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요? 멀미가 있냐고 물어 주는 목소리가 섹시하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어이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어넘겼고. 어쩌다가 이런 모양이 된 건지는 몰라도,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데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닥터 마커스— 하고 불렀더니 그는 고개를 조금 더 숙여서, 잘 넘겨 빗은 백색에 가까운 금발 머리를 흩트린다. 본즈는 그의 정수리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마커스가 고개를 드는 일은 없었다. 그는 숨을 고르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을 아니, 단어를 고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손을 조금 꼼지락거렸더니 고집스럽게 딱 붙잡는다. 생각보다 악력이 강했다. 하긴, 그러니까 기계도 쥐어뜯어 버렸겠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게 손쉽게 떨어지는 기계 장치라니. 물론 만든 사람이 온전히 무기로 쓸 생각이 없었으니 그랬겠지마는.

 “하얀 제복이 더 잘 어울려요.”

 “…뭐, 어느 쪽이든 제복은 몸에 딱 맞게 맞추니까—”

 “그런 뜻이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마커스는 이제 본즈의 등허리를 더듬거렸다. 거기 어딘가에 자신이 찾는 게 있기라도 한 듯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을 멍청하게 내버려뒀다. 그랬더니 이제 고개를 들어 올린 마커스의 눈이 누구처럼 새파랗게 빛났다.

 “함장님 생각이라면 관둬요.”

 “뭐…? 아니—”

 “거짓말.”

 지금 내 앞에서 제임스 커크 생각을 했잖습니까.
 낯게 중얼거리는 마커스의 입술이 본즈의 귓가에 머물렀다. 속삭이던 입술을 움직여서 그대로 본즈의 귓바퀴를 물어버린 마커스가 자기가 잇자국을 낸 그 자리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쪽쪽 거리는 소리가 귓속으로 질척하게 파고들었다. 기어코 마커스가 혀를 내밀어 할짝거리자, 본즈는 몸을 크게 비틀었다. 미쳤어? 본즈가 꽥 지른 소리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전신 스캔에 10분, 담당 의사가 분석하는데 5분, 제임스 커크가 딴짓하느라 까먹는 시간이 5분. 합계 20분 정도 아직 널널하니까 침대에서 가볍게 만지는 것 정도는 괜찮을 텐데요.”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왜 만져? 어디를?”

 마커스는 꼭 그걸 자기 입으로 다 설명해야겠느냐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본즈의 앞으로 손을 가져가서 둥글게 말아 쥔 손을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동작을 취했다. 미친. 본즈는 제 입을 거르고 나오지 못한 욕설을 마커스의 면전에 뱉었고. 마커스는 예쁘게 웃었다.

 “2 주 동안 도둑맞았던 연인을 이제야 찾게 됐는데, 이 정도는 가벼운 거 아닙니까?”

 “연인이라니, 고백했다가 차인 상대겠지.”

 본즈가 냉정하게 일갈했더니 마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장님도 깨어났는데, 정말로 날 찰 겁니까? 물론 내가 좀 성급하긴 했지만. 원래 그런 때를 노리는 거잖아요?”

 타이밍은 정확했어요. 하고 말하는 마커스의 이마에 본즈가 머리를 들이박았다. 떨어지시죠. 닥터 마커스. 아저씨를 놀리는 짓이라면 진작 관두라니까. 본즈가 투덜거렸더니, 그는 손을 풀어 놓아줬다. 마커스에게 잡혀 있던 팔뚝이 욱신거렸다. 힘도 장사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질문질 구겨진 옷을 폈더니, 마커스가 말했다. “카스티엘이라고 불러요.” 본즈는 그를 향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제 앞을 가로막은 마커스의 옆으로 돌아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손목을 붙들렸다.

 “…어디 가요?”

 “어디긴.”

 내가 갈 곳이 짐한테 밖에 더 있나? 그렇게 대꾸했더니 그는 얼굴을 구겼다. 구겨진 얼굴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이상하게 맞닿아서, 그는 사라질 듯이 환하게 빛났다. “제임스 커크 말고 다른 사람의 곁으로 가보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멀거니 쳐다봤더니 마커스가 왈칵,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잠자코 넘어가려고 했는데. 당신이 하는 말을 들으니까 화가 나네요. 장난도 아니고, 놀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얌전히 기다리는 내 앞에서 제임스 커크 운운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에요. 그러니까 5년째 짝사랑 중인 멍청한 남자를 위해서, 싫어도 좀 참아요.”

 말을 마친 마커스의 입술이 본즈의 입술을 삼켰다. 놀라서 눈을 끔뻑거렸더니, 마커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제 새파란 눈동자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이 시선을 섞었다. 입안에서 움직이는 그의 혀는 마치 따지는 것처럼 강하게 본즈를 옭아맸다. 눈을 감을 틈도 없이 끝나버린 키스에 멍청히 서 있는 사이, 마커스는 본즈의 입술 위로 늘어진 침까지 손수 닦아주며 한숨을 뱉었다.

 “오늘 건 첫 키스로 안 셀 겁니다. 창피하게도 내가 자제력을 잃었으니까요. 사귀고 나서 정식으로 세는 걸로 해요.”

 말을 마친 마커스는 왔을 때처럼 바람같이 커크의 병실을 떠났다. 본즈 혼자 남아서 멍청하게 서 있는 사이에 들어온 커크가 발랄하게 소리쳤다. “본즈! 나 이제 멀쩡해!” 좋다고 웃으면서 달려드는 커크가 본즈를 꽉 붙들었다. 이번에도 네 덕에 살았네. 나는 이제 너 없으면 어떻게 사냐. 주절거리는 커크의 부스스한 정수리를 본즈는 감흥 없이 쓰다듬었다. 그래 당연하지. 나 없으면 네가 어떻게 살아 있겠냐.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본즈는 제 손안에 있는 것과 퍽 달라 보이던 마커스를 떠올렸다. 장난이 아니라고? 작게 중얼거렸더니 품 안의 커크가 묻는다. 응? 뭐가? 본즈는 고개를 쳐드는 커크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누른 만큼 품에서 불편하다며 움직이는 녀석의 말을 무시한다. 결국, 커크는 조금 화를 내면서 떨어져 나갔다. "환자를 대하는 게 좀 엉망 아니야? 닥터 맥코이?" 커크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본즈는 침대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커크는 물을 마시겠다며 주변을 뒤엎고. 본즈는 이제 좀 살만 하냐고 불퉁한 소리를 뱉었다. 그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까지 으쓱거리는 커크는 확실히 다 나아 보였다. 5년 참사 끝 무렵에 급하게 지구로 돌아온 보람이 있는 모습이었다. 커크가 신나게 움직이는 사이에 머리칼이 반짝거린다. 붕 떠버린 먼지들이 정처 없이 흩날리고,  

 그런데 이제 나는 어떡하지?

 본즈가 벙긋거리는 말이 병실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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