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_06

W. 월

[동매X애신]



사홍의 앞에서 애신과 동매는 부부로써 함께 처음으로 문안 인사를 드렸다. 두 사람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사홍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매에게 또 애신을 지켜달라 그리 당부했다. 계속 반복해 듣는 그 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동매는 그런 내색이 전혀 없었다. 그저 한결같이 그도 네,라는 짧은 답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짧은 한 마디의 말이라도 그 속에 포함된 진심의 깊이를 아는 사홍은 더 이상 별다른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할아버님, 조반 내올까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애신이 조신히 사홍에게 물었다. 



"그러거라. 오늘은 손녀사위와 함께 먹어야겠다." 


"허면 이 자의 상도 같이 내오라 하겠습니다." 



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찰나, 



"이 자라니!" 



사홍의 호통이 문지방을 넘었다. 놀란 애신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고 동매 역시 당황한 얼굴로 사홍을 바라보았다. 



"애신이 네가 정신이 있는 것이냐? 전에 어떠한 사이였다 한들 어제의 혼인으로 부부가 되었으면 아녀자의 도리를 다해 서방님이라 불러야지! 이 자라니! 어찌 지아비를 그리 부르는 것이야!" 


"할아버님... 그것이..." 


"대감마님, 애기씨께서 아직..." 



애신을 도우려던 동매에게도 사홍의 꾸지람이 이어졌다. 



"어허! 손서(孫壻)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혼인하였으니 처외조부인 나를 할아버님이라 부르면 되는 것이고 애신이는 부인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대감마님이라니. 애기씨라니. 두 사람 모두 호칭을 바로 해야 할 것이다!" 


"예..." 


"예." 



사홍의 불호령에 애신과 동매는 동시에 같이 대답을 했다. 서방님, 부인. 그 호칭들을 떠올리며 두 사람 모두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과연 그리 서로를 부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서로가 아주 오랫동안 서로에게 그 자였고 애기씨였기 때문이었다. 애신은 풀이 죽은 얼굴로 사홍의 방을 나섰다. 밖에서 사홍의 큰소리를 들은 함안댁은 다 안다는 듯 애신의 어깨를 잠깐 주물러주고는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갈 곳 없는 애신 역시 터덜터덜 부엌으로 걸어갔다. 종섬이와 함안댁이 준비된 상을 각각 두 개씩 들고 부엌을 나서고 애신은 힘없이 문에 기대어 서있었다. 괜히 옷고름 끝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보았다 땅을 보았다를 반복했다. 그런 애신과 달리 동매는 조반을 차린 상이 들어왔음에도 미동 없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사홍이 아직 음식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머물 것인가?" 



사홍의 질문에 동매는 입을 떼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사흘을 머무는 것이 맞으나 상황에 따라 일 년을 처가에서 머물고 가는 이들도 있고 고가처럼 아들이 없는 경우 데릴 사위로 드리는 경우도 있으니 동매는 사홍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내 생각 말고 손서의 생각을 물은 것이다." 



동매의 생각을 읽은 사홍이 그리 말하자 동매가 조심히 입을 떼었다. 



"이 댁 풍습에 따르겠습니다." 


"삼일. 그러곤 저 아이 데리고 나가거라." 


"....." 


"지금은 내가 이리 버티고 있다만 하늘의 부름을 받고 이승을 떠나게 되면... 애신이는 이 집을 지키려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허니 데리고 가거라. 이 집에 미련 두지 않도록. 이 집이 그 아이의 족쇄가 되게 할 수는 없으니." 


"..... 애기씨를 위해서 오래 건강하십시오." 


"그게 내 뜻대로 어디 된다던가. 그저 손서를 방패막이로 삼는 나를 용서해다오." 



동매가 고개를 숙였다. 사홍은 그제서야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들게,라는 사홍의 말에 동매 역시 먹기 시작했다. 정갈한 반찬들이 동매의 입에도 맛이 있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동매를 보며 사홍이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애신을 볼 때와 다를 바 없는 같은 모습이었다. 










조반을 먹고 고가의 가묘(家廟)에 절을 마친 동매가 애신의 방으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조반을 먹고 있던 애신이 그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은 조금 낯선 쪽진머리의 애신이라도 저를 향해 웃어 보이는 것이 너무 예쁜지라 동매는 차마 환하게 웃어 보이진 못해도 입꼬리를 씰룩이며 애신의 옆에 자리를 앉았다. 



