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절임.

비속어 주의

원래 아쉬울 때 끝내야하지만 여러분의 뜨거운 반응에 냅다 두둥탁. 외전 안 보시고 본편 오픈 엔딩을 그냥 끝이라고 생각해주셔도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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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1




그 오빠를 다시 만나면 어떨거 같아? 여름 수련회를 없던 일로 치부 한다고 한들 이미 저장된 기억이 사라질 리 없었음. 맨인블랙이면 모를까. 솔직히 말해서 2년 동안 김여주는 그런 상상을 가끔 해봤음. 정말, 만약 길거리를 지나서 우연히라도 그 오빠를 만나면 어떡할까 하는 변변 찮은 생각. 가슴을 졸이면서도 길가에서 한 번은 우연히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기도 했던 거 같음. 페이스북 따위 전부 다 탈퇴해놓고는 이상하지 참. 근데 이제 2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으니까 정말 그건 한 순간의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음. 그 여름 밤의 별도, 공기도. 심지어는 처음으로 코 앞에서 짙게 맡아졌던 말보로 레드까지.


"진짜 김여주야? 야 너 왜 페북 탈퇴했어?!"


무뎌 졌던 뇌가 다시 한번 반응했음. 그 담배 냄새 하나 맡았다고. 조각 조각 났던 기억들이 다시 한데 뭉쳐지고 이상한 기분을 들게 했음. 생각해보면 그때 오빠들 다니는 학교를 몰랐다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미친 일일 드라마 급 우연이 다 있나. 아니? 이걸 우연이라도 생각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정말 말도 안되는 우연이고 재회였음. 

어쩌다 보니 이 오빠들 학번까지 알게 됨. 벌점 명단에 학번 이름 적는데 이상하게 손이 떨렸음. 명단 파일은 학생 주임 쌤이 가져가서는 이 오빠들 등 때리면서 너네 졸업 시키는게 자기 아들내미 똥 기저귀 가는 것 보다 더 골치 아프대. 남은 의자들 책상 위로 올리면서 애써 시선 두지 않으려 했음. 시발 근데 왜 다 나 힐끔이고 난리; 대충 정리 다하고 학생 주임 쌤한테 인사하는데 쌤이 김여주 어깨 토닥이면서 흐뭇하니.


"어어 아휴 고생했어야, 선생님한테는 나가 잘 말해줄게. 언능 들어가."


학생 주임 쌤 용모 단정/예의 바른 학생 한정 졸라 따뜻함. 


"너 이놈들도 얼른 들어가!!! 다음에 내 눈에 걸리면 그땐 죽었어야."


근데 이제 그 반대 애들한테는 아수라 백작급임. 아무튼 어쩌다보니까 이제 넷이서 운동장 가로 질러 학교 들어가는데 동그랬던 얼굴이 훨씬 선이 샤프해진 이동혁이 김여주한테 물음. 너 진짜 김여주냐고, 페북은 왜 탈퇴했냐구. 근데 뭐 페북 탈퇴 안 했어도 이 오빠들이랑 김여주 사적으로 연락 할 사이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오빠들이랑 나. 그냥 잠깐 같은 조원이었을 뿐이고 돌아가서 사적으로 연락할 만큼 끈끈한 관계…아니었잖아? 


"...그냥 공부 때문에요."

"뭐야 김여주야 너 전교 1등이라도 하게?"


개복치는 어디 안 가서 볼 긁적이면서 공부 때문이라고 얼버무림. 가는 내내 이동혁만 말하고 이제노랑 나재민은 한 마디도 안 했음. 특히 이제노. 나재민은 힐끔 거리면서 김여주 쳐다보긴 하는데 이제노는... 그냥 핸드폰만 보더라고. 뭐 저래. 그때 내가 얼마나 충격 받았는데 사과 한 마디도 안 하고. 그럼에도 씨발...


"야 이제노 너 김여주야 몰라? 얘가 말이 없어."

"…모를 리가."


