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런 곳에서 타샨과 르안은 자라지 않았을까 합니다. :)




"멍청한 놈들이!!!!!!!!!!"

남부대공 타샨이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대며 책상 위의 물건을 벽으로 집어던졌다.

그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대륙의 제국 황제가 이런 서신을 타샨 투아라에게 보내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먼저 타샨의 이모가 다스리고 있는 이 제국에 전해진 거지만.

{니네 황족 남자 하나를 우리 제국에 보내면 내 세 번째 남편으로 맞아줄게. 얼마 전에 내 두 번째 남편도 병으로 죽었거든. 아, 그래 북부대공이 남자지? 걔가 좋겠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자자자잠깐, 진정하세요~!"

"엄마얏! 유모님! 유부님!"

날뛰는 남부대공을 보고 집무실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기겁하며 타샨 투아라의 유모와 유부를 불러왔다. 그 덕에 타샨은 마음을 다시 안정 시킬 수 있었다.

타샨은 황족이다. 지금의 황제인 이모가 삼촌들과 다른 이모들을 죽이고 제국의 황좌를 차지했다. 오래 전의 일이다...

타샨의 엄마는 다행히 이모의 어린 시절에 이모에게 잘 대해준 몇 안되는 황족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3년 전, 돌아가신 엄마 덕에 타샨과 남동생은 목숨도 부지하고 각각 남부대공과 북부대공으로 임명도 되었다.

문제는... 타제국의 황제의 권세가 지금 파죽지세라는 것이었다...

한때는 다섯 개의 대륙에 모두 다섯 개의 제국이 있었지만 지금은 단 두 개의 제국이 남았다. 

타샨의 제국과 이 따위 서신을 써서 보낸 태평제국.

타샨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아마도 황제인 이모는 결심을 굳혔을 터다. 괜히 잘나가고 있는 태평제국을 건드리고 싶진 않을 터. 그렇다면...

내 남동생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20살에 18살 많은 결혼 두 번이나 해본 과부 황제(??)한테 꼼짝없이 장가들어야 하냔 말이야!!!!!!

"개열받네에에에에에에!"

"아이고, 진정하세요. 타샨님!"

"자자, 꿀물 한 잔 들이키시구요."

타샨과 남동생을 정성껏 길러준 유모와 유부가 타샨을 달랬다.


그 시각 제국 황성.

"그래서 말인데, 네가 가줘야겠구나."

황제 파르샤나가 조카인 르안에게 그렇게 말했다.

르안은 올해, 20살이 갓 된 아름다운 금발의 남자였다. 그리고 황제의 조카이자 남부대공 타샨의 하나뿐인 남동생이기도 했다. 몸이 약했던 르안은 어린 시절, 몇 번이나 병으로 죽을 뻔 했고 때문에 그의 누나는 그를 과하게 보호하고는 했다. 르안과 타샨의 아버님이 먼저 전쟁에서 전사하고 슬픔에 잠긴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누님의 과보호가 더욱 심해졌다. 이런 사실은 제국민 모두라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르안은 황제의 말에 잠시 답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의 보라색 눈동자에 잠깐 슬픔이 어렸지만 곧 사라졌다.

어쨌든 르안은 멍청하지 않다. 자신을 과보호하던 누나를 저 먼 남부지방으로 보낸 순간에 이미 황제인 이모는 결정했을 것이다. 르안을 어딘가에 써먹으리라고 말이다. 병사를 다루는 데 천재적인 자질이 있는 누님 타샨. 야심만만한 정치력을 가진 황제인 이모.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다음 황위를 노리는 사촌들.

르안은 생각했다. 자신이 이 제국에 있을 필요도... 자신의 존재 가치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고 말이다.

다만... 누님은... 누님은...

르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폐하, 누님은 폐하께 충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폐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내 뒤를 이어 다음 황제가 누가 되든 네 누나는 무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련은 없다. 르안은 황제가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누님께는 제가... 잘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르안의 말에 이모님은 매우 만족했고 그렇게 르안은 한 달 만에 태평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타샨 누님을 제외한 모두가 르안의 결혼을 찬성했다. 황제도 황제의 자식들도 귀족들도 수도의 수많은 관리들도.

르안이 태평제국으로 떠나는 날, 누님은 그에게 말했다.

"결혼생활을 도무지 견디지 못하겠거든 무조건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내! 무슨 일이 있어도 빼내줄 테니까!!!!!!!"

르안을 배웅하러 나온 황제의 앞에서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는 타샨을 보고 귀족들이며 신하들이 경악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르안은 그저 웃었다. 아버지를 닮아 밝은 금발인 자신과 달리 누님은 어머님을 닮아 진한 갈색의 머리칼이었다.

선이 얇아 어린 시절 '넌 군인이 되지 못할 거야'라며 놀림 받던 자신과 달리 누님은 어린 시절부터 강하고 현명했다. 

그러나... 앞으로 누님을 만나지 못할 테지...

르안은 마음이 아파왔다.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르안은 천천히 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평제국에서 보낸 하늘을 나는 배(태천선)에 올라타며 르안은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누나에게 이 생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냈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고국으로 자신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여일이 넘는 날들을 지나 하늘을 날아 도착한 이 태평제국의 거대한 황궁에서 그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이하게 된다.

