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내리 몇 시간 동안 별을 구경했다. 하늘에는 아마 별 뿐만이 아니라 위성도 행성도 비행기의 조명도 섞어있겠지만 나는 그 중 별을 골라낼 수 있었다. 유난히 빛나고 반짝이는 그 별들은 여타의 빛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그 중 가장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은 하늘이 아니라 내 옆에 고요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변변한 조명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바깥 배경은 그 두 개의 별을 더 빛나고 반짝이게 만들어 주기에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지훈아”


나는 뒤통수를 깔개바닥에 붙이고 누워 별구경 삼매경에 빠진 지훈을 불렀다. 지훈은 정체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만 살짝 틀어 나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말소리마저 방해가 될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하기까지 한 우리의 공간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소리마저 배경음악이 됐다. 


“니가 보는 저 별은 아마 최소 8.7광년은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걸 거야.”


지훈은 다시 고개를 하늘로 돌려 그 중 가장 빛나는 별빛 그 어디쯤 시선을 고정했다. 


“8.7 광년? 그게 얼만큼 먼 건데요?”


이럴 때 공부 열심히 해둔 보람이 있었다. 지구과학을 사용조차 안 하는 과로 진학했지만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참여했던 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광년은 빛이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을 돌만큼 빠른 속도를 뜻하는 단위고, 8.7광년은 그런 빛의 속도로도 8.7년이 걸린다는 이야기.”


말하면서도 과연 그게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그래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다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공식으로 외우고 있던 지식을 설명하려니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뒷부분이 핵심이었으므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이고, 우주의 크기는 100억 광년이 넘어.”


단위가 커져감에 따라 내 말의 속도는 느려지고 지훈은 숨을 멈췄다. 나는 왼편에 누워있는 지훈의 머리를 들어 올려 내 왼쪽 가슴팍에 뉘였다. 지훈은 언제나 내 손길에 조금의 저항감도 없이 쉽게 따라왔다. 조그마한 머리통이 내 심장 바로 위에 안착하자 열기와 함께 빨라진 박동소리가 내게도 느껴졌다. 


“그렇게 큰 우주에서 겨우 우리 둘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흔한 로맨틱 드라마도 온몸이 근질거려 몇 분 보다 전원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던 내가. 


“먼지보다도 작은 내가, 먼지보다도 작은 너를 사랑하는 게.”


나는 손을 들어 지훈의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귓바퀴를 쓰다듬었다. 아직 솜털이 나있는 이 아이를. 세상을 다 아는 척 하지만 아직 하나도 모르는 이 아이를 내가. 


“크게 문제가 될까.”


사고처럼 다가온 관계에 학습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린 감정. 불안한 나보다 어쩌면 더 불안할 지훈을 끌어안고 쏟아지는 별 빛 아래에서 내가 내뱉은 말은 고작 비겁한 감정의 변명이라니. 예상대로 지훈을 향한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를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했다. 


그런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한 번에 정리해주는 건. 


“무슨 변호사가 이렇게 무식해요?”


역시 지훈이었다. 


지훈은 자조 섞인 내 질문 같은 독백에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고 이내 나도 일으켜 앉혔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 서로를 각자의 눈 안에 오롯이 담았다. 우리의 거리는 겨우 반 팔. 15cm쯤 되는 가까운 거리. 수 십 수 백 수 천 개의 별이 아닌 서로만 꽉 차게 담은 그렇게 가까운 거리. 


“문제면 해결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벌 받으면 돼요.”


지훈은 시선은 내 눈에서 떼지 않은 채 손을 잡아왔다. 그 시선에서 마치 나를 다독이는 온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저절로 호흡을 고르는 날숨이 힘겹게 새어나왔다. 


“변호사가 그런 일 하는 거 아녜요?”


말끝에 부드러운 입술의 촉감에 내 왼쪽 뺨에 내려앉았고


“다니엘이 실력 있는 변호사길 바라는 수밖에요.”


오른쪽 뺨에도 내려앉았다. 꼬맹이가 내뱉은 말에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막바지 미성년자 주제에 사고체계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전문 직종을 갖고 있는 나보다 나았다. 확실히 지훈의 말은 내게 각성의 효과가 있었다. 혹여 문제가 있다면 문제 자체를 두려워할게 아니라 어떻게든 풀어내야했다.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을 내야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식사다운 끼니를 챙기지도 못하고 별만 보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진 허기와 목마름에 옆에 놓여있던 맥주 캔을 하나 땄다. 치- 하는 소리에 이어, 딸깍 캔 뚜껑을 하나 더 따고 한 캔을 지훈에게 내밀었다. 


