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츠비는 도박꾼이다. 다른 갬블러와 캐츠비는 다르다. 우선, 캐츠비는 너무 도박을 좋아한다. 밖에서 그는 수많은 돈을 도박으로 잃었다. 자신의 재산을 다 잃자 지인들의 돈을 빌렸다. 지인들의 돈을 다 잃자 사채를 끌어왔다. 그야말로 땡전 한 푼도 없는 상태에서 캐츠비는 이름을 걸었다. 물론 졌다. 캐츠비란 이름은 가명이다. 신분도 뺏긴 캐츠비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성채로 들어왔다. 성채에 들어와도 캐츠비는 캐츠비였다. 그는 성채의 도박장을 이곳 저곳 돌았다. 성채에서도 캐츠비는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결국 신체 모든 곳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됐다. 성채에 미친놈은 많았지만 이렇게 답없는 놈은 처음이었다. 캐츠비는 그 도박장의 보스인 Y의 앞에 끌려왔다. 하지만 캐츠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인생도 도박이지.”


“약쟁이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혹시 지금 약을 한 상태인가?”


“…아니. 혹시 이게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이면 게임 한 판만 부탁해도 될까?”


Y는 어차피 죽는 거 한없이 가라고 허락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Y와 타이슨을 포함해서 총 10명이었다. 타이슨은 딜러를 했고 Y는 관객으로 참여했다. 거기서 다른 갬블러와 캐츠비가 같은 이유가 나타났다. 캐츠비가 8연승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츠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를 꺼내기 전이 더 좋은 표정이었다.


“역시 배팅을 안하니까 재미가 없어.”


“이렇게 하지. 이번에 이기면 넌 살아서 나갈 수 있어. 하지만 이기지 못하면 바로 죽는거야.”


“오....여기 굉장히 인심이 좋군. 그러면 내 목숨을 배팅하는 건가?”


“그렇게 볼 수 있지. 누가 할래? 남은 사람은 없나.”


“그쪽이 하는 건 어때?”


캐츠비의 권유에 Y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Y는 캐츠비가 지면 바로 방아쇠를 당기라 말한 후, 리볼버를 타이슨에게 넘겼다. 판에 앉은 Y는 캐츠비의 표정을 봤다. 분명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까부터 웃는 표정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었지만 아까 Y의 제안 이후 눈빛이 변했다. 캐츠비는 이번에도 이겼다. 9연승이 됐다. 이렇게 되면 이 도박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이상했다. Y는 곰곰히 생각했다. 자신과 부하들이 도박을 지지리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채에 있는 도박꾼들이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고민은 곧 해결됐다. Y는 약속은 약속이니 캐츠비를 보내려 일어섰다. 그것을 보고 캐츠비가 말했다.


“한판만 하고 가는 거야? 그러면 다음은 딜러와 하는 건가?”


“….”


왜 천재 도박사가 여기까지 왔는가. 그건 자신이 얼마를 들고 있던지 상관하지 않고 모두 잃을 때까지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캐츠비가 100만원을 들고 왔다면 그 100만원을 모두 잃을 때까지 겜블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실력으로 캐츠비를 이기긴 힘들겠지만 판에서 소위 난다고 하는 놈들은 달랐다. 결국 그날 캐츠비는 20연승 1패를 한 후 Y의 밑으로 들어왔다. 캐츠비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가끔 조작된 판을 짜야 되기는 했지만 매일 도박판에서 사는 놈이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하루는 항상 같았다. 도박과 시간만 바꾸면 마치 공무원의 삶과 같았다. 우선 저녁 7시에 일어난다. 씻은 후 면도를 하면서 자신의 외모에 감탄한다. 구리빛 피부에 진한 이목구비는 꽤 괜찮았다. 그리고 밥을 먹는다. 도박장에서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에 물은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 싸구려 왁스로 머리를 넘긴 후 화려한 정장을 입는다. 주로 파란색, 초록색, 분홍색이다. 내부에 있는 와이셔츠도 보통 꽤 화려하다. 도박사들은 종종 이렇게 주위를 분산시키곤 한다. 구두까지 신고 나오면 딱 9시가 된다. 9시는 옆집 애들이 귀가하는 시간이다. 붉은 머리의 쌍둥이는 둘 다 장난끼가 많다. 그래서 데이비드와 데이브의 인사는 늘 이런 식이다.


“오늘도 많이 잃고 오세요!”


“아저씨는 언제 손목이 나갈지 궁금해요!”


“그래. 만나서 반갑고 빨리 집에 들어가라.”


“다음엔 아저씨가 안보이면 좋겠어요!”


