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끼"


경수는 책상에 머리를 쿵쿵 박으면서 욕을 내뱉었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훈이는 경수가 머리를 찧는 위치에다가 뿌셔뿌셔 먹는 과자를 가져다 놓고, 과자가 잘 부서지는 걸 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했어. 나이스! 세훈이의 외침에 경수가 이를 바득 갈며서 머리를 찧는 걸 그만뒀지. 경수가 그 짓을 그만두니까 세훈이는 경수와 책상 사이에 있는 과자를 빼가면서 왜 그러냐 물었어.


"개새끼야. 아니 개새끼보다 못한 새끼야"
"누구요?"
"변백현 말이야"
"성격 좋은 것 같던데"


성격이 좋기는. 경수는 백현이를 생각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어. 솔직히 며칠동안 기분이 좋았어. 백현이의 씨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이제 꼬시기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아이를 갖는 건 시간문제구나 하면서, 몇 명을 낳을까. 두명? 세명? 쌍둥이를 낳으면 어떡하지. 이름은 뭘로 할까. 하면서 혼자서 매일밤 김칫국을 마시며 즐거워했거든. 근데 같이 한번 하자고 조를 때 안 넘어 오는 걸 보고 알아챘어야 했는데. 백현이는 엄청 철벽을 치고 있었어. 이제 막무가내로 하자고 들이대지도 않고 선물도 사다주고 음료수도 사다주고 밥 먹을 때 반찬도 올려주고 옆에서 애교도 부렸는데 눈하나 깜짝 안 했어. 마치 니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는 듯한 태도에 경수는 매번 자존심이 상했지만 꾹꾹 참아야 했거든.


"지가 뭔데!! 지가 뭔데에!!"
"솔직히 백현이형 욕하는 사람 형이 처음이에요. 다들 잘 지내는데"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걔가 성격이 나쁜 거라니까?!! 내가 잘 지내자고 들이대도 막 인상쓰고 무시하고!! 완전 성격 나빠!! 제발 우리애가 그 성격을 안 닮아야 할텐데"


형 성격도 만만치 않다고 얘기할까 했지만 세훈이는 나름 평화주의자였기에 가만히 과자를 씹었어. 심지어 백현이가 주말엔 알바도 안 해서 경수는 주말내내 이를 부득부득 갈았어. 월요일 아침부터 마음을 새로 다잡고 등교하긴 했지만 백현이를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아직 분이 안 풀렸기 때문이야. 내가 알바하는 곳에 찾아올 거 뻔히 알면서 주말엔 근무 안 한다는 소리를 안 해?!! 들이대는 걸 무시하는 걸로도 모자라 헛걸음까지 시켜?!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선 이렇게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거라며 경수는 엉엉 울었어. 왜 내 미모에 넘어오지 않냐고. 모두들 예쁘다고 하는데 왜 넌 예쁘다고 안 해주냐고. 자존심 상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지만 그랬다간 영영 백현이 애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애써 참고 있는 중이었어. 자존심 상하니까 나중에 찾아갈 생각을 하며 분을 삭였어.


"사귀기만 해봐. 나한테 푹 빠져서 어쩔줄 모를 때 가차없이 찰 거야"
"형이 그렇게 말해도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보는 재미가 없네여"
"이 새끼가!! 왜 가능성이 희박해!! 이제 거의 다 넘어왔어!! 한 방만 남았다고!!"
"그 한방이 뭔데요?"
"이제 생각해야지!!"
"헐?"
"뭘 어이없어 해?! 너도 생각해야지!!"
"저도요??"
"그럼 맨날 내 얘기 들으면서 재미있어 해놓고 모른 척 하려고?? 재밌는 얘기 듣고 싶으면 너도 백현이랑 나랑 잘 되게 도와야 될 거 아니야!!"


경수의 얘기에 세훈이가 눈을 빛냈어. 그것 참 일리 있는 말이네요. 이상한 논리로 설득하는 경수나 그거에 넘어가는 세훈이나 참 괴짜였어. 세훈이는 갑자기 핸드폰을 뒤적였어. 평소에도 재밌는 일 없나 싶어 계속 핸드폰을 쥐고 다니는 애긴 했는데, 지금 얘기를 하다가 핸드폰을 두드리기에 아, 얘가 그래도 쓸모있을 때가 있네. 아무짝에 쓸모없는 베타는 아니었구나. 짜식. 하면서 경수는 뿌듯했어. 자신을 위해서 좋은 작전을 물어다 줄 애완견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말이야.


