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미첨은 상당한 재산을 모아둔 성공한 자영업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4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여자였다. 그녀가 운영하는 빵 가게에는 독특한 단골이 있었다. 매번 묵은 빵 두 덩어리를 사가는 허름한 옷의 이 중년 남자의 손가락에는 늘 물감이 묻어 있었다.


 "아하, 저 사람은 화가로구나."


 매일 찾아오는 그가 싫지 않았는지 경매에서 좋은 그림을 사다 걸어놓고 그가 언제나처럼 가게에 왔을 때 예술에 관심이 많은 척 들릴 만큼 작지 않게 중얼거렸다. "이 그림들은 다 좋은데, 여기 이쪽과 이쪽을 보면 원근감이 맞지 않네요. 아쉬워요." 그림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마더는 그가 화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마더는 묘안을 생각했다. 여전히 남자는 묵은 식빵만을 사 가고 있었는데, 그가 잠시 바깥 풍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묵은 빵을 가르고 그 안에 질 좋은 버터를 발라놓은 것이었다. "역시 나는 센스쟁이라니까? 분명 향긋해진 빵을 먹으면서 저 남자는 내게 고마워하겠지. 그리고 어쩌면... 내 마음도?"


 하지만 얼마 안 가 남자가 다시 가게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난처해지고 말았다. 남자가 ‘고맙다’며 꽃다발을 건네기는커녕, 마구 소리를 치며 화를 냈으니까. "당신은 날 완전히 망쳤어! 알아? 휴, 이 주제넘은 여자야!"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가난한 화가가 아니라 건축가였다. 새 시청사의 설계도를 맡아 그리는 중이었는데, 고무 지우개로는 연필로 그린 초안이 잘 지워지지 않아 건축가들은 종종 묵은 식빵을 사용하곤 했던 모양이다. 하필 오늘 막 선을 다 땄고, 늘 그랬듯 식빵으로 연필 선을 지웠는데, 흠뻑 발린 버터가 설계도에 범벅이 되었다. 


 결국 3개월에 걸친 건축가의 노력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했고, 마더 미첨의 계획 또한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치장했던 비단옷을 벗고, 낡은 갈색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사두었던 화장품은 설계도가 그랬듯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 오 헨리 단편선 중 ‘마녀의 빵’ -


 제목만 봐서는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글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마녀의 빵’이 그랬다. 읽기 전에는 ‘여기 마녀가 나오는가 보다’ 생각했지만, 글을 다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때까지 마녀는커녕, 빗자루조차 볼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빵 가게 주인, 마더 미첨이 바로 마녀였다.


 그녀가 마녀라고? 그럴 리가? 마더는 가게에 자주 오는 남자에게 설렘을 느꼈고, 그래서 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호의를 베풀고 싶었다. 그녀에겐 조금의 악의조차 없었다. 하지만, 끝은 분명 좋지 못했다. 남자는 화를 냈고, 마더는 한껏 꾸민 옷을 옷장에 쑤셔 넣었고, 화장품들을 쓰레기통에 버렸으니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차라리 물어봤으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남자가 묵은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화가라고 생각했고, ‘나름의 배려’로 묵은 빵에 좋은 버터를 발랐으리라. 하지만, 묵은 빵은 먹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데 사용했고, ‘나름의 배려’는 그녀를 남자를 골탕 먹인 마녀로 만들었다. 


 "배려해주시는 건 알겠는데, 당황스러워요. 먼저 '밀어드릴까요?' 물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주변에서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을 많이 본적은 없는데, 그분 말씀에 따르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갑자기 뒤에 따라붙어서 휠체어를 힘껏 밀어주시는 분들을 생각보다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물론, 그분들이야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돕고 싶어 다가오신 것이겠지만, 막상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을 것이고, 놀람을 넘어 불쾌함까지 느낄 수 있는 일임을 그때가 돼서야 알았다.


 ‘배려’는 참 어렵다. 빵 가게 주인이 아니더라도, 휠체어를 타 본 적은 없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한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따뜻함이 아니라 무례함이나, 불쾌함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여기 두 짐승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우와 두루미가 같은 동네에 살았다. 하루는 여우가 두루미에게 "한 턱 낼 테니까 어서 오라."고 말하면서 두루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여우는 두루미에게 납작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내밀었다. 두루미는 부리가 길기 때문에 수프를 먹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두루미는 여우에게 "예전에 음식 대접을 잘 해서 고맙다. 이번에는 내가 한 턱 낼 테니까 어서 오라."고 말하면서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두루미는 여우에게 일부러 입이 긴 병에 담긴 고기를 내밀었다. 여우는 부리가 없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 이솝우화 중 ‘여우와 두루미’ -


 

 도대체 배려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에 보니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이란다. 이것만 보면 앞서 이야기 한 마더 미첨이나, 휠체어를 힘껏 밀어준 누군가나, 먼저 친구를 초대한 여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마음을 써서 화가로 보이는 남자가 살 빵에 버터를 발랐고, 내 앞에 낑낑대며 이동하는 어떤 분의 휠체어를 밀어주었을 뿐이고, 또 같은 동네 친구에게 맛있는 수프를 대접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 세 가지 경우를 ‘배려’라고 말하지 않는다. 배려가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일’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당신의 배려가 상대방에게도 배려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마더 미첨은 매일 오는 단골이 화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휠체어를 밀어준 어떤 사람은 저 앞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우는 자기가 평소에 먹는 접시에 수프를 담아 두루미에게 주었다. 이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만약 마더 미첨이 손님에게 '매번 같은 빵을 사가시네요. 이 빵을 좋아하시나 봐요?' 물었다면 ‘아닙니다. 나는 건축가예요. 이건 지우개 대신 사용한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테고, 빵에 버터를 바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땀을 흘리며 휠체어를 굴리는 그 분에게 슬며시 다가가 '실례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가시는 곳 중간까지라도 제가 밀어드려도 될까요?' 물었다면, '아,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들었을 거다.


 여우의 경우는 또 어떤가? 식사 메뉴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두루미에 대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그에게는 접시가 아니라 긴 병에 수프를 넣어 ‘자, 차린 건 많이 없지만 많이 먹어’ 말하며 마음을 전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배려가 어려운 것은 내 입장이 아니라 네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고,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네 생각대로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네 입장, 네 생각을 헤아리는 일, 공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마더 미첨도, 여우도, 휠체어를 밀어준 그 사람도 그런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상대를 완벽하게 배려하는 비법 같은 건 모른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고 싶다. 혹 ‘내 입장’에서 한 배려가 ‘네 입장’에선 마음을 베려 한 무례한 행동이 되었다면, 정중히 사과하고 그것들을 복기해봤으면 좋겠다. 혹시 용기를 조금 내서 물어보면 어떨까? 


 인간은 처음부터 딱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 나가는 데서 배려는 시작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시행착오는 배려에서 필수적이다. 그래, 어쩌면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관계에도 조율이 필요할지 모르지. 


 그러니 혹시 누군가가 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음을 잠시 낸다고 할지라도, 짜증 내지 말고 솔직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보여주는 건 어떨까? 해치지 않는다. 물지 않는다. 다만, 당신을 배려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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