배에서 내리는 그에게 "환관"이라는 독특한 존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이 태평제국의 황궁에만 있는 독특한 존재들이었다. 생식능력이 없는 남성들 중에서 관리로 임명되는 자들이었다. 

한 노환관이 르안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웃었다.

"반갑습니다. 북부대공. 아름답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환관은 르안이 당황할 정도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라색 눈동자라니!!!! 정말 아름답군요. 마치 새벽 이슬을 머금고 빛나는 포도알 같습니다."

지나친 칭찬에 르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정도로 자신의 외모를 극찬하는 경우는 자신도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그래, 아름답군."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의 제국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검은 머리칼의 여성이 서있었다. 그 여성은 키가 큰 르안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키가 컸다. 마치 자신의 누님처럼.

그 여성이 다가오자 환관들이며 다른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이번 남자는 어떠시옵니까?"

노환관의 말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르안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눈앞의 있는 이 여성이 자신과 결혼할 사람, 황제라는 사실을.

여성이 르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르안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르안은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었다.

"그대는 아름답군. 그리고 건강해 보이는군. 그거면 됐다."

여성은 돌아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호호호."

노환관이 웃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의아한 표정이 된 르안에게 환관은 말했다.

"폐하께서는 사실 지금까지 두 남자 모두를 결혼 후 바로 내치셨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게지요.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지요. 그 남자들은 슬픔의 궁전에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것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사실 다정하신 분이랍니다."

다른 3개의 제국을 모두 집어삼킨 저 사람이 다정하다고? 르안은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르안 자신이 더욱 놀랐던 것은 저 사람이 다정하다는 말에 안심하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왜 내가 안심을 하는 거지?

앞으로 평생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갈 사람이라서??

르안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이다.

태평제국의 황제와의 사이에서 황녀 둘과 그리고 황자 하나를 보고 그들과 함께 정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중 르안은 마침내 깨닫는다.


아, 나는 사랑을 하고 있구나.


십년이 지나서야 르안은 태평제국의 황제와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뭐, 그렇기 때문에 십 년 후에서야 남부대공 타샨에게 남동생의 "누님,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요!"라는 엄청 긴 서신이 전해진다. 대충 서른 장 정도의 서신을 꼼꼼하게 읽은 타샨이 머리를 짚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걸 지금에야 깨닫지 말라고!!!!!!!!!!!!!!!!!! 이 눈치 없는 놈아!!!!!!!"


어쨌든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끝났고 완성되었다.

오늘의 이야기 끝~!

아차, 외전이 남아있다.



외전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굴렁꽃(맨드라미)들이 만발한 정원을 거닐며 르안은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긴 상~당히 힘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졸졸 따라오며 재잘대는 환관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폐하가 란(태평 제국의 환관들은 르안을 "란"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르안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구. 내일도 오마, 함께 꽃을 보러 가자꾸나 이렇게!!!!!!!!"

"멋지셔!"

"그치이!"

"란님, 란님! 폐하가 곧 오실지도 모르는데 얼굴에 분이라도 더 발라드리겠습니다!!!!"

"아니지요, 그럴 게 아니라 옷을 갈아입고 오시면 어떨까요??!!!"

지난 번의 두 남자들과는 달리 이번 남자인 르안에게 황제는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르안을 모시는 환관들은 상당히 마음이 들떠있는 상태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얼른 승부(???)를 보자! 이런 느낌들로 불타오르고 있는 환관들이었달까.

르안은 애매하게 웃어보였다. 그런 그의 표정을 승낙의 의미라고 멋대로 착각한 환관들이 르안의 소매를 끌고(태평제국의 황족 남자들의 소매는 엄청 길다!) 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자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예끼!"

"앗, 선배님!!!!!:

르안이 처음 이 제국의 땅에 내려섰을 때 만난 노환관이었다.

잠깐 후배들을 째려보는 노환관 덕분에(?) 르안은 그들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르안은 눈치가 없다보니 이 사실 역시 궁에서 산 지 한~참 지나서야 알았는데 이 노환관은 환관들의 대장이자 황제의 충신 중의 하나였다.

"너희들의 마음도 이해는 가나 열매는 서두른다고 맺어지는 법이 아니다. 폐하의 마음도 르안님의 마음도 천천히 살펴드리면 되는 게야."

그렇게 말한 노환관이 르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어쩐지 자신의 마음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듯한 노환관에게 르안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자자, 르안님. 정원을 거닐고 싶으신 게지요? 이 녀석들은 제가 조용히 시킬 테니 혼자 느긋이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겨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북부대공, 아니 이제는 전북부대공 르안이 굴렁꽃 정원을 걷다 황제를 만나게 되고 드디어 손을 잡아보게 되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반년 후,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다.

태평제국에서 황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은 황제의 자녀들과 황제의 부모 그리고 황제의 자매 형제들 그리고... 배우자 뿐이다.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며 황제는 르안에게 말해주곤 했다.

"나의 그대, 나의 북부대공, 나만의 르안."

르안은 황제에게 언제나 답했다.

"네, 찬.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저의 사람이지요."

두 사람은 긴 일생을 함께 늙어가고 함께 성장해갔고 함께 살아갔다.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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