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츠 분실 사건>에서 이어집니다.


 

 

1

 

“엇, 저거 우리 동네 공원이잖아.”

 

오소마츠가 호들갑을 떨며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봐봐. 저기서 유물이 발굴됐대. 이야~ 저기 우리 자주 가는 데잖아.”

“우리는 아니고 카라마츠가 자주 오락가락하는 데지.”

 

쵸로마츠가 장남의 발언을 수정해 주었다. 공원의 분수대에서 쭉 이어지는 산책길. 카라마츠가 부담스러운 옷차림으로 꾸미고 나가 여성의 관심을 바라며 오락가락 왔다 갔다 하는 그 코스였다. 오소마츠가 킬킬거리며 등 뒤를 돌아봤다.

 

“어이, 카라마츠. 네 지정석이 발굴터로 지정됐단다. 더이상 마네킹 놀이는 못 하겠다?”

 

그러나 창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소마츠가 눈을 꿈벅였다. 좁은 방 안을 둘러본다. 엎드려서 만화책 읽고 있는 쥬시마츠, 패션 잡지를 보고 있는 토도마츠. 아이돌 응원 도구를 수선하고 있는 쵸로마츠. 흠, 카라마츠뿐만 아니라,

 

“이치마츠도 없네?”

“어, 그러네. 어느새.”

 

쵸로마츠가 물었다.

 

“쥬시마츠, 그 녀석들 어디 갔냐?”

 

팔락팔락 만화를 펼쳐 보던 쥬시마츠가 고개를 팟 쳐들었다. 오, 뭔가 아는 거냐. 주의를 집중하자 뻔뻔할 만큼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겠어!”

 

쵸로마츠는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고는, “그 녀석들, 요즘 이상하단 말이지.” 하고 혼잣말을 했다. “둘이 뭐라도 주워 먹고 쌍으로 미쳤나?”

 

원래 마츠노 가의 차남과 사남은 사이가 전혀 좋지 않다. 정확히는 사남이 차남을 죽도록 짜증나게 여기는데, 차남은 본래 태생이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인간인지라 모두에게 빈축을 사고는 하지만 특히 근본이 악마의 자식인 사남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등을 걷어차거나 멱살을 잡거나 독설을 퍼붓고는 했다.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이치마츠에게서 좀 독기가 빠졌다고 할까. 아니, 독기 빠진 것을 넘어 묘하게 둘이 붙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포장마차에 다같이 몰려가 한 잔 할 때도 뭔가 ‘누가 없는데?’ 싶을 때면 둘이 언제 빠져나갔는지 둘이 하천 둑에 나란히 앉아 밤공기를 쐬고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너네 뭐 하냐?”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면 “술 깨려고.” 하는 무뚝뚝하고 천연덕스런 대답이 이치마츠에게서 돌아오곤 했다. 형제들은 할 말을 잃었고.

 

그런 형편이니 그 둘을 제외한 네 명의 형제는 지금의 지각 변동과 같은 관계 변동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그 어떤 신비한 우주의 기운 혹은 외계인의 뇌파 조종―아틀란티스를 멸망시키거나 피라미드와 마추픽추를 건설하며 나스카 지상화를 그린 류의― 때문이리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이치마츠가 박애주의적 종교를 받아들이고 개과천선했다든가, 카라마츠의 장기를 밀매 예약해서 마지막 정으로 잘해주는 거라든가…….

 

“쥬시마츠, 너 이치마츠한테서 뭐 들은 거 없냐?”

 

오남은 이치마츠가 가장 무른 상대였다. 죽이 잘 맞고, 서로를 잘 알고, 형제치고 살뜰히 챙겨주는 사이. 그러니까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쥬시마츠는 평소의 그 무슨 생각하는지를 알 수 없는 표정(글쎄, 생각이란 걸 하는지 모르겠으나)으로 해맑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비밀이야!”

“비밀……?”