존나 잘생겨졌어. 계속 보던 휴대폰 메고 있던 메신저 백에 넣고 고개 돌려서 김여주 쳐다보는데 김여주...2년 전 그딴 개같은 일 있었는데도, 심장 존나 뛰었음. 수련회 이후 2년 동안 또 그런 생각이 들었었음. 수련회 그 고작 이틀에 어쩌면 내가 이제노 오빠 좋아한게 아닐까 하는 그딴...근데 이 오빠는 새파랗게 어리고 순수한 나한테 담배를 내밀었다? 한편으로는 또 존나 미웠음. 정 떨어져도 모자랄 일인데 아니 진짜 저 얼굴이;


"..저 먼저 가볼게요."


계속 봤다가는 홀릴 것 같아서 먼저 시선 피하고 먼저 계단 밟음. 이 오빠들이랑 더 엮이면 안될 것 같은데. 같은 학교가 된 건 어쩔 수 없고 3층은 1학년 층이고, 5층은 3학년 층이니까 만날 일은 없겠지. 그냥 잠깐 마주쳤고, 인사하고, 영원히 빠이! 빠르게 계단 오르려던 걸음이 고작 계단 하나 올랐는데 붙잡혔음 씨댕.


"너도 엘베 타."

"네? 아니요. 저는,"

"어차피 지금 수업 시간이야. 쌤들 없어."


이제노랑 같이 미모 한층 업그레이드 된 나재민이었음. 한 쪽 팔에 걸린 선도부 완장 잡고는 계단에서 김여주 끌어내린 나재민이 엘베 타라는 폭탄 발언함. 이 학교에 2년 넘게 다닌 이 오빠들은 아무렇지 않겠지만 고등학생 된지 한달도 채 안된 김여주는 선생님들과 몸이 불편한 학생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아무렇지 않게 탄다는게 충격이었음. 아무리 지금 수업 시간이라 쌤들이 없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완강히 거절의 의사로 고개를 격하고 가로 저었음. 


"김여주야 너도 3학년 돼봐라. 삭신이 쑤셔요 아주."


응 소용 없음. 변함 없는 이동혁은 여전히 엄살이 오졌음. 거의 질질 끌려오다시피 엘리베이터 앞에 섰음. 아 가뜩이나 수업 늦었는데 초반 부터 혼자 진도 밀리면 안된다고. 발만 동동 구르며 겁나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숫자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옆에 이동혁이 선도부 완장이랑 김여주 신기하다는 듯 번갈아 쳐다봤음. 야 김여주야. 그놈의 김여주야. 


"너 선도부면 이제 맨날 아침마다 서 있어?"

"..네. 그렇죠."

“오 그럼 우리 오늘 이렇게 들어오면 네가 쪼오금~ 눈을 감아줄 수,”

“안돼요.”

“아 김여주야~“

“못해요.”

"아 안된다는거야 못 한다는거야?"

"둘 다요."


띵!- 

김여주가 선도부 인게 신기 했던 이동혁의 잔머리 단칼에 잘라버렸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리고 애초에 학생 주임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데 어떻게 김여주가 눈을 감아줄 수가 있는지. 이런 교칙에는 제법 FM 스러웠던 김여주라 단호하게 거절 하니 이동혁은 입술 삐죽 내밈. 힝. 우리가 이정도 사이 밖에 안됐니. 이정도 사이인게 어디예요. 나오려던 말 참고서 때마침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음. 다행히 안에 선생님들은 없어서 이제 오빠들이랑 김여주 넷이 탔음. 김여주가 3층 누르려고 하는데 이미 눌려져 있더라. 빨리.. 빨리.. 드럽게 느리게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 존나 심각하게 올려다보고 있었음. 


"아 그럼 김여주야.”

"네."

"너 번호 주라.(ㅎ_ㅎ)”


3층입니다.

이동혁 쳐다도 안보고 대답했는데 그 뒷말이 제법, 아니 존나 충격적; 협박인가? 내가 눈 안 감아준다고 하니까 지금 번호 달라고 협박 하는거야? -말도 안되는 무논리- 무슨 개소린가 되물을 틈도 없이 3층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림. 순간 잠시 고민 했음. 번호를 줘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열 일곱 고등학생이 휴대폰이 없다는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은 안통하겠고. 왜 제 번호를 알려고 하는지 이유는 물을 시간이 없으니 이건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 결정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항이었음.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


"…공사이삼 공팔일삼이요."


