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의 고백을 받아줬을 때, 피터 파커는 화를 냈다.

말 그대로 그것은 고백을 ‘받아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 거절하지 않으세요? 절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그 대답에 토니 스타크는 반박하고 싶었다. 난 널 좋아하지 않지 않는데. 하지만 서로 좋아한다는 뜻이 다르다는 것은 문맥상 명확했기 때문에 그는 잠자코 입을 다물기로 했고, 결국 그 반응이 긍정임을 알아차린 피터 파커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토니 스타크는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가는 그 광경을 보면서 심장이 발등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속눈썹이 젖은 소년의 흰 이마.


“제가 불쌍해 보여서 그러시는 건가요?”

“그건 아냐. 절대로.”


칼 같이 떨어지는 대답에 피터는 조금 울먹인 채 토니를 보았다. 내가 널 불쌍해할 게 뭐가 있어. 그 말은 진심 같았고, 토니는 정말로 그런 종류의 동정을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었다. 그러면 책임감 때문에요? 토니는 코웃음을 쳤다. 책임감 때문이라면 널 단박에 거절하는 게 더 맞지. 토니는 어른이었고 피터는 어렸다. 분하게도 그랬다. 피터는 여전히 눈물이 고인 눈을 깜빡였다. 주르륵 뺨 위로 한 줄기가 흘렀다. 토니가 애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제발 울지 마. 

피터가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토니는 잠깐 어깨를 움찔했으나 뒤로 도망가지 않았다.


“이래도 괜찮단 말인가요?”


그 말과 함께 소년이 토니의 손을 잡았다. 비싼 시계를 두른 손목이 잘게 떨렸다. 그는 어정쩡하게 피터에게 손을 내준 채 서 있었다. 피터를 내려보는 토니의 기다란 속눈썹이 햇빛 때문에 눈 아래로 기다란 그림자가 졌다. 둘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마르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소년의 얇은 몸이 바싹, 토니의 가슴팍으로 다가갔다. 토니가 코끝이 간지러운 표정으로 이를 작게 물었다. 

바로 코앞에 그의 얼굴을 마주본 채 피터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래도요. 토니는 거의 입술을 떼지 않고 복화술을 하듯 말했다.


“괜찮아지겠지.”


피터는 곧장 토니의 손을 놓고 뒤로 성큼 물러났다. 그제야 토니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가, 피터를 보았다. 어딘가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토니는 낭패라는 듯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틀린 대답인 걸 알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토니 스타크의 성격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그가 피터의 고백에 일주일 동안이나 답이 없다가 불쑥 그러마고 하는 것은 큰일이었다. 지구를 지키거나 누구를 죽이는 건 아니지만 그의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과 성격을 약간 부정하는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이해가 안 가요. 왜 스타크 씨가…”

“깊이 생각하지 마. 중요한 건 내가 네게 응했다는 거잖아.”


드물 정도로 자신 없는 목소리. 차라리 거절이 낫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깊숙하게 찔러서 피터는 이를 깨물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얼굴과 영 얼버무리는 목소리를 차치하고서라도 피터는 그가 고백에 심지어 긍정적인 대답을 해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 기껏해야 모른 척하거나 나이부터 더 먹고 오라는 비웃음 혹은 놀림을 사겠지 싶었는데. 

거절은 당연한 것이라 각오를 단단히 했건만, 토니는 피터를 불러 랩에 들어오게 한 뒤 비뚜름하게 벽에 기대어 선 채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래, 라고. 그 대답을 곱씹으니 피터는 다시 온갖 억울함과 분노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저 표정을 보면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다고 정말 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는 자신을 아꼈지만. 그때 랩을 가득 채우는 프라이데이의 목소리가 상냥히 울린다.


[ 주인님, 스파이더맨의 슈트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

“별로 좋은 타이밍은 아니군.”


토니는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바닥으로 내리긋는 시선을 본 피터가 벼락처럼 깨달았다.


“제가… 거절당하면 이 모든 걸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뭐?”

“우리가 어색해지면 제가 스파이더맨 슈트를 거절하고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예전처럼 돌아가거나, 혹은-”


피터가 입술을 깨물었다.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


“스파이더맨을 하지 않겠다고 할 거라고.”

“이봐, 꼬마, 그건…”


피터는 얌전히 토니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으나 그는 결국 말을 맺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답이었다. 피터는 천천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주먹을 하도 꽉 쥔 손끝이 터질 것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우는 것보다 더 참담한 색을 한 눈을 마주한 순간, 토니는 그야말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피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피터가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숨을 거칠게 내쉴 때마다 편한 후드를 입은 가슴팍이 오르내렸다. 피터는 세상에서 가장 큰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하고 뺨을 손으로 감쌌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겨우 흘러나왔다.


