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이 형이 톡으로 보낸 강의실 문을 열었다. 빈 강의실 끝에 형이 있었다. 어제 잠 못잤다고 하더니, 피곤한지 책상에 엎드려 있다. 자는걸까. 발소리 크게 안나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역시, 형 자고 있다. 깨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용히 옆자리 의자에 앉았다. 뛰어 오느라 숨찼지만 숨소리 크게 안내려고 조심했다. 나는 형 자는 얼굴 보는게 좋다. 실컷 얼굴 볼 수 있어서. 감긴 눈꺼풀도, 작은 코끝도, 통통한 입술도. 다 좋았다. 형이 안잘 땐 눈 마주칠까봐 마음 놓고 보진 못한다. 형이 날 보면 좀 긴장되는거 있어서. 한참 보다가 갑자기 눈이 마주치면 나는 화들짝 눈을 돌렸다. 그러면 형은 웃는다. 놀란 토끼 같다고. 


나란히 엎드려서 자는 얼굴을 바라봤다. 어제 왜 잠 못잤을까 걱정된다. 지민이 형은 나랑은 다르다. 걱정 고민 있어도 잘 먹고 잘 자는 나와는 달랐다. 형은 예민했고 나는 그런 예민함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중요한 공연 앞두고 잠을 잘 못자고 잘 못먹거나 할때. 내가 형 대신 고민해줄 수 있음 좋을텐데 그렇게는 못해서.


조용한 강의실에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크게 울렸다. 내 가방에서 나는 소리다. 보니까 김준이 전화했다. 하여간 도움 안되는 놈. 서둘러 전화를 껐는데 그 소리에 형이 깼다. 


"어.. 왔어? 왔음 깨우지."


"방금 왔어요."


"너 또 나 자는거 보고 있었던거 아니지?"


...형은 모르는게 없다. 그래도 나는 아닌척 하기로 했다.


"아닌데여.. 안봤는데.."


내 대답에 형 눈썹이 꿈틀.


"나 잘 때 무지 못생겼단 말야."


"아닌데여? 자는 얼굴도 이뻐요!"


"봤네?"


"녜? 아니.. 어.. 진짜 쪼끔만 봤는데여.."


형이 피식 웃었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꼭 고양이가 쭉쭉이 하는 것 같다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쭈욱, 위로, 다시 쭈욱, 앞으로. 몸을 숙인 형 등이 꼿꼿하게 펴졌다. 그 위로 얇은 목선이 예쁘다.


"근데요 지미니 형.."


"응?"


"누가 그랬어요?"


"뭘 누가 그래?"


"형 잘 때 못생겼다고, 누가 그래요?"


"아아. 태태. 옛날부터 맨날 그래 걔. 지는 잘 생겼다 이거지."


형이 입술을 조금 내밀며 말했다. 태태 형 이야기를 할 때 형은 자주 이런 표정이다. 뭔가 얄미운데 좋아하는, 맨날 투닥거리는데 제일 소중한, 그런 친구가 태태 형이다. 나도 태태 형 좋아하지만 질투 날 때가 없는건 아니다. 태태 형은 무엇보다 지민이 형이랑 같은 집에 산다. 자는 얼굴도 나보다 더 많이 봤을거고, 같이 샤워도 하는 사이고 또 같이.. 물론 내가 지민이 형이랑 했던걸 그 형은 안했지만. 그래도 좀 질투 날 때가 있다. 형 알면 싫어할까봐 아닌척 하지만.


"정국아아-"


"녜?"


형이 이렇게 부르면 뭔가 부탁하고 싶을 때다. 진짜 좋다. 뭐든 다 들어주고 다 해주고 싶어서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뽀뽀하고 나갈래?"


그 말 나오자마자 나는 형 양쪽 뺨을 감싸고 입술을 댔다. 형이 키득 웃는다. 이내 웃음소리가 사그라들었다. 형이 입술을 열고 나를 기다려준다. 그 사이로 혀를 살짝 밀어 넣었다. 살짝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니까 형 입 안이 나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살살 부드럽게 하고 싶은데 번번히 실패했다. 가볍게 쥐고 있던 형 뺨을 좀 힘을 줘서 잡았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고 입 속으로 좀더 들어갔다. 손끝으로 피가 솔솔 빠져 나가는 것 같다. 심장이 쿵쿵 멋대로 뛰었다. 


