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도를 잡았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둘이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이후 이야기는 뒷편인 건기(乾期)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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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 하루는 늘 비슷했다.


애초에 사제로, 신부로 사는 이가 그러하듯. 늘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구마 사제로서 일하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가끔 외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 눈에는 그저 재미없는 일상의 반복일 뿐이었다.



“비가…….”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결국 빗줄기가 굵어진다. 잠깐 지나갈 소나기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밤새 내릴 모양이었다. 일상적인 일이다. 늘 일기예보가 맞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두 방울 떨어질 때는 걸을 만 했는데, 빗줄기가 굵어지니 그것도 할 것이 못 된다.



‘왜 하필…….’



윤은 잠시 비를 피하면서 작게 한숨만 내쉬었다. 우산을 챙겼어야 했는데. 이렇게 후회를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비를 맞고 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차갑게 식은 눈은 여전히 변화가 없는데, 미묘하게 움직이는 눈썹으로 생각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신부님!”

“…….”

“거기 신부 아니야?”

“…….”



아까부터 저 멀리서 익숙하고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귀에 턱턱 걸려서 결국 고개를 돌아보게 만드는 목소리. 최윤은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푹 숙인 채 발끝에 톡톡 튀는 빗방울을 바라보던 이가 고개를 든다. 그러면 꼭 거짓말처럼 택시가 앞에 서 있곤 했다.



“신부님. 이 비 오는데 어디 가요?”

“…….”

“택시 태워줄까?”

“아닙니다.”

“아, 왜.”

“…….”



이젠 우연히 만났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일이었다. 분명 저 인간은 택시기사라고 바쁘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꼭 이 시간이 되면 주변을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일주일에 몇 번씩 얼굴을 마주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제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티가 날 정도로. 최윤은 오늘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다시 한번 후회했다. 애초에 여기 머물지만 않았어도 만나지 않았을 인연이었다.



“공짜 택시 태워 준다니까?”

“제가 언제…….”



택시 타고 싶다고 했습니까. 혀끝까지 올라오는 대답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면 서로 민망해서 얼굴도 보기 힘들 텐데, 윤화평이란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런 뜻 없는 맴돎에 약간 어지러움을 느낀다.



“비 오잖아. 나도 어차피 그쪽 지나가야 하니까 타.”

“…….”

“응? 거기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제가…어디 가는 줄 알고 그쪽으로 간다고 말하는 겁니까.”

“어허. 태워준다고 할 때 빨리 타라니까. 이거 쉽게 그칠 비 아니다. 내가 딱 알아.”

“…….”

“내가 택시 하루 이틀 몰고 다닌 줄 아나.”

“…됐습니다.”

“고집은. 진짜.”



금방 갈 것처럼 창문을 닫는다. 최윤은 이제야 이 어지러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시련조차 주님이 내리신 것인가. 이렇게 과하게 얽힌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가. 그늘에서 자란 식물처럼 하얗고 길쭉한 어린 신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달칵.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 한참 뒤에 귀에 들렸다. 최윤은 자신이 약간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지러움은 감기 때문인가. 아니면 구마 의식의 후유증인가. 그것도 아니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흐릿한 시선에 인영이 턱 잡힌다.



“신부님. 저기요?”

“…….”

“무슨 우산 없으면 걸어 다니질 못해요? 신부님들 다 그래?”

“…아닙니다.”

“그럼 뭐야. 내가 우산 들고 이 택시에 타주십사. 하고 왔더니.”

“…….”

“대답도 없고.”

“…그게.”

“신부. 아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거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있긴 해? 아, 기도?”

“윤화평 씨.”

“왜요. 마테오 신부님.”

“…….”



저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최윤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능글능글하게 말을 돌리기 시작하면 말려들기 일쑤였다.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진지하게 하는 말은 대충 넘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끝까지 따라붙는다. 지금도 그랬다. 그저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결국 모든 이유는 자신에게 있으니 누구에게 한마디 덧붙일 수도 없었다.



“가자. 빨리.”

“…….”

“어서. 뭐해. 나 손 떨어진다?”

“그러니까…….”

“아이고. 택시 기사가 손 떨어지면 이제 뭐 해 먹고 사나.”

“…….”

