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으로는 아마 다음 날 새벽부터 빅터가 찾아왔던 걸로 기억해요.”




큰 누나의 목소리가 저를 깨웠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푸른빛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이 창밖으로 보였죠. 큰누나는 아직 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로 입만 움직이고 있었어요. 제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큰 누나의 귀에 들어갔을 때 큰 누나가 말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간부터 너 찾는 사람이 있어. 어떻게 좀 해 봐. 시끄럽잖아.”




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방 밖으로 나섰어요.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아직 졸린 저는 반쯤 눈을 뜬 채로 하품을 하고 있었는데 1층에 도착해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지?’라는 생각이요. 애초에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 말고는 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 중에도 아직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고 저는 그런 생각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났어요. 말로만 듣던 유령 같은 건가 하는 의심이 생겨났죠. 집의 현관문 앞에 선 저는 계속 주저했어요. 딱히 무섭지는 않았는데 찝찝하기는 했으니까요. 제가 쓸 때 없는 생각으로 현관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무척 익숙한 목소리였죠. 그 목소리는 그저 제 이름만을 부를 뿐이었어요.




“데미안!”




그 목소리에 저는 현관문을 열었어요. 문을 열고 앞을 봤을 때 빅터의 회색 빛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빅터가 제게로 다가왔고 저는 멍하니 빅터만 바라 볼뿐이었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어요. 빅터는 “오늘 일 쉬는 날이에요.”라고 하며 제 셔츠 단추를 풀었어요. 저는 빅터의 행동에 놀라 살짝 뒤로 물러섰는데 빅터는 웃으며 “단추. 잘 못 끼워져 있는데요?”라고 말했어요. 잠결에 급히 나오느라 제가 아무렇게나 채우고 왔었던 거였죠. 갑작스러운 빅터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긴 했지만, 딱히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다시 제게 다가온 빅터를 보면서 가만히 있었고 빅터는 제 단추를 알맞게 다시 채웠어요.

저는 빅터에게 물었어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빅터가 대답했죠. “어제 차라도 한잔 마시자면서요!” 빅터의 대답에 저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죠. “그건 맞는데... 지금 몇 시인지는 아세요?” 빅터가 말했어요. “네. 아마 새벽 6시쯤?” 저는 그런 빅터의 대답에 웃음만 나오더라고요. 일단 빅터를 안으로 들였어요. 빅터를 집 안으로 들여오면서 본 하늘은 어느새 살짝 노란빛을 머금은 하늘이 점점 퍼져가고 있었어요. 

저는 빅터를 공용 부엌의 의자에 앉히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저는 큰 누나의 방으로 향했어요. 빅터를 혼자 두기 싫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쿵쾅거리며 빠르게 올라갔어요. 그 덕에 방에 들어와 보니 침대에서 앉아 있는 큰 누나가 저를 째려보고는 크게 화를 냈어요. 저는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사과를 하고 전에 레이크 부인에게서 받은 찻잎이 든 병을 들고 돈을 얼마 챙겨 공용 부엌으로 향했어요. 그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내려갔죠.

공용 부엌에 도착한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브라운 부인의 허락 없이 식기를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죠. 브라운 부인은 생각보다 따스한 분이셨지만, 허락 없이 식기를 쓰는 것을 달가워하진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빅터에게 말했어요. “빅터, 혹시 빅터가 사는 곳으로 가도 될까요?” 빅터는 뭔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딱히 말은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빅터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아침을 맞았어요.

아침의 거리는 약간 쌀쌀하기도 했지만 또 따스했어요. 거리를 비춰주는 햇빛 때문이 아니었어요. 아침을 맞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따스함이 쏟아져 김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물론, 정말 보였다면 다 그분들의 입김이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아침은 그 날 하루가 제게 좋은 날이 될 거라는 징조처럼 보였어요.

길을 걷던 우리는 빅터의 말에 잠시 멈춰 섰어요. 빅터는 따라와 보라면서 제 팔 목을 잡아 이끌었죠. 빅터에게 이끌려 가는 동안 빵 냄새가 났는데, 빅터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더 짙어졌어요. 빅터가 걸음을 멈췄을 때는 어디로 고개를 돌리던 갓 구운 빵 냄새들이 진동했어요. 조금은 어지러울 정도로 깊은 향들이 여기저기서 났었죠.

많은 빵집들이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각자 선호하는 빵가게로 들어가고 있었죠. 저는 그 풍경을 조금 넋 놓고 보고 있었어요.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거든요. 제가 멍하니 그런 거리의 풍경을 보고 있을 때 빅터는 그저 웃으며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하하. 사실 웃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히 빅터는 저를 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을 거예요. 항상 그랬거든요.

빅터는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저를 이끌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빅터를 따라갔고요. 빅터는 빵집으로 향하면서 말했죠. “차를 마시는데, 곁들여 먹을 게 있어야지.” 그런 빅터의 말을 듣고 제가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빅터, 생각보다 사치스럽네요.” 그러자 빅터가 “살면서 하루쯤은 사치를 부려도 된다더라고요! 그리고 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은 날이니까요.” 저는 말없이 “하하”하고 빅터를 향해 웃음을 보여 줬어요.