"백현이형 오늘 알바 안 한대요"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과모임에 참석해야 된다고 오늘 알바 빠진다는데요"


이건 경수조차 모르는 얘기였어. 백현이는 대부분 호프집에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직원들만 아는 출근규칙이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자유로운 건지. 간혹 가다가 백현이가 없기도 했어. 이런식으로 일이 생기면 빠질 수도 있다지만 중요한 건 이걸 세훈이가 어떻게 아냐는 거였지. 이거 맞는 정보긴 한 거야? 갔는데 알바하고 있고 그런 거 아니야?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는 경수에게 세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핸드폰을 내밀었어.

세훈이가 요즘 조별과제가 많아 힘들다고 징징거리긴 했지만 경수는 백현이 아이를 가질 생각만 하느라 그닥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었어. 그런데 세훈이가 대뜸 힘들다던 조별과제 톡방을 보여주는 거야. 경수는 그 수업을 듣지도 않고 듣는다 해도 모르는 사람들의 톡방을 볼 이유가 없었어. 경수는 관심없는 톡방을 보라고 들이미는 세훈이를 짜증스럽게 바라봤다가 톡방에 힐끔 시선을 줬지. 그리고 깜짝 놀라서 세훈이에게서 핸드폰을 뺏었어.


"이게 뭐야?!! 너..너 이거 뭐야??"
"거기 보이죠? 백현이형이 직접 얘기하는 거?"
"너..너.. 어떻게 변백현이랑 카톡해?? 어??"
"어? 제가 말 안했어요? 저 백현이형이랑 같이 조별과제 한다고"
"....."
"이번 학기 내내 같이 해야 돼서 연락처도 주고 받고 그랬..악!! 왜 때려여!!"
"그걸 왜 지금 말해!! 이 베타새끼가!! 하여간 진짜 도움 안 되는 새끼!!"


경수가 졸졸 쫓아다니며 번호를 따려고 애썼지만 백현이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거든. 경수는 세훈이 등짝을 퍽퍽 때리다가 다시 카톡방을 봤어. 과제 얘기도 하고 그냥 일상적인 얘기도 하고. 나름 화기애애한 카톡방 분위기에 경수는 속이 뒤집혔어. 나한테는 맨날 정색하고 철벽쳐놓고, 여기서는 막 농담도 하고 잘도 웃는다 변백현?!! 경수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1:1 채팅방을 눌렀어. 세훈이 핸드폰인 것도 잊고 본론부터 보냈지.네 씨를 뿌려줘.

당연히 의아해 하는 백현이의 카톡이 돌아왔어. 경수는 잠시 당황하다가 뒤늦게 세훈이인척 해봤지만 어째서인지 바로 알아보는 백현이라 흠칫 놀라며 카톡방을 나왔어. 귀신 같은 새끼. 경수가 볼을 씰룩이며 고까운 표정을 짓다가 백현이가 단체톡방에 오늘 과모임을 어디서 한다고 했는지도 말한 걸 보고 다시 투지를 불태웠어.


"안녕하세요. 백현이 친구예요"


경수는 원래부터가 뻔뻔한 면이 있었어. 애초에 자존감도 높고 자기애가 높은 경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받는 걸 어느정도 익숙하게 받는 면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었으면 못할 만한 일도 거침없이 해낼 때가 있는데 바로 이렇게 남의 과모임 자리에도 불쑥 참석하는 거였어. 여담이지만 경수는 자기네 과모임에도 참석을 잘 안 해. 어쩜 타이밍도 귀신 같이 맞췄는지, 교수님이 빠지시고 학생들끼리 2차로 옮길 때 슬쩍 끼더니만 2차에선 아예 함께였지. 분위기도 좋았고 경수가 굉장히 호감인 외모이다보니 남자 여자 할 것없이 경수에게 호의적이었어. 백현이의 친구라며 은근슬쩍 백현이 옆에 앉으려고 했으나 백현이가 경수가 앉기 무섭게 자리를 옮겨 버려서 경수는 험악한 얼굴로 제 술잔에 술을 따랐어. 개새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너무 괘씸해서 백현이를 노려보면서 안주를 팍팍 씹었어. 경수가 그러고 있으니 같은 테이블 사람들이 화나는 일 있냐며 술잔을 따라주고 안주도 챙겨주는 호의를 베풀었어. 당연하게 그 호의를 받으면서도 경수는 괜히 마음이 짠했어. 이건데. 이게 맞는 건데!! 변백현도 이래야 하는 건데에!!!


