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아무 전력 60분 참여했습니다. 주제는 '자유 주제' 입니다.

(1과 0을 의미하는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 아카이 슈이치 X 후루야 레이

- 후루야가 모종의 이유로 본명이 아닌 '아무로 토오루'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표기를 '아무로'로 합니다.

- 글이 끝난 뒤, 마지막 설명까지 읽어주세요.

- 본문의 의학적 정보는 모두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입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기? 아니, 그보다는 조금 자란 아이의 목소리다. 아무로는 초점을 모으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어금니를 꽉 물었다. 덕분에 눈앞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선명해지고 있는데 귓가가 윙윙, 울려 정신은 더 아득해지기만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엎드린 자신의 밑에서 아이가 훌쩍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의 눈꼬리에서 진주 같은 눈물이 퐁, 퐁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로는 아직도 청력이 회복되지 않아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입모양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야 했다.

선, 생님. 선생님. 피, 가, 나요. 피. 선생님.

아무래도 자신의 이마나 얼굴 중 어딘가에서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이가 불안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끌어안은 채였다.

병원 내 청소를 담당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의사와 부딪쳐 그가 들고 있던 쇼핑백 안의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졌었다. 아주머니는 재빨리 사과를 건네며 내용물을 도로 담으려 허리를 숙였다. 그때 그녀의 눈에 희미한 비극이 들어왔다. 새까만 바탕에 빨간색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의사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간호사 한 명이 폭발물을 알아차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전염병 마냥 순식간에 퍼져 층 하나를 통째로 병마에 빠뜨렸다.

아무로 토오루도 그 자리에 있었다. 거기에 서서 쇼핑백을 놓친 의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선생님?’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앞의 의사를 보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아 혼란 속을 헤엄치는 중이었다. 아이의 부름은 너무 여려서 혼란을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닥터….’

 

그가 잠긴 혼란의 바다를 모조리 증발시켜 버린 건 달칵, 하는 스위치 소리였다. 그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옆에 있던 아이를 재빨리 품에 안고, 안아서….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폭발에 그대로 휘말린 듯했다.

회상을 끝마친 아무로는 슬며시 눈을 떴다. 품 안에서 아이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불러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고 있는데 자신이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 품안에서 조용히 떨고만 있던 아이가 바스락 거리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잭. 움직이면 안 돼.”

“선생님. 아저씨가 왔어요. 아저씨가 우리를 구해주러 왔어요!”

 

아저씨? 잭의 입모양이 아저씨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건물 파편에 등과 목을 부딪쳐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돌려 확인해야 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당신인지 확인해야 했다.

 

“레이!”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아무로의 귓바퀴를 맴돈다.

레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동시에 그건, 그가 오랫동안 끔찍하다 여겼던 이름이기도 했다.

 




 

  두 사람

w. 비에

 

 




“아! 그러니까 얘가 땅에 머리를 박았다니까요. 그것도 존나 세게! 뇌진탕이라고, 뇌진탕. 이렇게 아파하는데 의사가 돼서 진통제 한 알도 안 준다는 게 말이 돼?”

“으, 으으…. 선생님. 저 진짜 너무, 너무 아파요. 아파 죽겠어요. 진통제 좀 주세요.”

 

흰색에 가까운 밝은 금색 머리카락을 스포츠 스타일로 자른 소년이 아무로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간이 베드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소년은 입과 귀, 그리고 턱에 은색의 피어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아무로는 그들의 연기가 너무 허접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외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는 이런 일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이 겪었다. 덕분에 그들을 다루는 데도 도가 트기 시작한 참이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말투가 아무로의 입을 거쳐 흘러나왔다.

 

“숀 러너 환자분. 검사 결과 뇌에서는 어떤 이상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고 뇌 주변에서의 출혈 가능성도 0%에 가깝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금발 소년이 그게 뭐 어쨌다는 듯 더욱 거칠게 발을 굴렀다. 흡사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간 아이가 사고 싶은 과자를 사지 못해 떼를 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여기가 병원 응급실인 걸 완전히 잊은 모양이었다.

기어이 소년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의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뒤꿈치에 중심을 맡기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그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봐. 지금 네가 치려고 한 이 남자가 누군지는 알고 이래?”

“뭐? 당신 누구야! 당신도 의사야? 아니, 환자복을 입고 있는데. 당신 뭐야!”

“… 동의. 당신이 뭔데 여기에 끼어들어요. 환자면 환자답게 안정을 취하러….”

“숀 러너, 로렌스 빈. 지난주에도 아스피린을 다량으로 처방 받았군. 약 살 돈이 궁한가보지?”

“잠깐! 지금 뭘 훔쳐보는 겁니까, 아카이!”

