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과 이어집니다.)


가장 바라지 않았던 2018년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다.


이제 달력은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이었다.


워너원은 마지막 고척돔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매일매일 동선을 연습해야했고 안무를 복기해야했으며 개인 퍼포먼스를 준비해야했다. 마지막인만큼 인터뷰 요청 역시 쇄도했다. 멤버들은 힘이 닿는대로 인터뷰에 응하고 방송에 나갔으며 팬미팅에 참석했다. 감당하기 벅찬 힘든 스케줄이었지만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군말이 나올법도 한데, 멤버들은 모두 묵묵히 본인에게 주어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그 순간에 감사해했다.


다니엘의 스캔들은 파급력이 엄청났지만, 소속사의 빠른 대처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요새 '단지 친구사이'라는 보도를 어느 순진한 누가 믿겠냐는 비판도 일었지만, 팬들의 적극적인 쉴드로 스캔들은 종적을 감추었고 다니엘 역시 더 이상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문제는 다니엘과 옹성우에 대한 소문이었다. 대기실에서 성우가 다니엘의 뺨을 때린 후 멤버간 불화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여의도 찌라시에서는 A그룹의 B군과 C군의 몸싸움을 은밀하게 보도했고 팬들 사이에서도 둘 사이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진즉에 눈치챈 터였다. 방조차 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둘의 관계성을 좋아하는 팬들은 실망하였고 다시 개인팬으로 돌아섰다. 어짜피 한달 뒤 그룹이 끝나면 남이 될 그들이었다.

멤버들 역시 다니엘과 성우의 다툼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때 이미 대기실에서 둘의 다툼이 선명하게 들렸더란다. 퍽 소리 이후 다니엘이 잔뜩 부은 뺨을 안고 대기실에 들어왔을때 멤버 전원은 얼어붙었다. 다들 다툰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막연히 '몇개월 남지 않았는데 스캔들 관리를 못한 다니엘에게 성우가 실망해서' 라는 추측으로 모아졌다. 성우가 워너원 활동에 얼마나 큰 애정이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성우의 심정에 공감했고 한편으로는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는 다니엘에게 안쓰러움을 표했다. 콘서트 전까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행히 멤버가 많아 분위기는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묘하게 다니엘은 장난이 줄었고 성우는 예전보다 더욱 피곤해했다. 


콘서트를 하루 앞둔 어느날, 리허설을 하며 지성은 연습에 지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성우에게로 다가왔다. 

 

"성우야.힘들지?"

"형.. 네.. 제가 체력이 완전 바닥이어가지구.."

"그래.마지막이니까 힘내자 우리."


지성은 성우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한참 성우옆에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있지 성우야. 내가 리더로서 하는 말인데.. 내일이 마지막이니까, 다니엘과 푸는건 어때?"

"....."

"너 심정 뭔지 아는데. 그래도 마지막이잖아. 우리가 내일 아니면 또 언제보겠어. 응?"

"........."


성우는 말이 없었다. 이것은 분명 '풀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친구사이에 감정싸움이라면 누구하나가 자존심을 죽이고 미안하다고 하며 끝날 문제였지만, 다니엘과의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었다. 다니엘은 나를 좋아하고, 나 역시 다니엘을 좋아하지만, 결국 나는 다니엘을 찼고, 다니엘은 다른 여자와 만났고.. 누구 한명 잘못한 사람이 없는 기이한 구조였다. 따라서 지성이 말한것처럼 감정을 풀수도,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서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기를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눈을 눌러감았다. 지성은 그런 성우의 등을 토닥이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성우는 지성이 떠난 자리를 한참이나 응시하다 시선을 드넓은 관객석으로 향했다. 아직은 텅빈 고척돔 2만여석의 자리는 무척이나 고요했고 광활했다. 성우는 다시 지성의 말을 복기했다. 


내일은 워너원으로서의 마지막 활동이고, 

팬들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공연이었으며,

다니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절대 오지 않을것 같은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내일 이 시간 나는 어떻게될까. 나는 무엇을 느끼고 얼만큼 슬퍼할까. 마지막이라는건 정말 오긴하는걸까.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나. 어떻게 마지막을 받아들여야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아 숨을 불어넣어보니 하얗게 김이 서렸다. 12월의 텅빈 공연장은 몹시 추웠으며 성우의 마음도 덩달아 서늘했다. 


내일은 모든것의 마지막이었다.