“절 도대체 어떻게 보시고, 절… 절 뭘로 보시고.”

“이봐. 난 그런 게 아니라-”

전 당신에게 차였다고 해서 스파이더맨을 그만두지 않아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토니의 몸이 그대로 멈춘다. 

피터가 기가 막힌다는 듯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어깨와 등이 둥글게 말린 채로 들썩였다.


“전 이 일을 가볍게 시작한 게 아니라고요. 처음에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뭐가 중요한지 알아요.”


그 말을 하면서 피터는 스스로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당신에게 떨면서 한 고백은 결국 스파이더맨보다 순위가 뒤라는 말을 스스로 하게 만드는 토니 스타크의 무심함에. 우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을 구하는 데 소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의 슈트나 지원을 제 자존심 때문에 거절할 일은 절대 없을…”


피터가 숨을 들이켰다. 습기가 가득 찬 숨소리가 목 안을 울렸다. 눈가가 벌게진 피터의 얼굴을 토니는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깃든 안도를 혹여 발견하고 말까봐 피터가 결국 눈을 돌렸다.


“절 대체 뭘로 보시는 거예요.”

“난…”

“스파이더맨이 되어 조금 우쭐한 어린애로 보실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네요.”


기어이 한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피터가 작게 울었다. 숨을 죽이느라 가냘픈 흐느낌 소리를 들으며 토니가 고개를 숙였다.


“스파이더맨이 아니면 전 아무것도 아닌 거죠.”


스파이더맨으로 인정받을 땐 기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게 아니면 만날 일조차 없었다고 다시 확인을 받으니.


“기꺼이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의 고백을 받아서 사귀자고 할 정도로, 젠장, 토니, 당신은 스스로를 좀 더 아낄 줄도 아셔야 해요.”


왜 본인을 그렇게까지 희생해요?

희생이라는 단어로 스스로의 고백을 칭한 피터가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가리려 노력하며 돌아섰다. 그렇게까지 스파이더맨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줄 몰랐어요. 토니는 동그랗게 내려앉은 소년의 뒷모습을 보았다. 별 관심도 없는 어린애인 피터 파커와 연애를 하는 귀찮음까지 모두 감수할 정도로. 

피터는 스스로를 생채기내는 기분이 뭔지, 그 앞에서 비참하게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울음이 튀어나왔다. 토니는 차마 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다. 이런 거절은 처음이었다.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피터가 끅끅대며 울음을 참고 스스로 잦아들 때까지, 토니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소년의 뒷모습을 보고 있기만 했다.

그냥, 사귀고, 이전처럼 똑같이 지내면 됐던 게 아닌가?

일주일이 지나 고백을 받은 건 피한 게 아니라 슈트를 업그레이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마음을 먹기 위한 기간이기도 했다. 토니는 애초에 피터를 거절하는 선택지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이 차이와 도덕적인 부분과 사귀고 난 후 생길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토니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은 아니었다.

그게 이렇게까지 울 정도인가?

토니는 막연히,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소년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앞선 경험에 의해 더 이상 토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걸 알았다. 토니는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편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 피터는 또다시 몸을 들썩이고 소리를 죽여 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토니는 알 수 없어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끝까지 결국 말을 꺼내지 않는 토니를 이윽고 돌아본 것은 울음을 그친 피터였다. 

어쩔 줄 모르는 어른을 마주한 채, 막 실연의 상처가 벌어진 그대로의 흔적이 담긴 흰 얼굴의 소년. 피터는 소매를 늘어뜨려 젖은 얼굴을 꼼꼼하게 닦고 머리를 정리했다. 그 느리고 여상한 과정에 토니는 그제야 한 박자 늦게 입안이 깔깔한 기분이 들었다. 피터는 자신이 한 말과 약속을 지킨다는 듯이 말끔하게 표정과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결국엔 가볍게 입술을 끌어올려, 밤색 눈동자는 젖은 채였지만, 작게 웃었다.


“저한테 엄청 잔인한 거 아시죠.”


토니는 대답하지 못했고, 피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일주일 전의 고백도-그에게 다가가며 살짝 천장을 올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프라이데이에게 말을 걸면서.


“그래서, 업그레이드된 스파이디 슈트는요?”


토니는 그때 발등을 내려보았다. 방금은 정말로 뭔가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잘못됐다가, 갑자기 시작한 것처럼.





흑흑 토니피터를 하는 저와 놀아주세요 트위터도 하고있답니다 @peter_telli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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