 

로렌스의 주먹을 가볍게 막은 아카이가 곁눈질로 아무로가 들고 있던 차트를 위에서부터 차례로 훑었다. 거기에는 소년들이 병원을 협박하고 속여 처방 받은 진통제를 비롯한 다수의 약물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여간 애들이란…. 아카이가 한숨을 쉬며 아무로의 눈치를 살폈다. 왜 자기 일에 나서느냐고 말하는 듯한 불퉁스러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그를 지킬 권리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카이는 아무로를 향해 살짝 웃고는 소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 아무로에게 보였던 미소는 깔끔하게 사라진 뒤였다.

 

“최근 FBI가 뉴욕 일대를 뒤지면서 어떤 마약상 하나를 찾고 있거든. 이번에는 아주 작정하고 그 끄트머리 버러지들까지 잡아 족칠 생각이라던데…. 조심 좀 하자? 건강하게 살아야지. 쓸데없이 다치지 말고.”

 

아카이가 로렌스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직접 느끼지 않아도 그의 손등에 돋아난 핏줄로 보아 얼마만큼의 악력으로 소년을 겁박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로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팼다. 아무리 천방지축이라고는 해도 성인이 미성년자를 겁주는 상황이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뒤늦게 아카이가 아무로의 표정을 살피곤 손에서 힘을 덜었다.

덩달아 겁을 먹은 숀이 베드에서 일어나 친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야, 이번은 글러먹었어. 얼른 튀자. 그가 조용히 속삭이자 울긋불긋하던 로렌스의 얼굴이 서서히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도망칠 때까지도 아카이의 얼굴을 야무지게 노려보았다.

가장 시끄러웠던 두 명이 떠나자 응급실은 본래의 적당한 소란스러움을 되찾았다. 카운터 테이블 너머의 간호사 두 명이 아무로와 아카이를 향해 네 개의 엄지를 척, 하고 치켜들었다. 옆에 있던 실습 간호사는 아카이를 향해 열렬하게 선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여간 이 죄 많은 남자.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는 가십이 떠나질 않는구나. 아무로는 불현 듯 떠올라버리는 옛날 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아까 그 말, 진짭니까? FBI가 어쩌고, 한 거.”

“거짓말이야.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이 FBI가 뭘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알겠어.”

“… 선량한 시민이 총 맞아서 병원에 실려 와요?”

“휘말린 거야. 운이 나빴지.”

 

아카이가 어깨를 으쓱이는 동시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만나지 않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아무로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과 어울리지도 않게 능글맞은 남자로 성장해 있었다.

자그마치 15년이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고 하던데 하물며 15년이다. 사람 하나가 바뀌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언저리가 따끔거렸다. 아침부터 빈속에 커피를 너무 들이부었나 싶어 아무로는 의사주제에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생활패턴을 돌이켜보았다.

덕분에 옛날 생각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로가 의학에 뜻을 두기 시작한 건 그가 막 열둘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닥터 레일(Rail)’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종종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마을에 들러 무료로 치료를 해주곤 했다. 사람들이 보답해줄 만한 것이 없어 미안함을 전하면, 그는 매번 자신이 지내는 동안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도 주는데 왜 미안해하느냐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는 아이들을 상당히 좋아해서 마을의 아이들과도 곧잘 친해졌다. 아이들은 그를 닥터, 혹은 친근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며 그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어 달라거나 그네를 밀어 달라고 졸랐다. 레일은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아무로는 레일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지 않은 마을의 유일한 아이였다. 불우한 사고로 부모 둘을 한꺼번에 잃은 입양아는 마을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는데도 아무도 그를 일으켜주려고 하지 않았다. 레일은 넘어진 아무로에게 다가가 무릎 위 까진 상처를 소독해주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됐다. 이러면 흉 지지 않을 거야. 아이의 피부는 약하지만 동시에 회복이 빨라서, 제대로 소독하고 약만 발라줘도 흉터가 남지 않는단다.’

‘선생님이 마법사예요? 아무로 아주머니가 선생님은 기적을 부린댔어요.’

 

아무로는 손가락으로 밴드 위를 더듬었다. 살짝 따끔하긴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자신을 입양한 부모가 창문 너머의 레일을 보며 다정하게 칭찬했던 것을 기억했다. 열두 살이나 먹었으니 마법이나 마법사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었지만, 레일이 묵고 간 집의 환자들이 새 삶을 부여 받은 사람처럼 방방 뛰는 걸 보고 있으면 아주 잠깐은 멍청하게 마법 따위를 믿고 싶어졌다.

레일은 호탕하게 웃으며 아무로의 손에 약통과 밴드 몇 개를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그가 말한 마법사나 기적이라는 말을 올바르게 정정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의사고, 내가 부리는 건 의학이란다.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하렴. 의사는 정말 멋진 직업이니까.’

 

그 말이 지표라도 된 듯, 아무로는 미친 듯이 책을 집어 들고 글자를 머릿속에 넣기 시작했다. 특별한 감동이나 숭고한 정신이 생겨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레일의 말대로 단순히 관심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건 아무로가 ‘아무로 토오루’가 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성격이었다. 한 번 작정한 건 무조건 끝을 봐야만 한다. 모든 걸 잃고, 하나를 버렸어도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 있는 철칙 같은 것이었다.

