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broke a bone ]










 10 그녀의 비명
 9 황망한 그들의 눈동자
 8 거울속의 낯선 얼굴
 7 잔잔해진 수면 아래 흙구덩이
 6 꿈도 없는 잠을 깨게 만드는 것은
 5 다가오다 멈춰선 발걸음
 4 돌아보지 못하는 나
 3 붙잡는 손의 친절이 원한처럼 사무쳐
 2 사치스럽게 흘린 눈물이 지푸라기 같은 머리카락을 적시고
 1 끈질긴 그림자가 나를 삼키고도 모자라다 번지는 모습이 흉측하여
 


 나는 도망쳤다.  



 0.



 멀리서 봐도 아름다울 것 없는 소행성은 애초에 생명이 없는 불모지였다. 중립지역의 생성 이후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장점은 바로 그 황량함이다. 아무도 숨지 못하는 공허한 대지 위로 하나 둘 늘어난 것은 흔적에 불과했다. 버려진 자들과 부서진 것들의 잔존물. 찾는 이가 없어 모여든 운명들 덕에 늘어난 도시의 그림자는 많은 것을 숨기기 시작했다. 누구도 궁금하지 않기에 아무도 답을 모르는 목적 없는 덩어리 속에서 눈을 가리고 입을 다무는 것은 공기 중을 떠도는 유일한 합의다. 버려진 사람들 속에서 도망칠 이유가 있는 자는 조금이라도 나은 편이었다. 빈틈을 보이지 않으며 장갑에 감싸인 손이 신중하게 테이블위로 놓이는 것에 바텐더는 다섯 번째 팔을 뻗었다. 손님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합성탄산수를 원하네. 원한다 말하는 목소리의 미약한 망설임을 무시하며 밀봉된 병이 내밀어진다. 크레딧을 사용해 계산을 끝낸 손은 재빠르게 병을 집은 뒤 사라졌지만, 노출된 것들을 흡수하는 시각과 청각의 습관은 불편할 만큼 능률적이다.  

 /// 존 해리슨 /// 마지막으로 알려진 위치는 /// 페데레이션의 인정은 전무하며 ///      

 먼지가 가득한 시야에 들어오는 낡은 홀로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얼굴은 바로 그 얼굴이다. 뉴스 화면을 지켜보는 덧없는 이들 중 멈춰 섰던 고개가 잠시 뒤 자리를 벗어난다. 이기적인 논리에 정당성을 자신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이에게 그 탈출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세대에는 없어야 할 존재가 탐욕스러운 손에 이름을 얻은 이상 무모한 언론이 그 찌꺼기를 찾아내는 것 또한 금방이었다. 스타플릿의 연락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진작 들었을 소식일 텐데. 목표를 가늠하지 못해 점칠 수 없을 행보를 추측하는 것 역시 오래된 습관이었다. 버릴 수 있는 건 다 버린 그였으나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달려온 육체는 고요함을 얻기 위해 눈 감은 마지막을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다. 앞으로도 72시간은 수면이 필요 없다 확신하는 그에게 절실한 것은 평온을 주는 명상이었고 그를 이루지 못한지는 이미 더 오래인 것을.      
 
 마찬가지로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붉은 기 없는 피부와 뾰족한 귀였으며, 그 정체가 호기심을 부르는 것 역시 그랬다. 가해자면서 가해자가 아닌 탓에 어색한 정적을 부르는 로물란 제국의 입장과 달리 벌칸의 적나라한 상처는 모르는 이가 적은 사건이었다. 허황될 만큼 순식간에 사라진 문화의 멸망에는 타인이 함부로 동정하기 힘든 황당함이 있었다. 지나치게 큰 비극은 우스운 것을. 그러나, 눈앞의 낯선 자가 들추는 것은 생살을 감싸고 덜 굳은 피딱지가 아니었다.  

 “붉은물질이 그곳에 있다는 게 사실인가?”
 “…….”
 
