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스님이랑 풀던 썰을 백업겸 연성으로 씁니다



공무원이 되어야겠다. 엄마가 처음으로 쓰러진 날, 연락받고 달려가면서 조현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신장 기능이 너무 떨어지셨네요. 투석 시작하셔야겠어요. 덤덤한 의사의 말을 뒤로 하고 원무과에서 받은 큼직한 영수증을 보면서는 더더욱 디테일한 생각을 했다. 비싼 보험 하나도 못 드는데 평생 걱정없이 살려면 연금이라도 있어야지. 공부라면 그럭저럭 할 수 있으니 필기는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난 '재능'이 있잖아. 이걸 살리면 어떻게든 될거야. 엄마가 이건 신의 선물이라고 해잖아. 한도까지 찰랑찰랑하게 긁힌 카드 영수증을 꽉 쥐고 조현수는 그런 생각을 줄줄이 했다. 


엄마, 나 경찰 할래. 고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랑 둘이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그렇게 말을 했더니 안색이 좋지 않은 엄마가 더더욱 걱정의 빛을 띄웠다.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현수야. 조현수는 눈을 껌뻑거리다가 후루룩 짜장면을 먹었다. 엄마 난 선물을 받은 사람이잖아, 뭘 걱정해. 경찰 멋있지 뭐 나쁜 놈들 잡고 사람들 도와주는 일이잖아, 그거 할래. 연금도 나와. 엄마는 몇 번 더 어물어물하다가 현수 그릇에 단무지를 하나 올려주는 것을 끝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남을 돕고 살겠다는 기특한 봉사정신만으로 고른 것은 아니었다. 경찰 공무원에는 센티넬 특채 전형이 있었다. 일반 7, 9급에서 조현수가 가진 '재능'은 쓸모가 없었다. 남들보다 좋은 체력과 뛰어난 회복능력이 조현수가 타고난 재능이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곧바로 센티넬 판정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능력이 쓰일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중3때 축구하다가 넘어져서 인대가 끊어졌는데 며칠 앓고 그것이 말짱히 나은 일 정도가 특별히 능력을 살린 일이었다. 능력은 쓰지 않으면 점점 희미해진다. 19살의 조현수는 딱 그런 상태였다. 그래도 센티넬로 등록이 되어 있으니까, 특채로 응시할 수 있겠지. 그것은 정확한 사실이었다. 20살이 되는 해에 조현수는 센티넬 특채 전형으로 경찰이 되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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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난다 싶었는데 뺨이 축축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뛰어다니더라. 현장에서 바로 빠져나온터라 빈 손인데 우산이라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갑도 없어서 걸어가고 있는데. 무겁게 어깨부터 적셔드는 빗 속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조현수는 마저 걸음을 옮겼다. 빗 속에서 엉망이 된 얼굴로 다리를 절며 걷는 남자 주변으로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끼리 밀어내듯이 거리의 사람들은 저만치 조현수로부터 거리를 둔 채 저마다 바쁜 길을 갔다. 이마가 깨져서 흐르다가 말라붙었던 피는 다시 빗물에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비가 오는게 오히려 더 말끔한 꼴이 될지도 모르지. 조현수는 그 순간에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맞는 신장을 찾지 못해서 아직도 투석 중이지만 고향집에서 시내 큰 병원까지 멀지 않았고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간병보조인도 일주일에 한번씩 붙여줬다. 엄마가 내려가게 살게 된 것은 조현수의 뜻이 컸다. 나 이제 기숙사 생활 하니까 엄마도 공기 좋은데 가서 쉬시면서 사는게 좋겠어요. 엄마는 내내 붙어 살던 현수와 떨어져 사는 것이 서운해서 그날 밤 내내 우셨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엄마 건강도 조금이나마 호전되었고 무엇보다 크게 다쳐서 피떡이 되면 집에다가는 잠복근무라고 거짓말하고 며칠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숙직실을 전전하던 조현수에게도 편한 길이었다. 한번도 엄마에게 거짓말 해본적이 없는데 경찰이 되고부터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다. 별로 안 위험해요. 어려운 처지 사람들 도와줘서 너무 좋아요. 난 뒤에서 구경이나 하지, 뭐. 그건 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능력이 희미하다고 해도 특채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조현수의 생각이 맞았지만, 너무 어렸던 그는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적성 검사를 했을 때 조현수는 힐링팩터 3급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문장 끝에는 잠재 능력 힐링팩터 1급이라고 별도 표시가 함께 붙어 있었다. 