 

“철칙이요?”

“철칙이라고 하니까 되게 거창하게 들린다. 그냥 뭐,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지키고 싶은 정신? 철학? 그런거요. 아무로 선생님은 그런 거 있어요?”

 

실습 나온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은 간호사 댄은 이미 병원 내의 유명한 수다쟁이였다. 그는 말하는 걸 포함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는 모양이라, 수다쟁이와 더불어 정보상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디선가 재미있는 화제라도 건졌는지 아니면 아무로와 다른 간호사들에게서 화제를 건지려는 건지 댄이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옆에는 최근, 이야기꾼 댄 덕분에 지루한 입원 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은 잭이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무로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잭에게 인사해준 뒤 댄을 올려다보았다. 철칙을 물어봤던가.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어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한 번 작정한 건 무조건 끝을 보기.”

“뭔가 선생님다우면서도 좀 의외다.”

“맞아. 아무로 선생님은 좀 부드러운 인상이니까 말이야. 작정했다고 하니까 무서워.”

“하하. 제가 뭐가 무서워요. 저 완전 약골이에요.”

 

컴퓨터로 업무를 보던 간호사들이 아무로의 인생철학에 한 마디씩 감상을 얹었다. 아무로는 눈꼬리를 내리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하느라 싸움 같은 데는 형편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간호사들은 평소 아무로의 순박한 얼굴과 성격을 떠올리며 ‘하긴….’ 하고 속으로 납득했다.

 

“아저씨랑 똑같다!”

“응?”

 

그때 댄의 손을 붙잡고 어른들의 세상을 구경하고 있던 잭이 손가락으로 아무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잭의 손가락 끝에 서 있던 아무로가 ‘아저씨’를 특정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물론 그 한 명을 특정하기란 꽤나 어려운 작업으로, 이 층에 있는 대부분의 남성 환자가 잭에게 있어서는 아저씨였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카운터 테이블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잭에게 그 ‘아저씨’가 누군지 묻기 위해서였다.

 

“602호요. 602호에 있는 머리 긴 아저씨. 이름…. 어, 이름이…. 특이한데…. 음. 슈크림빵이랑 비슷한 아저씨요.”

“슈크림?”

 

댄을 포함한 간호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릿속으로 슈크림이 가득 들어간 작은 빵을 그렸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바빠서 한두 입 밖에 베어 물지 않은 슈크림빵이 냉장고에 있을 터였다. 그들은 잭의 수수께끼 같은 말은 뒤로 미루고 두 손으로 굶주린 배를 감쌌다.

 

“… 슈이치?”

 

아무로가 타이밍 좋게 아카이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면 다들 슈크림빵에 홀려 좀비처럼 냉장고 앞으로 갈 뻔했다. 아무로는 모두가 ‘602호의 핸섬가이’를 떠올리며 설레어하는 중에도 멍한 표정으로 복도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슈이치 씨 수술은 레일 교수님이 담당했었죠? 자칫하면 신경이 완전히 손상될 수 있어서 다들 손도 못 대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오시더니 일사천리로 진행하셨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그래서 핸섬가이도 레일 교수님한테 엄청 고마워했죠. 요즘도 매일 감사인사 전하러 아침저녁으로 들른다던데요?”

“어떡해. 완전 감동이다. 내 환자가 나한테 그러면 난 울 것 같아.”

 

간호사들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잭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낮은 시선으로 동경하면서도 자신이 꺼낸 화제에서 자신만 쏙 빠진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볼을 부풀리고 발을 굴렀다. 그제야 어른들의 시선이 아이의 불퉁스럽게 부어오른 볼로 향했다.

 

“아~ 맞다, 맞다. 아무로 선생님이 슈이치 씨랑 같은 말을 했다는 얘기 중이었지?”

“요즘 슈이치 씨가 레일 교수님 말고도 아무로 선생님한테….”

“저는 봐야 할 환자가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카운터 테이블에 올라가 있던 차트가 종잇장을 휘날리며 맨 첫 장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되감긴 것 같은 모양이었다. 차트를 덮은 아무로는 뒤늦게 탁, 하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리진 않았을까 걱정이 솟았지만 다행히 그들은 아무로의 등을 떠밀며 어서 가보라고 재촉만 할 뿐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차트를 끼운 채로 비상구 계단 중앙에 멈춰 섰다. 차트를 덮으면서 정말로 시간이 되감겼는지도 모른다. 기억 여러 개가 이것저것 조금씩 뇌로 섞여 들어와서 종류가 다른 퍼즐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카이가 이 병원에 실려 온 건 두 달쯤 전이었다.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슬럼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긴급속보가 쓰인 마크가 붙어 있었다.