내 손등 위로 형이 손을 겹쳐 잡아왔다. 이러면 멈추라는 신호다. 제멋대로 휘젓는 움직임을 가까스로 멈추고 눈을 떴다. 내려 뜬 형 눈이 보였다. 이어 눈을 들어 시선을 맞춰온다. 


"뽀뽀하자니까 너, 이거 너무 찐해."


"아..죄송해요 그게, 잘 조절이 안돼서.."


"게다가 너무 잘해."


"네..녜?"


"너무 잘한다구 너. 밖에선 조심해야겠다 우리."


형 말에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보나마나 빨개졌을거다. 멍하니 형 젖은 입술을 보다가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으휴 못살아. 왜 이렇게 귀여워 진짜?"


형이 또 키득키득 웃었다. 뭐가 됐든 나 때문에 형이 웃어서 좋았다.








점심 시간. 같이 학생식당에 갔다. 


형은 돌아서면 공연, 또 돌아서면 공연준비. 3학년이라 이런저런 준비할 무대가 많았다. 그 말은 곧 형이 요즘 내내 제대로 먹질 않는다는거. 오늘 점심도 대충 커피 한 잔 먹고 만다는거 혼자 밥 먹기 싫다고 억지로 끌고 왔다. 가는 길에 태태 형도 만나서 같이 왔다. 


"박지민, 니꺼는 니가 갖다 먹어."


"나 안먹을껀데?"


태태 형이랑 지민이 형이 또 틱틱대는 사이 나는 내 밥이랑 지민이 형 밥을 같이 챙겨서 갖고 왔다. 태태 형이 쯧쯧 혀를 찬다. 


"아주 몸종이네. 정국아, 지민이 너무 떠받들지 마. 자꾸 그러면 얘 진짜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아."


"지미니 형이 젤 잘나써여."


나는 진심으로 한 대답인데 태태 형은 못들을 거 들은 표정이다. 뭐 상관없다. 하루이틀 일 아니라서. 오늘 형 좋아하는 돈가스 나와서 다행이다. 형이 살짝 갈등하는 표정으로 식판을 내려다본다. 


"그것만 먹어요. 많지도 않아요."


"이거 돈가스..기름에 튀긴거.."


"그럼 내가 먹여주까여?"


"그럼 뭐가 달라?"


"내가 주는건 살 안쪄요."


"왜?"


"어? 어...암튼 안쪄여."


대충 넘어가줘요 형. 앞에서 듣고 있던 태태 형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태태 형도 빨리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마음 이해할텐데.


형 식판에 놓인 돈가스를 한 입 크기보다 약간 작게 썰어서 포크로 집었다. 입 앞에 갖다대자 어쩔 수 없이 형 입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돈가스 조각이 쏙 들어갔다. 뿌듯하다. 진짜 인생에서 뿌듯한 순간을 다섯개 쯤 꼽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무조건 그 안에 들어갈 것 같다. 두 번째 조각부터는 조금씩 크게 썰었다. 형 눈치 못채게.


내 밥은 빨리 빨리 퍼 먹었다. 중간에 지민이 형 먹고 있나 체크해야지. 먹는 중간에 형네 과 후배들이 몇몇 지나갔다. 굳이 테이블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한다. 태태 형은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고 지민이 형은 손만 살랑 흔들어줬다. 저 후배들은 나도 잘 안다. 형네 과 방 하도 많이 가서.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지만, 아니다, 싫은 쪽에 살짝 더 가깝다. 사람을 미워하는건 나쁜 일이지만. 근데 형네 과 후배들은 지민이 형을 다들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마음 뭔지 물론 잘 아는데, 그래도 별로 좋진 않았다. 형이 후배들한테 크게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늘 생각한다.


형은 내가 갖고 온 돈가스를 그래도 절반이나 먹어줬다. 뿌듯해. 오늘의 할 일을 다 한 기분이다. 밥 먹고 매점 가서 탄산수를 사왔다. 형 마시라고 줬더니 태태 형이 또 쯧쯧. 그만 잘 해주라니까-하는 말에 그냥 웃었다. 


"이따 나 연습실 연습있는데, 구경 올래?"


"어? 구경해도 돼요?"


"응. 뭐 별건 없는데, 너 또 나 기다리느라 혼자 벤치 앉아 있을거면 오라구."


"갈게여!"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연습하는거 몇 번 본적 있는데 볼 때마다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공연장에서는 물론이고 연습실에서의 형을 보는 것도 나한텐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형은 평소에도, 잘 때도 다 예쁘지만 춤 출 때가 제일 예쁘고 멋졌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런 큰 에너지가 나오는지, 나는 항상 감탄했다.