"더 드십시오." 


"아니, 이제 그만 먹으려던 참이라." 


"겨우 그만큼 드시고 말입니까? 반 그릇도 안 드셨습니다." 


"원래 조반은 많이 안 먹네." 


"차린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더 드십시오." 


"아..." 



동매가 그리 말하니 더 먹지 않을 수가 없어 애신이 숟가락을 들었다. 숟가락에 밥을 올리자 동매가 옆에서 애신의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올려주었다. 그것을 본 애신이 피식 웃기 시작했다. 



"나도 손 있네." 


"압니다." 


"헌데 왜 올려주는가?" 


"이건 제 성의입니다. 허니 더 드십시오."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애신은 그런 동매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진작 알아봐 주지 못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볼 생각을 했다면 더 빨리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뺨을 내리칠 게 아니라 어루만져 줄 수 있었을 텐데. 독한 말로 상처를 줄 게 아니라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었을 텐데. 



"바보..." 



애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동매는 피식 웃어 보였다. 



"제가 말입니까?" 


"아니, 나. 내가 바보 같아서..." 


"....." 


"요." 



한 글자가 더 붙으니 영 이질적인 느낌에 애신이 입술을 비죽였다. 동매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신에게 존대를 듣는 것은 옳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애신이 괜찮다 하여도, 그녀와 혼인을 하였다 하여도 핏줄이 바뀌지는 않기에. 



"애기씨." 


"응...?"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래도..." 


"저도 애기씨라 부르는 것이 편하고 대감마님이라 말씀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동매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였으나 애신의 표정은 여전히 자못 심각해 보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동매가 지아비인 것도 맞고 그의 신분이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은 것도 맞기에 존대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겠습니다. 저는." 


"애기씨." 


"그대가 아니라 다른 누구와 혼인을 했더래도... 해야 할 일입니다." 



차마 아직은 서방님이라고 부르지는 못할 것 같아 애신이 대신 그대라 표현하였다. 동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는 그 존대로 애기씨께서 제게 멀어지는 것 같아 싫습니다." 


"....." 


"자꾸 고집을 피우시면 화를 낼 겁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애신의 대답에 동매가 입을 앙 다물었다. 애신은 괜히 눈치가 보여 그를 곁눈질하였으나 동매는 그녀를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었다. 



"..... 저기..." 



진짜 화가 났나 싶어 애신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려 하자 동매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엇을?" 


"애기씨 함에서 집어 든 비단옷 색상 말입니다. 그 색을 제가 맞추면 원래대로 말을 편히 하십시오. 제가 맞추지 못하면 애기씨께서 존대하셔도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아니 있습니까!" 


"제게 더 불리합니다. 애기씨가 아니라." 


"행랑아범에게 들은 것이 아닙니까?" 


"내가 어찌 아냐며 역정만 내고 갔습니다. 못 미더우시면 지금 행랑아범에게 가 물어보셔도 됩니다." 


"아...." 



당당한 그의 말투에 애신은 진짜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동매는 속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조금 덜 보낼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아무리 밝은 색상만 애신이 먼저 꺼내도록 위에 두었다고 해도 그 수가 열이 넘었다. 확률은 십분의 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절대 안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애신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저 속았다 여기고 분해 색상을 절대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었던 제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니 여간 우스웠다. 



"허면 맞다 아니다만 해주십시오.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애기씨께서 집으신 색." 


"온통 밝은 색으로만 집게 해놓았으니 속임수에 대한 벌이지요." 


"온통 어두운색만 고르셨던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흠흠." 



괜히 찔리는 마음에 애신이 헛기침을 하였다. 동매는 무슨 색일까 여전히 고민이 되었다. 무슨 색을 집으면 가장 좋겠더라... 



"붉은색." 



그래, 붉은색이었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라도 조선이 평안해진다면 그리하여 애기씨와 자신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애기씨를 쏙 빼닮은 딸이었으면 좋겠기에. 동매는 함을 준비하며 욕심이 과하다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그리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이 사기꾼!" 



동매의 답에 애신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어떻게 이리 단번에 맞춘단 말인가. 