슬럼가에서는 매일 같이 사건 사고가 일어나므로 웬만한 일은 바깥에 공개되지 않았고 사람들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이례적으로 폭발 사고가 보도 되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결과 보고가 이어졌다.

응급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무리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압도적인 환자 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간과 인력은 제한되어 있는데 베드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환자는 늘어가기만 했다. 복부와 등 쪽의 피부가 끔찍하게 타버린 어떤 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그대로 기절하기도 했다.

재난과도 같은 상황은 인턴을 시작하며 두어 번 정도 겪어봤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로는 정신을 단단히 붙들고 응급실 입구로 향했다.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환자들의 상태를 단계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아카이의 신원 정보가 아무로의 눈과 귀에 들어온 건 그런 분류 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Akai Shuichi. 아무로는 종이 위, 알파벳이 나열된 이름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펜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울퉁불퉁함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여섯 개의 알파벳에서 두 개의 한자가 떠올랐다. 秀一. 분명 그런 한자를 썼었다. 잊고 싶어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글자였다.

 

‘선생님, 선생님? 아무로 선생님!’

 

구급대원이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아무로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 딱, 하는 소리에 아무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에서 걱정과 다급함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아무로는 고개를 저으며 재빨리 정신을 챙겼다.

그녀는 왼팔과 왼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혀있다는 말로 시작해 구급차 안에서 최대한 총알을 제거해보려 했지만 출혈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는 말로 설명을 맺었다.

총상. 폭발 사고에서 실려 온 환자가 총상? 아무로는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뒤이어 든 생각은 ‘15년 만이구나.’ 였다. 아카이는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을 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머리도 그때보다 길어져서 지금은 어깨를 거뜬히 넘는 길이였다.

 

‘선생님. 더 지체하면 왼팔은 완전히 마비될 수도 있어요.’

‘… 수술방까지 올리려면 시간이 걸려요. 어떻게든 여기서 저희가,’

‘토오루 군.’

‘레일 교수님.’

‘…… 닥터 레일.’

 

그때 아무로의 뒤로 레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급실을 한 번 둥글게 둘러 본 그는 비통한 표정을 애써 갈무리하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로는 아득해졌던 정신을 도로 붙잡고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레일이 아카이의 왼손 마디마디를 힘주어 눌렀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아카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아무로는 한 순간 레일의 얼굴에서 비통함이 씻겨 내려가는 걸 목격했다. 비통함이 물러나 빈자리에는 환희가 들어섰다.

그는, 닥터 레일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웃고 있었다. 아무로는 아카이가 레일의 손에 이끌려 수술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닥터, 그 환자를… 아카이를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끝내 묻지 못한 물음이 혀끝에 맴돌았다. 어째서 자신이 레일을 향해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온 웃음을 환희라고 해석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 날은, 그런 밤이었다. 밖의 칠흑 같은 어둠과는 대비되는 지나치게 밝은 응급실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 그리고 고함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번쩍거렸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밤.

아무로는 그런 밤과는 완전히 달랐던 하나의 밤을 떠올렸다.

 

‘그럼 넌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허울뿐인 명분으로 위장한 자선 파티였다. 샹들리에 아래에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남들의 부족함과 상실을 속으로 비웃었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여러모로 좋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제 겨우 열 살이 된 아무로는 자신보다 세 살이 많은 아카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보다 키가 작은데 그가 자신보다 다섯 칸 위 계단에 서 있던 탓에,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올려야 아카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로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아카이보다 세 칸을 더 높은 곳에 오르고서야 그를 내려다보며 말할 수 있었다.

 

‘난 한 번 작정한 일은 끝까지 해. 그러니까 나는 언젠가 너랑 결혼해서 네가 나 없인 살 수 없게 만들 거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객기이자 속이 빈 포고나 다름없었다. 어디서 그런 객쩍은 혈기가 나왔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자신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은 거의 모든 방면으로 뛰어나도록 교육 받았고 그 모든 건 눈앞의 소년을 위해서였으므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사랑 받는 일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카이는 아무로가 벌린 세 칸만큼의 차이를 훌쩍 뛰어올라 그의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넌 정말 멋있구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한 대로야.’

‘후회하게 해주겠어.’

‘기대할게, 레이.’

 

그렇게 말한 아카이는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아무로는 그 날 처음으로 그가 제 나이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재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모든 문제는 자신이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끝내는 스스로에게 타협점을 내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아무로는 겨우 열 살이 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아카이도 열셋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은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뇌 활동과 기억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모 교수는 초청 받은 강연에서 사람의 기억에는 모순이 많기 때문에 종종 사실과 다르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뒤이어 그렇게 덧붙인 그는 준비한 PPT 화면을 리모컨으로 넘겼다.

강연 내용을 기록하는 카메라는 교수의 얼굴과 그의 뒤에 위치한 커다란 스크린을 반복해서 찍었다. 그 밖에도 카메라는 청중의 진지한 얼굴과 제 차례가 끝나 여유롭게 다른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는 교수들, 그리고 다음에 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교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도 했다.