지민이 형이랑 태태 형이 예대 건물로 내려가고 나는 우리과 건물로 올라갔다. 빨리 강의 끝나고 형네 연습실 가고 싶다. 헤어지고 돌아서면 바로 또 보고 싶어서. 태태 형이나 김준이 알면 또 못볼 것 본 표정 짓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그런걸 어떡해.


"야 오늘 끝나고 술 한잔? 애들 모이기로 했는데."


"나 약속 있는데."


"아 뭔 약속 또!"


김준 말 듣자마자 안간다고 했더니 또 막 뭐라고 할 기세다. 


"지미니 형?"


"엉."


"아니 그렇게 맨날 보는데 하루 건너 뛰면 안되냐?"


"안되는데. 오늘 형네 연습실 구경가기로 했는데."


"올? 나도 같이."


"안돼."


"왜 안돼."


"형이 넌 오라고 안했어. 가서 시끄럽게 해서 방해하면 안돼."


"아주 고3 뒷바라지 하세요? 넌 짐니 형이 그렇게 좋냐?"


굳이 대답 안했다. 김준이 나한테 이거 물어본거 지금껄로 천 번째 정도 돼서.


"연습할때 오픈 안하기로 유명하다던데, 전정국이 특별하긴 한가보네."


앞에서 듣던 다른 동기가 끼어들었다. 속으로 조금 우쭐했지만 티는 안냈다. 근데 이상하게 다들 알아챈다. 나는 절대 티 안냈는데. 김준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날 본다. 


"암튼 술 안먹어."


"알았어 새끼야. 넌 이제 다신 안끼워준다."


나는 건성으로 들으며 책을 폈다. 


"근데 지민이 형 말야, 보면 좀 다르긴 해."


"어?"


김준 말에 나는 책을 향했던 고개를 들었다. 무슨 얘긴데? 김준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창문 어딘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무대 서는 사람 특유의 느낌? 끼? 그런거 좀 있지."


"아 맞아. 나도 전에 그 형 공연 본적 있는데 딱 느꼈어 그거."


"그게 뭔데?"


물었더니 방금까지 신나서 얘기하던 놈들이 입을 닫는다. 남들도 내가 보는 것처럼 지민이 형이 예쁘고 멋진가 보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니까 좀..그런 느낌?"


"그런 느낌..?"


"되게 좀 야시시? 아니 그 형이 실제로 그렇단게 아니라, 춤출 때 느낌이 그렇다는거지."


"......"


무슨 얘긴지 알 것 같다. 얘네는 가까운 친구들이고 나와 지민이 형 사이를 아니까 이 정도로 얘기한다는 것도. 


무대에 서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야 하는 일이다. 나도 당연히 그걸 안다. 형이 무대에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그런 공연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잘 안다. 힘들고 아파도 독하게 그 연습을 다 이겨내는거 아니까. 나는 형 공연을 그냥 마음 편하게 감탄만 하면서 볼 수 없다. 


그런데 딴 사람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형을 보면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는 애들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나 말고 남들이 그런 생각하는건 싫었다. 그걸 어쩔 수 없으니까 더 싫었다. 


이런 기분은 지민이 형한테 절대로 말 안할거다. 날 얼마나 유치한 애라고 생각할까. 


강의 내내 나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냥 형 빨리 보고 싶다. 오늘 연습 끝나면 치킨 먹으러 가자고 해야지.








<형 저 예대앞이요>


<응 연습실로 들어와>


형 톡 확인하고 연습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는 형 동기들 몇이랑 신입들이 많이 있었다. 신입들은 공연 중간에 잠깐 무리 지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역할 같았다. 아직 본 연습 전인지 여기저기서 각자 스트레칭 중이다. 거울 오른쪽 앞, 구석에 지민이 형이 있었다. 형이 다리를 앞으로 나란히 쭉 뻗고 앉아 상체를 깊게 숙였다. 어쩌면 저렇게 반듯하게 접은 종이처럼 챡 접히는지 신기했다. 


"지민 형, 제가 도와드릴까요?"


"응? 그럴래?"


전에 학교 식당에서 같이 밥 먹었던 신입생 놈이 지민이 형 뒤로 다가갔다. 형 쪼끄만 등을 손바닥으로 꾸욱, 밑으로 더 눌렀다. 아으으.. 형 앓는 소리. 크지도 않은데 신기하게 귀에 그 소리만 크게 들렸다. 


