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적부터 즐겨하던 상상이 있습니다.

제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는 것이죠.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슬픔이 닥쳐올 때면 전 제가 상상으로 만든 책의 어느 구절을 떠올렸어요. “그녀는 끔찍한 좌절을 맛보았다. 희망이라곤 한조각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슬픔에 집어삼켜졌다. 끝없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라고, 그녀는 울면서 중얼거렸다.” 

전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그건 꽤 힘이 나는 일이었어요. 대충 이런 흐름이었죠. “그러나 대개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녀는 머지않아 그 터널을 보란듯이 통과했다. 슬픔은 사라졌고 좌절 또한 그러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 희망따윈 없다고 조소하면서도 살아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살 한살 나이가 먹어가며 희망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속단이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 주제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슬퍼하는 누군가에게 그 슬픔은 머지 않아 끝날 것이며 언젠간 비록 작지만 따뜻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하는 일을 이따금씩 이어가려 노력합니다.

저를 아는, 그리고 제가 아는 모든 분들께 울적한 표정을 짓게 하는 일보다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 더욱 많이 찾아가기를 소망하며, 제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남겨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어디에도 갈 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바깥세상이 내미는 건 악의에 찬 복도들, 텅 빈 수평선들뿐이며, 안쪽 세상이 내미는 것은 쾅쾅 닫히는 문들뿐이라고. 빛을 발하는 건 전혀 보이지 않아, 1999년 4월 8일 일기에 쓴 말이다. 

이 폭풍우는 짜증스럽기만 한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 거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기회, 온몸을 빗물에 적셔볼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일 수도 있다. 이 파티는 당신이 예상하는 것만큼 따분할까? 어쩌면 그 파티에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댄스플로어 뒷문 옆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친구는 앞으로 수년간 당신과 함께 웃고 당신의 수치심을 소속감으로 바꿔줄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1차 BL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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