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8년 6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 시즌1, 그리고 2019년 3월 시즌2까지 나왔었던 프로그램. 나는 TV가 없어 꽤 최근에야 유튜브 클립 영상으로 알게 되었다. 지코가 나왔던 회차를 제외한 모든 클립 영상들을 봤고 몇 편은 구매해서 볼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대화의 희열》 시즌2까지 여러 분야의 게스트들이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시즌2에 나왔던 배철수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젊을 때가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는데, 당시 배철수 씨는 음악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몰랐었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 시기를 뒤돌아보면서 그때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선 안 됐었구나 생각했었다고. 그래서 아직도 본인은 그때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고 했다.



KBS2 대화의 희열 유튜브 캡쳐


 2008년의 어느 날 종로3가역 환승통로를 지나다가 독거노인 지원단체에서 후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세워둔 독거노인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 적이 있다. 이는 외할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2006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는 중풍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그나마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지팡이를 짚으시면서 움직이시는 정도였고 손수 반찬도 해주시곤 했는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는 아예 일어나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시 사춘기였던 나는 할머니가 귀찮았고 친구들과 한창 놀 시간에 집에 돌아와 밥을 챙겨드려야만 했던 게 너무 싫었었다. 그 당시 철없던 내 모습에 대한 죄책감과 할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이 독거노인 후원 용지에 사인을 하고 오게 했던 것이다.



 또 요새는 부쩍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다에서 나오는 쓰레기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담배꽁초라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면서 적어도 내가 피운 담배는 하수구나 길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여분의 담뱃곽을 갖고 다니면서 내가 피운 담배를 빈 곽에 모아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습관을 들인 후에는 다른 것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역시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부채의식인 것이다.



사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 4명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다가 선고받은 벌금 4440만 원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노역을 살게 된 적이 있었다.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노역을 살겠다며 교도소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분들의 벌금을 대신 내주었고 4일 만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이 역시 부채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지하철에 있는 엘리베이터, 그리로 저상버스 등을 이용하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전장연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고를 알지만 선뜻 그 활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벌금을 대신 내준 것이고 말이다.


 5년 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산 쇠고기파동,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및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사망 등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국민들의 마음에 대표자를 잘못 뽑았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갖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최순실 태블릿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2016년 연말, 촛불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누구에게든 '옳은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2016년의 어느날처럼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을 시작한다던가, 길에 보이는 쓰레기를 하나 줍는 작은 실천의 모습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모이면 더이상 작은 것들이 아니게 될 것이고, 어쩌면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보통의 이야기를 쓰는 보통사람입니다.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씁니다. 독서기록도 씁니다. 털친구들과 술을 좋아합니다.

보통사람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