“신부님이 책임져주나?”

“…맘대로 하세요.”

“빨리. 나 택시 문도 안 잠그고 왔어. 키도 저기 있다고.”



그게 최윤 잘못은 아닌 것 같다만, 저 남자는 늘 저런 식으로 말을 한다. 어차피 저 고집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애초에 무시하거나, 얽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뿐인데 최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통에 계속 휘둘리기만 했다.



“얌전히 좀 오면 좋아.”

“…….”

“늘 가던 곳으로 가?”

“다 아시면서 왜 물어보세요.”

“다른 약속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아닙니다. 거기로 가주세요.”

“그럼 내가 이쪽 길은 훤하지. 편하게 쉬어. 신부님. 사탕이라도 줄까?”

“…됐습니다.”



하여튼 저렇게 말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했다. 하지만 평생 눈칫밥 먹고 살아온 화평인 그 말 속에 든 뜻이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잠자코 택시를 몰았다. 괜히 아까 권하다 거절당한 사탕이나 하나 까서 입에 집어넣었다. 사탕 굴리는 소리가 택시 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

“…….”



이렇게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것도 익숙해질 것도 같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꼿꼿하게 옆자리에 앉은 뒤 안전띠까지 맨 신부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곁눈질로 신부를 힐끔거리던 화평이의 눈만 절로 바빠진다. 저렇게 꼿꼿한 사람은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까. 하신 재미를 논하기엔 모두 팔자가 사납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화평은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용케 참아냈다.


신부 놀리는 맛에 주위를 기웃거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여기서 조금만 선을 넘으면 미련 없이 차를 세울 사람이었다. 그리곤 찬바람 쌩쌩 날리는 서릿발 말투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겠지. 신을 받은 것도 아닌데 벌써 미래를 본 기분이었다.



“무슨 가을비가 이렇게 궂게 오냐.”

“…….”

“어제 세차했는데, 하여튼. 재수가 없으니.”

“…….”

“신부님 우산 안 가져온 거랑 내가 세차해서 비가 오나 보네. 안 그래?”

“그럴지도 모르죠.”

“아, 진짜 재미없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팍팍해?”

“재밌으라고 사는 거 아닙니다.”

“말이나 못 하면.”

“…….”

“알았어. 알았어. 거의 다 왔으니까 내린다고 하지 마. 비 오는데 아는 사람 그냥 보내면 찝찝해서 하루 내내 골머리 썩으니까.”

“…….”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까. 오른손이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봤다. 화평은 허겁지겁 문을 걸어 잠갔다. 저 신부는 곱상하고 아무것도 모르게 생겨서 저렇게 무모하다니까. 자기가 귀찮게 굴어버린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꼭 신부 탓을 했다. 물론 그것이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자는 신호이긴 했지만, 속세와 반쯤 단절되어서 사는 이에겐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제 궁금한 게 생겼어? 뭔데?”

“…….”

“내가 잘못했어. 말해. 가만히 있을 테니까.”



금방 입을 다물어버리는 얼굴 보고 화평이 먼저 선수를 친다. 열심히 운전만 하겠습니다. 이런 티를 팍팍 내면서 앞만 보고 있자니 오른쪽 귀로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살살 들린다. 쨍하면서도 낮은 목소리. 화평은 그런 목소리를 퍽 좋아했다.



“이렇게 만날 때마다 공짜로 택시를 태워주면, 뭐가 남습니까?”

“뭐? 겨우 그거 물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분위기를 잡은 거야?”

“윤화평 씨 삶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개인택시도 아니고, 회사 택시인데.”

“…….”

“사납금은 다 채우셨습니까?”

“와, 진짜. 꼭 누구 같은 소리 한다.”

“…….”

“신부나 박수나 나보면 하는 소리 다 똑같지.”

“윤화평 씨가 얼마나 미덥지 않으면…….”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응?”

“…….”



겨우 물어보는 소리가 사납금 다 채웠냐는 말이라니. 화평은 한숨을 푹푹 쉬고 만다. 물론 이 시간에 다른 곳을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손님을 태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택시 기사 일이 다 그런 것처럼 조금이라도 열심히 움직여야 손님도 태우고, 돈도 벌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일을 제쳐놓고 돈도 안 되는 신부 곁에 어정거리는 이유를 저 신부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굳이 알아달라고 하진 않았다. 민망하니까.