어른이 주는 술이니까 허락.

다니엘.

어.

처음 마셔봐요. 술


그 말이 진짜였는지 지훈은 단 두 모금 만에 얼굴이 벌게져 앉아있었다. 웃음소리에도 바람이 조금 더 많이 실려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법과 규칙으로 자유를 제한해도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지키지 않으니까 법이란 게 있는 거다. 모두가 지키면 결국 법이란 존재는 그 의미가 없어진다. 


나의 첫 음주는 중학교 2학년 수련회에서였다. 의례적으로 중2병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때 모든 규율을 파괴하는 행위들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하지 말라는 것들만 골라서 하는 시기. 중2쯤이 딱 그럴 때다. 


우리 반 꼴통은 생수병에 소주를 한 가득 부어왔다. 그것도 3병을. 모르고 넘어간 건지 알면서도 넘어가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당부분은 내 덕이었을 것이다. 학교 최고의 우수생인 나와 한 방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방 친구들은 허술한 관리의 덕을 십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그 시간 우리는 최소한의 조명에 의지해 술중에서도 가장 저렴하고 흔한 술인 소주를 마치 무슨 성수라도 되듯 한 방울이라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셨다. 원초적인 알코올 맛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화장실로 달려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술에 대한 내 첫인상은 


시시하네.


였다. 


화학시간에 맡던 알코올램프의 향과 다름이 무엇인가. 어른들이 그렇게 마시지 못하게 할 때는 대단한 그 무엇가가 있어서일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원색적인 알코올 날 것의 향과 맛이 내게는 퍽 시시하게 다가왔다. 뭐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나는 생수병에 든 소주를 벌컥벌컥 반 병정도 한 번에 비우고 가장 안 쪽 자리로 들어가 오- 반장 화끈한데. 반 친구들의 뒷말을 버려두고 벽을 보고 머리를 뉘여 잠을 청했다. 세상 모든 일이 쉬워 그 모든 것들이 시시했다. 다음날 개운하게 일어났을 때 우리 방아이들 절반은 순찰을 돌던 교관들에게 들켜 두어 시간 밖에서 기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런 아이들도 내게는 그저 시시하게만 보였다. 


나는 모든 게 능숙해서 그 모든 걸 시시하게 생각했던 아이였다. 능숙하게 공부를 했고 그보다 더 능숙하게 일탈을 했다. 그래서 남들 눈에 번듯한 직업을 가졌고 내 일탈은 나만 아는 진짜 일탈이 됐다. 그런 나는 유일하게 지훈에 관한 것만 서툴었고 그게 지훈만 시시하지 않게 생각되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훈은 모든 게 서툴렀다. 잘 다쳤고 잘 망가뜨렸다. 술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서툴게 붉은 얼굴빛과 풀어진 시선으로 금방 티를 냈다. 감정표현도 서툴러서 저를 미워하는 누나에게 오히려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였다. 그런 지훈이 유일하게 능숙한 건. 바로 나였다. 모든 것에  서툰 지훈은 유일하게 나를 능숙하게 다뤘다. 그래서 지훈에게는 내가 필요했고 내게는 지훈이 필요했다. 


“첫 음주 소감은?”


내 질문에 지훈은 한참 눈알을 굴리며 표현할 방법을 찾는 듯 했다. 좋았으려나 나빴으려나. 기왕이면 나와 함께 했으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면-




“시시하네요.”



벌게진 얼굴로 나와 같은 소감을 쏟아내는 모습이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내가 안 시시하게 해줄게”


나는 입 안에 맥주를 한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지훈의 뒤통수를 끌어안고 내 입 안에서 데워진 맥주를 지훈의 입으로 조금씩 내려 보냈다. 지훈은 내가 내어주는 맥주를 꼴깍꼴깍 참 맛있게도 삼켰다. 내가 한 입 가득 머금은 맥주가 지훈의 목구멍으로 딱 네 번 만에 사라졌다. 좀 더 오래 붙어있고 싶어 최대한 조금씩 보냈는데도 그랬다. 내 입에서 더 이상 맥주가 흘러나오지 않자 지훈은 입술을 떼고 어디서 배웠는지 캬-하는 소리를 냈다. 


“자. 이제 다시. 첫 음주 소감은?”


