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나는 작년(2017년) 10월 초 즈음(추석 연휴 시작) 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전 3주 가량부터 나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엄청난 무기력증과 우울증 때문에 제정신으로 학교를 다니기가 힘들었고, 자퇴 숙려제와 상담을 거쳐 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정학하게는 정원 외 관리로,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완전한 자퇴라고 보긴 어렵지만.

 자퇴를 하고 초반 1달 정도는 매우 늘어져 지냈다. 우울증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고 - 상담이나 병원이나 다니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였다 - 그래서 한번 엄마랑 크게 싸웠다. 나는 한 5일 정도 오전 경에는 방 안에만 쳐박혀 있었고, 엄마가 5시 후에 회사에 가면 그제서야 방 밖으로 나가 허겁지겁 밥을 먹곤 했다. 이런 갈등은 상담을 하고 난 후 해결된걸로 기억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매우 잘 기억날 듯 했는데 막상 지나가고 보니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이 기간동안 열심히 오만과 편견을 읽었던 게 잘 기억난다. 그 후로 또 한동안 잘 지내다 설날 경부터 엄마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설날에 가서 내가 딱히 할머니를 도와드리지 않고 동생들이랑 '암마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 게임을 한 것이 시건의 시발점이었는데, 그 후로 엄마가 나의 게으른 행동들을 아니꼬워하는 동시에 나는 그걸 알면서도 내 멋대로 행동했고, ㄱ 결국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아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나도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엄마한테 집 나가겠다고 돈 달라고 그러고 엄청 싸웠다. 다음 날엔 엄마가 얘기하잔거 무시하고 상담선생님 한테 갔고, 상담 한 후 집에 오니 엄마는 어딘가 나가있었다(병원이었다). 싸운 날이 금요일 밤이었고 상담 하러 간 것이 토요일이었으니, 엄마는 일요일 밤에 돌아와 나랑 이야기를 했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진 잘 기억이 안 나고, 엄마도 울고 나는 코로 울었다.... 그 후에 나는 토요일 아침에 엄마랑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엄마가 내가 고등학교를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현재 자퇴 6개월 가량이 된 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전반적으로 지금이 가장 안정되지 않았나 싶다. 아침 7시 30분 즈음에 일어나 동생들(초등학생)과 아침을 먹는다. 밥을 먹은 후 9시까지 방 청소, 양치, 씻기 등등을 하고 9시부터 11시 ~ 12시까지 공부(보통 수학과 영어 독해 공부를 한다)를 한다. 12시 즈음에 엄마와 점심을 먹고는 한 4시까지는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핸드폰(앙스타, 블랙서바이벌, 트위터, 인스타, 인터넷 등등)을 하고 책도 읽고 그런다. 그리고 한 3시 반에서 4시 가량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이때 하는 공부는 ebs 강의로, 국어, 한국사, 문법 중 하나를 복습하고, 다른 것 하나는 인강을 듣는다. 그 외에도 하는 것은 독후감 작성, 공모전 준비(보통 머릿속으로^^;;), 친구와 톡, 수영장 가기, 자전거 타기 등의 일을 하고있다. 밤에는 한 10시에서 11시 상에 잔다.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때인데,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지금 상당히 불안한 상태이다 진짜 불안한 상태이다. 너무 불안하다. 이 불안이 자퇴하고 나서 쭉 계속되곤 했지만 그래도 최근 상당히 괜찮아 졌는데 또 이러니까 상당히 힘들다. 내가 왜 힘드냐 하면,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쓸 데가 없는 걱정 때문이다.

1. 고등학교 진학 문제 : 나는 고등학교를 갈지, 안 갈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가고 싶진 않지만, 한국에서 살 것 이라면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확실히 대학 진학 및 돈을 벌기에 유리하다. 아니, 유리한 게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퇴를 한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보고 - 그리고 난 사회부적응자같다... - 너무 많은 곳에서 불이익을 준다. 아무리 괴로워도 나중에 돈 벌려면(그것도 많이 주는게 아니다) 완전 개고생 하라는 말이다. 고등학교 3년 개고생 하면 그 후로 계속 쭉 편한게 아니라 또 계속 힘들게 살아야 하고, 그냥 한국에서는 영원한 개고생의 굴레인 것이다. 그냥 너무 무섭다. 고등학교를 가는 것도 무섭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는 것도 무섭다. 대학 진학도 너무나 무섭다. 대학 진학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다...

