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갔어요?”

등 뒤에서 들려온 아내의 목소리에 리요하임은 깃펜을 내려놓고 의자를 돌렸다. 리루미나는 리요하임에게로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겨 그의 옆에 앉았다.

“응, 갔어요.”

리요하임은 리루미나에게 찻잔을 내밀었고 리루미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루미나는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만약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죠?”

“그렇지 않을 거예요. 내가 천문대에 대한 얘기를 해주니까, 리 요 녀석 무관심한 척을 하면서도 쫑긋거리는 귀와 팔랑거리는 꼬리를 숨기지는 못했다니까요. 별을 좋아하는 녀석이니 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학문이라고 꼬셔보면 어떨까- 해서 물어봤건만.”

“후훗, 아직 리도 어리네요.”

리루미나는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손을 볼에 문질러댔다. 리요하임도 미소를 지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천문대에서 리가 좋아하는 별에 대해 공부도 하고, 커르다스 바깥의 세상도 보고 와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분명 그럴 거예요. 이곳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이곳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의 아집이니까.”

리요하임은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리가 천문대가 있는 림사 로민사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곳으로 이사 가기로 해요.”

“물론이죠.”

리루미나는 찻잔을 리요하임의 서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창가를 바라보았다. 초저녁의 바람이 리루미나의 귀밑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지나갔다.

“마침 당신 친구도 흔쾌히 리를 데려다준다고 해서 다행이에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죠?”

“키링(Q’Ling)은 세계를 유랑하며 노래를 만드는 유랑예인이에요.”

“낭만적인 사람이네요!”

“그렇죠. 에오르제아를 돌며 류트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며 인형극을 하는, 유랑예인이죠. 밖에서 거친 잠자리와 식사를 하며, 음악과 카드 점으로 시간을 달래고 낭만을 목적지로 삼으며 별들을 나침반 삼아 걷는. 그런 친구예요. 분명 리도 마음에 들어 하겠죠.”

리요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다려지네요…. 온가족이 다 같이 림사 로민사에 집을 짓고 낚시를 하면서 살아갈 날이.”

“조금만 기다려요, 루미나. 리가 갔다 오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예요.”

 

 

 

6

 

 

“키링 냐져씨.”

“응?”

“님샤 노민샤에 많이 가봤어?”

키링은 모자의 챙을 살짝 들어 올리며 어린 리리를 바라보았다.

“림사 로민사…. 그럼! 아저씨는 수도 없이 가봤지.”

키링은 부싯돌을 열심히 비비며 말했다. 리리는 불을 피우는 키링의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다. 마침내 나뭇가지에는 불이 피어올랐고 리리는 귀를 쫑긋 세우며 박수를 쳤다. 키링은 모자를 고쳐쓰고는 리리에게 모포를 내밀었다.

“님샤 노민샤는 어떤 곳야?”

리리는 모포를 둘둘 둘러 얼굴만 내놓고는 키링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궁금하니?”

키링은 모포 위에 모자를 내려놓으며 리리에게 되물었다.

“응!”

키링은 잠시 웃으며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마른 장작을 태운 불꽃은 하늘로 올라가며 점점 옅어지다, 불티가 되어 검은 연기와 함께 그대로 별무리에 스며들었다.

“림사 로민사…. 그곳엔 언제나 사람이 많고 활기가 넘치지. 시끌벅적하고…. 부지런한 루가딘들은 파란 지붕 밑에서 힘자랑을 하고, 장사를 하는 라라펠들은 열심히 물건을 팔고…. 무엇보다도 림사 로민사엔 바다가 있단다.”

“바댜?”

“응. 바다.”

“바댜는 어떻게 생겼어?”

키링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바다는 말이야, 물들의 집이야. 산이나 강에서 물들이 열심히 달리기를 하다가 지치면 바다로 돌아와 잠을 잔단다. 우리 리리가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듯 말이야.”

“야옹?”

“그렇기 때문에 강이나 계곡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물들도 바다에 오면 조용히 누워있지. 그리곤 하늘을 보다가 잠이 드는 거야. 그럼 잠든 물들을 보며 바다는 철썩 철썩- 하며 등을 토닥여주지.”