 평화로운 고향을 걱정할 이유가 없던 수많은 벌칸이 먼 곳의 일을 중단하며 새로운 콜로니로 향하는 것은 상식적인 흐름일거다. 명료한 의식이 적은 노인의 눈에서 흔히 마주치기 힘든 지성을 읽어낸 뒤. 악의 없고 두서없는 말에 응대하던 긴 그림자가 굳고 말았다. 절대적인 힘으로 우주를 위협하던 물체가 누구의 손에서 보관되는지는 많은 토론을 불러온 일이었으나, 미래의 지식을 갖게 됨과 동시에 그 위험을 제일 잘 알고 있을 벌칸의 손에 그 마지막이 정해진 것 역시 쉽게 예상되는 전개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골목의 구석에서 벌어질 대화는 아니었다. 현 시점에서는 누구에게도 위협되지 못할 연약함 역시 좋은 이유인 만큼 극비리에 진행된 일이었는데. 스쳐지나갈 대화가 생각지 못한 깊이를 갖자 긴장한 육체가 곧은 선을 그리며 멀어진다. 짧아지는 그림자 아래에서 벽에 기대앉은 노인은 더러운 바닥에 흐느적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말게 거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네가 걱정할 일은, 나 같은 자를 무시하지 못하는 예의바름이지.”
 “최소한의 답변이 기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건 여기에 없어. 아무에게도 답하지 말고 이곳을 떠나게.”
 
 멸종 위기의 종족이 노예 상인에게 얼마나 좋은 값을 받을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었으나 아무리 멀다 해도 연방의 수하인 소행성에서는 가능성이 낮은 위험이었다. 순진하다 칠만한 예측은 정확했으며 어둠이 깊어진 장소에서 그를 덮친 것은 그가 벌칸이기에 향해진 공격이 아니었다. 가격을 묻지 않으며 결제된 크레딧을 시발점으로, 이어진 짧은 추격은 막다른 폐허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압도적인 숫자에 저항하던 지친 몸은 쉽게 피를 보였다. 특유의 냄새와 함께 묻어난 진초록색은 가벼운 시작에 더해졌던 피해와 함께 더 큰 이득을 열망하게 했다. 변수로 인해 도달하지 못한 목표였지만.  

 검은 옷자락과 함께 움직인 팔다리가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는다. 41%의 표피 손상으로 확신이 불가능한 소음 속에서 눈앞을 가리던 그림자가 마침내 돌아서 얼굴을 드러냈다. 수많은 불가능성에 속하지 못한 예외성은 논리를 파괴하며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 허구를 강조했다. 아는 이가 적을 진짜 이름을 부를 생각조차 없는 입술이 막연히 열렸다 다시금 닫히고.  세상과 분리된 머릿속에서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답하지 못한 비웃음이다.  

 “I broke a bone.”
 “I can see that crack.”

 속삭일 극비가 없어 잠꼬대마냥 흘러나온 목소리가 불쌍하기라도 했는지. 예상 못한 만큼 무의미한 대답은 자극을 불허했고 바라볼 것이 사라져 허공을 향했던 두 눈은 망설임 없이 감길 수 있었다. 두껍고 무거운 옷자락 아래에서 검고 탁한 윤기로 흐른 진초록의 피가 금이 간 바닥이 좁다며 웅덩이를 만든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발이 핏물을 닦아낸 위로 도시의 어둠이 눈처럼 쌓이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일곱 시간 뒤 우주의 저편에서, 캡틴 제임스 T 커크는 자신의 퍼스트 오피서가 수배령이 내려진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었다 보고받는다.    











 (속삭일 극비- 는, 고은시인의 구절 중 ‘너에게 극비로 말하고 싶다’에서 영향 받은 표현임.)

 





[ One and Only ]



 2.



