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아깝지 않냐? 인생이 아깝지 않냐고.


전혀 안 아깝다고 오늘만 해도 열 번은 말한 것 같은데 지독한 표지훈은 이 새벽에 전화까지 걸어가며 민호를 졸라댔다. 젊음, 청춘, 이때만 할 수 있는 경험…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요는 놀러 나가자는 거다. 책상 앞에서 골머리를 썩던 민호가 답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안 아깝다는 지겨운 답을 한 번 더 해야 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봐. 대답 못하는 거. 너도 끌리지?”


그래, 맞았다. 웃겨 죽겠다는 목소리로 제 감정 선을 콕 집어내는 표지훈이 얄미우면서도 제대로 된 맞대응 한 번 못 하는 건 그의 말이 정확해서다.


“안 돼. 나 가사 첫줄도 못 썼다고….”


거절하는 목소리가 아까 낮에 비해 훨씬 시들해졌다는 건 지훈만이 아니라 민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에라이. 민호가 한 시간 넘게 꽉 쥐고 있던 펜을 집어 던졌다.


“넌 다 썼어?”

“다는 아니고, 대충.”


민호도 대충 뼈대는 잡아 놨다. 도저히 거기에 살이 안 붙어서 그러는 거지. 민호가 던졌던 펜을 주우려고 팔을 뻗었다. 아, 진짜 하기 싫긴 하다. 가사야 중학생 때부터 써왔지만 이런 식으로 데드라인이 있고 남에게 검사 받아야 하는 글을 쓴 적은 많지 않아서 그런지 늘 힘들다.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끙끙 앓으며 기한인 일주일을 싹 날려먹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제야 주제는 나왔는데 또 그것 뿐. 이 주제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전혀 모르겠는 건 아닌데 무슨 가사를 갖다 붙여도 뜬구름 잡는 얘기 같고, 유치해 보이고, 민망하고…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중학생 때 썼던 가사집을 들여다보니 그 당시의 고민이나 생각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감상에 젖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열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진짜 밤샘 각이다 싶어 얼른 가사집을 덮고 책상에 앉았지만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를 동안 하얀 노트에 적힌 건 단어 몇 개가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딱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가사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다고 나오냐?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색다른 경험도 하고! 이런 것들이 다 영감이 되는 거지."

"영감이 되면 뭐 해? 가사를 안 쓰면 뭔 소용인데."

"딱 두 시간만 놀고 들어와서 밤새서 쓰자. 나도 밤 샐게. 어?"

"……."

"야 두 시간 놀아도 세시밖에 안 돼. 한 네 시간 각 잡고 쓰면 딱 나오지. 우리가 한두 번 써봐? 알잖아."


확실히 삘 받으면 술술 써지긴 한다.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머리 환기 좀 시키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밤새서도 못 쓰면 점심시간도 있지 않은가. 점심 굶고 더 쓰면 되지. 그러고도 안 되면 수업 시간에 몰래 써도 되고. 자기합리화를 훌륭하게 마친 민호가 자존심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어딘데? 전화기 너머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포복절도하는 소리에 딱 두 시간 만이야, 덧붙이기도 했다.



블락버스터 3

Written by. 반짝



아.


“야 우리 좆 된 거 아니냐?”


시발.


“얼른 뛰어.”

“어디로?”

“학교지 당연.”

“교복은?”

“체육복 입어 걍!”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12,474 공백 제외
1,0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