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모더나와 화이자, mRNA 백신의 원리를 알아보자

mRNA가 무엇인지, mRNA 백신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다들 기억나시나요? mRNA 기술의 미래를 설명드리기 전에, mRNA와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를 간단하게 다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센트럴 도그마를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DNA/mRNA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 Extended Central Dogma with Enzymes.jpg (CC BY-SA 3.0)에서, 리보솜 이미지는 https://openclipart.org/detail/301855/ribosome (public domain)에서 가져왔습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센트럴 도그마)란, DNA → mRNA → 단백질 순으로 흘러가는 정보의 흐름을 말한다고 했지요? 절대 손상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설계도인 DNA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세포는 DNA를 핵이라는 금고 속에 숨겨둡니다. 단백질(요리)을 만들고 싶을 때는 보안금고(핵)에 숨어 있는 요리책 원본(DNA)을 통채로 주방(리보솜)에 가져가는 대신, 필요한 레시피 부분의 사본(mRNA)만 주방으로 가져가서 조리를 하는 거지요.

mRNA 백신 기술은 우리 몸에 어떤 단백질을 넣어 주고 싶을 때 단백질을 직접 넣는 대신 그 단백질의 레시피인 mRNA만 포장해서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항하는 면역 훈련을 하기 위해서 코로나19의 신분증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직접 몸에 넣어 주는 대신, 스파이크 단백질의 mRNA를 몸에 넣어주면 우리의 세포가 알아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합성한 다음 그걸 보고 면역 훈련을 하는 거예요.

mRNA 기술이란 결국 세포의 '단백질 공장'을 해킹해서 우리가 원하는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명령하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기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mRNA 기술의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간 유전병의 치료

이전 글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RNA는 엄청나게 잘 부서지는 분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혼자 떠돌아다니는 RNA 조각은 굉장히 의심스러운 녀석이거든요. 우리 세포 안에서야 DNA → mRNA → 단백질의 흐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자이지만 혈액에 RNA가 떠 있다는 건 보통 바이러스가 침입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생물은 RNA 분해 효소를 선제적으로 퍼부어서 바이러스의 RNA를 애초부터 지워버리는 면역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mRNA 백신도 이런 공격에 당하면 분해되기는 마찬가지여서, 모더나와 화이자에서 만든 백신도 mRNA만 덜렁 넣어주는 게 아니고 이 녀석들을 보호하는 지방으로 된 아주 작은 주머니(나노입자)에 mRNA를 포장해서 주사하게 되어 있지요.

mRNA를 포장하고 있는 지방질 나노입자입니다. 출처: Cristina Sala/BioNTech , CC-BY-NC-ND 4.0

그런데 우리 몸에 있는 지방질은 기본적으로 간에 모이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방질 나노입자도 마찬가지여서 이렇게 주머니에 실어서 주사한 mRNA는 간세포 근처로 모여들지요. 바꿔 말하면 기껏 주사해준 mRNA 분자들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잘 가지 않는다는 뜻이라 약간의 골칫거리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발상의 전환을 해서, "그러면 간에서 생기는 병을 치료하는 데 쓰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바꿉니다.

미국의 의료 스타트업 중 인텔리아 제약(Intellia Therapeutics)이라는 기업이 있는데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가 창립한 바이오벤처입니다. 이곳에서는 지금 유전되는 간염을 치료하기 위한 RNA 기술을 개발 중이지요. 바로 환자의 간세포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DNA를 편집할 수 있도록, 유전자 편집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RNA를 나노입자에 실어서 주사하는 거예요.

RNA를 담고 있는 지방질 나노입자가 환자의 혈관에 들어가면, 나노입자는 혈관을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대부분 간으로 옮겨갑니다. 나노입자가 깨지면서 안에 들어 있던 mRNA가 간 세포에 들어가고, 간 세포에서는 이 RNA를 이용해서 유전병을 일으키는 DNA 서열을 편집하거나 삭제해 버립니다. 그러면 영구적으로 간염을 고칠 수 있는 거고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치료법입니다.

2.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 그리고 AIDS의 영구적 치료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꼭 배우는 유전병 중에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이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낫 겸(鎌)'자를 써서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이름으로 배웠지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 있는 유전병인데,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바뀐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낫 모양 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은 매우 심각한 빈혈증에 시달립니다.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yourgenome/26855222172, CC BY-NC-SA 2.0

이 유전병을 앓는 사람들의 낫 모양 적혈구는 산소를 잘 운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혈관 곳곳에 뭉쳐서 피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생후 5~6개월에 발병해서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빈혈증을 일으키지요. 선진국에서 꾸준히 치료받고 관리하면 40~60세 정도까지는 생존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은 주로 사하라 이남의 가난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행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사망합니다.

그런데 이 질병 역시 유전병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잘 편집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적혈구를 생산하는 곳은 우리 몸의 뼈 깊은 곳에 위치한 골수라는 거예요. 골수에서 적혈구를 생산하는 모든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해서 빈혈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애버려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RNA 백신 기술로 이걸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대부분의 지방질 나노입자는 간으로 모이기 때문에 골수에 RNA를 정확하게 공급하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RNA 기술의 선구자인 드류 와이즈만(Drew Weissman) 교수가 최근에 RNA를 담은 지방질 입자를 원하는 세포로 정확히 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요.

특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아직 원리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지방질 나노입자를 정확하게 골수로 보낼 수 있다면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고칠 수 있을 겁니다.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은 2015년에만 400만 명이 걸린 흔한 병인데 이들 중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질병입니다. 이 빈혈증을 영구적으로 고칠 수 있다면 아주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와이즈만 교수에 의하면, AIDS를 영구적으로 치료할 실마리도 RNA 백신 기술에 있다고 합니다. 와이즈만 교수는 최근 RNA 백신 기술을 이용해 골수의 '백혈구 공장'을 조작해서 AIDS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를 퇴치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요. 이미 원숭이의 골수를 조작해서 HIV를 박멸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영원한 불치병으로만 여겨지던 AIDS를 물리칠 날도 다가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원박스 아래에서는 본문에서도 잠깐 언급된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가위 기술을 소개하겠습니다. 크리스퍼는 저렴한 비용으로 아주 정교하게 DNA를 편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혁명적인 기술이예요.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202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후원박스를 열어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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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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