***


"언제나 너와 지금 이 곳에
언제나 너와 여기 이 자리에
ha ah ah, ha ah ah, ha ah ah, ha ah ah
Always, Always, 이 자리에, 이 자리에
Always"



마지막 곡은 '이자리에'였다. 다니엘은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모든 슬픔이 북받쳐 올라왔다. 옆에서 엉망으로 훌쩍이는 멤버들의 얼굴과 눈앞에서 눈물짓는 팬들의 얼굴을 보고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은 없었다. 결국 다니엘은 고개를 떨구고 한없이 울었다. 마이크를 쥔 손에 눈물이 토독토독 떨어졌다. 


워너원의 끝-

멤버들과의 마지막-


고척돔을 꽉 채운 팬들을 보자 주마등처럼 모든 추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고척돔에 발을 내딛은건 야구경기를 앞두고 였다. 성우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던 그 시절 둘이 양옆에 나란히 위치하여 몸이 부서져라 나야나를 추고 함께 장난치며 버스에 올랐더란다. 그 뒤로 고척돔을 찾은건 첫 데뷔 쇼케이스였다.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데뷔축하한다며 방방뛰며 환하게 웃었고 팬들도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축하했다.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열린 월드투어의 첫장소 역시 고척돔이었다. 고척돔을 꽉 채운 무수한 불빛들을 보며 기쁨에 부풀었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지못할거에요. 저희를 이렇게까지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리더 윤지성의 엔딩멘트가 시작됐다. 이미 눈물이 가득 번져 엉망이 된 얼굴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눈물을 닦으면서 팬들 한명한명에게 눈을 맞춰 인사했다. 

다니엘은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프로듀스 101을 하며 온갖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던 멤버들이었다. 같이 함께 숙소생활을 하며 울고 웃던 가족이었고 해외투어를 하며 관광지를 헤집고 다녔던 절친들이었다. 다니엘이 2년여간 달려온 모든 순간에는 워너원이 있었고 멤버들이 있었다. 

함께 밤새 게임을 하며 친해졌던 여린 얼굴의 지훈이, 늘 어른같이 자신을 다독이며 멤버들을 챙겼던 성실한 민현이, 해외투어에서 함께 보드를 타며 여행을 다녔던 속깊은 성운이형, 동갑내기로서 함께 몸으로 장난치며 놀았던 죽이 잘맞는 재환이, 귀여운 애교로 팀의 활력을 북돋아주던 대휘, 말수는 없었지만 은근슬쩍 자신을 툭툭 치며 놀려대던 진영이, 막내지만 늘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항상 존경스러웠던 관린이.... 다니엘은 그리고 다시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윤지성을 보았다. 원래 눈물이 많았던 윤지성의 눈물샘은 폭포수처럼 터져 멈출줄 몰랐다. 어쩌면 윤지성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가수활동일지도 몰랐다. 오늘 하루는 윤지성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면서, 가장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아쉬운 순간일 것이다. 다니엘은 마음이 아려왔다. 세상이 떠나갈듯 목놓아 우는 윤지성은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고개를 들어 성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콘서트 내내 성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던 다니엘이었다. 마지막인만큼 잘 풀어보라는 윤지성의 조언이 있었지만, 마지막인만큼 더욱 절박하게 성우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인만큼 성우를 향한 감정의 크기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어 있었다.여기서 만약 눈을 마주쳐버리면 끝까지 부풀다 결국 터져버린 풍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며 다시금 좋아한다고, 진심을 다해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뒷모습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조막만한 어깨가 수없이 들썩였다.



성우 역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어깨를 끌어안아주며 토닥이고 싶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애달프게 성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안쓰러워하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성우가 가장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 마지막 멘트를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항상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순간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공연장은 팬들과 멤버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언젠가는 찾아와야 하는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막상 그 이별의 순간을 앞두니 감당할 수 없는 벼락같인 슬픔이 몰려왔다. 

멤버들은 일렬로 대형을 만들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윤지성은 훌쩍이는 멤버들을 달랬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구호를 붙였다.  




"하나 둘, 지금까지 All I wanna do! 워너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사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워너원도 끝이 났고, 팬들과의 만남도 끝이 났으며, 



성우와도 끝이 났다. 




그렇다. 영원한건 없는 것이었다. 



성우가 옳았다.



멤버들은 한명한명 서로 끌어안으며 마지막을 함께 슬퍼했다. 모든 멤버들이 다 인사를 하며 끌어안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성우와 다니엘만이 남았다. 눈시울이 잔뜩 젖은 멤버들은 서로 눈짓하며 둘을 떠밀었고 팬들 역시 환호성을 질렀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니엘과 성우의 마지막 포옹을 바라고 있었다. 