"아파요 형? 너무 세?"


"아니.. 요즘 스트레칭 게을렀나봐. 잠깐 한 번 더 눌러볼래?"


"네 형."


지민이 형은 왜 저 놈한테 또 부탁하는걸까. 내가 해줄 수 있는데. 나도 잘 눌러 줄 수 있는데. 이럴땐 내가 무용과 아닌게 싫다. 끼어들수도 없고. 나는 형이랑 반대편 벽 구석, 놓여 있는 의자에 구겨져 앉아 있었다. 


저 새끼...가 아니고 지민이 형 후배놈이 형 등 어디를 어떻게 만지나 거기에만 온 신경이 다 갔다. 필요한데만 만지라고. 쓸데 없는데 더듬기만 해봐라 너. 그러고 있느라 지민이 형이 좀전부터 나를 보고 있는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형이 날 빤히 보면 괜히 허리를 똑바로 하고 앉게 된다. 


형이 스트레칭 도와주던 놈한테 그만 됐다는 손짓을 보인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언제 들어왔어? 못봤는데."


"방금요."


"응. 정국아."


"녜."


서서 나를 내려다보던 지민이 형이 내 앞에 와서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는다. 밑에서 또 나를 빤히. 괜히 머쓱했다.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나 몸풀어야 하는데 좀 도와줄래?"


"제,제가여..?"


"스트레칭 간단한거."


나도 학교에서 운동하는 시간 많고 운동도 배우고 있어서 이런건 진짜 잘 할 수 있다. 근데 형이 날 콕 찝어서 부탁하니까 잠깐 당황했다. 저쪽에서 형 후배들이 이 쪽을 본다. 당황한거랑은 별개로 내 몸은 이미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형이 뭐 하라고 시키면 생각하기 전에 벌써 하고 있어서.


형이 다리를 양 옆으로 넓게 벌리고 앉았다. 다리 각도가 180도 될때까지 뒤로 조금씩 밀어주면 되는거. 나도 형처럼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맨발로 형 허벅지 안에 발을 대고 적당히 힘을 줘서 밀었다. 원래 유연한 몸이라 아무 저항 없이 쉽게 밀려간다. 


거의 다 벌어진 지점부터는 살살 밀었는데, 그게 간지러웠나 보다.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너, 여기 간지럽다고."


맞다. 형은 여기 만질 때마다 못참는다. 우리 둘만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형 약한 부위를 발로 누르고 있었다. 허벅지 조금 위, 안쪽. 평소엔 좀처럼 타인의 손이 닿을리 없는 곳. 


나는 발을 형 양쪽 허벅지 안에 대고 찌푸리면서 웃는 형을 멍하니 바라봤다. 형 뒤로 형네 후배들이 아직도 이 쪽을 보고 있는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형 손목을 잡았다. 한 손에 하나씩. 내 쪽으로 천천히 잡아 당겼다. 간지러운걸 참으면서 형 몸이 내 쪽으로 끌려 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릴 때까지 쭉 당겼더니 형이 또 아야야 소리를 냈다. 정말 아플까봐 손에 힘을 곧장 풀었다.


"괜찮아요 형? 그만 할까요."


"야 너어- 간지럽다니까 왜 계속 하냐고오-"


상체를 일으킨 형이 완전히 벌려졌던 다리를 사뿐, 하는 동작으로 오므렸다. 그리곤 내 양손을 잡고 힘겨루기를 시도해 온다. 일어나서 도망가는척 피했다. 너무 단번에 이겨버리면 안된다. 웃음이 나오는걸 참고 뒤로 밀려나줬는데 형이 다리를 걸어 나를 넘어뜨린다. 바닥에 누웠더니 형이 뒤에서 날 안고 한쪽 다리로 몸을 감았다. 까르르. 이겼다고 생각해서 좋은지 형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 형 웃는거라서 이건 무조건 반사다.


"힘만 세가지구."


"미안해여."


"뭐가 맨날 미안하대. 그냥 한 말이야."


"녜. 형, 물 마실래요?"


"아 저기 밖에 정수기.."


"생수 사와써여."


형 목 마를까봐 가방에 항상 생수 구비. 형 먹을 물이랑 간식, 에어컨 추울 때 입을 바람막이 이런건 필수품이다. 김준은 애기 엄마 기저귀 가방이냐고 놀렸지만.