아카이는 핸드폰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환자들의 빠른 회복과 심신 안정을 위해 조성된 야외 산책로는 낮의 활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정적에 휩싸였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환자들이 하나둘씩 병실로 돌아갔기 때문이기도 했고, 저녁 9시가 지나면 병원 측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산책로로의 출입을 제한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가 저녁 9시 48분에 산책로 벤치에 앉아있을 수 있는 건 동료가 만들어준 마스터키 덕택이었다.

병원에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을 찾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동료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병원 내 유일한 곳은 저녁 9시 이후의 산책로뿐이었다.

핸드폰과 연결된 이어폰에서 교수의 강연 내용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뇌와 기억에 대한 발표가 진행 중이었다. 생방송인 탓에 영상을 앞으로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수는 자신의 기억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아카이는 자신이 가진 최초의 기억만큼은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레이零. 후루야 레이라고 지었다는구나. 슈이치秀一의 ‘이치一’에 맞춰서 말이야. 레이는 제로zero라는 뜻이거든.’

 

어린 아카이는 어머니가 보여준 아기 사진을 손에 들고 아기의 이름을 물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제 어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아기의 이름은 ‘후루야 레이’라고 했다. 세 살의 언어 능력으로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예쁜 이름이라고는 생각했다.

아기의 이름 유래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서였다. 옆집에 사는 후루야 부부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후루야 레이를 데려와 아카이에게 소개해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를 담았으니 슈이치 군이 우리 레이를 잘 이끌어주렴. 1은 시작의 숫자니까 말이야.’

 

억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거북하지 않았다. 얼마 전 유치원에서 배운 운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카이는 자기보다 세 살이나 어린 후루야 레이에게서 운명을 느꼈다.

인간의 기억은 믿을만한 게 되지 못한다는 교수의 말이 이어폰 너머로 이어졌다. 아카이는 그 말에 동의를 던졌다. 하지만 후루야 레이에 대한 자신의 기억은 적확하다고 자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도 성격도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 말고도 두 명의 환자가 각각 베드를 차지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기계음과 엇갈려 들렸다. 아카이는 뻐근한 왼팔와 다리를 겨우 움직여 이불을 헤치고 침대를 내려왔다. 절뚝거리며 병실 밖으로 나오니 복도는 어두컴컴했고 카운터 테이블의 스탠드 빛만이 희미하게 빛났다.

카운터 테이블 너머에는 의사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카이가 테이블을 두 번 똑똑, 두드리자 금발의 의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아카이는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니, 시간이 거꾸로 되감겨진 것 같았다.

15년 전, 후루야 부부의 장례식에서 봤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아니, 조금 자란 티가 났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완전히 같은 얼굴이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흰 가운의 가슴께 포켓에 Amuro Toru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무로 토오루? 그는 그런 이름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일찍 깨어나셨네요. 슈이치 씨,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환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리지는 않고요?’

 

아무로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이런 성격도 아니었다. 늘 자신을 노려보았으며 말을 걸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살갑지 못한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후루야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았다.

후루야는 절대로, 특히 자신에게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살갑고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루야 레이가 맞았다. 아카이는 그렇게 자신했다.

 

‘지금은 아무로 토오루입니다. 다시는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 아카이 슈이치.’

 

옛 이름을 듣고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아무로가 아카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역시 네가 맞구나. 아카이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긴장을 늦추면 푸핫, 하는 웃음소리가 입술을 벌리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두 번째. 아카이는 아무로 토오루에게서 운명을 느꼈다.

 

[자, 다음은 N대학 병원 외과 과장으로 계신 레일 교수님의 강연이 있겠습니다. 레일 교수님께서는 이번에 유아의 신체 조직이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어폰에서 기다리던 이름이 나오자 아카이는 회상을 멈추고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닥터 레일. 아카이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왼팔과 허벅지에 박힌 총알을 빼주고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해준 의사이자 1년 전부터 쫓고 있던 타겟이었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아카이.”

 

그때 이어폰 너머로 아무로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카이는 다급하게 이어폰을 잡아당겨 귀에서 빼고 핸드폰을 환자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로가 산책로 입구에 서서 아카이를 있는 힘껏 노려보고 있었다.

왜 이런 시간에 출입이 제한된 구역에 있는 건지 이유를 요구하는 물음부터 시작해서 긴 잔소리가 이어질 것을 예상한 아카이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미처 다 넣지 못해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이어폰을 마저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을바람이 아카이와 아무로 사이를 지나갔다. 덕분에 아카이의 긴 머리카락도, 아무로의 금색 머리카락도 제법 세차게 흔들려서 시야 끝에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아카이가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자 어느새 아무로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당신, 내일 퇴원한댔죠.”

“… 그래. 아침에 나갈 거야.”

