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꿈은 첫사랑과 결혼하는 거였다.

나는 감수성이 매우 강한 게이 소년이므로 어릴적부터 늘 첫사랑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근데 그게 김태형이어서 존나 문제인거지.


아무튼 내가 김태형에게 약한 이유라면, 내 제일 친한 친구기도 하지만. 이 새끼는 언젠가 나의 꿈이였기 때문이다. 재수없는 사실이지만.


나는 태형이 내 어깨에 엎어지자마자 한숨을 팍팍 쉬며 익숙하게 비밀번호키를 눌렀다. 태형은 내가 저의 집 비밀번호를 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존나 예민한 새끼라 들키면 도둑놈 새끼네, 지랄 발광을 할게 뻔했기에 숨겼다. 그것보다 또, 게이가 저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게 끔찍하다며 난리를 칠게 뻔했기 때문이다.


태형은 아무리 봐도 호모포비아 였다.

난 순간 김태형의 그 지긋지긋한 게이 잔소리가 떠올라 인상을 구겼다.


“……….”


겉으로 봤을때 날씬한 태형은, 사실은 돼지 새끼 인게 틀림없다. 난 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태형을 대충 침대에 눕혔고, 땀범벅에 헐떡거렸다. 


“야, 씨발. 팔 좀.”


태형은 습관처럼 긴 팔과 다리로 날 옭아맸다. 팔이 내 목에 들어왔다. 숨도 못 쉴정도로 무거워서 켁켁 대자 태형이 조용히 웃었다.


“항복할꼬야?”


태형은 혀가 다 꼬부라져서 말했다. 태형의 숨소리에선 독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태형은 눈을 꼭 감고 즐거운듯 웃고 있었다. 재수 없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박지민”


허, 아직 정신은 안나갔군. 난 흘낏거리며 태형을 쳐다봤다.


“세상에서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여자친구 이름이나 전여자친구 이름을 부르면 한 대 때리고 가려고 했는데. 난 태형의 낮은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불도 켜지 않아, 달빛에 의존해 태형을 쳐다봤다. 저 예쁜 긴 속눈썹.


”항복할꺼냐구.“

”뭔 항복…“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형이 날 더 강하게 옭아맸다. 아 진짜 숨막혀! 무거워. 씹새끼야! 내가 소리를 질러도 태형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항복해라. 박지민.“

”아, 씨발.뭐!“

”아,빨리.“

”미안해, 김태형.“


사실 하나도 안미안한데 진짜 숨이 막혀 죽을것같아서 태형에게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빌었다. 내가 게이여서 미안한건지, 민윤기랑 사겨서 미안한건지. 내가 너를 쌩까서 미안한건지...

태형의 머리칼이 내 볼에 찰싹 달라붙었다.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고, 김태형.


사실 내가 뭘 잘못한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하면 뭐.“

”아. 놓으라고. 진짜 숨막히고, 덥다고 . 시발“


내가 화를 내도 태형은 요지부동이다. 돌덩이같은 놈. 내가 아무리 바둥거려도 태형은 꼼짝도 안한다. 이 새끼 진짜 100키로 아냐? 나 힘 꽤 센데..




“미안하면 그 새끼랑 헤어질거야?”



태형은 낮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내가 평생늘 좋아하던 그 로우톤의 목소리.



“…………..”

“그 얼굴 허여멀건해가지고 박윤긴가 김윤긴가 걔…”



태형은 윤기형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말했다.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헤어질거냐고오….

……

대답해. 박지민.


-

태형은 그 뒤로 잠에 들었고, 나는 씨발 거리며 몇십분을 고생한끝에 태형에게 빠져나올수 있었다. 나는 침대 맡에 앉아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말랑이😘로 저장되있는 윤기형에게 급하게 카톡을 보냈다. 윤기형의 볼은 찹쌀떡같다. 그래서 저장한 이름인데, 아무튼.


[지민아 무슨 일 있어?]

[지민아]

[지민아]


거의 두시간 가량 연락을 못한 탓에 이미 많은 카톡이 와있었다. 부재중 전화 세통. 난 급하게 윤기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 나 김태형 취해서 잠깐 얘네 집이야 

카톡을 보내자마자 윤기형에게 전화가 왔다. 


“형. 나 여기 태형이 집이야. 미안해. 내가 집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액정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


아, 시발! 야!


내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떨어진 휴대폰. 태형은 언제 잠들었냐는듯 엎드려서 휴대폰을 던지고 날 올려다봤다. 


“아. 씨발. 시끄러워. 잠 좀 자자.”


술에 떡이 된 태형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다시 엎어졌다. 나는 한숨을 팍팍 쉬며 휴대폰을 주우려 쪼그려 앉았다. 

악! 그 때 태형은 내 손을 발로 꽉 밟았다.


“너 미쳤냐?”


태형은 내가 휴대폰을 줍기도 전에,


“…………”


휴대폰은 옷장에 부딪혀서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앗, 미안. 내 실수.”

“………….”

“잠 좀 자자.”