생수병 따서 형한테 먼저 줬다. 형이 한 모금 마시고 나한테 준다. 나는 세 모금. 왠지 덥다 지금. 아. 근데 또 입대고 먹었다. 어릴 때부터 페트병 음료 마실때 입 대고 쫍쫍 먹는 버릇 있어서. 이거 친구들한테 엄청 구박 받았는데 안고쳐진다.


"나 한번 더."


"..어.. 새거 사올까요? 이거 입대고 마셔가지고.."


"됐어, 괜찮아."


형이 아무렇지 않게 내 손에서 생수병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형도 입대고 꼴깍꼴깍.


"연습 오래 안걸려. 나 하고 올게."


"여기 있을게요."


자리 정리를 하고 다시 구석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제야 나는 연습실 안이 너무 조용하다는걸 알았다. 다들 형이랑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도. 어..왜들 저러지.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형이랑 평소에 하던 장난, 하던 대화. 별로 특별한건 없었는데.




연습이 시작됐다. 2,3학년들이 레퍼토리를 끌어가는 공연이라 자기 차례 아닌 1학년들은 나처럼 구석에서 어슬렁 거리며 차례를 기다린다. 그때 지민이 형 주변에 자주 보이던 1학년 몇이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너 체교과랬지?"


"어."


"지민이 형이랑 어떻게 그렇게 친해졌어?"


"..뭐..그냥."


"아니, 박지민 저 형 방금처럼 그렇게 까르르 웃는거 처음 봤는데. 나 잘못 들은 줄 알았잖아."


"......"


내가 별 말 안하자 자기들끼리 대화에 빠진다.


"연습실에서 장난치는 것도 처음 봤는데? 와 오늘 이거 무슨 일? 나 혼자 본거였음 말해도 아무도 안믿었을껄."


"당연하지. 난 봤는데도 아직 접수 안됐는데."


"근데 전정국, 진짜 지민이 형이랑 어떻게 친해진거? 비법 좀 알려줘라."


지민이 형이 무용과에서 까칠하기로 유명하단건 나도 잘 안다. 형 없을 때 까칠냥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태태 형 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지민이 형은 남들한텐 안하는걸 나한텐 해준다. 스트레칭 부탁도 하고 장난도 걸고. 그것만으로 나는 뭔가 이긴 것 같고 그랬다. 이것도 지민이 형한텐 티 안내야겠다. 부끄러우니까.


"근데 요즘 짐니 형 약간 부드러워진 것 같긴 해. 우리 입학 전에, 작년까진 연습 때 진짜 칼바람 쌩쌩 할 때 많았다던데."


"나도 들었어. 요즘엔 그래도 우리한테 먼저 말도 걸어주고 안되는 부분 고쳐주고 그러시잖아. 전에는 그런거 일절 없었다던데?"


어... 이 말은 별로다. 나한테만 특별한 줄 알았는데. 그냥 형 올해부턴 사람들한테 부드러워지기로 한건가? 그냥 그런건데 내가 착각하나.. 방금 좋았던 기분이 금방 또 시들시들. 지민이 형이랑 있으면, 형이랑 같이 안있을 때도 형 생각하면 그랬지만, 나는 일 분만에도 기분이 몇번씩 바뀐다.






연습이 끝났다. 형 옷 갈아 입고 나오는 동안 나는 예대 건물 입구에서 기다렸다. 태태 형이 왔다. 이 공연에 태태 형은 출연 안해서 오늘 연습 땐 없었다.


"짐니 기다려?"


"녜.."


"어이구 우리 토끼, 왜 이렇게 부었어?"


"아닌데여."


태태 형은 눈치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눈치가 빠르다. 아니면 내가 너무 티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분이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투명하게 다 보인다고, 지민이 형도 맨날 그랬다.


"연습 구경했어? 왜, 무슨 일 있었는데?"


"별로..무슨 일 없어여."


태태 형은 점쟁이를 해도 잘 할 것 같다. 그것도 알고 보면 심리상담 비슷한 것 같던데. 태태 형이 느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으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지미니 형이요.. 저는 저한테만 특별히 잘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건 아닌가바여.."


"..뭐, 어? 음?"


태태 형 말 막혔을 때 소리 나왔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형 후배들이 그러는데 요즘엔 후배들한테도 형이 되게 잘 해준다고.. 그냥.. 아니 이거 짐니 형한테는 말하면 안돼여 형.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어요."


태태 형이 말이 없다. 못들었나. 옆을 봤더니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금방이라도 절레절레 할 것 같은 표정이다. 혼나는 기분 같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도 나 유치해서. 그냥 고개 숙였다.