응 김여주 존나 개복치. 싫어요. 없어요. 절대 못함. 이 오빠들이 지금까지도 무서운 건 아니지만 불편해. 꺼려져. 번호 안 알려주는 김여주 보고 아 졸라 비싸게 구네? 우리가 뭐 해코지라도 한대?; 아 존-나 어이없네?; 이러면 어캄ㅠ 김여주 그 짧은 순간에 거기까지 상상하고는 래퍼 처럼 번호 개빨리 부르고 엘베 닫히기 바로 직전에 내려서 반으로 뛰어감. 아 존나 늦었어. 조용한 3층 복도에는 이제 김여주가 뜀박질 하는 소리만 들렸음. 그 아득해지는 소리 뒤로.

문이 닫힙니다.


"이거 하나 못 물어봐서 나한테 부탁하냐?"

"........................"

"들었으니까 안 보낸다. 알아서들 저장하시고~"


5층입니다. 


“내려.”

“……………“

“……………“

“……………“

“너넨 오늘 죽었어야.”


딱 걸렸습니다.




/




그 이후로 따로 연락 온 건 없었음. 그때 너무 빨리 말해서 못 들은건가. 그럼 개꿀이고. 그런 가정도 있었고, 3학년은 이번 1학기 성적을 마지막으로 내신이 마무리 되기 때문에 가장 바쁜 시기 였기도 했음. -물론 이동혁네 무리는 공부 안 하지만- 김여주도 처음 보는 3월 모의고사 치르느라 정신 없었고. 재회의 3월이 그렇게 후딱 지나가고 4월 중순 쯤이었나. 중간고사 2주 전이었지 아마.


“응. 엄마. 아니야 데리러 안 와도 돼. 빨리 갈게. 응응.”


야간 자율 학습 3교시까지 꽉꽉 채워서 야무지게 하고는 귀가 중이었음. 9시가 넘었으니 하나 뿐인 딸 걱정 돼서 데리러 갈까? 묻는 엄마 목소리에다가 괜찮다며 빨리 간다고 했음. 버스 정류장은 학교 정문에서 좀 걸어야했음. 언덕에 위치해있던 학교 내려가니까 여기 저기 가게 간판 불빛이 반짝 반짝. 김밥 천국도 있고, 프렌차이즈 카페도 있고, 피시방도 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제대로 엉킨 줄 이어폰이나 풀면서 걷다보니 버스 정류장 저 앞에 보이던 참이었음. 


"아 야 너네 진짜 갈거임?"


버스 정류장 뒤에는 바로 2층에 위치한 피시방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음. 개 같은 타이밍. 정확히 김여주가 버스 정류장에 앞에 다다르자 마자 바로 뒤 건물에서 열심히 게임 하고 찌뿌둥한 몸 돌리며 나오는 이동혁네 무리. 너네 진짜 갈거냐면서 묻는 익숙한 목소리와 그 안의 이름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음. 그러다가 똭, 이동혁이랑 눈 마주치면 어캄.


"어! 뭐야!"


놀라가지고 눈 땡그랗게 뜨면서 검지로 김여주 가리켰음. 당연히 옆에 있던 이제노나 나재민이나.. 뒤 따라 오더 지 친구들까지 김여주 쳐다보고 김여주는 그 눈길들에 손 꼼지락 대면서 꼬인 이어폰 줄 푸는 거 멈추고 외면함. 아 엄마 보고 데리러 오라 할걸.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고 외면하기엔 이미 봐버림. 아는 애야? 이동혁이 김여주 아는 척 하니까 뒤에서 애들이 아는 애냐고 묻고 김여주는 이 관심들이 버거워 힐끔 버스 배차 간격 봤음. 제발 곧 도착.


"아 알기는 존나 친하지~"


응 12분. 버스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한대만 운영을 하나 본지 배차 간격 개오바였음. 포기하면 편해요. 그냥 아는게 아니라 존나 친하다며 허허실실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이동혁을 보며 저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질 침


"어디 있다가 와? 설마 학교?"