 둘이어야 하는 부모가 내게는 하나뿐이다. 세상에는 그런 경우가 흔했기에 그건 별 큰일이 아니었다. 큰일로 말하는 사람들은 그저 수다 떨 핑계가 필요한 거라서, 다른 꺼리를 만들어주면 그 얘기에 바빠지곤 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는 듣지도 말아야 한다며 엄마는 웃었지만, 그렇게 나오는 웃음이 얼마나 한심한지는 보는 사람만 아는 일이었다. 사라진 것을 칭찬하는 말에 열을 내는 눈동자는 억지웃음보다도 더 보기 싫었다.  



 1.  



 부모가 하나인 것처럼 내게는 형제가 하나 있다. 가끔은 형이 아니라 동생이었다면 좋았으려니 싶은 녀석이긴 해도 역시 없는 것 보다는 나은 일이다. 엄마의 전화를 무시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건 좋은 핑계가 되었으니까. 내 바이크, 내 가죽재킷, 내 신발. 그 이상 필요치 않은 것들은 하나인지 둘인지 혹은 열인지 셀 이유가 없었다. 하룻밤을 위한 몸뚱이는 하나일 이유가 없었고 기억해야 할 이름도 쉽게 늘지 못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것으로 내 머리는 벅찼는걸. 세상이 잊지 못하고 엄마가 잊지 못하는 이름을 나는 잊고 싶었다. 조지 커크. 한 번의 결정으로 엄마를 구하고 나를 구한 남자. 한명의 희생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 나의 아버지. 셀 수 없이 많을 죽은 영웅의 하나로 이름을 남긴 그가 나는 좋아진 적이 없다. 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집안을 가득 채웠던 사진과 책과 낡은 자동차를 보물처럼 간직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값을 따져 팔아먹는 짓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없앨 수 있는 제일 큰 하나를 끌고 시동을 걸었을 때, 벼랑 너머로 떨어뜨리고 싶던 것이 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차는 부서졌으니 그게 답이겠지.    



 1.  



 최소한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라고 누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인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의무적으로 묻는 사람조차 사라졌지만. 알이 빼곡하게 박힌 옥수수 밭 옆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많은 것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쳐다보기도 싫은 내가 답답한 고개를 돌리면 하늘이 보였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내게 시비 거는 자는 없었다. 안 해도 될 말을 시작하는 건 내 취미였거든. 그러니까, 앞의 말도 빼먹은 게 있다. 요새 하늘은 옛날처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  

 본즈의 말처럼, 재수 없어서 이겨보겠다 시작한 길은 아니라 이거다.  



 1.  



 본즈는 내 친구다. 어쩌다가 이리 된 일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하나로도 피해가 막심하니 둘은 제발 생기지 않았으면. 듣는다고 슬퍼할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항상 내가 듣는 소리거든. “네 옆자리에 앉은 건 과한 불행이었어.” 지구를 떠나며 치룬 마지막 불행일거라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그 뒤로 본즈에겐 불행이 적었다. 비교형이 나라면 비슷한 걸 찾기가 힘들 일이기도 했다. 불평은 많았지만, 좋은걸 좋다 말 못하는 병이 있는 작자라 이해해야할 일이었다. 물론, 여자는 제외하고서. 그거라도 통했으니 친구가 된 거겠지. 그리고 외로움이나 원망 같은 뭐 그런 지루한 것들도.  



 2.



