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14일 개최 예정인 검은방/회색도시/베리드스타즈 통합 배포전 <물한잔 치얼쓰>에 나올 신간 샘플입니다.
  • 아직 진행중인 글이나 일단 질러놔야 완성을 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지 싶어서(…) 샘플 분량을 미리 게시합니다.
  • 수창도윤수창(슾도슾)기반의 모브X수창이므로 당연하게도 모브가 등장합니다.
  • 수위물이 될 지 안 될지도 미정이나, 아래에 이어지는 샘플에는 암시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직접 묘사가 없으므로 샘플은 전체 공개로 걸어둡니다.)
  • 미성년자구독불가
  • 추후 일부의 내용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 책이 나올 수 있기를 셀프 기원해 봅니다….
  • 마감 성공! 행사장에서 뵈어요!






Prolog.




하수창은 순결이란 말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다. 보통 인간의 생식과 생산 행위를 위해 취급하는 신체 기관에 대고 붙이는 표현이란 점에서는 더욱 웃긴 말이기도 하다. 위생 관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단어 하나에 환상들이 참 많기도 하지. 순결을 간직하다. 순결을 지키다. 순결을 잃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그 우스운 단어를 떠올리게 된 건 인간사에 냉소를 담아보고 싶어서도 아니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심오하게 곱씹어보거나 정정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순결과 위생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중적으로 쓰이기에 그 안에 숨어있는 비틀린 인간의 집착이 기이할 뿐이었다. 역시 위생과는 거리가 멀지. 엉덩이 아래 척척하게 눌려서 움직일 때마다 불쾌하게 퍼지는 이물질과 허벅지 위로 말라 붙은 채 살결을 당기게 하는 비릿한 체액은 모두 동일한 감상을 남기게 했다. 위생은, 개뿔이…….

그렇다면 존재하는데 뭔 의미가 있을 말인지.

하수창은 정신을 잃기 직전 제 몸 위에서 저 혼자 헐떡대며 지껄이던 남자를 떠올렸다. 순결을 뭐, 어쩌고? 첫 상대 어쩔시구 저쩌고? 혓바닥을 놀려도 왜 그러고 산대냐. 같은 염색체 입장에 쪽팔리게스리. 머리가 문제인가? 남이 꼬불쳐둔 소중한 금괴를 타이밍 좋게 갈취해가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게 지껄이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뭔 백오십 년 정도는 간직해두고 물려받은 집안의 소중한 가보를 훔쳐 가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노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남자는 저 스스로가 얼마나 신중했으며, 기다려왔으며, 이 순간이 그 기다림의 업적임을 끊임없이 떠들어댔었다.

순결, 그래 그놈의 순결. 아주 바보 같은 일이다. 그놈의 순결이란 건 고추에 달린 엘로드로 찾는 거냐. 내 엉덩이에 뭘 꽂고 그걸 찾아대는 거야? 차라리 엄마 몰래 새벽에 김치찌개 속 고기 떠 먹으러 가는 게 더 심사숙고할 일이겠다. 아니 내가 뭘 숨기기라도 했었나? 애초에 간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니까? 그게 어디 넘겨받고 자시고 할 단위의 것들인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취급하기를 좋아하는 기묘한 단어 하나에 무언가 의미라도 담겨 있는 게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 단어를 만들어낸 빌어먹을 휴먼의 영혼이 아직도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이라면, 그는 분명 환상과는 머나먼 거리에서 남자 둘이 뒤엉킨 자리를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을 것이다.

순결을 간직하다? 웃긴 말이지. 이건 의지로 되는 게 아니거든. 간직했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아니라 남이 억지로 붙여둔 말이라면. 순결을 지키다? 이것도 아니네. 갈취 당한다는 표현을 붙일 수도 있다면. 순결을 잃다? 아니 애초에 가지고 있을 개념인 거냐고. 여기 날 패대기치고 싸지른 뒤 튀어버린 미친놈 하나가 나에게 강제로 안겨준 게 그 빌어먹을 순결이라니까?

말하자면 꼭 사랑니 같은 거였다. 떠올리면서도 본인이 사랑니를 생각한 것에 울컥 인상을 쓰고 말았다. 단어가 주는 어감이란 본래 뜻과 다른데도……. 없어도 될 것이 삐죽 솟아서 그것을 뽑아낸다며 억지로 입을 벌리고 들쑤시는 것까지, 꼭 닮았다는 소리다.

물론 운이 좋은 사람들도 있다지만.

“아야야…….”

하수창은 아마도 운이 나쁜 경우였다.

순결이란 단어를 탄생 시킨 창작자의 영혼은 여태 손가락질을 하며 허공에서 떠나가라 웃고 있을 게다.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모든 의사를 무시하는 지독한 사디스트, 쌍또라이, 변태 새끼, 구속 페티시 등등, 미사여구보다는 욕이 붙거나 그보다 앞서 범죄적 행위로 분류될 수 있을 취향 중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개자식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저 위에 나열된 모든 것과 그 이상의 것들이 순결 창조자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겠지.

다 틀렸다, 이 개자식들아. 그 단어엔 그냥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저어어어언혀 새로운 개념도 아니라고. 참 많고 많은 말들로 표현할 수 있을 일인데 구태여 꼭 특별난 것처럼 말해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도 감상을 정정할 필요가 있긴 했다.

순결[명사]:일방적인 쾌락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미 있던 종류의 피지배자의 족쇄를 다르게 바꿔 부를 뿐인 헛짓거리와 같은 행위를 일컫는 고리타분한 개념 중 하나.

하수창은 곰곰이 생각하던 것을 관두고 쓰러져 있던 바닥 위를 짚었다. 쿰쿰한 먼지 냄새와 비릿한 정액 냄새가 물씬 올라온다. 그다음엔 쇳내와 같은 것. 말라붙은 체액에 섞여 점점이 흩어져 내린 갈색빛 혈흔들에 실소마저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그 바보 같은 말의 똑같은 뜻은…….