잔뜩 울어 퉁퉁 눈이 부은 성우는 주뼛주뼛 다니엘에게로 다가갔다. 막상 다니엘을 보자 눈동자는 정처없이 헤메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안고싶은, 그러나 가장 안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다가오는 성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성우 역시 고개를 들어 다니엘과 눈을 맞추었다. 드디어 둘의 시선이 얽혀들어갔다.


찰나였지만, 영겁의 시간과도 같은 거대하고 영원한 순간이었다. 

성우는 다니엘의 눈속에서 다니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았다.


마지막 방송때 프로듀스 101의 멤버로 발탁되며 그 누구보다 기뻐했던 다니엘이었다. "형!형!내좀 봐라!" 다른 멤버들과 얼싸안느라 정신없는 성우를 애타게 불렀고 그 누구보다 더욱 으스러지게 끌어안아주었다. 와인을 마시며 커밍아웃을 했을때 하느님은 가장 낮은 사람부터 사랑하리라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다니엘이었다. 함께 2018년을 맞으며 다니엘은 그 누구보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축하한다며 말을 건넸고, 방송사고가 터졌을때 모든건 다 지나간다며 다정하게 토닥여주었다. 가평에서 무심코 흘린말을 기억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러가자고 제안했던 섬세한 그였다. 다음날 그는 비행기 안에서 수줍게 자신의 손을 맞잡고, 새벽녘에 잠든척한 성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소리죽여 내뱉었다. 그리고 관람차에서 향수를 주며 자신에게 용기내어 고백했다. 그리고...


성우는 물진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다니엘은 성우를 향해 팔을 벌렸다. 다니엘의 표정은 퍽 처연했고 애처로웠지만, 그러면서도 성우를 향한 벅찬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그리고 나는 너를 거절했는데...



성우는 한걸음 한걸음 다니엘에게로 다가갔다. 다니엘은 성우를 향해 희게 웃어보였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은 미소였다.  



나는 너를 거절했는데..그래도 여전히 너는 나를 용서해주는구나.

그래도 여전히 너는 나에게 미소지어주는구나.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성우는 두팔 가득 벌린 다니엘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6월 16일의 그날처럼, 다니엘에게로 와락 안겼다.

그날처럼, 다니엘은 단단한 두팔로 성우의 허리를 휘감았고 성우는 다니엘의 목을 끌어당겨 온힘으로 그를 안았다. 서로의 몸이 부서질것 같은 거센 포옹 속에서 다니엘의 열기가 몸을 타고 넘어왔다. 허리에 맞닿은 다니엘의 단단한 손가락이 느껴졌고 그의 벅찬 숨결이 귀에 닿았다. 맞닿은 가슴에서 사력을 다한 다니엘의 진심이 절절하게 전해져 왔다.  




형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형.  

내가 많이 좋아해. 




성우는 눈을 눌러 감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았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해도 좋았다.

이대로 모든것이 끝나도 좋았다.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다니엘의 얼굴을 마주했다. 다니엘은 펑펑 울고 있었다. 눈물로 얼룩져 엉망이 된 얼굴은 그 어떤 이보다 아름다웠고 찬란했다. 성우는 귀에 걸려있던 이어마이크를 빼고 입술을 다니엘의 귓가에 가져갔다. 




"다니엘..."




숨죽여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그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다니엘..."




성우는 눈을 감고 다니엘의 마음을 느꼈다. 다니엘의 심장소리가 귀에 젖어들었다.




"다니엘 사실 나는...."









그리고 숨죽여 속삭였다. 







 


"                      "













시간이 멈추었다. 

그것은 아무도 듣지 못하는 밀어(密語)였다.    


공연장을 가득채운 2만명의 팬들도.

무대 뒤에서 그들의 음성을 녹음하던 스탭들도.

그들의 포옹을 축복해주던 멤버들도.


세상의 모든 것을 귀기울여 듣고 있는 하느님도.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있는 당신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오로지 다니엘만이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없이 기쁜듯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품의 성우를 다시한번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성우는 가만히 눈을 감고 쉴새없이 뜀박질치는 다니엘의 심장소리를 느꼈다. 

온힘을 다해 자신에게로 달려온 그의 마음을 느꼈고,

모든 것을 걸고 자신과 함께할 각오를 한 그의 미래를 느꼈다. 



공연이 끝이 났다.

워너원은 해체했고,

팬들은 돌아갔다.


텅 빈 공연장에 흩날리는 꽃가루만이 그들이 존재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성우가 사라졌다. 

아무도 그 행방을 몰랐다.

심지어 다니엘조차. 

 


RPS 기반/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립니다. https://twitter.com/gomchu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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