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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츄] 5.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 마음에 물을 끼얹어서 어쩌자는 건지. 비가 오면 괜히 잡생각이 많아진다. 바깥에 나갈일이 줄어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요코하마에 비가 내렸고, 츄야는 뜻밖의 손님을 맞으며 마지막 휴일을 보내야했다.

 츄야.
 ...누님.

 예쁘고 커다란 종이우산을 쓴 채 서 있는 코요에 츄야가 놀란 듯 몸을 굳혔다가 결국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문을 열어준다. 대신 우산을 받아 접어주고 휴일엔 거의 오지 않으시더니 어쩐 일이세요, 태연하게 물었다.

 츄야. 내가 너를 데려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니?
 모두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기억하고 있죠.
 그럼,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내게 꼭 말하라고 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겠구나.

 츄야가 아무 대답않고 따뜻한 홍차를 내오자 입을 축인 코요가 조용히 말했다. 홍차엔 카페인이 들어가 있단다. 지금의 네가 먹기엔 그리 좋지 않은 음식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모를 건 또 어디있겠니.
 아무리 누님이래도 제 뒤를 캐고 다니시는건 별로 기분 좋지 않은데요.
 내가 뒤를 캤을 것 같니, 츄야?

 코요의 물음에 츄야의 입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확실히 코요가 자신이 아끼는 츄야의 뒤를 캐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녀였다면 요코하마에 떠 다니는 소문 하나를 잡아다 홀로 궁리 한 뒤 츄야에게 물음을 하러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코요가 확신을 갖지 못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의 코요는 츄야의 임신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누가 누님께 이 사실을 알렸을까.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병원의 의사와 무장탐정사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 하지만 병원은 포트마피아가 돈줄을 대어주고 있어 그 휘하에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고, 무장탐정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억지로 빼앗은 타인의 사생활을 적에게 떠벌릴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면...

 다자이 입니까.
 츄야.
 누님!
 츄야. 무작정 화낼일이 아니란건 너도 알고 있잖니.
 이건 실수고, 예정에 없던 일이에요! 그 새끼가 누님께 어떤식으로 입을 놀렸을진 모르지만 제가 먼저잖아요!
 그래. 당연히 너 자신이 먼저란다. 내게 중요한 건 다자이도 아니고 다자이와 츄야 네가 만든 아이도 아니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네가 낳을지 말지 확신도 하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사랑할 수 있겠니.
 ........
 내게 중요한 건 당연히 너란다, 츄야. 그러니 너무 열내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보자꾸나.
 ...죄송해요 누님. 조금 흥분해서.
 괜찮단다. 네가 이런게 한 두번이니.

 코요의 따뜻한 말에 츄야가 금새 몸을 풀고 쇼파에 눅진히 풀어진다. 사실 해줄 말이 있어서 찾아온거란다. 언젠가 말 해줘야지 생각만 하고 나도 한 동안 잊고 있었지. 츄야 네가 듣고 싶지 않아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야기를 하기 가장 좋은 때인 것 같구나. 어떠니 츄야. 듣겠니? 코요의 물음에 츄야가 조심히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이 전하겠다고 다짐하셨으니 제가 꼭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겠죠.
 글쎄... 사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네 머릿속에 혼란만 더 만드는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야.
 이미 완전한 혼돈의 시기이니 그냥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그래 그럼. 지루한 이야기겠지만 흘러라도 들으렴. 내가 조금 어릴 때의 이야기란다.

 길을 가고 있었지. 오늘 같은 비가 아니라 차가운 눈이 내리던 날이었단다. 왜 그 길을 걷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피아 일을 하던 중이었을거야. 그때 쯤이라면 내가 사랑하던 사람도 죽고 나만이 살아남아 홀로 임무를 받았었거든. 전대 보스는 탈출하려다 들킨 소년소녀에게는 자비가 없었기에 한 명은 죽이고 다른 한 명은 살려서 살인임무를 맡았었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코요의 모습에서는 슬픔이 아닌 그리움이 보였다. 이미 체념을 한 것인지, 혹은 과거로써 받아들인 것인지 그녀는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작고 허름한 고아원을 보았단다. 그곳에는 버림받은 아이들이 잔뜩 있었지. 고아원 자체가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빈곤한 곳이었어서 그런지 마당의 아이들 얼굴엔 슬픔이 때처럼 묻어 있었단다. 다만 그 아이들도 서로가 있기에 즐겁게 웃으며 뛰놀았지. 나는 그곳에서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단다.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

 누님, 설마 그건...
 츄야.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단다.