더럽게 불쾌하고, 더럽게 냄새나고, 더럽게 아프고, 그냥 기분이 더럽고. 더럽고.

“아— 그 미친……!”

냅다 허공에 대고 지르려던 순간 아랫배와 등허리 아래로 전기라도 쏘는 듯한 아픔이 울렸다. 좀처럼 바닥에서 들어 올려질 생각을 못하는 몸을 두고 하수창은 언제 달아났을 지 모를 남자를 향해 큰 소리로 뱉지 못해 열이나 부추겨버리는 욕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연애는 애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건 기본 상식인 줄 알았는데. 때로 연애는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애정은 그 수단에 보탬이 되어줄 약간의 특수 효과인 것 같다. 마치 영화처럼. 쌩 필름에 인력을 갈아 넣어 화려하게 스크린을 채우는 스릴러 영화같이.

그리고 그 영화의 비판은? 들인 시간과 비용이 어찌 되었든 보고 난 뒤에 평가될 일이다. 평범할 뻔했던 이 영화의 주제는 알고 보니 로맨스를 가장한 범죄물이었으며 여기엔 두 연인이 있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롱테이크로 이어진 정사씬까지 추가된 채 결론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B급 스토리다.

아니지, C급 정도. 아니지, D? D 마이너스 하고도 마이너스를 두 개 붙여서 D 마이너스 따따불?

‘거참 기분 나쁘네.’

차라리 누가 보여주겠다고 했던 영화라면 그냥 시간 좀 보냈다고 넘길 일이다. 제 발로 들어가서 감상한 영화가 B급 그 이하의 값어치로 측정된 채 너무나 최악이라 곧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진 쓰레기 필름이라는 건 또 어떻게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본디 이야기라는 건 각색도 있을 일인데. 제작진이 엉망으로 찍어놓고도 개봉 전이라면 언제든 뒤집어엎는 게 많지 않던가. 속이 편하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안 끊고 안 닦은 볼 일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결론이란 것도 결국은 그것이 완벽히 영화에서나, 그리고 어쨌든 완성되어 세상에 내놓았을 때에나 평 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와 나.”

스릴러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나? 스릴러의 영역에 뭐가 들어갔더라. 공포, 속도감, 아 뭐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 도망자는 참 발도 빨랐다. 하루 앓고 어떻게 조져줄까 이 갈고 아침부터 온 캠퍼스를 이 잡듯이 뒤져도 머리털 하나 안 보인다 싶더니, 얼씨구 말도 없이 휴학이라? 군대라? 내가 뭐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물론 그 비슷한 생각은 해봤지만 어쨌든 법치 국가의 헌법책에 기준 되어 있는 영역은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됐어, 이 필름은 차마 세상에 꺼내지도 못하겠다. 뒤가 구리니까. 시원한 사이다도 없어, 깔끔한 엔딩도 없어, 뻔해 자빠질 선택지 하나만 의문형으로 남겨둔 채 주연 중 한명은 그냥 증발해 버렸다. 하수창은 조별 과제를 밤샘 뒤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팀원이라던가, 저장 시점이 잘못된 채 날아가 버린 PPT 문서 따위를 떠올렸다. 그런 건 그래도 어떻게든 끝이라도 보지, 이건…….

지끈 울리는 허리를 부여잡다 말고 손에 들고 있던 자판기 종이컵을 의식한 하수창은 괜히 쓰려오는 속을 달래기 위해 딱 알맞게 식은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그러려고 했었다.

“욱.”

뜨끈 미지근한 커피가 이렇게 비릴 일인가? 혀에 닿자마자 도로 뱉을 뻔하던 커피를 억지로 삼키고 남은 것은 휴지통에 직행시킨 하수창은 그다음 순간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숙였다. 뼈마디가 끊어질 것 같은 허리 통증 뒤엔 목구멍을 타고 시큼하고 쓰라린 것이 넘어왔다. 우웨에에엑.

‘아이고 가관이다……!’

넘기기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 커피의 뜨끈함이 꼭 그놈이 입에 처넣은 것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온도라고 떠올릴 이유는 뭐가 있었는지. 손가락이며 혓바닥이며, 키스를 더럽게 못했던 건 그렇다 치고, 같이 넘어오던 술 냄새도 그렇다 치고, 그것보다도 가장 구렸던 그놈의 그 망할 아랫도리의…….

“우억, 웨—.”

에에에에에엑.

더 생각하지 말아야지. 학교 자판기 커피 따위 다시는 마시나 봐라.


그리하여 꽃피는 청춘, 신록의 봄을 지나 열기 가득한 여름, 실로 그 계절을 빗대어 표현하는 나이의 생일을 맞이하여 참으로 퍽 즐겁고 뜻깊을 뻔했던 그날의 기억은 하수창에게 있지도 않았던 것을 품에 붙여두고 그것을 참으로 거칠게도 뜯어간 생에 둘도 없을—없어야 할— 전무후무의 일로 취급할 흑역사라고 해야 함이 맞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게 굴러갈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만큼 모든 인간관계가 제 속과 같은 뜻을 지닐 일은 또 드물다는 것도. 그것이 우정이든, 연정이든, 애정이든, 아무튼 사랑이라고 하는 것들이. 인생의 교훈이라고 해야겠다. 좀 더럽고 기가 막히게 아픈 경험 뒤에 쌓은 값진 경험치.

“세상엔 모르는 게 약이 되는 일도 있는 법이야.”

훗날의 하수창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을 하던 그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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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배포 전 마감일까지 준비중입니다.)

잡식성 독거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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