“그리고 나 지나가는 길이었고, 우연히 마테오 신부님 보고 도와주려고 한 거지. 내가 무슨…….”

“이 시간이면 손님 많은 곳에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손님이 많다고 다 내 택시는 타냐.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신부님이 너무 속세랑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딱 보면 견적이 나오는데.”

“…….”

“아무리 능력 있는 신부라 해도 그런 재미없는 곳에서 살다 보면 모르는 게 훨씬 많지.”

“…….”



최윤은 이제 재미없는 곳이라는 단어에 반박하는 것도 지쳤는지 눈만 감았다가 다시 떴다. 화평은 정말 질리지도 않는지 말이 많았다. 물론 쉴 새 없이 말하다가도 잠시 여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꼭 최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곤 했다. 윤은 그런 시선을 느낄 때마다 괜히 반대쪽을 바라본다. 신부와 영매. 신을 따르는 자와 귀신을 보는 자. 어차피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신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다가갈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자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자꾸 최윤을 찾는다. 이것도 주님이 주신 시련이라면 시련일 텐데, 애써 그 눈을 피하는 신부의 마음도 그렇게 가볍진 않았다.



“그럼 오늘은 제가 돈을 내겠습니다.”

“아니 왜 말이 그쪽으로 튀고 그래. 내가 언제 신부님 돈 받는다고 했어?”

“계속 이렇게 행동하시면 제가 더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짜로 태워준다고 하면 잘만 타고 다니던데.”

“그건 다른 사람들 이야기 아닙니까.”

“몰라. 몰라. 하여튼 난 신부님 돈 안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

“신부님한테 돈 안 받아도 잘 살 수 있어.”

“정말…….”



최윤이 입을 여는 순간 차가 급하게 움직인다. 덜컹. 안전띠를 해도 제법 세차게 몸이 흔들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이 유난히 크게 움직였다.



“미안. 내가 이야기하다가 신호를 잘못 봐서…….”

“정말 큰일 낼 사람이네요.”

“미안하다 했잖아. 딱지 안 끊었으면 된 거 아냐.”

“…….”

“알았어. 알았어. 또 그렇게 보지.”



빨강 신호등이 눈앞에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안전선을 넘지 않은 택시 안엔 또다시 어색해진 둘이 있었다. 하긴 운전하는데 자꾸 말을 걸면 사고 위험이 올라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제야 생각이 나다니. 저 남자에게 휘둘린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신호등이 걸리고 이러냐.”

“…….”

“이상하네.”

“…….”



괜히 민망해서 딴소리를 해본다. 최윤은 처음으로 그런 화평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물론 당사자는 운전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니, 그런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면서도 꼼짝없이 앞만 바라보았다. 서늘한 시선이 몸에 닿을 때마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든다. 꼭 얼음을 살에 문지르는 것 같았다. 육광은 화평에게 늘 불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팔자가 그렇다고 하지만, 숯불처럼 끝없이 타오르는 성정이 쉽게 가라앉진 않았다. 그런 불에 얼음을 가져다 대니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부님 그렇게 쳐다보면 닳아요.”

“…….”

“뭐 좋은 게 있다고.”

“윤화평 씨. 당신은.”

“왜요. 왜.”

“거짓말이 입에 붙으셨군요. 어쩜 그렇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뭐어?”

“아닙니다. 농담이니 흘려들으세요.”

“그런 얼굴로 농담이라고 하면 퍽이나 믿겠다.”

“…….”

“그리고 그게 거짓말이냐. 사람 사는데 필요한 일들이지. 다 그렇게 적당히 사는 거야.”

“인생 이야기라면 됐습니다.”

“하긴. 신부님이 여기 와서 사람들이랑 부비고 살 것도 아니니까.”

“…….”



말끝마다 신부님 신부님. 그것도 아니면 신부. 좀 화가 나면 야. 화평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은 매우 다양했다. 신부님 신부님 하면서도 말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런 것을 모두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끝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이 정도면 도착을 할 법도 한데, 일부러 돌아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하나하나 따지기엔 지나치게 피곤했다. 적당히 따뜻한 차 안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눈꺼풀이 절로 감긴다. 겨우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뜨다 못해 한 손을 들어 눈두덩이를 꾹꾹 문질렀다.