“그래요. 잘 지내요. 다치지 말고. 선량한 시민이라면서 왜 총 같은 걸 맞고 다니는데요.”

 

아무로가 아카이의 왼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두툼한 팔이 한 손에는 다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로는 아카이가 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부터 그가 말하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소개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그는 레일에게 찾아가 경찰을 불러야 하지 않느냐고 제안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슬럼가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경찰도 소용없을 거란 대답과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파헤쳐서는 안 된다는 조언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카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자신은 평범한 의사였다. 불법적인 방법에는 손을 대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카이에게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얻는 편이 나았다. 오늘이, 이 밤이 마지막 기회였다.

 

“말했잖아. 운이,”

“‘운이 나빠서’ 라고요? 여러모로 쓰기 좋은 변명거리네요. 다음엔 저도 한 번 써봐야겠어요.”

“… 레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무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카이가 아무로를 그렇게 부른 건 그 날 새벽에 재회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농담처럼 한 말을 후루야 부부가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서 곤란하다는 말이었다. 후루야 부부가 아들에게 쏟아 붓는 애정과 교육의 기반에 ‘슈이치’라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후루야 부부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죽은 부부를 두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을 얹기 시작하는 걸 아카이는 뒤에서 몰래 듣고 있었다. 애초에 몰래 참석한 장례식이라 듣는 것도 엿듣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후루야 부부가 하나뿐인 아들을 옆집 장남과 결혼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다며, 그것도 일종의 학대 아니냐며 혀를 찼다.

아카이는 그제야 후루야가 자신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던 지난 세월을 이해했다. 자신이 끔찍할 만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곁에 있어주고 싶어서, 아카이는 혼자 있을 후루야를 찾아갔다. 물론 그 이후로는 그를 만날 수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버지도 실종되어버려 사라진 후루야를 찾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나한테, 그 이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아요?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걸 당신에게 맞춰야 했어. 당신과 동등하게 뛰어나야 했고,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슈이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였어. 입양이 결정되고 아무로 토오루란 이름을 받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뭐였을 것 같아요?”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던 아무로 부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곤란한 처지에 놓인 후루야를 흔쾌히 자신들의 집으로 들였다. 그리고 한 번도 아픈 일을 겪었을 아이에게 과거의 일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후루야도 잊고 살아갈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일도, 자신의 이름도, 그 남자의 이름도.

 

“‘아. 드디어 아카이 슈이치에게서 벗어나는구나.’ 알아요. 당신은 잘못한 것 따위 하나도 없다는 거. 그래도 나는 내 이름도, 당신 이름도 끔찍하게 싫어요.”

“나는 가능하면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 약혼이니 결혼이니 하는 건 나한텐 장난 같은 거였고 그게 너에겐 족쇄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이었으니까.”

 

친구. 아무로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겠어. 고개 숙인 아무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아카이에게만큼은 죽어도 보이기 싫어, 아무로는 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지금도 너와 친구가 되고 싶지만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아. 강요하지 않을게.”

“퇴원하고 나면 잘 챙겨먹고, 다치지 말고, 그렇게 지내요. 이건 친구가 아니라 당신을 돌본 의사로서 하는 말입니다. 잘 가요. 아카이 슈이치.”

 

겨우 일그러진 얼굴을 갈무리한 아무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까보다 강한 바람이 불어 시야가 조금 흔들렸다. 아무로는 바람이 멎자마자 등을 돌려 아카이에게서 멀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후루야 레이는 그 날 부모님의 시신과 함께 땅 속에 묻힌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산책로 중앙에 홀로 남은 아카이는 벤치에 앉아 고개를 치켜들었다. 깜깜한 하늘에 별 몇 개가 일정하지 못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무수히 많은 별이라도 세야 심란한 마음이 진정될 것 같은데 뉴욕의 야경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데 방해가 되었다.

후루야 레이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에 맞춰 지어졌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가 시작의 숫자를 만나 둘이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아카이의 머릿속에 이미 15년 전에 죽은 후루야 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어린 후루야를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부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0과 1을 더해봤자, 1만 남을 뿐이잖아요. 아저씨, 아주머니.”

 


 


 



뉴욕 시내에 위치한 병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폭발물의 위력이 입원병동 한 층을 날려버릴 만큼 강렬했던 탓에 다수의 사상자 명단이 작성되었다. 아무로와 잭의 이름은 부상자 란에 올라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발이 일어난 곳이 병원이었기 때문에 아무로와 잭은 비교적 빠르게 구출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로는 자신이 구출되기 직전에 보았던 얼굴을 떠올렸다. 댄과 피해를 입지 않은 간호사들은 아무로가 있는 병실을 찾아와 가장 빠르게 현장에 와준 FBI를 칭찬했다. 뉴스에서도 FBI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구출 작업이 비교적 순조로웠고, 무엇보다 폭탄을 반입하고 터뜨린 범인의 체포도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나저나 레일 교수님이 폭탄범일 줄은….”