지훈은 웃고 있었다. 원래도 잘 웃는 지훈의 미소에 딱 알코올 도수만큼을 더 해 웃었다.

 

“맥주 맛이”


맥주를 다 지훈에게 보냈는데 내가 취하는 느낌이었다. 


“끝내주네요”


원체 알코올에 강한 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그 약점을 나는 마신 것이었다. 


이번엔 지훈이 입 안 가득 맥주를 머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는 내 다리를 깔고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는 자세가 돼 겹쳐 앉았다. 지훈은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고 내가 했듯이 입에 담긴 맥주를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내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서너 모금뿐이었는데도 금방 취기가 도는 듯 했다. 역시 지훈은 나에 관해서만큼은 무척 능숙했고 내게 능숙한 지훈에게 나는 한없이 나약했다. 


그렇게 들고 나온 맥주 여섯 캔을 다 마실 때까지 우리는 계속 입을 맞췄다. 술을 마시기 위해 입술을 맞춘 건지, 입을 맞추기 위해 술을 마신 건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계속 그렇게 서로를 찾았다. 




우리는 그렇게 꼬박 2박3일 그 곳에서 묵었다. 두 번의 별구경과 다섯 번의 섹스, 셀 수 없을 만큼의 키스. 아점은 라면으로 저녁은 햇반에 사온 레토르트로 카레나 짜장 따위를 부어서. 그리고 밤에는 첫 날 처럼 맥주를 들고 나가 별을 봤다. 어제 본 별과 같은 별일 텐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니엘. 오늘은 별에 이름 붙여 주기해요. 

그래. 저 별은 지훈이 별.

왜요.

유난히 방정맞게 빛나잖아. 

뭐라고요? 이씨. 그럼 저 별은 다니엘별.

왜.

유난히 재미없게 빛나잖아요.

말도 안 돼.

아 취소. 바꿀래요. 저 별이 다니엘별.

왜. 쟤가 더 재미없어 보여?

아뇨.

그럼 뭐.

지훈이 별에 가장 가까이 있으니까. 


29살의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와 19살의 똘똘한 고3의 대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실없는 소리로 별구경은 재미를 더했다. 같은 걸 보고도 우리는 매번 다른 대화를 나눴다. 매일 보는 지훈이 내게는 매번 달랐다. 낯설다는 게 아니었다. 신선하다는 의미였다. 알수록 이 아이의 외로움이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지훈은 말이 많았고 어리광을 부렸다. 어른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아직은 딱 제 나이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순수했다. 


그렇게 실없는 대화로 느지막이 잠자리에 든 우리는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쯤 일어났다. 일요일은 마지막 휴일을 뜻했고 우리의 여행도 일단락 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일 년 365일 똑같은 별을 본다고 해도 지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훈과 함께라면.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마트에서 산 빨간색과 노란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차에 올라탔다. 


다니엘.

응.

우리 또 와요. 

그러자. 또 오자.

다니엘.

응.

고마워요.

뭐가.

나 이런 여행 처음이에요.


지훈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둘이 살았고 그나마 그의 엄마는 휴일이 더 바쁜 유흥가에서 일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학여행을 빼면 지훈은 누군가와 단 둘이. 혹은 가족끼리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이 너무 근사해서 걱정이에요.”


다시 차창에 이마를 댄 채 경치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지훈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반은 섞인 아쉬움이 잔뜩 묻은 말이 새어나왔고 


“더 근사해질 거야.”


나는 근거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은 지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게 하는 다짐이었다.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하는 감정이었다. 변호사란 직업은 책임지지 못할 말은 입에 담지 않는 직업병을 갖게 했는데 그런 내가 뱉은 말이라면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했다. 


올라오는 길에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내려갈 때보다 그 속도를 더 더디게 만들었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배가 고팠다. 그 곳에서는 끼니를 대충 때우고 넘어가도 허기를 못 느꼈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로 맘먹은 다음부터는 헛헛한 속은 꼬르륵 거리는 위장 소리로 대신했다. 



1시쯤 출발한 우리가 서울에 도착한 건 4시가 다 됐을 때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감과 동시에 우리는 의지와는 다르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루가 일초와도 같았다. 숨만 쉬고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만졌을 뿐인데 해가 지고 또 다시 그 해가 떠올랐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숨 한 번 제대로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던 우리의 주말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 말은 소영이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했다. 오늘로 소영이 폴란드로 떠난 지 딱 2주째. 


돌아올 날도 2주 남았음을 뜻했다.



J의 이야기는 녤윙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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