“아직 가려면 좀 있어야 해. 졸리면 좀 자. 신부님.”

“괜찮습니다.”

“내가 뭐 데리고 이상한데 간대? 얌전히 도착해서 깨워줄 테니까 잘 수 있을 때 자라니까.”

“…….”

“맨날 자려고 하면 사탄이니 뭐니 귀찮게 하잖아. 적어도 여기선 안 그런다니까.”

“…….”

“정말이야.”

“…….”



영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 졸음이라고 했던가. 최윤은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길 수 없었다. 눈앞에 수녀님이 계시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한마디 하실 것이 분명했다. 최윤은 인내심이 깊은 축에 속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다.



“안 잔다면서.”



고개가 살짝 꺾인다. 그러더니 고른 숨소리가 택시 안에 들리기 시작한다. 곁눈질로 최윤을 바라보던 화평이 이젠 대놓고 바라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꼿꼿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모든 세상 근심을 짊어지고 사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녀석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할진 뻔했다.



“너나 나나.”



화평은 가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한다. 혼자서 운전하는 일이 많은 직업상 어느 정도 혼잣말을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은 직업병은 아니었다. 혹여 간신히 잠든 윤이 깰까 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다행인지. 아니면 윤이 오늘따라 많이 피곤한 건지.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긴 속눈썹이 촘촘하게 내려앉은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잠깐 멈칫한다. 조금 더 자게 두는 게 나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면증에 내내 시달릴 것 같은 얼굴을 보니 괜히 안쓰럽다.



‘하긴 나도 내내 잠을 못 자고 그랬는데…….’



큰일이 있고 나서 어린 화평이도 그랬다. 쫓기듯 다른 친척 집을 전전할 때 좀처럼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날 일이 떠오르며 눈을 뜨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 봐도 이불을 뒤집어써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기절하듯 짧게 잠들었다가 일어난다. 차마 눈을 뜰 수 없어서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그런 생각이 나니 차마 윤을 깨울 수 없었다.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가 시끄러울까 봐 굳이 시동까지 끈 뒤 타닥타닥 유리창에 내리붙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

“으.”

“신부. 깼어?”

“제가 언제부터.”

“도착하고 한 삼십 분 정도?”

“…….”

“방금 깨우려 했으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

“어서 들…아니다. 잠깐만.”



화평이 급하게 좌석 옆을 뒤적인다. 최윤이 지갑을 꺼내기도 전에 우산을 손에 턱 쥐여 준다. 최윤은 어색하게 우산을 잡은 채 건네준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올려서 화평의 눈을 본다. 유난히 동그랗고 깊은 눈은 오랫동안 바라보면 꼭 깊은 어둠이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난 차 있잖아. 신부님 이거 가지고 들어가.”

“괜찮습니다. 바로 앞인데.”

“비쩍 말라가지고 괜히 비 맞고 감기 걸리면 나 찝찝해서 일 못 해.”

“…….”

“아, 어서.”

“윤화평 씨는…….”

비를 어떻게 피하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화평이가 조금 더 빨랐다. 윤은 의도치 않게 자꾸 말을 잘라먹었다.

“아냐 차 있겠다. 차에 멀쩡히 천장 달려있겠다. 차 끌고 들어가면 되는 거지.”

“…….”

“아, 어서. 그런 몸에 비 맞으면 큰일 난다. 응. 잘가.”

“…….”



저 쇠심줄 같은 고집을 도통 이길 수 없었다. 최윤은 찝찝한 마음으로 우산을 받아들었다. 얼마나 택시 안에 넣고 다녔는지 손잡이가 반질반질하게 닳은 장우산 이었다. 문을 열기 전 다시 한번 화평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우산을 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자 바로 시동을 켠 화평이 창문을 슬쩍 내리고 손을 흔든다. 비 들이칩니다. 그 낮고 건조한 한마디에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내내 웃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창문을 닫았다. 미련 없이 떠난 택시 꽁무니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최윤은 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발길을 돌렸다. 반질반질한 손잡이가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우산에 토톡토톡 떨어지는 빗줄기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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