“그것도 그냥 폭탄범이 아니잖아요. 무슨 어디 조직 같은 데 있었다고…. 어디더라……. 일본? 일본이면 야쿠자일까요?”

 

그들의 대화를 멍한 정신으로 듣고 있던 아무로는 혼란 속을 유영하던 때로 기억을 되감았다. 분명히 시선 끝에는 레일이 있는데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서 말을 걸어보려던 찰나에, 혼란의 바다가 갈라지고 그대로 굉음이 터졌다.

 

“근데… 그거 진짜예요? 레일 교수님 사인死因이 폭발 때문이 아니라 총상인 거?”

“폭탄 터지고 나서도 교수님 숨 붙어있었다잖아. 그건 확실해. 뉴스에서 그랬다니까. 근데 이송 도중에 과다출혈과 쇼크로 사망한 게 아니라… 잠깐 귀 좀 대봐.”

 

간호사 중 한 명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더니 현저히 소리를 낮춘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외적으로 레일은 현장에서 FBI에게 체포되었으나 몸이 엉망진창이라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고, 수술방으로 이송하던 중에 과다출혈과 쇼크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병원 안에서는 그가 머리에 총알이 관통했기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부검의들 입을 완전히 막았다던데, 그러면 말 다 했지, 뭐. 우리가 바본 줄 아나. 그냥 알고서도 쉬쉬하는 거지.”

“에휴. 그나저나 레일 교수님한테 수술 받고 고마워하던 분들 마음이 어떠실지…. 저번 달에 퇴원한 핸섬가이 맘은 아주 찢어지겠네. 매일 같이 교수님한테 감사 인사하러 방에 찾아가고 그랬잖아요.”

 

댄이 아카이의 이야기를 꺼내자 아무로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카이도 폭발 사고에서 총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왔다. 아니, 그건 정말로 사고인가? 사건일 가능성은 없나?

 

“저기, 저기요.”

“어, 어어. 아무로 선생님 아직 뼈 붙지도 않았는데! 조심해요!”

“혹시 그 부검의들 입을 막았다는 그거, 누구예요?”

 

간호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간호사가 곧 아무로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FBI의 높은 분이요. 이건 정말 근거 없는 소문이긴 한데, 어쨌든 FBI가 부검의들 입 막았다는 건 거의 확실해요.”

 

폭발 사건에서 총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아카이 슈이치. 선량한 시민이라는 말로 웃어넘기려 했던 남자. 아카이 슈이치를 수술한 닥터 레일. 그런 그가 고마워서 매일 감사를 전하러 만나러 갔다는 아카이 슈이치.

폭탄이 든 쇼핑백을 들고 있던 닥터 레일. 폭발물에 깔려 이도저도 못하고 있던 때 손을 뻗은 아카이 슈이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때맞춰 왔다는 FBI, 그리고 그 FBI는 레일을 사살하고 그의 사인을 숨겼다.

 

“…… 저,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뼈가 붙으면? 실밥을 풀면?”

“선, 선생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급하게 할 일이라도 생기셨어요? 저희한테 말하면 저희가….”

“아뇨. 꼭 제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반드시.”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아. 그 날 산책로에서 말했던 아카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던 주제에 어디서 비 맞은 개새끼처럼 굴어. 아무로가 이를 꽉 물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흰 이불이 주먹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슬럼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술집에 오는 손님은 대개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슬럼가에 사는 버러지거나, 갈 곳 없는 부랑자 혹은 약에 취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쓰레기들.

라이는 그런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 다음 합류지점으로 향했다. 오늘 조직을 배신했다는 명목으로 제거해야 했던 타겟은 대외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남자였다. 하필이면 타겟의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그는 벌써 몇 년도 더 지난 일을 강제로 상기시켜야 했다.

닥터 레일은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몸에 성한 곳 하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드에서 구르듯 내려와 아카이에게 몸을 날렸다. 그의 몸에 밀려 수술방으로 바닥에 뒹군 아카이는 그가 수술방의 문을 잠그는 것을 지켜보았다. 평범한 의사가 소지하고 있는 카드로는 문이 열리지 않아 밖에서 동료들이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아카이 슈이치 씨. 아주 끈질긴 성격이군요. 스나이퍼란 원래 그런가요?’

 

그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선한 미소를 얼굴에서 완전히 제거한 뒤 말했다. 아카이는 슬럼가 아이들을 상태로 비인도적인 실험을 자행하던 미친 의학자의 얼굴로는 아주 딱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애새끼에게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건데. 당신 같은 사람들은 애새끼가 총을 들고 있으면 망설이더라고요. 그래서 총을 쥐어줬더니…, 쯧. 하지만 오히려 잘됐습니다. 약혼자를 살려주면 그 아이도 내게 고마워할 테니까요.’