능력은 안 쓰면 희미해지지만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평범하게 3급-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을 받았다면 동네 파출소에서 주취자와 씨름하고 층간소음을 해결하려 출동했겠지만 잠재 능력이 1급이라는 소리는 개발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특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한 순간부터 3년동안 매일매일 능력을 써야했다. 처음엔 단순한 체력 훈련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난이도가 올라가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센티넬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지만 훈련이란 이름의 능력개발은 모두에게 이루어졌고, 나가 떨어지는 생도도 여럿 있었다. 미쳐서 경찰병원에 구금된 생도도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기계 사이를 지나가는 훈련에서 한발을 실수로 딛어서 세게 기계 팔에 부딪힌 조현수는 갈비뼈가 부러졌고 의료진이 도착해서 한 일이라고는 대충 뼈를 맞출 수 있게 응급처치를 하고 그를 방에 옮긴 것 뿐이었다. 생체 신호를 알아볼 수 있는 기계들을 잔뜩 달아두고 그들은 나가버렸다. 조현수가 고통 속에 신음해도 진통제 하나 놔주지 않았다. 조현수의 모든 기록은 소중한 데이터였다. 그들은 그가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회복의 정도, 그 시간 동안 조현수의 뇌파 같은 것을 철저히 조사했다. 처음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다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 다음 다리가 부러졌을 땐 5일이었고, 팔이 부러졌을 땐 3일이었다. 3년이란 시간은 조현수의 몸을 할퀴고 찢고 부수어 놓았다. 그러니 엄마랑 함께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조폭인가봐. 지나가는 남자가 그런 말을 했다. 조현수는 퉁퉁 부은 눈쪽으로 고갤 돌려 그쪽을 쳐다보았다. 우산 하나를 나눠 쓴 커플이 조현수의 시선을 받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럴만 하지. 오늘 아침까지도 조폭하고 같이 있었는데. 검은 정장에 흰 셔츠, 장례식 드레스코드지만 얼굴이 퉁퉁 붓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남자가 그렇게 입었다면 조폭으로 보는게 상식선에 맞다. 그게 조현수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선발대. 팀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우리 무슨 엠티라도 가요? 조현수는 퉁명스레 물었지만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다. 좀체 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다. '선발대'가 하는 일은 뭐든지 앞에 서는 일이었다. 먼저 깨부술 대상에 침투해서 흐름을 파악했다가 중요한 순간에 뒷문을 열어주고 제일 앞에서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뒷통수를 후려치는 것. 그게 선발대의 일이었다. 악의적으로 비꼬는 사람들은 '뻐꾸기'라고도 불렀다. 결국은 잠입과 진압을 최전방에서 하는 일이었다. 죽진 않잖아. 훈련 마치고 현장 투입되어서 두번째 임무를 맡았을 때, 천 팀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걸 응원이랍시고 해줬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 찔러서 죽는 사람도 있는데, 넌 아니잖아. 우월감을 좀 가져봐. 퍽도 기운이 나네요. 조현수는 건성으로 두 팔을 들어보였다. 우월감은 무슨 놈의 우월감. 고기방패에 우월감이 있어? 


이게 몇번째더라. 조현수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생각했다.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진압만 따라 나선것까지 세면 엄청나게 늘어난다. 엄마는 이제 '사람들 도와주는 일 자부심 가져, 우리 아들 진짜 멋있다.'라고 통화하며 웃는데 엄마 난 잘 모르겠어. 엄마는 능력이 신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그건 쓰지 않았을 때의 일인 것 같아. 쓰면 쓸수록 상처는 빨리 아물지만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어. 엄마 나 사실 하루에 한시간도 제대로 못자. 가이딩을 대신하는 약이 떨어지면 정말 아무 것도 못할거야. 밤이면 이명이 더 심해.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데 마치 수천명이 날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그렇게 날이 서면 내 몸 안의 소리도 들려. 뼈가 맞춰지는 소리, 찢어진 살이 다시 붙는 소리같은 것들이,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엄마, 진짜, 난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게 과연 잘된 일일까?