 하나여야 하는 것이 둘로 나타난 건 정말 괴상한 경험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믿음으로 들이밀어진 기억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홀한 장면들이다.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없이 많은 임무를 성공하는 또 다른 나. 우주를 누비고 다니던 그쪽은 심지어, 부모까지 둘이었다. 막무가내로 속을 채우는 충만한 감정에 반항하던 나를 깨워준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외로운 존재다. 짐, 나는 언제나 당신의 친구고 항상 그럴 것이네. 진실이 가득한 눈을 보면서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나도 그렇게까지 못된 놈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다. 당신이 보는 건 내게 겹쳐지는 닮은꼴이지. 같으면서 다른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기에 굳이 말 할 필요는 없었다. 선의는 아니라 해도 호의가 분명한 마음도 함께 전해진 일이니까. 말도 안 되는 미친놈에게 동의한 우주의 장난질이 피해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곧 내 하나를  만날 수 있었거든. 웃기는 녀석이라 불만은 적었다. 쓸데없이 큰 손이 등을 밀지 않아도 이렇게 되고 말았을 게 어쩐지 뻔했으니까. 똑똑한 머리만 아니었다면 더럽게 센 고집으로 큰일 났을 녀석은 이 우주에 나 혼자가 아니었던 거지. 그녀석의 말을 따르자면,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착각이란다.  


 “미스터 스팍, 지금 우리 둘을 동급으로 놓은 내 전제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소린가?”
 “캡틴, 지금의 대화에서 불만을 표한다 해도 개선되지 못할 비논리적이고 감상적인 전제는 그 수가 너무 많으며, 이런 상황에서 일일이 말하는 것은 다양한 자원의 낭비입니다.”    
 “그게 그거네. 자원의 낭비를 할 만큼 불만스럽지 않다는 소리.”
 “…….”


 대답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는 듣지도 말아야 한다는 소리에 이 녀석은 분명 동의하겠지? 어쩌겠어, 목을 부러뜨릴 기회를 놓쳤으니 견디는 수밖에.  



 2.  



 둘이 되는 건 참 좋은 일이란다. 본즈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습관처럼 곁들여진 차가운 웃음을 빼고 남는 말은 그런 소리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남의 일이긴 해도 좋아 보이는 일은 맞았으니까. 인간 한명 정도로는 말귀가 통하지 않는 녀석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를 사람이 하나 정도는 더 있어야지. 난 차마 못할 일이지만 그녀라면 따귀 몇 대 정도는 가능할거다. 그것 말고도 가능한 건 엄청 많겠지만. 그게 부럽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1.



 도대체 어쩌다가 벌어진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미워하는 눈이 아니고 원망하는 손이 아닌데 어째서,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뒤틀려 그녀가 혼자 우는지.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우는 여자보다도 더 무서운 건 우주에서도 찾기 힘들 텐데 나는 오늘 찾고 말았거든. 차라리 화를 내라고 멱살을 잡고 싶은 탁한 눈은 너에게 있을 것이 아니야. 당황으로 떨리는 손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 것은 혼자가 아니었던가. 텅 빈 손을 어쩔 줄 모르며 사라진 뒷모습이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보여 나는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이, 방향이 반대라고. 네가 도망칠 때 그 끝에는 내가 있어야지.      



 0.  



 존 해리슨의 탈출이라. 온 신경을 쏟아야 할 일이 맞았지만 솔직히 그러기가 힘들었다. 높으신 분들 장난에 망하는 세상 구하는 짓도 한두 번이지.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질 하며 욕하고 싶은걸 애써 참았던 건 숨기는 게 있어서였다. 긴박하고 혼란스러운 늙은 눈에 언제나 내 옆에 있어야 할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쉽게 얼버무릴 일이었지만. Break one law at a time. 법을 어기겠다면 한 번에 하나씩이야.  


 물론, 그따위 소심함이 없으니 테러리스트 소리를 듣는 거겠지.  


 짧고 분명한 한 줄로 전달된 속보는 더 이상 놀랄 것이 적다는 내 건방이 거슬렸다며 발밑의 땅을 꺼지게 만드는 우주의 행패였다.  


 “Nobody take my Vulcan.”


 근질거리던 불안이 터져버린 벽을 날리며 쏟아진 것에 뭐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을 귀라서가 아니라, 희고 검은 게 사라질 만큼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을 막아내던 유일한 하나가 이 자리에 없어서였다.          