2. 진로 문제 : 정확하게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는 소설도 쓰고 싶고, 인문학 쪽(철학, 민족학, 종교학, 사학, 여성학, 젠더학 등)의 넓은 범위를 공부해 보고 싶다. 요즘은 혁명(러시아, 프랑스 혁명)에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도 읽고 있다. 예전 중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과학(천문학)쪽으로 진로를 꿈꾸었는데, 요즘에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싶진 않다. 과학을 공부한다면 프로그래밍이나 고생물학, 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 미술도 공부하고 싶다. 내가 그리는건 아니고, 큐레이터 같이 설명을 해 줄 수 있게 미술학을 공부하고도 싶다. 나는 항상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기에,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해양 생물학도 공부하고 싶다.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것도 좋다!! 예전에는 칵테일러가 되고싶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이 중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한다 해도 내가 지금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러한 일이 돈을 잘 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단순히 이런걸 공부하고 싶단 거지 이걸로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싶은건지 모르겠다...

3. 나의 게으름 : 나는 예전에 강박증과 우울증을 토대로 무기력증이 왔었다. 이 증상을 확실이 무기력증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과 그때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너무도 힘들고 그냥 축 늘어져 있어 울고만 싶고, 무언갈 할 힘이 아예 없었는데, 지금은 그 힘이 어느정도 있고 맨날 울고싶지도 않아서 하고싶지 않은 일도 어느정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예시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예전에는 하기 싫은 일은 커녕 정말 씻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밥을 먹거나, 방 청소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일 자체가 너무너무 힘겹고 그랬다. 이때 학교에 다녔는데, 사람들과 말하는 행위 자체가 지치기 그지 없었고 창문을 볼 때 마다 뛰어내리고 싶었다. 계단 올라가기 너무 힘들어서 맨날 욕하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저런 일상적인 일을 매우 잘 해낼 수 있고, 하기 싫어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냥 울고만 싶었다면, 지금은 울기 보다는 계속 생각을 하며 우울해한다(둘다 나빠 보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후자가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체력상으로도 견디기 힘들고, 오로지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후자는 잠깐잠깐 나아질 때도 많고 그냥 속만 아프지 좀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확실히 나아진 것이다. 강박증과 우울증도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통해 확실히 호전된 것을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우울 = 나 라는 인식이 강했고, 거의 하는 생각이 자살 생각 뿐이었다. 지금은 자살 생각을 아예 안 하는건 아니지만 상당히 안 하고 있고 그러하다. 그러니까 이제 드는 생각이 내가 하기 싫어서 미루는 짓들이 더 이상 '무기력증'이란 이름으로 커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 뿐이다!! 이걸 아니 자괴감이 너무 미치게 든다. 의사 선생님은 '이만하면 됐어/대충 하고 넘어가자' 를 기억하라 했지만 이게 진짜 내가 집착하면서 하려고 하는건지 아님 그냥 귀찮아서 이 핑계를 대고 넘어가려 하는지 절로 궁금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후자의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도 생리를 핑계로 이틀째 공부를 안하고 있다^^ 인생 좀 상당히 망한 것 같다..
 나는 영어 단어를 안 외우고 있다. 필요하단 건 알지만 너무 귀찮고,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 핑계로 '드럼, 소녀 위험한 파이'의 영문판 번역을 하루 2챕터로 늘렸다. 그냥 죄책감이 너무 많이 들지만 그래도 딱히 하기 싫은 일을 하고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 동시에 드는 생각이 내가 이걸 안 해도 되면 그냥 안 하면 되는데 왜 꼭 해야하는 걸까, 내가 계속 노력하고 고생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냥 대충 살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생각과 '열심히 안 해도 된다, 그냥 쉬자'라는 생각이 계속해 대립한다.