2년 전 수련회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동혁과 꽤 많은 교감을 한건가. 아님 이 오빠가 존나 미친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지 뭐. 이동혁의 물음에 그저 고개만 두어번 끄덕였음. 네. 야자해서..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에도 이동혁은 다 알아들어서 김여주야 진짜 전교 1등 하려나본데. 이지랄.. 김여주는 표정 썩어가는거 겨우 숨기고는 어색한 미소만 지음. 김여주한테 그거 하나 묻더니만 또 지들끼리 뭐라고 얘기를 해. 근데 야 너 진짜 가? 너 가봤자 게임 할거 아냐; 아 걍 피곤해. 진짜 의리라고는 쥐똥 만한 새끼. 대충 들어보니 이동혁은 더 놀고 싶은 모양인데 몇몇이 피곤하다며 집을 가고 싶어하는 듯. 구시렁 구시렁 거리면서 자기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둥 어쩌는 둥.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오빠는 달라진 거 하나 없다 싶었음. 


"아 가라 가 진짜. 김여주야 나 되게 불쌍하지 않어?"


갑자기 옆으로 붙어오면서 힝힝 시무룩한 표정 짓더니 자기 불쌍 하지 않냐고해. 진짜 지나가는 개도 개소리 하지 말라고 왈왈 짖을 말; 저기서 이동혁이 제일 기존쎄인거 누가 몰라. 네네. 엄청 그래보여요. 대충 맞장구나 쳐주고는 슬쩍 버스 정류장 안쪽으로 돌아왔음. 이제 각자 알아서 집 가면 되는 거잖아. 늦은 시간 사람 없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 들으면서 창 밖 구경하려고 다시 넣어놨던 이어폰 꺼내는데 옆으로 누가 앉는거임.


"어어 가."

"...왜.."

"나도 버스 타는데?"

"김여주야 조심히 가~"


나재민이 버스 타고 집 가는 건 변수잖아요. 자기네 친구들이랑 인사하면서 옆에 앉길래 왜 앉냐는 식으로 중얼거리니까 자기도 버스타고 간대. 아득히 이동혁의 굿바이 인사도 들림. -근데 무시함- 약간 당황했다가 같은 버스만 아니면 되지 싶어 고개 끄덕이고는 다시 이어폰 푸는거에 집중했음. 몇 번 타? 다시금 물어오길래 쳐다 보지 않고 대답했음. 77번이요.


"어 나돈데."


씨발. 장난 치지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고개 돌려서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니까 나재민은 진짠데 왜 못 믿냐며 어깨 으쓱이고는 상체 좀 빼서 김여주 사이 두고 옆에 앉은 놈한테 물음.


"야 이제노 맞지?”

"응."

“근데 너는 버스 왜 타냐?”

“그냥. 걷기 귀찮아서.”


운명의 장난? 누군가 조작한거지? 이제노는 언제 와서 앉은건지 인기척도 없이 김여주 옆에 앉아 있었음. 아니 이제노는 왜 앉아? 오른쪽엔 이제노, 왼쪽엔 나재민 두고 사이에 앉은 김여주 존나 불편하다 이거예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건지 그 불편한 침묵 속에서 김여주는 계속 이어폰 풀고 있고 나재민이랑 이제노도 핸드폰만 했음. 고대하던 77번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리니까 오빠들 다 핸드폰 집어 넣었음. 


"줘봐."


나재민은 등 유리창에 기대고는 옆에 김여주가 꼼지락 대는거 바라보고는 답답해서 냅다 가져옴. 아. 거의 다 풀었는데. 힘겹게 풀고 있었는데 왜 멋대로 가져가고 난리. 근데 어지간히 김여주 개복치라 또 그걸 티는 못 내서 입술만 앙 다물고 물어 뜯었음. 


"야 왔어."

"자."