‘…… 역시. 레이의 부모님을 죽이고 뉴욕까지 입양 오게 한 건 너였군.’

‘시애틀까지 제가 가기엔, 너무 먼 거리거든요.’

 

레일은 아무로가 후루야 레이였던 시절부터 그를 탐내고 있었다. 자신의 연구를 도와줄 영재 중에서도 후루야는 누구보다 빛이 났다. 사람을 시켜 모은 정보만으로도 후루야가 훗날 자신의 연구를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천천히 후루야를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갔다. 우선은 그와 물리적인 거리부터 좁혀야 했다. 레일은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무로 부부에게 일부러 후루야가 친척들에게도 외면 받고 있는 딱한 상황임을 강조해 그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예상대로 후루야 레이는 간단하게 아무로 토오루가 되었고, 아무로 토오루는 레일의 말을 따라주었다. 아주 착하게도.

아카이는 피를 토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레일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사람을 시켜 후루야 레이에 대해 수집했으면서도 그와 아카이의 관계는 그 무엇 하나 몰랐던 모양이었다.

 

‘닥터 레일. 날 이용해 레이를 울타리에 넣으려던 건 당신의 최대 실수야. 그는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나약한 남자가 아니거든.’

 

연결된 무전에서 레일을 사살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이미 피를 지나치게 토해내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굳이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그는 1분도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아카이는 그의 숨이 멎기 전에 총구를 그의 정수리에 조준했다.

 

“라이.”

 

합류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베르무트가 라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늘은 기사를 따로 대동하고 온 모양인지 애용하던 바이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있는 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들어가자는 의미였다. 술집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지만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번 임무는 간단해. 제약부 신입을 한 명, 보호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거라면 다른 놈들을 시켜도 충분할 텐데.”

“하지만 그가 꼭 너여야만 된다고 떼를 쓰기에.”

“언제부터 그렇게 유해졌지, 베르무트.”

 

라이가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바의 조명 때문에 녹회색을 띤 시선이 베르무트의 빨간 입술로 향했다. 라이는 시종일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저 미소가 거북했다. 차라리 그런 면에서는 진을 상대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귀엽거든. 코드네임을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아주 신났어. 아, 그의 코드네임은….”

 

그때 바 안으로 검은 우비를 쓴 남자가 터벅터벅, 들어왔다. 남자는 얼마나 우비를 눌러 썼는지 얼굴의 절반 이상이 우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바의 음침한 조명도 한몫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물기가 묻은 자국이 남았다. 라이는 자신들 쪽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를 보고는 바로 그가 베르무트가 말한 인물임을 알았다. 베르무트가 손을 흔들었다.

우비를 쓴 남자는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온다며 투덜거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베르무트가 라이를 올려다보며 ‘귀엽지?’ 하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구했지만 라이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제 코드네임도 말 안 했네요. 베르무트, 벌써 말했나요?”

“아니, 아직. 하려던 차에 자기가 들어와서.”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라이.”

 

남자가 라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도 물기가 축축하게 남아있어 악수를 한 라이의 손바닥도 금방 젖었다.

 

“버번. 그게 제 코드네임이죠.”

 

그렇게 말한 버번이 답답하게 가리고 있던 우비의 후드를 벗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며 후드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금색 머리카락, 짙은 갈색의 피부, 그리고 파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파란 눈동자. 라이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당신이 오늘 밤, 절 지켜주는 거죠?”

“…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지.”

“듣던 대로 믿음직스럽네요.”

 

아카이는 아무로에게 그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고 떠났다. 자신이 먼저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삼켰으면서 그가 엉뚱한 변명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 변명에 살을 붙이고 붙여 가느다란 인연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5년 전에도, 그 날에도 먼저 이별을 결심한 건 자신이면서, 우스운 일이었다.

자신의 친부모는 제로와 시작이 만나 둘이 되기를 바랐다. 아무로는 지금도 그들의 억지스러운 소망이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욕심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일그러뜨렸다는 마음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 번 작정했기에 그 끝을 보고 싶은 마음도 공존하고 있었다. 어린 날의 후루야는 아카이가 자신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 아카이는 후루야 없이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는 불공평하지 않은가.

1과 0은 더해봤자 1이 남을 뿐이다. 절대 2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딱 하나, 1과 0이 만나 2가 되는 방법을, 아무로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정한 보통의 방법을 벗어나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쓰지 않을 방법을 쓰기로 했다.

 

“오늘 밤, 잘 해보죠.”

 

그는 필사적으로 아카이의 흔적을 쫓았다. 대학을 그만두고 병원도 그만두었다. 아카이가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다는 일본에 무작정 입국해 레일의 이름을 팔았다. 그가 조직 연구원들에게 아무로의 이야기를 하곤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둘이서.”








* 1 + 0 = 1

* 10(2) = 2

* TMI) 닥터 레일Rail의 스펠링을 거꾸로 하면 Liar 입니다.




쓰고 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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