그 순간에 조현수는 크게 휘청거렸다. 뭐에 걸려 넘어질뻔했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그는 어느 건물 현관에 서있었다. 아파트형 공장인지 계단 옆에 사람키만한 원단이 둘둘 말려 세워져 있었고 먼지 냄새가 많이 났다. 어느새 번화가를 지나 여기까지 걸어온 건지 모를 일이다. 그보다 내가 왜 여기 서있지. 


"비를 이렇게 맞으면 골병이 들어요, 이 사람아."


손목이 뜨거웠다. 조현수는 제 손목을 내려다보고 그 손목에 감긴 손가락을 쳐다봤다. 강하고 큰 손이었다. 맞으면 정말 아프겠다 싶은, 그러나 지금은 그저 따뜻한 손이었다. 조현수가 그 손만 쳐다보고 있자, 남자는 이내 손을 놓았다. 손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손목은 여전히 열감이 남아있었다. 기분나쁜 열은 아니었다. 남자는 반대편 손에 담배를 하나 들고 있었다. 한모금을 깊게 빨더니 빈 공간을 향해 뱉는데 눈은 조현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울었어?"


조현수는 고갤 저었다. 눈을 비비면서 가길래 우는 줄 알았네.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여전히 조현수의 얼굴을 뜯어본다. 한쪽눈은 퉁퉁부어 저게 지금 잘 보이는 건지 의심스럽고 다른쪽 머리는 깨졌는지 피딱지가 앉았는데 그나마도 빗물에 씻겨서 꼴이 엉망이었다. 입가는 터지고 한벌에 5만원도 안할 검은 정장은 여기저기 솔기가 뜯어진 채로 우산도 없이 빗 속을 절뚝거리며 걷는다. 남자가 조현수를 빗속에서 끄집어 낸 것은 옛 생각이 나서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때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는 죄다 그런 꼴이었다. 


"어느 집 식구인지는 몰라도 몸 좀 챙겨. 나이가 깡패래도 칼빵에는 장사없다. 그 몸뚱이 하나로 버틸텐데 골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조현수는 입만 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남자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손목에 따뜻한 한 열감이 기분 좋게 그를 들뜨게 했다. 빗소리보다 크게 웅웅거리던 이명이 살짝 잦아든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하는 정부 소속 센티넬들이 복용하는 약 중에 가장 상위 품질의 약을 먹을 때 받는 느낌과 같았다. 조현수는 잡혔던 손목을 만지작거리면서 눈 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맞춘 것이 분명한 쓰리피스 정장에 반듯하게 넘긴 머리,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시선과 아랫사람에게 친숙한 태도. 아마도 조폭이겠지. 그 많고 많은 조폭들을 만나면서도 이 남자의 정체에 아마도를 붙인 것은 사업가의 느낌도 강하게 나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는 여유가 있었다. 삶에 대해 고민하며 절뚝이는 조현수에게는 절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비 좀 피하다가 택시라도 타."


남자는 담배 꽁초를 빗속으로 버리고 지갑을 꺼내 오만원짜리 지폐를 두장 꺼냈다. 그리고 거절할 새 없이 조현수의 오른손에 쥐어주고는 빗 속으로 나가버렸다. 골병 든다더니 자긴 왜 비를 맞고가지? 조현수는 멍하게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자가 떠난 자리 벽에 기대어져 있는 크고 검은 장우산을 보니 더욱 머리가 멍해졌다. 남자는 이미 빗속으로 사라졌기에 조현수는 우산을 집어 펼쳤다. 끝에 '오세안 무역'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선명했다. 조현수는 그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나와 섰다. 미친듯이 울리던 이명이 그를 괴롭게 하지 않았다. 마치 빗속에서 우산을 쓴 것처럼, 남자와 닿아서 전해진 열감이 그의 머릿속을 뭉근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담배. 정장. 웃음소리. 오세안 무역. 빗속에 우두커니 선 조현수는 머릿속에 필사적으로 키워드를 찾았다. 이 남자를 만나야한다. 오로지 그 생각을 떠올리면서.






+ 또 제가 폰으로 마무리해서 기상천외한 오타가 있을 수있는데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ㅠㅠ

~ 하는 걔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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