4. 부모님과 대화 : 너무 어렵다. 엄마는 다혈질이다. 쉽게 화를 낸다. 난 소심한 편이기에 엄마랑 말하기 너무 힘들다. 결국 엄마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걸 반박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엄마의견이 맞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다.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하며 엄마의 화를 견뎌내는 게 그냥 나에게는 크나큰 노동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도 하나의 두려움이다. 엄마와 내가 이렇게 논쟁이란 이름의 말다툼을 하고 서로 토라져 말을 안 한다면 피해를 많이 입는 것은 나다.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
 아빠는 또 엄마랑 성격이 다른데, 화를 계속 참아왔다 터트리는 성격이다. 나랑 비슷한 성격이다. 엄마랑 또 다른게 뭐냐면, 아빠는 손을 들 것 같다. 엄마랑은 몇 번은 다퉈 봤지만 아빠랑은 대화도 적고, 싸워본 적은 초등학교 고학년 후로 없다. 아빠가 술을 취하고 들어와서 나한테 하는 말은 '아빠 실망시키지 마'라는 말이다. 그냥 아빠랑 이야기 하는 일은 막연히 무서운 일이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를 가지 않을 꺼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데, 그 일이 계속 무섭다. 

5. 부족함 : 동갑의 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억지로나마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여유롭게 살고 있다.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을까, 그걸 매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간이 나중에 나에게 너무나 크나큰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자퇴를 한 당시의 상황까지 되돌아 가게 되고, 그럼 그냥 너무너무 피곤하고 우울해진다.

6. 조부모님 : 조부모님은 우리 집에 많은 도움을 주신다. 우리 아빠는 친가에서 외동아들인데 우리 집은 딸 셋이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전혀 뭐라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를 매우 많이 지원해주신다. 그리고 조부모님은 내가 학교를 안 다니는 것을 모르신다. 그렇다 조부모님은 우리 가족을 경제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정말 많이 지원해주시고 그런데 이분들에게 실망을 드리는 것이 마냥 무섭다. 지금의 상황이 그저 죄를 짓는 듯 하다.

7. 친구 문제 : 친구 관계가 (당연하고 예상했지만) 적어진다. 지금 연락하는 애들은 2명이다. 한명하곤 연락이 아슬아슬하게 끊기려 한다. 그냥 외로움이 느껴져서 힘들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고, 고민을 들어준다 해도 학교 밖의 내가 하는 소리는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듯 하다...

8. 동생들 : 둘째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데 엄마랑 사이가 나쁘다. 막내는 내가 옛날에 하도 화를 내서 그런지, 아님 엄마의 다혈질 때문인지 완벽주의 기질이 심하고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고 눈치를 보는게 보여서 미안하다. 내 자퇴가 얘네한테 미치는 영향이 무섭다.

 절대 자퇴를 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몇 번이고 생각을 해 봐도, 이때 만약 자퇴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힘들었을 것이고 계속 똑같은 상황이 몇 번 이고 반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갑작스럽게 늘어난 선택지들과 새롭게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도 힘겹고 너무 심적으로 부담된다는 것이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나의 성격인데 나는 절대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성격인듯 하다. 계속 걱정만 한다. 엉엉... 일단 지금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니 한결 개운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시원하고 미세먼지 농도도 괜찮으니 동생과 놀이터에 갔다 올 것이다. 지금 이걸 마무리 하면 18년 4월 19일 오후 6시 반 경이 된다. 동생과 놀고 와서 밥을 먹고, 수학을 조금 풀고 영어 공부를 한 후 공모전 검토를 하고, 핑거스미스 책 리뷰를 쓸 것이다. 지금 막 갈겨쓴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되는 나는 올해는 어느정도 쉴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위안 삼아 상담이 있을 다음 주 수요일 까지 잘 견뎌봐야 겠다. 오늘 저녁에는 설거지를 해서 엄마한테 애교좀 부려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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