"알고 있었는가!" 


"아닙니다." 


"거짓말!" 



진짜 붉은색이 맞는가 싶어 동매는 기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큰 욕심이기에 화를 부를 것만 같아 마음 한 편에서는 초조한 느낌마저 들었다. 붉은색. 혼인. 딸. 욕심이라 치부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 되는 지금, 동매는 기쁘고도 두려웠다. 



"정말 붉은색입니까?" 


"에잇!" 



행랑아범에게 물어야겠다 생각이 든 애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앗!" 



지난 거사 때 다쳐 여전히 욱신거리는 발목 때문에 애신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은 애신과는 달리 동매는 놀란 기색 없이 애신을 붙잡아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애기씨, 괜찮으십니까?" 



여전히 창피한 마음에 눈을 뜨지 않고 있는 애신을 보고 동매가 그리 물었다. 애신의 입술이 들썩였다 결국 열리지 못하고 멈추는 모습에 동매는 소리 없이 웃었다. 



"애기씨..."


"....." 


"입 맞춰도 됩니까?" 



부끄러웠다. 어젯밤의 그 뜨거운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으면서도 입맞춤조차 여전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 애신은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동매의 입술이 꽃을 향해 나비가 찾아가듯 부드럽게 다가갔다. 짧게 쪽- 하고 입을 맞추고 애신의 눈과 눈을 마주쳤다. 반달 곡선을 그리는 그 눈매가 어여뻐 눈에도 입을 맞췄다. 동매의 입술도 그에 따라 곡선을 그렸다. 



"애기씨..." 



놓치고 싶지 않은 애신을 동매는 더욱 끌어안았다. 그의 부름에 애신이 다시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저희... 나가야 합니다." 


"응?" 


"대감마님께서 나가라 하십니다. 삼일 후엔..." 


"아..." 


"혹여 몰라 유조에게 전에 집을 몇 채 알아봐두라 명한 것이 있습니다. 내일은 저랑 같이 보러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응." 



애신이 더 무엇을 말하려다 고민이 되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 내일 집을 둘러보고 말을 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여전히 서로를 껴안고 있는 이들은 덥지도 않은지 계속 서로 붙은 채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다음날 아침. 조식 후 동매는 애신을 데리고 유조가 알아본 집으로 향했다. 가마를 탄 애신을 따라 걷는 동매를 보고 모두가 힐끔거리기는 하였으나 감히 입을 열진 못하였다. 아직 멀었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유조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새집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오야붕."



유조의 손가락 끝에 보이는 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집이었다. 마을과는 제법 떨어져 있어 꽤나 조용하고 뒷산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모습에 동매는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애기씨, 내리십시오." 



동매의 말에 옆에 있던 함안댁이 가마 문을 열었다. 저를 향해 바라보는 애신을 보며 동매는 천천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지난날 무시하고 스스로 일어섰던 애기씨는 오늘은 조심스럽게 하얀 손을 내밀었다. 동매는 망설임 없이 잡아들었다. 맞닿은 따스한 손에 두 사람 모두 입꼬리가 올라섰다. 



"애기씨요, 집이 좋습니더. 얼른 둘러보시지예." 



옆에서 함안댁이 애신에게 구경을 부추겼다. 하지만 집을 보는 애신의 얼굴이 영 밝지가 않아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은가 싶어 동매가 애신의 눈치를 살폈으나 애신은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애기씨..." 



동매가 그녀의 손을 이끌어 집안으로 들어섰으나 애신은 그저 대충 보는 모습이었다. 넓고 넓은 고택에서 살던 애신이니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동매는 더 큰 집으로 알아보아야 하나라는 마음이 스쳤다. 그러나 애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너무 크네." 


"예?" 


"이렇게 큰 집에서 있다간 하루 종일 살림을 사느라 아무것도 못 하지 않겠나." 


"애기씨가 살림 사십니꺼. 제가 하면 되지예." 



당황한 동매가 유조와 눈을 마주치는 사이 함안댁이 말을 끼어들었다. 



"응? 함안댁은 할아버님 댁에 있어야지." 


"뭐라캅니꺼 애기씨! 그럼 누가 청소허고 누가 빨래합니꺼. 식사는예!" 


"내가." 


"애기씨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소!" 


