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날. 여름날의 뜨거운 햇빛이 기세좋게 기온을 올리고 있다. 유에이 고교. 2학년 A반. 모두가 흐물흐물 맥이 빠진채로 책상위로 늘어진 와중에 땀 한방울 흘리지않고 시원한 얼굴로 무심하게 앉아있는 사람. 토도로키 쇼토.
교단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엑토플라즘은 괴상한 문제를 늘어놓고 있었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트필기를 이어가던 토도로키는 문득, 오늘이 올 여름 들어 최고온도를 달성한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흐아.."

앞쪽 자리에서 작게 들린 한숨소리. 더움에 견디지 못해 터져나온 소리. 미도리야였다.

'더위..잘 타는 편인건가.'

숨소리의 출처 미도리야에게 정착한 시선이 그대로 고정되면서 얌전히 책상위에 놓여있던 토도로키의 왼손이 왼쪽 볼로 항했다. 손바닥에 얼굴을 살짝 기대고 미도리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넥타이..풀었네.'

항상 서툴게 매여 있던 미도리야의 넥타이가 돌돌 말린 채 책상위에 얌전히 놓여있다. 교복 셔츠의 단추도 2개정도 풀러놓은 상태였다. 초록빛 머리칼 속에서 흘러 볼을 타고 내려와 옷깃사이로 보이는 쇄골에 도착한 땀방울의 움직임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토도로키의 시선은 의식과 무의식 그 중간 어디쯤에서 이어졌다. 쇄골에 머물렀던 시선을 다시 올려 얼굴을 바라 보았는데 미도리야의 안색은 그리 평안해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반쯤 감긴 눈을 하고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단순히 더위를 먹은 것 치고는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어제 있던 훈련에서도 평소 이상으로 힘들어하던 미도리야가 기억났다. 여기까지 사고회로를 마친 순간 분필소리가 멈추고 엑토플라즘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 문제는..미도리야. 풀수 있나?"
"아..네."

미도리야가 고개를 든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맞았고 바로 문제풀이에 지목당했다. 한템포 늦게 대답한 미도리야는 느릿느릿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미도리야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은 토도로키 뿐이었고 미도리야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중심을 잃고 바로 휘청인 것을 알아채고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사람도 토도로키뿐이었다.

쿠당탕-!!

"미도리야!"

미도리야가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짐과 동시에 토도로키의 의자가 기세에 밀려 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정신을 팔고있던 몇몇 아이들은 갑자기 들린 굉음과 돌발상황에 꽤나 놀란듯 보였다.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있던 토도로키가 가장 먼저 미도리야의 곁으로 향했다.

바닥에 쓰러진 미도리야는 정신을 잃은 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힘겹게 내뱉고 있었다.

"선생님! 양호실 데려가겠습니다."
"그래 바로 데려가라."

토도로키가 급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엑토플라즘은 당황한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뒤늦게 이이다가 달려왔다.

"미도리야군! 괜찮은건가?!"
"이이다. 미도리야 좀 나한테 업혀줘."
"알겠어!"

전혀 힘을 주지 않은 상태의 사람은 꽤나 무겁다. 이이다의 도움을 받은 토도로키는 단숨에 미도리야를 등 위로 업어올렸다.

'뭐야 이거..엄청 뜨겁잖아..!'

미도리야를 업은 순간 뜨거운 열기가 제 몸을 덮쳤다. 토도로키는 일단 급한 불을 끄자는 심정으로 오른쪽의 힘을 약하게 발동시켰다. 냉기의 연기가 토도로키의 오른 팔을 통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힘없이 늘어지는 미도리야의 양팔이 아래를 향하며 토도로키를 벗어나려하자 이이다가 그 팔을 들어올려 토도로키의 목덜미에 감쌌다. 목에 닿은 팔은 뜨겁고 후끈거렸다. 미도리야가 안전하게 등에 안착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빠른걸음으로 교실 앞문으로 향했고 닫혀있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이이다가 뒤따라 달려왔으나 토도로키는 그 새를 기다리지 못하고 문을 향해 발을 뻗어 직접 열어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토도로키는 사라졌다. 함께 가려 했던 이이다는 순식간에 일어난 토도로키의 재빠른 행동에 뻗었던 손을 넣지 못하고 마치 비상구의 표식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끔뻑거렸다. 불과 몇십초만에 일어난 일. A반 전원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라진 두사람 때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휑하게 열려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토도로키..저런 표정도 하는 녀석이었나?"

당황과 놀람으로 이어진 교실의 침묵을 캐고 카미나리가 입을 열었다.

"아아..그러게. 그보다 미도리야 괜찮은건가.."

이어서 키리시마가 대답했다. 두 사람의 짪은 대화와 눈맞춤으로 정지상태의 이이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미도리야군에게 가봐야겠어..!"
"같이가자. 이이다군."
"우라라카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우라카카가 이이다의 어깨를 두드렸고 마찬가지로 그리 좋지 못한 표정을 하던 이이다는 우라라카의 말과 함께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하아..하아.."