저 사악한 꼬맹이들은 늘 고약한 말만 내뱉는다. 하지만 본심과 정반대의 말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캐츠비는 너그럽게 넘긴다. 이미 캐츠비가 사는 복도에서 두 악동들의 말은 유명하다. 그래서 주민들도 반대로 해석한 후 친절하게 응답한다. 오히려 저 놈들이 “아저씨! 오늘은 잘되길 기도할게요!”라는 말을 한다면 불안할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고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를 지나면 난화의 도박장이 나온다. 도박장은 항상 보이던 사람들과 주말에 가끔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물론 도박하는 인간 중 캐츠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캐츠비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받는다. 부인에게는 키스를 받고 중년의 남성들에겐 헤드락을 당한다. 그리고 그것을 젊은 친구들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식이다. 이 화려한 도박장은 마치 밖에 있는 카지노 같아서 사람들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도박장에 어울리는 인물은 주인장인 난화뿐이다. 도박꾼이 되면 안목이 좋아진다. 도박의 마지막엔 꼭 보석이 나오는데 그게 진짜인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난화의 귀걸이는 진짜다. 딱 봐도 손가락만한 사파이어가 춤추고 있다. 여기서 저걸 주면 적어도 10층에 집 하나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화려하네. 난 왜 자기가 아직도 털리지 않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내가 도둑이면 당신의 집이 어딘지 확인할 거야.”


“오늘도 출석했네. 내가 그런 일을 경험하지 못한 건 나도 모르겠네. 아마 여기 사는 인간들의 도덕 수준이 높아서 그러지 않을까?”


“그러면 자기의 마음을 털면 어때? 그건 도덕 수준에도 맞잖아.”


“글쎄....내 옆에 있던 남자는 줄줄이 초상을 치뤘거든. 가끔은 죽은 전남편을 어떻게 죽였는지 잊어버리지. 그래서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해. 혹시라도 내가 그 사람을 남편으로 착각할 수도 있잖아?”


“거기에서 나는 좀 봐줘. 이왕이면 도박하다 죽고 싶거든.”


“걱정하지마. 나도 VIP고객을 잃고 싶진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입씨름을 하는 둘을 보며 즐거워한다. 사실 이것도 일종의 연극이다. 도박판에서 팽팽한 긴장을 풀어주는 상황극인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사실이라 여겨 캐츠비와 난화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암묵적 협력관계이다. 예를 들면, 지금도 말씨름을 하면서 난화가 캐츠비에게 신호를 줬다. 주로 눈빛과 손짓으로 보내는 신호이나 그 의미는 뚜렷했다. 난화는 저기에 있는 신입을 털어보라고 명령에 가까운 신호를 보냈다. 성채 출신이 아닌 신입은 얼간이가 아니면 호구이다. 캐츠비는 이번 신입이 얼간이라 확신했다. 애초에 패를 잡는 방법부터 글러먹었다. 거울을 등지고 앉아있는 것도 그랬다. 자신이 들고 있는 패가 뭔지 광고하는 꼴이니 그야말로 초짜였다.


“형님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 나는 여기에서 살거든 그래서 누가 오는지 다 알아. 여기 온 것은 처음이지?”


“아....예....맞아요. 저는 오브라이언입니다.”


“나는 캐츠비라고 불러줘. 승률은 좀 어때? 괜찮아?”


“아니요. 지금 죄다 잃고 있어요.”


“그럼 나랑 같이 해보는 건 어때? 저쪽 테이블에서. 여기 사장도 함께 할거야.”


“그거 좋지요. 갑시다. 어차피 여기에 계속 있으면 잃기만 해요.”


호구는 언제나 3대 1의 전략에 넘어간다. 3대 1의 법칙은 3번 이기고 1번 지는 것이다. 이기는 과정은 늘 아슬아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승리가 더 달콤한 법이다. 한번의 패배는 크게 져야한다. 그래야 호구의 호승심을 자극할 수 있다. 사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딜러까지 모두 가짜다. 캐츠비와 사장은 이미 서로의 패를 알고 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열띤 승부이지만 다 연극에 불과하다. 이건 일종의 신고식이다. 만약 신입이 꽤 굴러먹다 온 녀석이면 바로 알 것이다. 애초에 이 테이블에 앉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입이 호구라면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연극에 참여한다. 캐츠비는 호구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공범인 척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얼굴이 붉어지고 뜨거운 열기로 찬 테이블은 술을 주문한다. 호구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카드를 잡으면 시간은 쉽게 간다. 이렇게 아침까지 놀면 판단력은 흐려진다. 어느새 호구는 캐츠비를 의형제로 생각한다. 그때부터 이 판의 진가가 나온다. 사장이 가장 비싸게 파는 정보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얻어진다. 이번에 들어온 호구도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호구가 가장 위험한 정보를 넘겼다는 것이다.


“진짜야.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너가 동생 같아서 하는 소리야. 조만간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초상난다? 이전 성주는 빅브라더랑 꽤 친했거든. 그래서 옛날에 군경찰이 들어와서 도와준 적도 있어. 그런데 성주가 죽었으니 더이상 성채를 가만히 둘 필요가 없지. 원래 성채가 반역자들이나 귀찮은 범죄자들 보내는 용도로 썼거든. 꽤 유용했단 말이야. 이전 성주랑 말만 맞추면 감시할 수도 있고 나오지도 못하잖아? 그런데 이번에 바뀐 성주는 영 아니야. 빅브라더는 가장 위험한 녀석들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어. 발등에 불이 난 것과 같지. 지금은 군경찰이 반역자만 처리하겠지만 나중에는 아예 성채를 박살낼걸?”


디자인/일러스트/글/시/다양한 장르의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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