"함안댁도 이제 좀 편해져야지. 언제까지 날 수발하며 살 순 없지 않은가." 



동매가 아닌 희성 혹은 다른 그 어느 누군가와 혼인을 했었더라 하더래도 애신은 이제 함안댁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그녀를 시댁으로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은 터라 나오는 말투가 덤덤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런 소리를 듣는 함안댁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꼬마 아기씨와 같게 느껴지는 애신이 어느새 그렇게 커버렸구나 싶어 괜히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제 내 걱정 그만하고 편히 쉬어야지..." 



그 말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함안댁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을 돌려 저고리 고름 끝을 집어 올려 눈가를 닦아대었다. 동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보라며 애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제 손을 살짝 흔들었다. 함안댁을 향했던 애신의 눈이 동매에게로 향했다. 



"응?" 


"애기씨..." 


"할아버님께서 지켜달라고 하셨다면서. 그럼 지켜줄 이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지."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동지들은 거처가 발각되면 아니 되니 그럼 어디겠나, 자네 거처이지." 



애신의 말에 놀란 유조가 보기 드물게 안색이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애신이 무신회 안으로 들어와 살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매는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긁적였다. 그러나 애신은 여전히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애기씨, 진심이십니까." 


"응. 진심이네." 



애신의 말은 진심이 틀림없었다. 



"애기씨 뭐라컵니꺼! 안됩니더 거가 어디라고 간 단 말입니까." 


"애기씨." 



함안댁과 동매가 애신을 말리려 해도 그녀는 들으려는 체도 하지 않고 다시 가마로 걸음을 옮겼다. 가마꾼들이 문을 열고 애신이 가마로 들어서자 함안댁의 아이고 못 산다 소리와 함께 장단을 맞추어 가마는 흔들흔들 진고개를 향해갔다. 










진고개의 가장 높은 곳, 무신회의 거처였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오야붕과 오야붕 옆에 선 애신을 본 무신회 일원들은 전부 놀라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오야붕, 혼인 축하드립니디. 



애신에게는 낯선 일본어가 사내들의 입에서 나오자 애신은 동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축하 인사가 부끄러운 동매는 빨리 물러나라는 눈짓을 보내었다. 모두가 발 빠르게 사라지자 동매는 같이 지낼 방이 보고 싶다는 애신의 말에 그녀를 2층으로 이끌었다. 진고개를 향한 길 내내 애신을 어떻게 말릴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으나 그녀 말대로 애신을 안전히 지켜줄 수 있는 곳, 애신을 발각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곳은 무신회의 거처가 제격이었다. 허니 더 나은 방도가 없어 말릴 수 없다. 동매의 복잡한 심경을 알려주듯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애신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여기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동매의 방은 애신의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방이 세 개로 나뉘어 두 개의 방이 큰 방에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좋네." 



일본식으로 지어져 애신에게 눈익은 모습은 아니었으나 깔끔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저 두 개의 방도 들어가 봐도 되는가?" 


"하나는 욕실입니다." 


"아..." 


"저곳은 침실입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필요한 것들 말씀하시면 채워 넣겠습니다." 


"응. 알겠네." 



애신이 침실로 향한 문을 열려고 하는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소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본어라 못 알아듣는 애신과는 달리 동매의 얼굴은 심각해져 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소란의 주인공이 방문 앞에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채 가누지도 못하는 호타루였다. 



-안 된다니까. 



그녀를 말리려는 유조도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호타루를 막을 수 없었다. 가까이 그녀가 다가오자 술 냄새가 확 풍기었다. 애신이 절로 뒷걸음질 쳤다. 



-못 마시는 술을 왜 이렇게 마신 거야. 



동매의 입에서 나오는 일본어. 허나 못 알아듣는 그 말보다 애신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호타루의 팔을 붙잡은 동매의 손이었다. 호타루는 그런 동매의 손을 한 번 바라보다 붙잡힌 제 팔을 빼내었다. 그리고, 


짜악- 


그녀는 애신에게 다가가 동매가 말리기도 전에 애신의 왼쪽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 마찰음이 얼마나 큰지 뒷간에 갔다 뒤늦게  올라온 함안댁이 놀라 헐레벌떡 뛰어올 정도였다. 



"애기씨!" 



갑작스럽게 맞은 애신의 뺨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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