고요한 복도. 들리는 것은 토도로키의 벅찬 숨소리뿐이다. 다른  교실에서는 아직 수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업고 달려본 적이 없던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에 대한 걱정과 심각함과 무거움이 겹쳐짐에 따라 점점 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토도로키...군.."
"미도리야? 정신이 들어?!"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자 소름이 살짝 돋았다. 얇고 높은 미성의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약간 잠겨있어 평소의 맑은 톤을 내지 못하였다.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춘 토도로키는 제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미도리야?"
"...내..가.."

몇번 더 미도리야를 불러보았지만 정신을 차린 게 아니었는지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는 드물게 들렸으나 열은 여전히 높았다. 젠장. 토도로키는 미간을 한번 구기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미도리야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두 팔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 자꾸만 그의 발목을 붙들어 버린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검고 어두운 진흙탕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보건실로 향하는 토도로키의 뒷모습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1년 전. 올마이트가 은퇴. 합숙처에서 빌런에게 습격당해 바쿠고가 납치당한 순간 엉망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절규하던 미도리야의 모습. 병실 침대에서 정신을 잃은 채 고열에 시달리던 미도리야의 모습.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모든 걸 지켜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도리야를 볼 때면 누구보다 히어로라고 생각이 듬과 동시에 그의 순수하고도 올곧은 동경에 전신을 울리는 광기를  느끼기도 한다.


단지 같은 반 친구일 뿐이었던 네가 힘겹게 안고 있던 나의 모든 것을 부셔버린 그 순간.
고통과 원망과 복수의 감정들이 이제는 과거가 되버린 지금.

미도리야. 지금의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

"흐음..아무래도 열사병인 것 같구나."

주사기 모양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리커버리걸의 손에는 작은 온도계가 쥐어져있다. 방금까지 미도리야의 입안에 물려있던 것이다. 온도를 확인한 리커버리걸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온도계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미도리야의 이마에 해열시트를 붙여주었다. 이제야 겨우 숨이 진정된 토도로키는 입을 꾹 다문채로 잠에 빠져있는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흰색의 얇은 이불이 미도리야의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땀에 젖은 목덜미는 여전했지만 더 이상 거친 숨을 내쉬진 않았다. 리커버리걸은 침대의 커튼을 친 후 조명을 약하게 바꾸었고 그녀가 자리를 옮기는 것에 따라 토도로키도 떨어지지 않는 발바닥을 억지로 떼내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
 

"이 아이는 언제나 무리만 하니까 말야. 앞 뒤 안가리고 덤벼들지. 과로까지 겹친데다가 오늘 같은 고온. 쓰러지지않는게 이상하지."
"네.."
"지금 필요한 건 휴식이니 내 치유는 필요없을 것 같구나. 여기서 쉬게하고 정신이 들면 돌려 보낼테니 너는 이제 돌아가렴.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고생했구나"
"아닙니다."
"오야. 너도 땀을 많이 흘렸구나. 자 사탕 받으렴."
"아..감사합니다."

땀? 내가 땀을 흘렸다고? 리커버리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그 순간 머리속에서 맺혀있던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체온조절도 잊은 채 무작정 달려온 토도로키였다.

그녀가 내민 사탕을 받기 위해 내민 어정쩡한 각도의 두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핑크빛으로 투명한 색을 뽐내는 사탕을 왼손에 말아쥐고 살짝 숙였던 상체를 다시 세우며 몸을 돌렸다. 얇은 커튼 너머에서 미도리야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미동도 없이 잠에 빠진 그의 모습을 커튼 너머로 보고 있자니 심장끝자락을 타고 올라온 무언가가 울컥하고 눈가를 일렁이려 한다.

리커버리걸에게 인사를 한 후 토도로키는 교실로 향했다. 수업시간이 끝났는지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토도로키군!"
"이이다..우라라카."

홀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토도로키의 정면에서 이이다와 우라라카가 달려왔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자 품고있던 긴장이 탁 풀리고 평소와 같은 느낌이 살짝 돌아온듯하여 표정근육이 가벼워졌다. 미도리야군은?! 데쿠군은?! 동시에 들려오는 말소리에 굳게 닫았던 입이 열렸다.

"열사병에 과로까지 겹쳐서 쓰러진거라고 하셨어. 지금 자고 있을거야. 정신 차리면 돌려보낸다고."

토도로키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한 두 사람은 그의 말이 끝나자 그나마 안심하는 듯이 숨을 뱉었다. 안경을 고쳐 쓴 이이다가 괜히 또 사람이 들이닥치면 휴식에 방해가 될수 있으니 돌아가는 게 좋을거라고 말했고 우라라카는 미도리야의 상태가 계속 신경 쓰였는지 발을 동동거렸지만 이이다의 말에 수긍하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헛걸음을 한듯 했지만 토도로키에게 상태를 들은 덕에 조금은 진정된 표정으로 두 사람은 몸을 돌릴 수 있었다. 이이다의 왼쪽에 선채 교실로 향하기 시작한 토도로키는 간간히 이어지는 대화에 몇 번 대답했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딱 한가지 그의 왼손에 쥐여진 핑크빛 사탕에서 열기에 못 이긴 끈적임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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