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이야기에 심취한 탓이었나.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알고 지냈던 사이라더니 윤기의 목소리를 듣는 그 자체로도 즐거워서 자신도 모르게 계속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왔어? 나 라면 끓이려는데 형도 먹을거야?"


"아니. 괜찮아. 너 혼자야? 형은?"


"아 오늘 홍보 도는 날이라 나갔어. 근데 그 얼굴로 어딜 그렇게 다닌거야."


지민은 대답없이 방으로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니 그래도 아침보다 붓기는 가라앉아 보였다.


"아 영수야 그냥 나도 하나 끓여줘!"


라면 냄새가 솔솔 풍기자 입맛이 도는 기분이었다.


"아~ 형. 진짜. 알겠어. 미리 좀 말하지. 그리고 내가 집에서도 영수냐."


투덜거리며 라면 봉지를 뜯는 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정국아~"







지민과 헤어지고 윤기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지민을 다시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토록 원망했었지만 지민임을 확인 하는 순간 그저 다시 만났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윤기는 책상에 전달된 메모를 확인했다.


-엑시멈 이진만과장 연락.


아 그렇지.

깜빡 할 뻔 했네.


윤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정국이도 나간 후 집에 혼자 남은 지민은 생각에 잠겼다.


윤기의 제안에 당황은 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지민은 이미 예전에 한 번 기억을 잃은 자신을 돌봐주던 진에게 고마웠지만 짐이 된다는 생각에 따로 나가살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망설이다 그 고민을 털어놨을때 혼자 둘 수 없다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던 진의 눈이 떨리는 걸 보았었다.


그리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민에게 그는 고맙고 미안한 존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미안해질 뿐이었다.


진의 마음을 알고 있는 지민은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위잉- 위잉-


"어 형. 한참 바쁜 시간 아냐?"


- 잠깐 한가해졌어. 너 없으니까 정신없다.


"아.. 그냥 나갈 껄 그랬나... 많이 바빠?


- 해본소리야. 그 얼굴로 나오긴. 좀... 괜찮아?


"부은 게 많이 가라앉아서 내일이면 괜찮을 거 같아. 좀 알록달록해 보이겠지만.


진은 좀 더 푹 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참 고민하던 윤기는 회의실로 들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남준아 바빠? 잠깐 나 좀 보자."


윤기는 전화를 끊고 결제 서류를 마무리 하고 조금 먼저 퇴근한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은 윤기는 서류 몇 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볼 쯤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윤기의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별일이네. 형이 날 먼저 찾을 때도 있고."


"왔어?"


"진짜 무슨일있어? 사람이 안하던 짓하면 죽을거라던데..."


"남준아... 너희 회사... 엑시멈이랑 일하지?"


"엑시멈? 응 우리랑 하고 있지. 뭐야 무슨일인데."


남준의 말에 윤기는 대답없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윤기가 생각이 생각이 많아지면 나오는 버릇.


남준은 그대로 윤기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엑시멈이랑 계약 언제까지야? 거래 끊을 수 있나?"


뜬금없는 이야기에 남준이 윤기를 쳐다보았다.


"걔네 규모상 너희 회사에 메인은 아닐거고. 꼭 거래해야되나?"


"...아니... 뭐... 계약은 이미 연장중이지만... 일단 안하려면 안할 이유는 충분히 있어. 문제 몇번 일으켜서 고민 중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리고 형 말대로 메인도 아니고 가격 보고 거래하는 건데 사고 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그 메리트가 안먹힐 정도긴 하거든."


"그래? 그럼 대체 회사 알아보고 최대한 빨리 끊어버려."


"형. 이유나 알자. 우리보고 끊으란 소리는 형네도 이번 거래 안할거라는 건데. 그럼 걔네 망하라는 소리잖아. 형이 이유없이 이렇게 한 회사를 보내버릴 사람은 아니고."


남준은 평소의 윤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평소의 윤기라면 회사에서 거래를 안한다고 해도 회사 하나가 그냥 넘어 갈 수 있다며 말리면 말리는 사람이지 죽이려고 드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의 윤기는 평소와 너무 달랐다.


윤기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 지민이...지민이를 찾았는데...."


"뭐?? 박지민?? 박지민 그 개새끼??"


"... 마져 안들을 거면 그만 얘기하고."


"...하... 일단 말해봐... 근데. 그새끼랑 뭔 상관인데?"


잔뜩 흥분한 남준이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정말... 우연히 만났어. 근데 엑시멈 사장새끼가 지민이를 때렸더라고. 거래가 안풀린 화풀이인지. 그리고 나한테 실수 한 것도 좀 있고."


남준은 윤기를 얘기를 듣자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형... 미쳤어?? 박지민이... 하... 천하에 그 박지민이 누구한테 맞았다고? 박지민이 사장을 팼다면 차라리 믿음이 가겠다. 그리고, 아니, 그래! 맞았다 치자. 근데 왜 박지민 때문에 그런 일을 해줘야 하는데? 형 기억안나? 그 새끼가 형한테 한 짓!!!!!" 


".... 기억을.... 못하더라... 내가 누군지...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사고로 기억을 잃었데."


"그 말을 믿으라고? 지금 내 눈에 그 새끼 보이면 내가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인데. 하.... 진짜... 와 민윤기 대단하다.... 노벨평화상 받으시겠네?"


윤기는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준이 지민이를 싫어한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게 문제였다.


하긴... 자신도 바로 어제까진 기억에서 지워버렸으면서 무슨 할말이 있으랴.


".... 엑시멈.... 그 건은 일단 알겠어. 안그래도 그 사장새끼 양아치 같아서 걸러야 하나 고민했던거니까. 근데 형. 정신차려. 민윤기씨. 정신차리시고 생각 다시 하세요. 먼저 간다."


남준은 말을 마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윤기는 자리에 앉은채 남준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잘못하는 걸까...


그래도... 남들이 뭐라고 하건 지민이를 다시 만나게 됐으니 다시 예전처럼 되돌리고 싶었다.


남준이 가고 잠시 후 윤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다.


남준과 헤어진 후 바로 집으로 돌아온 윤기는 옷장을 열어 평소엔 잘 입지 않던 검은색 후드티를 꺼내입었다.


검은바지. 검은캡모자를 쓰고 검은후드티를 입고 후드를 썼다.

거울을 보며 검은색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헛웃음이 났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니 꼭 학생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지민이랑 함께 있던 그 시절로.


윤기는 밖으로 나가 번화가 한복판을 걸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전화를 한통 받고 어딘가로 급히 향했다.









진과 통화를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던 지민은 지끈거리는 두통때문에 잠에서 깼다.


"으..."


잠시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게 생각 만큼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두통에 지민은 약국을 찾아 나섰다.


어느 새 어두워진 거리로 나와 집에서 멀지 않은 약국에서 진통제하나를 샀다.


생각보다 통증이 심했다.


"한알 먹고도 계속 통증있으면 병원으로 가세요. 두알씩 먹고 그러면 안되요"


통증때문에 표정이 많이 안좋아 보였는지 약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지민은 알겠다며 대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통제 한 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머리속이 지잉 울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무언가 떠올랐다.


... 지민아... 오지마.. 오면 안돼...!!!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 윤기목소리였다.

급하게 어디론가 뛰는 것 같은 자신...

그리고 앞에 누군가 나타났는데...


"...으윽..."


더이상 아무런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절 하듯 정신을 잃었다.

암것두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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