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비에 찌든 새끼고양이를 봤어. 몇 걸음만 옆으로 옮기면 비를 피할 수 있을 텐데도 고스란히 그 차가운 비를 다 맞고 있더라고. 안쓰러운 마음에 가니까 옆에 죽은 어미의 시체가 있었어. 묻어주려해도 빗물에 형체가 다 뭉개진 바람에 들어올릴 수 가 없는거야. 새끼만이라도 살려야지 싶어 감싸 안았는데 그제야 알겠더라고. 어미도 얘도 비가 오는 건 이제 아무 상관없었구나. 하고.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데요?

그냥? 너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것도 지겹잖아. 아무 말이라도 해야지, 안그럼 나 심심해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럼 죽으시면 되겠네요.

와, 나 섭섭해? 완전 상처받았다고? 상처받고 있다고? 어쩜 같은 고스트끼리도 이렇게 다를 수 있지?

어차피 당신 고스트가 살펴 줄텐데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이쁜이? 음... 안 돼. 그 아이는 바빠. 지금도 꽤나 동분서주하고 있을걸. 이번엔 어딜 간댔더라.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 혼자 보냈는데. 

뭐라고요? 대체 어느 고스트가 자기 수호자를 냅두고 혼자가요? 아니, 그리고 당신은 그걸 또 혼자 보내요? 미쳤어요?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워, 워워... 지,진정해. 이러니까 너가 꼭 내 고스트같다. 사정이 있어서 같이 못 가준거 뿐이야. 그리고 그 아이한테는 어차피 나 같은 건 짐일테니까-

세상에 자기 수호자를 짐이라고 여길 고스트가 어디 있어요!

그럴까?

당연하죠! 오히려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걸요?

그래? 진심으로?

네. 진심으로요.

하하! 그럼 됐어! 난 또 괜한 걱정해가지고. 네가 그를 싫어하는 줄 알았잖아. 그래서 부활도 안시켜주나 했지.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몇 달 전부터 계속 묘지에 머무는 떠돌이 고스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더니 진짜여서 놀랐는데. 네 아래 무덤. 네 수호자 맞지? 이제 그만 화해 하는게 어때?

...그런거 아니예요. 그리고 저는 그를 부활시킬 수 없어요.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될까?

일어나봤자 아프기만 할테니까요. 제 수호자를 찾았다는 기쁨에 그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깨닫고 나니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제 모습에 환멸이나서...

그래서 포기한거야? 부활시켜봤자 다시 죽을테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아가. 잘 들어.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그저 회피 일 뿐이야. 그런건 이야기 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르는거라고. 설령 그가 죽음을 원한다 해도 몇 번이고 깨워서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정 뭐하면 여행자고 사명이고 다 버려도 좋으니 살아서 같이 떠나자고 해버려. 그 때 가서 정한다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럼 그도 생각이 바뀔걸?

수호자가 저를 경멸할 거예요. 제가 멋대로 자길 죽인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어... 아니? 전혀? 네가 아까 그랬잖아. 자기 수호자 싫어할 고스트가 어디 있냐고. 우리도 그래. 자기 고스트보다 귀한건 없는걸.

끝끝내 제 수호자가 그만두길 원한다면... 그때는요?

아, 물론 그럴수있지. 하지만 그럴 일은 오지 않을거야.

참 확신하는 어투네요.

그러게. 살아보니 이런 쪽으로만 감이 좋아지더라고. 너흰 잘 이겨낼 거라는 확신? 이런게 딱 들어.

나쁘지 않네요.

그치? 그러니 하루 빨리 감격스런 재회 소식 들려오길 기다리고 있을게.

...당신 고스트를 만나러 가나요?

으음, 뭐. 그렇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뭘 찾으러 간건대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

당신이 같이 못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나요?

어... 아마도?

이상하네요 당신.

와 조금 상처였어. 아무튼, 이런 으시시하고 기분나쁜 곳에서 어서 나가라고.

제 수호자가 있는 곳을 욕하지 마세요. 

편드는 거봐! 고스트없는 수호자 외로워 살겠나!  

멀쩡한 고스트 내버려둔 당신 탓이에요.

우리 이쁜이보면 다 하소연할거야.

네네. 그러니 얼른 가세요. 걱정되니까요. 아무리 안전한 곳이어도 혼자 있으니 불안하네요.

그래, 그럼 갈게. 너도 곧 나가고. 거기 수호자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저기 뒤의 당신도.

누구요? 뒤에 누가... 아무도 없는데요? 당신 역시 좀 이상... 저기요? 수호자! 갔어요? 엄청 빠르네. 어... 저기, 미안해요 수호자. 오랫동안 기다리게해서. 지금 깨워줄게요. 








...  이러한 자기기만은 믿고자 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소망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박하는 증거가 나와도 쉽게 이를 무시하며...(생략)

...또는 반대로 진실을 인정하게 되면 맞닥뜨리게 될 불안이 두려워 자기기만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째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에 해당할 것이다...(생략) 어떤 쪽이든 간에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소망을 포기하거나,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니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자기기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생략) 만약 우리가 극도로 정직하여 자신의 능력과 삶 전반을 객관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아마 우리는 우울증과 좌절, 삶에 대한 후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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