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my Toussaint

***


"보석에게 언제 생명이 주어진다고 생각해?"
"글쎄."

프러포즈용 반지가 되어 팔릴 때? 값비산 금액으로 낙찰될 때? 가격이 정해졌지만 너무 비싸서 팔리지 않아 어느 장물아비의 손에 넘어갔을 때? 그것도 아니면, 처음 보석이 발견되었을 때?

전부 틀렸다. 어느 이름 모를 세공사의 손에서 태어나면서 생명을 얻는 게 아니다. 오직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알게 된 순간 빛을 발해 그녀가 손에 넣는 그날까지 가치를 고수한다. 언제나 그랬다. 짙은 갈색 머리칼의 여자가 다각형으로 깎인 귀걸이를 걸고 뒤를 돌았다.

"지금."
"그래, 바로 지금이야."

루가 자신의 연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데비는 루의 말을 고스란히 받았다.

빛나다 못해 푸르기까지 한 짙은 갈색 머리칼을 흩날리면 자연스럽게 훔친 귀걸이가 가려진다. 자칫 밋밋해 보이는 목덜미가 아쉬우려던 찰나, 데비는 의도가 다분한 손짓으로 머리를 쓸어넘긴다. 다시 보석이 반짝인다. 감쪽 같은 윙크가 더해지면서 그녀가 가진 모든 매력이 최고조에 오른다.

"있지, 자기."

데비가 거울 너머로 루를 불렀다. 피오니 브라탑, 로즈 Ink의 얇디얇은 여성용 슬랙스, 밑단에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지미추. 단연 눈에 띄는 건 그녀의 브래지어였다. 컵둘레는 크게, 앞중심에는 큰 후크가, 아자스터에는 귀걸이와 같은 보석이 알알이 박힌 브래지어.

몸의 절반만 이불을 걸치고 있는 루는 대답조차 없다. 아무래도 대화의 시작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데비는 루가 토라졌다는 걸 알면서도 신경쓰지 않았다.

"저번에 미안했어."
"언제?"
"'왜 투생을 털려고 하는 거야?' 라고 물었을 때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라고 대답한 거."

왜 투생을 털려고 하는 거야? 라고 데비는 루의 성대모사까지 하며 말했다.

"언제지? 설마 팬케이크 하우스?"
"그래,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 투생 계획했을 때."

루는 그제야 이불을 들추고 일어난다. 그게 왜? 뭐가 미안한데? 조금 꺾인 고개가 물음을 대신한다. 데비는 옷자락을 사각거리며 침대로 다가와 루를 감싼다. 창백하기까지 한 두 뺨이 금세 붉게 물든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솔직하지 않았으니까."
"어느 부분이?"

데비는 말없이 몸을 일으킨다. 푹신한 침대의 반동으로 몸이 살짝 흔들리고, 브래지어의 아자스터에서 존재감을 자랑하는 보석이 눈이 아프도록 반짝거린다. 루는 두 눈으로 어딘지 모를 확신에 차 있는 연인을 쫓는다. 웃고 있는 걸로 봐선 대답을 피하는 게 아니다. 루는 데비를 잘 안다. 애초에 대답하지 않을 질문이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되묻지 않는다. 데비는 루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슬랙스와 세트인 듯한 자켓을 꺼내 한 손에 걸치고 마지막으로 점검하듯 거울 앞에 섰다. 빗은 듯 안 빗은 듯, 오늘 헤어디자인의 포인트는 끝내주게 부드러운 머리칼이 아닌 귀걸이에 있다. 귀걸이를 가려 주느냐, 필요할 때 잘 보여 주느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루가 데비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데비는 슬그머니 다가온 연인의 손을 따뜻하게 붙잡고 손등에 키스한다. 한 시간 동안 스파에 절인 머리카락보다,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보석보다 부드러웠다. 루의 손에서는 귀여운 향기가 났다.

"클로드 베커랑 끝내러 가는 거 아냐? 옷이 너무 야한데?"
"끝난 건 예전에 끝났지. 오늘은 그놈한테 정산받으러 가는 거야."
"그래도 야해."

오, 진심이야? 데비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루를 보는 눈빛에 사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두 사람은 꼭 끌어안은 채 거울을 통해 대화했다.

"그래서 자켓 챙겼잖아."
"단추 꼭꼭 채워도 브래지어에 달린 보석이랑 귀걸이, 둘이 세트인 거 다 보여. 자기, 촌스럽게 이러기 싫다. 너한테 잔소리하기 싫어."

허리를 끌어안은 손을 풀며 도로 침대로 돌아가 걸터앉는다. 연인인 걸 인지하면서도 유치한 질투나 하는 스스로가 잠시나마 한심한 눈치였다. 데비는 그런 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세트니까 보여 줘야지. 등처먹으려면 확실하게, 알잖아. 그리고, 루."
"왜."
"내 옷이 불만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는데?"

루의 눈이 커졌다. 평소 서로 뭘 입든 신경쓰지 않던 두 사람이었다. 유치한 옷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있다고?

"기억 안 나? 미술관에서 깔끔하게 손 털고 나왔을 때 교차로에서 만났잖아."
"내가 뭘 입고 있었지?"
"생각해 봐."
"아, 데비."

루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가로젓는다.

"말도 안 돼. 데비, 데비, 데비."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설마 가슴골 좀 파여서 신경쓰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
"Exactly."
"그건 태미가 준 옷이었……."
"보자마자 명치까지 내려간 지퍼부터 올려주고 싶더라. 나만 보고 싶을 정도로 예뻤으니까."

데비는 짧은 웃음과 함께 별다른 말없이 자켓을 걸쳤다. 뒤에서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정장 차림의 마른 여자였다. 단, 한 발자국만 옮겨 서는 순간, 아니, 그 상태로 고개만 살짝 돌리는 순간 데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을 뛰게 했다. 쿵, 쿵, 쿵. 이 따위 유치한 설렘을 클로드 베커가 느끼면 안 될 텐데. 얼마나 소중한지 벌써부터 질투가 일었다.

데비는 눈치빠르게 다가와 루의 뺨에 입을 맞췄다.

"클로드 베커가 준 초대장, 클로드 베커가 사 준 귀걸이, 클로드 베커가 사 준 브라, 클로드 베커가 사 줄 어마어마한 것들. 억울해서 펄펄 뛰겠지. 그런데도 티는 못 내겠지. 간이 콩알만한 놈이니까. 벌써부터 멍청하게 벙찔 표정이 눈에 선해."

차키를 챙기며 문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겨진 루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데비는 루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단단한 철제 문을 열고서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머리가 흩날리면서 귀걸이가 반짝였고, 살짝쿵 보인 아자스터의 보석이 가슴골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한 루에게 데비가 말했다.

"널 위해 훔쳤어. 5 년 넘게 그 생각만 했어. 너한테 청혼하려고."

그러니까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라는 변명이 틀린 말은 아니지. 솔직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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