"박지민 변하긴 했지. 애들한테 인사도 먼저 하고 가끔 밥도 사고 커피도 사고. 싹싹해졌다 그래야 되나. 확실히 그렇네."


"..아..네.."


내가 유치해서 하는 생각이었으면 했는데. 태태 형이 확인시켜줬다, 진짜로 그렇다고. 형이 주변 사람들이랑 잘 지내면 좋은 일인데. 그것까지 질투하면 안되는데 나는 진짜 이기적인 것 같다.


"근데 그거 너 때문인 것 같은데."


"..어? 저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원래 꽉 닫혀 있던 애가 너 만나고 좀 풀렸다 그래야 되나. 주변 사람들 살필 줄도 알게 되고 부드러워지고. 나는 정국이 너 덕분에 변한 것 같은데."


"...제가요..?"


"솔직히 박지민 같은 까칠이 사회생활 하려면 골치 아프지. 지금이라도 성격 조금이나마 유해져서 천만다행이지 뭐. 학교 안에서야 다들 박지민 잘났다고 우쭈쭈 해주지만. 졸업하면 어쩔거야 저거."


평소에 하던 걱정인 듯 갑자기 태태 형 말이 빨라졌다.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 형이 이렇게 빨리 말을 잘 하다니.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박지민 너 닮나보다."


"..아...음..."


이번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짐니 나오면 같이 들어가. 난 따로 갈게."


태태 형은 언제나처럼 먼저 자리를 피해줬다. 태태 형 가고 거기서 좀더 기다렸다. 사랑하면 닮는 것.. 지민이 형이 나를 닮아간다..? 그 말을 다시 생각해봤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지민이 형은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다. 주위에 큰 관심도 없고 자기 것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냉정할 때가 많고 힘든걸 끝까지 견디는 악바리 모습도 있다. 나와는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런 형이 나를 닮아간다니. 아무래도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태태 형 말 맞는걸까.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지민이 형이 뛰어오고 있었다. 


"미안, 너무 늦게 왔지."


"아..아니여, 형, 배 안고파요?"


"안고파.."


"초콜렛 있는데 줄까요? 곰젤리도 있어요."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형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 가방 안을 같이 들여다본다.


"도라에몽 같아. 여기 대체 뭐가 어디까지 들어있는거야?"


김준은 기저귀 가방이라 그랬는데, 형은 도라에몽이라고 해줘서 다행이다.


"오늘 연습 많이 했잖아요. 열량 보충해야 돼요 형."


"어 나 별로.."


"치킨 먹어요."


"..치킨..기름에 튀긴거.."


"내가 주는건 살 안쪄요."


"진짜?"


"네! 절대 안쪄요."


형이 나를 보고 웃었다. 형이 웃어서 나도 웃었다. 


형 어깨에 손을 올려 안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형 후배들이 아무리 형이랑 친해져도, 이건 못할거 아니까 그래서 더 좋았다.


"지미니 형."


"응?"


"이따가 집에 갈때요.."


"응."


"음..뽀뽀해도 돼요?"


"밖에선 조심하자 그랬잖어."


"조심할게요. 살짝만 할게요."


노력해볼게요.


"글쎄에. 너 하는거 봐서."


"네 형."


이건 반은 허락한거나 마찬가지. 나오는 웃음을 숨기면서 학교 근처 골목 안쪽, 형이 좋아하는 치킨집으로 향했다.


"형 뭐 먹을래요? 양념? 후라이드?"


"...한마리씩 시키자."


"녜, 역시 1인 1치킨이져."


"너 때메 또 살찌게 생겼어."


형이 조그맣게 투덜대는 목소리가 좋았다. 


"마지막 조각은 제가 먹으께여."


"그럼 뭐가 달라?"


"원래 마지막꺼 먹는 사람이 살 찌는거에요. 그거 안먹으면 안쪄요."


내 말에 형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형이 잘 웃는다. 많이 웃는다. 어쩌면 태태 형 말이 조금쯤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지민이 형이 다른 사람들이랑 너무 잘 지내는건 싫다. 조금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정구가아?"


"..어? 아 네네, 가고 이써여."


형 뒷통수 귀여워서 멍하니 보고 있었더니. 앞서 걷던 형이 돌아보면서 또 웃는다. 


보들보들 간질간질, 내 마음에도 그 웃음이 번졌다. 




















잠깐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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