 그 날은 그냥 돌아왔단다. 초면인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기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으니까.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나 스스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 그때에도 아이가 혼자라면 그 아이를 찾아야지 생각했었단다. 그리고 아이를 찾는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구나. 7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니 꽤나 많이 걸렸지. 아이는 똑같았어. 슬픔이 지워지긴 커녕 7년을 더 살면서 겪은 고통을 묻혀놓고 있은 채였지. 혼자인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아이도 강한 척, 괜찮은 척을 하더구나.

 누님...
 츄야. 나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슬픔이 지워지고 고통이 씻겨지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내가 잊어버렸던 행복을 찾았단다. 나이 차는 많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아이의 어미라고 생각했어. 아이가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지, 다짐하며 지금까지 살았단다.
 .......
 제 부모님이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어릴 때의 기억이 왜곡된 모양이지.
 ...누님...
 내가 아끼는 아이가 아끼는 사람을 찾았을 때, 그 모습을 보면 좋으면서도 계속 치유받고 상처받길 반복하는게 그리 기분 좋진 않았단다.
 ........
 츄야. 다자이와 너의 마음에 무게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방향은 같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이제, 네가 아프고 상처받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아. 이제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모습을 봐야하지 않겠니. 내 다짐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게 내 바람이란다. 아무리 욕심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그건 정말 욕심이세요.

 츄야가 낮게 한숨쉬듯 말했다. 정말이다. 다자이와 츄야가 함께 그 아이를 책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그 아이만이 해당될 뿐이다. 코요의 말처럼 될리가 없었다. 다자이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것은 그간의 혐오로만 보더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제가 고아였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생각을 전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츄야에게 대답하기 바빠 뒤로 미뤄버렸다.

 다자이가 저와 마음이 같다고 생각하신다니, 진심이세요? 그 자식은 전혀 아니에요. 괜한 옛 정으로 휘둘리고 있을 뿐이죠. 그 새끼랑 같이 아이를 키우게 되더라도 그건 정말 아이만 해당되는 이야기지, 다자이가 저와... ...사랑을 하겠다는게 아니잖아요.
 츄야. 츄야는 다자이를 잘 모르는구나.
 .......
 츄야도, 다자이도. 너희 둘 다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겠지.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거야. 정말 옛 정에 휘둘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츄야 네가 다자이의 마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해한단다.
 누님. 사랑받는 것보다 버림받는게 더 무서운거에요. 적반하장이라고 하시겠지만, 제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선 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루 미뤘지만, 곧...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러나 츄야, 모두의 상황을 아는 나를 믿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구나. 심지어 다자이가 나를 직접 찾아 포트마피아 건물 내부까지 왔다는 것 정도는 한 번 생각해봐도 괜찮단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막아놓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니 말이야.

 코요가 돌아간 후, 츄야는 그저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누웠다. 지붕 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쏟아졌고 다만 자신은 비에 젖지 않았다.
 어느 이유로 버림받은 고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버림받는 자신. 누님 말대로 할까. 그러면 외롭지 않을까. 정말로, 다자이를 잡을 수 있는 걸까. 생명이라 인정하지도 않았던 이 아이를 그렇게 이용해도 되는 걸까. 나는,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는걸까. 오히려 죄 없는 생명을 버리려다 또 한 번 이용했기에 벌을 받는건 아닐까.
 츄야의 머릿속에 온통 혼란이 가득 찼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혼자가 아니게 될 수 있을까. 새로운 생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실은 뱃속의 태아와 다자이가 모두 제 곁에서 사라지고 나면 자신은 분명 외로움에 쓰러질 것이라는건 알고 있었다.
 외로움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서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앓고있는 병이었지만 다자이와 몸을 섞은 이후로 그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의 외로움을 기대고 있었기에, 그가 사라지면 자신은 결국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어 가라앉는 나룻배처럼 될게 뻔했다.

 몸을 섞는 중엔 외로움을 잊었다가 곧 있으면 그와 애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또 다시 홀로 버림받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시기가 길어지는 것 뿐, 모습은 같았다. 아이를 키우느라 만날 때, 혹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때까진 외로움을 잃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나면 다시 그와 그의 애인을 보며 또 다시 홀로 버림받을지도 모르지만 어짜피 같은 모양새다.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

 당연히, 또 견딜 수 있지 않을까.

@gagru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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