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3 이후 시점



토르, 로키, 브룬힐데, 배너, 헤임달은 다 같이 원형 탁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로키는 식사는 뒷전이고 토르를 유심히 보며 무언가 재는 듯한 손동작을 하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브룬힐데는 그런 로키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앞에 놓인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역시 아침에 마시는 술은 그 맛이 다르다며 감탄을 하고는 여전히 토르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 로키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토르는 언제나처럼 먹성 좋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꽤 우걱우걱 먹는 것 치고는 왕족 특유의 식사 예절이 몸에 배서 게걸스러워 보이지는 않다는 사실에 어린 시절 그에게 식사예절을 가르친 이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토르가 흘러내려 오는 머리가 귀찮다는 듯 귀 뒤로 넘기는 동작을 연신 하는 것을 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폐하, 관심 없어서 몰랐는데 머리가 꽤 많이 자랐네요?"

브룬힐데의 말에 조용히 식사하던 배너가 고개를 들어 토르를 보고는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한 달 조금 넘게 지난 것치고는 사카아르에서 잘린 그의 머리가 꽤 길게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네요, 토르. 머리가 정말 빨리 자라는 편인가 봐요?"

빵에 고기를 끼워 한입에 먹던 토르는 제 머리를 쓱 넘겨봤다. 확실히 길이감이 느껴지면서 가볍게 넘어가는 머리에 토르는 씩 웃었다.


"솔직히 드시는 거 다 그 근육으로 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머리카락으로 가나 봐요?"
"하하하, 그거 재미있는 발언이군."

브룬힐데의 말이 웃긴다는 듯 토르는 시원하게 웃으며 접시 위의 남은 음식을 해치웠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배너는 브룬힐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고영양, 고단백의 식사를 다량으로 섭취하니 머리가 자라는 속도도 남다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그는 데미갓, 외계인이니 생체 속도가 인간과 다를 수도 있었다.

"원래 아스가르드 인들은 모두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인가요? 아, 그래서 장발인 사람들이 많았던 거군요!"

배너가 깨달았다는 듯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브룬힐데는 남은 술을 모두 입에 털어넣고는 고개를 저었다.

"장발이 많은 것은 그것이 가장 전사다운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리고 에시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머리가 빨리 자라진 않아요. 저건 좀 비정상이죠."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특히 더 강조해서 말하고 키득거리는 브룬힐데를 보며 토르는 인상을 쓰는 척하다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비정상이 아니라 좀 더 우수한 것이오, 브룬힐데."
"머리 빨리 자라는 것이요?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폐하."
"어려서부터 늘 성장이 빨랐소. 자라는 것이든, 배우는 것이든."

그 말에 로키가 실소를 터뜨렸고 헤임달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로키는 반도 안 먹은 제 아침을 토르 쪽으로 밀어주었다. 싱글거리며 더 먹으라는 듯 손짓도 잊지 않았다.

"그래, 토르. 더 먹고 쑥쑥 자라도록 해."
"고맙구나, 로키."

토르는 로키가 건넨 음식을 즐겁게 먹기 시작했다. 배너는 그런 둘을 보며 토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머리 길이에 변화가 없어 보이는 로키를 보며 역시 영양분의 문제라고 확신했다. 그다음 로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토르의 머리가 빨리 자라는 것은 잘 먹어서만은 아니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지. 체력을 위해서."



다소 뜬금없는 로키의 말에 배너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는 아스가르드식 농담인가 싶어 옆의 브룬힐데를 보니 그녀는 얼굴로 '뭔 개소리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토르도 딱히 로키가 한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당초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냥 하는 소리라 생각하기에는 평소 로키가 말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분명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배너는 로키가 한 말에서 논리 관계를 찾으려 노력했다. 때마침 식사를 마친 헤임달은 토르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먼저 일어섰다. 그러고는 로키 쪽에 눈치를 한 번 주었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유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왕제(王弟)님."


헤임달은 인사와 더욱더 의문을 증폭시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로키는 헤임달의 말에 답지 않게 큰소리로 웃었고 브룬힐데는 저만 이해를 못 하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로키는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브룬힐데를 놀리듯 혀를 놀렸다.

"방금 헤임달 말 못 들었어? 더 아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잖아."
"그러면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지. 아침부터 사람 속 긁는 것 하나는 뛰어나네."
"듣고 나면 속이 긁히다 못해 뒤집힐 텐데?"