다가오는 버스에 이제노가 왔다며 먼저 일어나고 바로 순식간에 이어폰 줄 푼 나재민이 김여주한테 건네고 따라 일어남. ? 1분도 안걸린거 실화야? 얼떨결에 받아든 이어폰에 어버버 할 틈도 없이 버스 도착해서 이제노 나재민 따라 다급하게 올라탔음. 이거 고맙다고 해야하는거..지? 김여주가 거의 다 풀고 나재민이 숟가락 얹은거 같긴한데. 좀 애매한데 푼건 나재민이니까.


"아 그,"

"너 앉아."


고맙다는 인사 하려던 참에 이제노가 김여주보고 여기 앉으람서 빈 자리 가리킴. 9시가 넘었는데 의외로 사람이 좀 있어서 뒷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음. 남은게 이제 노약 좌석 하나랑 일반 좌석 두개였음. 버스에 올라탄 순서가 나재민, 이제노, 김여주였는데 먼저 올라탄 나재민이 일반 좌석 하나 앉았음. 이제노는 남은 좌석 보자마자 고민할 틈도 없이 데롱 데롱 달린 손잡이 잡고 빈 일반 좌석 김여주한테 내줬음. 시바 개부담. 아 괜찮다고 하려다가 버스 출발하니까 얼른 앉으라는 기사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음. 


"어디서 내려?"


나재민 옆으로 가지 왜 제 옆에 우두커니 있는건지. 김여주 죽어도 오른쪽으로 고개 안 돌리고 계속 창 밖만 봤음. 대충 정류장 두개 정도 지났을까 앞에 앉은 나재민이 상체 틀어서 물었음. 어디서 내려? 


"저 드림동이요."

"나 보다 늦게 내리네."


드림동까지는 여섯 정거장 정도 더 가야했고, 나재민은 그 전에 내린다네. 개꿀. 옆에 이제노도 같이 내렸으면 좋겠지만 어찌됐든 나재민이 내리면 빈자리에 이제노가 앉을 테고 그럼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은 안녕이겠다. 


"아 이거, 감사해요."

"...뭘 감사하기까지."


그 말을 끝으로 상체 다시 도로 틀려는 나재민 보고 손에 쥔 줄 이어폰 들고 풀어준거 고맙다고 하니 나재민 제 뒷목 문지르면서 답함. 저 오빠는 이상한데서 쑥스러워하네. 김여주는 그런 생각하고는 다시 창 밖으로 고개 돌렸음. 빛나는 간판들이 점점 사라지는가 싶더니 나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음. 야 나 먼저 간다. 이제노 어깨 툭툭 두드리면서 인사 하고서는.


"잘 가."

"....네 오빠도요."


잘 가 하니까 답은 해야할 거 아닌가. 제법 오랜만에 불러보는 오빠 소리 김여주도 말하고는 존나 어색해서 창 밖으로 시선 고정했음. 절대 나재민이랑 눈 안 마주쳤음ㅋ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뭐 여보 자기 한 것도 아니고 수련회때도 불러봤던 호칭이니까. 딱히 아무 생각 안 들었는데 불현듯 그때 나재민 부끄러워 하던거 생각났음. 그때 귀 엄청 빨개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차 벨소리 들리고 뒷문 열리는 순간, 고개 한번 돌려봤음.


".........................."


여전히 귀는 빨갰음.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그 오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침묵을 좋아하는 건 아님. 이런 숨 막히는 침묵이라면 더더욱 존나 사절이라고요. 이제노가 드림동에서 내린다는 말 안 했잖아요. 이번 정류장은 드림동입니다- 안내 음성 들리길래 바로 위에 있는 하차벨 누르려고 했는데 이제노가 먼저 눌러 버리는게 아니겠음. 김여주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설마 했음. 그냥 내가 내리니까 눌러주는 거겠지 했는데 뒷문 열리고 이제노 내리길래 순간 멈칫해버림; 그리고 이제노 그렇게 정지된 김여주 보면서 한마디 했음.


"안 내려?"