빅터를 따라서 들어간 빵집은 정말 사치스럽게 보였어요. 가게 장식도, 빵이나 과자도 하나 같이 다 비싸 보였거든요. 그런 제게 빅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골라서 가져와요.” 하고 말했는데 저는 선뜻 나서지 못했어요. 빅터는 빵과 과자들 틈에 저를 두고 가게 주인과 인사를 나 구고 있었어요. 저는 빅터를 보며 ‘어디서 돈이라도 주웠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가게 안에 빵이나 과자들은 정말 먹음직했어요. 형형색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듯한 쿠키, 여러 모양의 빵. 하지만 저는 제일 싸 보이는 아무것도 장식되지 않은 동그란 쿠키만 5개 골랐어요. 그리고 빅터에게 들고 갔어요. 빅터는 놀란 눈으로 저랑 제가 들고 온 쿠키를 번갈아 봤어요. 그리곤 말했죠. “속 안 좋아요?” 저는 가게 주인과 빅터를 번갈아 보다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가게 주인이 잠깐 제빵실로 향했어요. 주인이 사라진 걸 본 제가 빅터에게 말했죠.




“빅터, 우리 이 가게에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요?”



“아무리 사치를 부린다고 해도 이건... 정말 너무 비싸 보이는 것들 뿐이잖아요.”




빅터는 제 말을 듣고 처음에는 멍하니 있다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빅터에게 “목소리 낮춰요. 그냥 나가요 우리.”라고 했지만 빅터는 계속 웃기만 했어요. 그리고 얼마 안 가 가게 주인이 빅터의 목소리를 듣고 제빵실에서 나왔고 빅터에게 말을 걸었어요. 둘은 루아 슈 말로 이야기하면서 저를 보다 웃었는데, 저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어요. 그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죠. 곧 웃음을 멈춘 빅터는 제게 말했어요.




“얼마라고 생각한 거예요? 저 돈 그렇게 많이 없어요. 여기 있는 거 다 모양이랑 맛 흉내 낸 거예요. 그래서 별로 안 비싸요. 그리고 제가 가게 주인분을 도와준 적이 많아서 저는 더 싸게 살 수 있고요.”



“... 미리 말을 해주지 그러셨어요!”




저는 한 숨을 내뱉고 빅터를 노려봤어요. 빅터는 미안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제게 사과했어요. 저는 계산하려던 쿠키를 제자리에 두고 기분이 나빠서 정말 비싸 보이는 것만 골라서 가지고 다시 왔어요. 하지만 엄청 많이는 못 들고 오겠더라고요. 아무리 싸도 저나 빅터나 돈을 함부로 쓸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으니까요. 계산을 하는데 가게 주인이 진열된 것들 중에 몇 개를 더 챙겨서 우리에게 안겨 줬어요. 빅터 말로는 나인 하츠에 온 거를 축하하고 제 모습이 귀여워서 더 챙겨 줬다고 했어요. 루아 슈 말로 가게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서면서 빅터에게 물었어요. “저렇게 해도 장사돼요?”라고. 그러자 빅터가 “조금만 더 걷다 뒤 돌아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빅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빅터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빅터가 제게 물어 왔어요. “루아 슈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제가 대답했죠. “그냥, 어렸을 때 학교에서요.” 그때는 애써 떠오르는 테스 도련님의 모습을 무시하지 않아도 됐어요. 빅터 주변에 있으면 그냥 테스 도련님의 모습이 떠오르지를 않았거든요.

가게에서 나온 지 조금 지났을 때 빅터의 말이 생각나서 뒤를 돌아봤어요. 왜 빅터가 그런 말을 한지 알 것 같더라고요. 빅터에게 “어떻게 사람이 없을 때를 맞춰서 저를 데려간 거예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혹시 좀 있다 빅터와 차를 마시는 중에 침묵이 흐를 때를 대비해서요.



햇빛은 점점 더 거리의 많은 곳에 스며들었고, 거리는 점점 더 붐벼 갔어요. 전 날이 떠올랐죠. 그렇게 보니 참 이상했어요. 빅터는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안지 하루밖에 안 되는 제게 찾아와서 이렇게 잘해주는지, 왜 저를 볼 때마다 그렇게 웃어주는지 같은 의문이 머리에 떠돌았지만, 빅터가 말을 걸면 곧 그 의문들도 사라졌어요. 빅터의 목소리에는 악의가 없는 것을 뛰어넘어서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그 날은 그 감정이 뭔지 알 수는 없었어요. 그저 빅터의 목소리를 통해서 편안함 느낄 뿐이었어요.


?

벌써 12월이 됐네요! 시간이 생각보다 빠릅네요!

곧 기말고사가 다가오지만 이번에는 중간고사보다 시간이 널널하기 때문에 중간고사 처럼 소설을 안올리는 일은 적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나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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