[ I was a Prince ] 







.00


인간은 어리석어 주제를 몰랐다. 신세대의 진화를 성공해 놓고도 손안의 것을 포기하지 못해 지구를 더럽히고, 처음과 끝 모두 책임 질 줄 모른다. 연약함을 핑계로 변명만을 하는 구시대의 흔적들. 나의 통치에는 한 점의 티끌 없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정할 수 없는 우월함에 납득한 자는 평화를 보장받았다. 의심하고 망설일 필요 없는 절대성. 오랜 세월 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바라던 것을 주었는데도 고마움을 모르고. 이기적인 나태함과 배신자의 비열함으로 몰려든 구더기가 땅을 갉아먹고 하늘을 불태웠다. 내 앞에서 죽어가는 아름다운 아이들. 희생의 가치를 알기에 뒤따른 복수는 그 끝에 달하지 못하며 피로를 불러온다. 잠깐의 휴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장애가 아니었다. 눈을 뜬 그때에 있어야 할 서로는 다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00


하룻밤처럼 흘러간 수백 년이 무어가 그리 대단하다고.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혹시나 하고 기대한 것이 없는 나에게도 이해가 불가능한 무능함은 슬퍼할 가치조차 없었다. 똑같은 욕심과 똑같은 변명에 아름다운 아이들이 붙잡혀있다.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못되는 늙고 추한 손이 감히 나를 협박하는 것은, 뭐라도 달라진 양 가식과 위선으로 무장한 세상에서 오히려 반가운 솔직함이지. 태초에 존재해 함께 가진 몇 안 되는 본능들. 욕심은 비웃을 것이 아니다. 비웃을 것은,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이의 거만함이다. 나의 야만을 원한다니 원하는 것을 줄 수밖에. 벅찬 것을 함부로 탐내는 자는 언제나 그 값을 치루는 법.


.00


고된 세월로 주름이 깊어진 그녀를 버리고 이제는 우주를 제 손에 넣겠다고. 늙어가는 외모가 추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기계의 탈을 쓰는 망측한 노인처럼.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은 그 수를 세지 못할 그들의 본성이었다. 스타플릿의 골든보이, 캡틴 짐 커크. 철부지처럼 화를 내봤자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너의 분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의 힘이 모자라서. 닿지 못할 별을 향해 달려간다는 달콤한 착각에 취해 얼마나 많은 이의 괴로움을 무시했을지?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킨 것마저 그 열등감으로 부수고 버린 인간들이 진정 자신보다 나은 존재를 도대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나비의 날개를 찢는 순진함이 아니라, 팔다리를 기어오르는 개미의 무지에 불과한 것을.


.00


더 강한 육체와 발전된 정신을 갖고서도 결국엔 인간의 층으로 떨어지고만 외계인들. 대답을 하지 않는 무시를 택했다면 그 행성의 사막이 기억만으로 남지는 않았겠지. 지치게 만드는 우둔함에 사로잡히느니 침을 뱉고 욕을 하는 것이 옳았다. 삭막한 숨결과 어두운 하늘뿐인 클링온이 도덕적으로 못하다며 우월함을 주장하는 페데레이션의 목소리는 어찌나 오만한가. 서로를 죽이는 것에 질려 남들을 공격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야. 연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그토록 도도할 수 있다는 것은, 모르는 이의 눈에는 매혹적일지도. 그래서 너의 아버지는 인간과 결혼했고 너는 인간의 길을 택했나? 커맨더 스팍, 인간이 만든 직위를 갖고 인간이 만든 바닥 위에 선 당신은 만족하나? 만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일거다. 나은 것을 갖고도 쓸 줄 모르는 벌칸의 어리석음. 그 미련과 집착에 기어코 찾아온 혼돈은 다른 이를 탓할 수 없는 자멸이었어.


.00


수백 년보다 길게 느껴진 외로운 밤들이 나를 지치게 했을까. 잃었다 배웠던 것을 찾게 만들고 찾았다 믿은 것을 잃게 만들고. 부러지는 뼈와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나를 괴롭혀온 세상의 예의일지 장난인지. 핏물을 긁어낸 마지막에 남은 것은 다행히도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설 자신이 있었다. 제 욕심에 취해 나를 놓지 못할 그들은 결국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으니까.