그 이후로는.. 이제 번화가에서 조금 더 들어온 아파트 단지 근처라서 가게들이 없었음. 간판 불빛도 없지, 가로등은 우중충한 주황빛이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김여주랑 똑같은 방향의 이제노 때문에 이어폰 듣지도 못하겠더라. 언제부터 이 오빠 나랑 동네 주민이었나? 아니 세상이 나를 몰카 하나 싶기도 했었음. 애초에 말이 안되잖음. 동네 주민...? 그런 거면 그 2년 동안 한번이라도 마주쳤어야지 않나?


"...어디 가세요?"

"...집."

"아...그렇구나.."


솔직히 제가 물어놓고는 존나 후회했음. 무슨 질문이 이따구야, 지금 김여주 온 몸으로 같이 가기 불편하다는 거 티내는거 아니냐고. 괜히 물어놓고는 더 갑분싸 된거 같아서 속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 머리나 쥐어뜯었음. 집 언제 도착해앸 이어폰 들으면서 갈 때는 빨리도 도착하더니 이럴 때만 존나 느려. 집이 까마득하게 느껴지지. 


"..그때 바로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

"번호도 없고 아는 게 없더라고."


그 정적을 이제노가 먼저 깨뜨렸음. 연락을 하려고 했었다고. 갑자기? 왜? 나한테? 김여주는 그거 듣고 존나 어리둥절, 이해불가 표정 짓고는 옆에 이제노 쳐다봤음. 이제노는 그냥 제 컨버스 코만 바라보고 있었음. 툭툭, 앞에 돌멩이를 치는 거 같기도 했음. 

아. 이해 안되는 것도 잠시 왜 이제노가 자기 한테 연락 하려고 헀는지 대충 직감이 왔음. 아마, 그때 그 일. 추측이지만 아닐리 없었음. 그게 아니면 이제노는 자기한테 연락 할 일이 없으니까. 완전 남이잖아?


"...그때 정말 철이 없어서,"

".................................."

"미안했어. 이제야 사과하네."


김여주가 사는 드림 아파트가 보일 때쯤, 이제노가 걸음을 점점 늦췄음. 계속 차던 돌멩이도 어디 튕겨버린건지 차는 소리도 없어지고, 천천히 걸음을 늦춘 이제노가 고개를 김여주 쪽으로 돌렸음. 미안하다며 자기랑 눈을 맞추는데...


"...네. 좀 많이 무서웠죠."

"아..ㅋㅋㅋㅋ그렇겠다."


얼빠 기질 다시 재탑재. 존나 잘생긴 사람이랑 사귀면 화가 나도 얼굴만 보면 풀린다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게 정말이었다는거예요. 그 눈빛 진짜 반칙인데. 차도 잘 다니지 않아서 이제노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는데 미안했어. 그 네 마디로 인해 김여주는 자기가 이렇게 휙휙 변덕 있는 애라는 걸 처음 느꼈음. 원래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다 주의 였는데. 무서웠다는 제 한마디에 힘 빠지게 웃더니 그렇겠다며 또 미안한 낯을 보여. 그거 또 보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해졌음.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데요."

"지났어도.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지났지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교회 수련회는 까마득히 지나간 일이지만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괜히 다시 또 그 때 생각이 나서 이상하게 붕 뜨는 기분이었음. 왠지 그 날로 다시 돌아간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집이 코앞인데 아까 이제노 보다 더 걸음을 늦춘 거 같음.


"근데 설마 아직도 피는 건 아니죠?"

"....고3이니까."

"헐 펴요?"

"고3은 스트레스가 많아."

"스트레스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약간 라면과 김치 같은 사이네요.”

“ㅋㅋㅋ응 정확해.”


진짜 별 거 없는 대화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음. 이제노나 김여주나 서로 막 깔깔 거리며 웃는 건 아니었는데 각자 미소 기본 장착 한 상태였음. 그 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김여주 집 102동인데 110동까지 가버릴 정도. 

그리고 나중 가서 알았는데 이제노 집 아예 반대편이래.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그 오빠





<+82 10-xxxx-xxx2


이제 나한테 심통 안 부리네ㅋㅋㅋㅋ

앞으로 이어폰 꼬이면 나한테 와


누구세요?

누구 같은데


나재민


뭐? 나재민?


오빠요;


























내용 제법 달달한데 브금은 닥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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