“바댜도 햐늘을 좋아해?”

“그럼! 우리 리리처럼 바다도 하늘을 좋아한단다.”

리리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리리는 잠시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다시 키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댜는 외롭지 않냥?”

“바다는 엄청 크고 넓어. 그래서 세상에 있던 모든 물들이 바다에서 잠을 잔단다. 그리고 가끔씩 하늘에서 먹구름이 끼면, 손님이 오지. 그럼 바다는 손님들을 맞이해주고 쉬게 해준단다. 가족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바다는 외롭지 않아.”

키링의 말에 리리는 배시시 웃었다.

“냔 바댜가 좋아.”

“바다를 본 적도 없는데?”

“응! 그치만 바댜가 좋아.”

키링은 푸근하게 웃으며 모포로 감싸져있는 리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리는 배시시 웃었다.

“리리는 외롭니?”

“가끔씩. 그렇지먄 냐빠도 엄먀도 슈아도 있어. 그리고 외로울 땐 별들을 보면 돼. 그럼 냐가 별이 된 것 같거든.”

키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별들은 외로움도, 슬픔도, 분노도 없지. 그저 하늘을 따라 잔잔하게 흘러갈 뿐이야. 외로울 때나 슬프거나 화가 날 때면 별들을 보렴. 그리고 별이 되어 별을 따라 흘러가는 상상을 하렴. 저 별들이 모두 리리의 가족들이야. 모두 리리의 편들이지.”

리리는 키링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응!”

 

 

 

7

 

 

“냐저씨는 외롭지 않아?”

라노시아의 어느 외곽에서 리리가 키링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외롭다고 생각해?”

“아니…. 그냥 냐저씨는 냐가 없으면 혼쟈 다녔잖아.”

키링은 때묻지 않은 리리의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키링은 기분 좋게 웃고는 수통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리리야.”

“야옹.”

“노래 좋아해?”

“노래?”

“응.”

“좋아해. 노래는 왜?”

“같이 노래 부를까?”

 

 

 

8

 

 

“녀기가 님사 노민샤야?”

리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인파들. 파란 하늘 밑에 푸른 지붕과 하얀 벽으로 쌓아올린 석조 건물들에 리리는 입을 쩍 벌렸다. 사방에서는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났고, 물기어린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리리는 싫지 않았다.

“냐아아아….”

생전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한 림사 로민사에서 리리는 혼이 나간 것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리리, 아저씨 잃어버리면 안 된단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냐아아….”

키링은 피식 웃으며 리리의 어깨에 손을 앉고 앞으로 걸었다. 한낮의 림사 로민사의 태양은 바늘로 찌르듯이 내리쬐었고, 키링은 머리 위의 챙이 넓은 모자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림사 로민사를 걷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이 키링을 알아보았다.

“아, 키링씨! 이번에도 림사 로민사에서 공연을 하나요?”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키링에게 물었다.

“아, 오늘은 아닙니다. 공연하러 온 게 아니고 이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다주러 온 거예요.”

“아이요?”

키링은 리리를 소개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키링을 따라 걷고 있던 리리가 없었다. 키링은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리리?”

“혹시 저 아이인가요?”

행인은 손가락으로 어느 한 부분을 가리키며 키링에게 물었다. 미코테 꼬마아이가 어느 휴런 상인이 늘어놓은 상품들을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앗, 리리가 맞군요. 감사합니다.”

키링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리리에게로 달려갔다. 리리는 키링이 그의 바로 옆까지 달려올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상인의 물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키링은 리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끝엔 보석 목걸이가 있었다. 키링은 리리를 나무라지 않고 리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게 마음에 드니?”

“응.”

“저게 신기해?”

“응…. 냐름다워.”

키링은 리리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져 목걸이 끝에 매달린 게 뭐지? 막…, 막… 녜쁜 색깔로 빛냐고 있어.”

들뜬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키링에게 묻는 리리에게 키링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건 진주라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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