.00 .02 .04 .06 .08 .10 .07 .05 .03 .01




모든 것이 사용되기에 아무것도 버려지지 않는 도시에서, 녹슨 쇠와 썩은 살을 구분할 의미란 없었다. 마주친 것이 낯설지 않다 해도 두 번 볼 필요가 없는 교차로다. 그렇기에, 지나쳐가던 눈을 붙잡은 것은 아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는 것이 보여 생겨난 호기심이 3초를 5초로 만들며 불필요한 지식을 과정으로 만들었다. 그럴 것 같던 괴상한 피가 바닥에 토해지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몸뚱이는 기억속의 것과 다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을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소용없고 의미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낸 것은 결코 모를 존재는 아니었다. 드디어 시간의 가르침을 얻은 것일까? 짐작하기 힘들어진 어두운 눈동자에게 나는 거짓을 말했다. I can feel that crack. 네 손에 부서졌던 나의 뼈가 이렇게 지금 너를 구하고 있지. 알아서 멈춰버린 출혈이라도 이미 나온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침대를 더럽히는 진초록의 피는 그 묽음이 없어 기름과도 같다. 오래전의 어느 날 강에 버려지던 폐기물처럼 쌔하게 공기를 물들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초록색 외계인에게 그 이상의 호기심은 없었다. 몇 개의 에너지 칩과 크레딧을 제외하고는 가진 것이 없는 그는, 정말로 몸뚱이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니, 그걸 써야겠지.




0.


늘어진 육체 위로 길게 뻗은 팔이 움직인다. 손가락을 감싸고 손목을 동여맨 질긴 가죽은 거친 바닥에 찢어진지 오래다. 지혈을 위한 냉각수가 맨 손에 부어지자 쩍 하고 얼어붙은 피부가 무시무시한 신음을 흘리고. 코드를 잘못 꽂은 전기제품처럼 거세게 떠진 갈색 눈은 쉽사리 초점을 찾지 못했다. 방해가 없는 손길에 뚝 하고 부러진 뼈가 그렇게 끊어져 나간다.


덜컥대고 몸부림치는 사지를 억누르는 무게에 미친것같이 달려든 다른 손에서, 아니, 버둥거리는 온 몸에서 솟구치는 것은- 소리가 필요치 않다. 끔찍한 비명이 없어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정 그 자체다. 고통. 분노. 혼란. 목이 잘려나가 바르작거리는 새의 몸짓처럼, 폭발하는 정신감응. 의식 없는 반응과 삭힐 새 없는 감정을 고스란히 삼켜낸 남자가 다시금 쉭 하고. 소름끼치는 차가움으로 육체를 잠재운 가스가 들척지근한 향으로 바닥에 스며든다. 사라지지 못할 고통을 억지로 가두게 만드는 악의에 할딱이고 가라앉던 호흡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다친 껍질을 웅크리는 벌레인양, 어떻게든 살겠다고 잠드는 몸은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할 것이다.


허한 공간에 그림자를 주는 것은 저편의 깨진 창문이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 남자는 손안의 작은 관을 살펴본다. 깨끗하게 절단된 검지는 마치 성에가 낀 고드름 같아, 핥아보고 싶은 충동을 만들기도.


미끼를 얻은 이는 계획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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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에... 삼각관계까지는 아니고 안쓸게 확실하니 말해보지만

tos 스팍의 등장으로 유전자가 동일한 두명의 스팍이 존재하는 우주이니 위험한 덩어리 많고 한명은 뉴벌칸의 재건을 위해 뭔가 중요한 일 하게되고 그 뭔가의...침입과 이용을 위해 칸이 aos 스팍을 납치해서 사건을... 벌이는... 그런 걸 쓸까 했는데 안썼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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