태형은 언제 그랬냐는듯 뒤에서 날 끌어안고 발라당 누웠다. 내가 씨발, 씨발거리며 욕을 하자 태형은 눈을 꼭 감고 내 볼에 얼굴을 부벼댔다.



”야, 그냥 내가 핸드폰 하나 사줄게.“

”………“

”존나 귀찮게 떽떽거리네.“


개새끼.




-


나는 다음날도 꼬박 태형의 옆에서 잠들게 됐다. 사실 이 개새끼 뿌리치고 가면 그만인데 그러지 못했다. 태형은 술에 취하면 꼭 누가 옆에 있어야 잠이 들었다. 태형은 선천적으로 잠에 잘 들지 못했다. 매일 수면제를 먹는 태형, 가끔씩은 우울증약도 먹는 태형. 태형은 멀쩡하게 생겨서 가끔 우울함에 몸부림치며 밖에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난 그럴때면 항상 태형의 집에 찾아가 어떻게든 녀석을 밖으로 나오게끔 했다. 


태형은 참 피곤한 짓거리 한다며 비웃었고, 하지만 10번중 10번이나 태형은 늘 내가 오면 밖에 나왔다. 잠도 잘 잤다. 


아무튼 태형은…


태형을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했다.

이젠 사랑은 진짜 진짜로 아니었다. 난 현재 윤기형을 사랑하고 있으니깐.


난 밤새 잠이 들기전에 태형에 대한 감정을 정의 했다.


난 태형을 두드려패고싶었다.


가끔 태형을 우리 집에 유인해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키고 밧줄로 묶고 죽기 직전까지 후드려 패는 상상을했는데.

좀 싸이코같지만. 아무튼 난 이 새끼를 두드려 패고 싶은 감정으로 정의했다.


근데 두드려 패고 싶은 감정도 사랑이면 어떡하지.


태형은 잠결에 가끔 나를 확인했다.


“지민아..“


태형이 웅얼거리며 날 불렀다.


이 감정도 사랑이라면 어떡하지.


-


난 다음날, 포기하며 태형의 집을 청소했다. 눈을 뜨자마자 한숨을 팍팍 쉬며 박살난 휴대폰을 노려봤다. 어휴 .개새끼.

태형은 눈이 부신지 벽에 고개를 찰싹 달라붙은 채 자고있었다. 술 마셨다고 코를 어찌나 고는지. 넓은 방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가장 큰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다.


“……….”


가끔씩은 여자 팬티나 스타킹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마음이 아픈 시기는 지났다. 원래 이런 새끼란걸 알고 있었기에. 내가 대청소를 해줘도 태형은 고마워하지 않을걸 안다.


“………..”


난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태형의 등짝을 노려봤다.


정신 차릴 때까지 뚜드려패고싶은 애.


그냥 내가 보기 힘들어서 그런다. 난 쓰레기더미를 버리고 바닥도 열심히 닦았다. 음식 국물이 말라서 잘 안 떨어질때마다 태형을 패는 상상을 했다.


저 미친놈 장가는 갈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

태형은 지금 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다. 처음엔 내가 해준 콩나물국을 노려보다가, 그 다음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를 노려봤다.


[네가 여기 왜 있냐?]


나는 대답 대신 숟가락으로 태형의 머리를 때렸다. 별안간 얻어맞은 태형의 얼굴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태형은 머리를 감싸며 나를 노려봤다. 눈이 팅팅 부어서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만 노려보고 밥먹자.]

[……..]

[우리 어제 화해했어. 내가 어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항상 태형이 힘들 때, 집 밖으로 나오게끔 했고, 지금도다. 또 좆같은 자존심으로 화를 빽 낼 김태형은 뾰루퉁한 얼굴로 콩나물 국을 떠먹었다. 


[어제 하도 김태형이 나 없으면 못산다고 징징거리고, 밤에도 지민아. 지민아. 부르고.]

[아, 씨발. 구라치지마라. 박지민.]


진짠데. 난 쩝쩝 거리며 콩나물 국을 떠먹었다. 태형은 나를 흘낏 흘낏 훔쳐보며 콩나물국을 떠먹었다. 우린 걸신들린것처럼 밥을 먹고 사이좋게 한 컵으로 물도 나눠먹었다.


태형은 컵을 탁자위에 탁, 올려놓으며 말했다.


[고맙다, 박지민.]

[……..]

[난 역시 너 밖에 없는것같애.]


가슴을 찡 하게 울리는 말에도 난 피식거리며 그릇을 정리하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태형은 일곱살짜리 애기처럼 내 설거지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고마우면 핸드폰이나 사줘. 개새끼야.]


태형은 내 말에 픽픽 웃었다. 야 밥먹고 대리점가자. 그게 얼마나 한다고.


역시 있는 집 자식은 다르다. 태형은 여느때처럼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티비를 봤고, 나는 티비 소리를 들으며 설거지를 했다.  


내가 저 미친놈 장가 들 때까진 옆에 있어줘야하는데.


태형은 내 심정을 알까.



[……..]


알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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