"와 진짜 경수씨 굉장히 잘생겼네요"
"맞아요!! 엄청 귀엽게 생기셨어요!!"
"하하 네 알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제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 그걸로 위안을 삼으며 술잔을 기울였어.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베타였고 기본적으로 경수는 베타에 관심이 없었어. 처음엔 그래도 어느정도 대화를 받아주다가 점점 지루해져서 입을 다물었지. 도도하게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경수가 낯설긴 한데 그게 또 알게 모르게 매력있어서 사람들은 그런 경수에게 더 흥미를 가졌어. 백현이도 우성알파인 탓인지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지만 경수는 경수만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어. 백현이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힐끔 경수쪽을 바라봤어. 괜히 매력있다고 떵떵 거리는 게 아니었는지 벌써 경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물론 경수는 조금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도도하게 앉아서 술잔만 기울였지만.


"친구분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친구 아니야"
"친구 아니야? 그럼 누군데?"


친구가 걱정해주는 소리에 백현이는 실없이 웃었어. 도경수가 친구라...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제법 술기운이 올랐을 때였어. 백현이도 살짝 알딸딸 취하려는 상태라 기분이 좋았는데 혼자서 그렇게 술을 푸던 경수가 잔뜩 취해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어.


"야이씨!! 변배켠!!! 이 고자새끼!!!"


사람들을 벙쪘고 백현이는 마시고 있던 술을 뿜을 뻔했어. 사래 들려서 물을 마시면서 경수를 보니까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씩씩 거리면서 자기한테 다가오는 거야. 표정만 보면 한대 칠 기세이긴 한데 비트을. 비트을. 하나도 위협적이지도 않은 모습이라 이런 놈이랑 싸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


"너 알파 아니지?!! 내가 이로케 이뿌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에"
"미친"
"나 같으면 사람들에게 막 베풀면서 살거야. 이 자비라곤 없는 새끼야!!"


경수가 갑자기 백현이의 밑을 바라보더니만 엉엉 울면서 백현이의 바지를 붙들었어. 당황한 백현이가 손을 떼어내려는데 여기서 하기라도 할 건지 엉엉 울면서 자꾸만 바지를 벗기려고 하는 거야.


"미쳤냐?!!"


결국 백현이가 힘줘서 경수를 밀쳐버리니까 경수가 뒤로 쿵 넘어가면서 서럽게 울었어. 바지를 정리하고 백현이가 다쳤나 싶어 급하게 상태를 살피는데 경수가 엉엉 울면서 백현이를 노려보다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


"내 건데 왜 안줘!! 내 거자나!!! 흐어엉"
"아오 도경수 미친 새끼야!!!"


친구들이 말리면서 겨우 둘을 떨어뜨렸지. 씩씩 숨을 고르면서 백현이는 경수의 모습을 찾았어. 경수는 취해가지고 사리분별이 안 되는지 백현이 친구 한놈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백현이 욕을 하고 있었어. 어이가 없긴 한데 계속 여기에 두는 건 친구들에게 너무 민폐였어. 경수를 아는 사람이 백현이 밖에 없다보니 결국 책임지고 경수를 데리고 나왔어.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등에나 업혀주라고 해서 등에 들쳐업고 술집을 나왔어. 가는 내내 경수는 훌쩍 거리기도 하고 억울한 소리를 내며 백현이를 욕하기도 했어. 백현이는 인상만 찌푸렸지.


"나쁜 새끼.. 내 건데 안 줘... 변배켠 개새끼..."
"하아..그게 왜 니 거야"
"다 내 거야. 다 내 거라구우...훌쩍"


백현이는 당연히 경수의 집을 몰랐기에 낑낑 거리면서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했어. 자꾸만 제 아랫도리를 백현이가 훔쳐간 것처럼 욕을 하는 통에 간간이 경수를 버리고 갈까 충동도 일었지만 그래도 버리진 않고 자취방으로 데려왔어. 좁은 자취방에 경수를 눕히고 나니 자기가 누울 자리가 겨우 나왔어. 기껏 생각해서 맨바닥보다 푹신한 매트위에 던져놨는데도 경수는 불편한지 낑낑 거렸어. 하지만 그걸 받아줄 기분도 기운도 없어서 그냥 자라고 이불을 덮어줬지.


"변배켜니..."
"알았어. 내가 개새끼니까 자라 좀"
"...나랑 사귀자구우..."
"아오, 이 진상"


백현이는 계속 웅얼거리는 경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었어.


"사귀는 거 말고 친구는 어때?"


친구라면 그렇게 철벽을 치며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은데. 친구면 이 정도 진상도 밉지 않게 봐줄 수 있는데. 백현이의 물음에 경수가 느릿하게 눈을 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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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카톡날짜가 16년인 이유는 16년에 쓴 썰이라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제목이 너무 길다 느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불판에 연재할 당시에도 제목이 없어서 임시로 붙여 놨던 제목이었더라구요.  제목을 어떻게 하면 조을까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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