로키는 약 올리듯 브룬힐데를 건드렸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논리 관계를 찾던 배너는 적어도 방금 로키의 말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브룬힐데를 건드려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뻔했다. 자칫하면 아침부터 싸움이 시작될 상황이었지만 저 역시 로키가 하려는 말이 궁금하였기에 오늘은 그냥 내버려 두자고 마음먹었다. 로키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이 이 대화의 중요한 주제임에도 별 관심 없이 식사에 열중하는 토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의 어깨에 제 팔을 두르며 로키는 아주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토르는 그런 로키를 흘긋 보고 미소로 응답하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하였다.



"박사에게 묻지. 미드가르드 인들에게도 머리에 관한 속설이 있지?"

갑작스러운 로키의 질문에 배너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알고 있는 속설들을 읊었다. 머리카락과 관련된 다양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중얼거리는 배너를 브룬힐데는 참 별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슬슬 로키가 뭘 하고자 하는지 궁금해지지 않아서 그만 일어나려던 브룬힐데와 배너는 배너의 마지막 말에 동시에 표정이 굳었다.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


조금전 로키의 말에 대한 해석을 끝낸 브룬힐데는 미간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고는 여전히 싱글거리는 로키를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전까지 술이 담겨있던 잔을 들어 로키에게 던졌다. 가뿐히 잔을 피한 로키 덕에 목표물을 맞히지 못한 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고 토르는 놀란 눈이 되어 브룬힐데를 보았다. 그러고는 온 얼굴로 욕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로키를 노려보는 브룬힐데를 발견하고 나무라듯 로키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로키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진짜 언젠가 그 혀를 자르고 만다!"
"오, 내 혀가 발키리의 위협을 받는다니 그것참 영광이군."


브룬힐데는 당장 술이 필요하다며 성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여전히 굳은 얼굴의 배너는 브룬힐데가 떠날 때까지 사고가 멈춘 듯했다. 그는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어설프게 일어나서 의자를 밀어 넣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충격의 흔적이 남아있었으나 온전한 과학자의 두뇌인 그의 머리에는 여전히 호기심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후회할 질문을 낳았다.

"그 속설이 아스가르드에도 있는 줄 몰랐네요. 아스가르드 인들에게도 해당하나 봐요?"

제가 말하고도 뭔 말을 하는지 몰랐던 배너는 말을 마치고 나서야 '아차' 했다. 그러고는 로키가 답을 하기 전에 서둘러 벗어나려 했으나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뭐 비슷한 것은 있지. 토르의 경우는 생각보다 행동파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배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로키와 토르를 번갈아 보고는 '판도라가 따로 없군.'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곳에 더 있으면 무슨 얘기를 듣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방을 나섰다. 로키와 자신만 남기고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아 토르는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냐며 로키를 보고 나무랐다. 로키는 토르 앞에 놓인 접시에서 작은 열매 하나를 집어 제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토르의 머리를 손으로 빗질하듯 쓸어넘겼다.

"로키."
"들었잖아. 머리에 관한 얘기하는 거."
"식사 중이라 집중 못 했는데, 반응을 보니 단순한 머리 얘기가 아닌 것 같구나."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토르에게 로키는 다른 열매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어주었다. 토르는 오물거리면서도 로키를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흠, 짧은 것도 멋있고 편하긴 하지만 역시 내 취향은 긴 쪽인 것 같아."
"내 머리?"
"응. 잡기도 좋고, 달라붙는 것도 보기 좋고, 날 간지럽히는 것도 좋아."

그렇게 말하며 로키는 토르의 볼에 입 맞추었다. 토르는 로키가 말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좀 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제 곁을 떠나려는 로키를 붙잡고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가벼운 키스에서는 새콤달콤한 과일 맛이 느껴졌다. 토르의 입술이 떨어지자 로키는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생각해보니까 빨리 자라게 하려면 내 체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로키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토르의 목을 제 팔로 감싸며 다시 고개를 숙여 키스를 나눴다. 아까보다 좀 더 농염한 키스가 이어졌고 좀 더 번들거리는 입술로 로키는 아쉬운 듯한 토르에게서 떨어졌다.



"힘을 쓰는 것은 형이지만, 힘이 드는 건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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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짧은 머리도 좋지만 긴 머리가 더 좋음
로키랑 우주선에서 밤마다 힘쓰면 금방 자라지 않을까...
요오망한 로키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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