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펴볼래? 야야, 그런 더러운 눈으로 볼 것 없잖아. 다들 피는데.

-이건 뭔데요?

-나도 며칠 전에 선물로 받은 건데, 시가라 그러더라고. 내가 불 붙여줄게.

엑토르는 펠릭스의 입에 반강제로 갑에서 꺼낸 시가를 물리고 성냥으로 불을 피웠다. 탁, 시가 꽁무니가 잘려나가 떨어지고 시가가 펠릭스의 입에서 살짝 휘청였다. 엑토르가 에헤이, 잘 좀 물고 있어봐-라며 핀잔을 줬다. 일렁이는 빨간 불꽃에 펠릭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플 정도로 눈을 깜박이던 펠릭스는 엑토르가 불을 붙이기 전에 고개를 저으며 시가를 엑토르의 손에 올려준다.

-아니야, 됐어. 안 할래요.

-그래? 아쉽네. 나름 좋은 거라길래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그럼 이건 내가 핀다?

-마음대로 해요.

엑토르는 여전히 점점 위쪽으로 올라오는 불꽃이 붙어 있는 성냥으로 시가에 불을 붙이고 시가를 피우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엑토르가 또 다시 처음 핀 숨을 제 쪽으로 내뱉을 걸 알았지만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시가가 그렇게 맛이 있어요?

-별로.

-그럼 왜 피우는 건가요?

-음... 시가는 사랑이랑 비슷한 거거든. 불을 붙이기 전에는 끊을 수 있어. 하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절대로 못 돌아가지. 끝까지, 완전히 다 타버릴 때까지 피워야 하는 거야.

엑토르의 곁에서는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고 맑은 푸른빛이었던 주변이 점점 혼탁한 회색빛이 되어갔다. 펠릭스는 연기를 제 주변에서 걷어내려 손사래를 치며, 엑토르가 시가를 끝까지 다 피우기를 기다렸다.


펠릭스는 이자르 강변을 걸으며 엉망진창이었던 연습과 정찬 후 시작될 무도회를 떠올린다. 이탈리아에 있던 자신과 스위스에 있던 자신과 지금 뮌헨에 있는 자신 모두가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1831년 한 해 동안 펠릭스는 너무 훅 자라버린 기분이었다. 뮌헨에 도착하기 이전의 새맑고 활기찼던 젊은이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이제 고단함을 안은 오케스트라 단장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걸까, 하는 걱정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펠릭스는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는다.

손끝에 뭔가가 닿았고, 펠릭스는 자켓을 벗어 주머니를 뒤집어본다. 작은 갑이 하나 길에 떨어져 강 바로 옆에서 멈춘다.

조심스럽게 갑을 주운 펠릭스는 담배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담배를 피지 않는 자신의 주머니에 왜 이런 게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은 물에 젖었다가 다시 마른 듯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아마 스위스를 지나면서 맞았던 빗물이 다 스며들었던 듯했다. 셔츠 안에 소중하게 품었던 스케치북마저도 다 젖어버렸으니 주머니에 들어 있던 시가는 아무리 깊숙이 들어 있었다고 해도 비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펠릭스는 갑을 열어 시가를 하나 꺼내본다. 시가라. 만났던 사람 가운데 시가를 핀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작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종이가 이미 빗물에 거의 다 풀려 있는 상태였으니 간신히 끝자락만 붙들어매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프랑스어로 제조사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펠릭스는 이탈리아에서 몽포르와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부득부득 해주었던 송별회를 기억해낸다.

정작 펠릭스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더 취해서 펠릭스에게 엉겨붙고, 뺨에 열렬히 입을 맞춰오면서 옷을 헤집었다. 그때 뭘 하는 건가 싶었더니 이런 걸 주고 갔었군. 자신이 분명히 피우지도 않을 거라고 했던 담배를 왜 선물로 줬는지는 엑토르만이 알 알이었다.

한 통에 담겨 있던 시가는 거의 다가 못쓰게 되어 있었다. 마른 건 오래 전이었던 듯싶었으나 종이가 다 풀어져서서 태울 수 없게 된 탓이었다. 하나 정도만이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펠릭스는 쓸 만한 시가를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엑토르에게 시가는 몇 안 되는 '딱히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것' 이었다. 습관적으로 피우긴 했으나 그 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끊을 수는 없을 뿐이었다. 의존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딱 그 정도의 기호품이었다.

아마 엑토르에게는 펠릭스도 딱 그 정도였을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섭섭한 딱 그 정도의 기호품 말이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초에 둘이 깊은 친교를 맺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또 어딘가로 사라지면 한숨을 내뱉으며 터덜터덜 수색하러 나가고, 몇 번 정도 커피를 함께 마셨고 매일 아침 놀러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관계였다. 담뱃불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미적지근한 관계였다.

"자네도 담배를 피우는 줄은 몰랐는데. 담뱃불 혹시 필요하나?"

베어만이 어느새 와 있었다. 펠릭스는 미소지으며 시가를 다시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난간에 팔을 떨군다.

"아니요, 담배는 시작도 안 해봤는걸요."

"이 기회에 배워볼 생각은?"

펠릭스는 웃음을 터뜨리고 힘을 가득 실어 시가를 강물로, 저 멀리, 연기 궤적도 남기지 않게 던져버린다.

"없습니다. 담배는 죽을 때까지 안 필 거예요."

불을 붙이면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런 게 담배라면, 죽을 때까지 그 즐거움도 모르는 게 훨씬 낫겠지요.

펠릭스 멘델스존은 죽을 때까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반면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평생 담배를 끊지 못했다.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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