하고 하진은 천천히 걸어감. 혹여 뒤에서 보는 제 걸음걸이가 이상하지는 않을까 신경 쓰며 한참을 걸어옴. 그러다 우뚝 멈춰 서고 결국 뒤를 돌아봄.

 

“…….”

 

당연하게도 차시헌이 있던 자리를 텅 비어있었음. 여태껏 헛것을 본 건 아닐까. 그런 허무한 생각도 듦. 함께 고른 케이크만이 그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음.

 

집에 도착해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붕 뜬 기분이었음.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하진은 눈을 감음.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착한 학교에서 하진은 씩 웃는 김정우와 차시헌을 만남. 빈 교실을 꾸미고 있던 김정우는 하진을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풍선을 터뜨림.

 

펑! 큰 소리에 흠칫 놀랐고, 그 모습에 김정우는 호탕하게 웃음. 차시헌은 그런 김정우의 뒤통수를 한 대 칠 뿐이었음.

 

이런저런 가벼운 대화 속에서 교실 꾸미기를 시작했고, 하나둘 아이들이 도착함. 준비가 다 끝나고, 조례 시간이 되어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옴.

 

스승의 은혜 노래를 재생하고 촛불을 붙인 케이크를 들고 선생님에게 다가감. 담임은 크게 웃으며 기뻐함. 기말은 제발 1등 하라며 큰 소리로 말하며 촛불을 불었음.

 

케이크 나눠 먹자는 담임의 말에 아이들은 먼저 한입 드시라고 함. 선생님이 빨리 먹어야 우리도 먹을 수 있으니 빨리 먹으라는 말에 담임은 한 입 케이크를 먹음.

 

“맛있네. 고맙다, 이놈들아.”

 

괜시리 뿌듯해진 마음에 하진은 옅은 웃음을 흘림. 시선은 저도 모르게 차시헌을 향함.

 

“어…….”

 

그리고 시선이 마주침. 차시헌도 이쪽을 보고 있었음. 케이크를 향해 눈짓한 그는 비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임. 쿵, 심장이 울림.

 

그와의 추억이 하나 더 쌓인 스승의 날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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