 

쵸로마츠가 매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으나, 쥬시마츠는 다시 만화 잡지에 고개를 박았고 1초의 반도 안 되어 거기 푹 빠졌다. 쥬시마츠는 관심을 돌리는 속도와 거기에 집중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종족이었다. 일단 그렇게 되면 끌어낼 수가 없다. 쵸로마츠 및 기타 형제들은 포기하기로 했다. 하긴 내가 알 게 뭐야. 이치마츠의 뇌에 기생충이라도 빌붙어 살고 있나 보지.

 

 

 

2

 

“어라?”

 

분수대에서 멀지 않은 산책로에 출입 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무로마치 막부 시대 유물이 발굴되어 출입을 제한한다고 했다. 카라마츠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다니……. 안 되겠군. 오늘의 이 몸은 그야말로 와일드풍 미남자의 타이틀에 걸맞은 모습이건만.”

 

오늘 그의 복장은 힘을 줬다. 탱크탑 위에 KARAMATU 파츠가 등을 장식한 수제 리폼 가죽 재킷(아주 특별한 그 의상), 스팽글이 인어 비늘처럼 주렁주렁 달린 바지(한 땀 한 땀 수제 제작했다.), 파일럿 선글라스(탑건을 보고 나서 톰 크루즈가 쓰는 것 같은 걸로 하나 장만했다.)라는 완벽한 차림이었다. 오늘은 분명 카라마츠 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을……!

 

“꼴값 떠는 걸 안 볼 수 있겠군.”

 

이치마츠가 내뱉으며 그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카라마츠가 허둥지둥 그를 좇았다.

 

“브라더, 어딜 가는가! 거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고양이.”

“아.”

 

카라마츠는 마네킹 놀이(여성들의 환심 사기를 바라며 폼 잡기)를, 이치마츠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러 공원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고양이를 만나는 장소가 바로 그 발굴 현장으로 지정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법자 이치마츠는 성큼성큼 걸어가 치렁치렁 늘어진 출입통제선 테이프를 걷고 들어갔다. 카라마츠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뒤를 따랐다.

 

아직 공사는 시작되지 않은 모양이다. 안쪽은 평온했다. 이치마츠는 철쭉 덤불 근처에서 고양이를 찾았다. 최근 한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이치마츠가 꾸준히 고양이를 돌봐주던 사이에 친해져 자신의 보금자리를 보여줄 정도가 되었다. 이치마츠는 주머닛돈을 털어 사 온 삶은 닭고기와 삶은 달걀을 사료 위에 두둑이 얹어 그릇에 담아줬다. 물컵도 씻어서 깨끗한 물을 가득 채워 주었다. 어미 고양이는 감사를 표하듯이 그의 손등을 할짝할짝 핥았다. 이치마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새끼고양이들 역시 어미 덕분인지 인간을 잘 따랐다. 자신들을 귀여워해 주는 이치마츠와 카라마츠의 손으로 거품처럼 엉겨든다. 카라마츠는 새끼고양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귀여워! 죽도록 귀여워! 이렇게 귀엽고 연약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려는 거야!” 하며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귀 끝까지 올라오는 입술 끝을 숨겼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 시간이 다음 순간 깨져나갔다.

 

이치마츠만이 무법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네 양아치 한 무리가 킬킬대며 들어왔다.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섰다. 이치마츠는 어미 고양이에게 한 손을 얹은 채 그쪽을 노려봤다. 양아치들이 카라마츠를 발견하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 삐까뻔쩍 파칭코 기계 같은 자식은. 손목 돌리면 숫자 나오는 거 아니냐?”

“한번 해 봐. 777이 뜨면 돈을 쏟아낼지 누가 아냐.”

 

카라마츠가 진땀을 흘렸다. 도망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츠노 카라마츠는 덩치는 산 만 해도 남들보다 열 배는 겁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양아치들은 그게 거슬린 것 같았다.

 

염색한 금발 머리가 다가와 어미 고양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가냘픈 비명을 지르며 새끼 고양이들이 흩어졌고, 카라마츠는 우왕좌왕 새끼고양이들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 이치마츠가 벌떡 일어나 고양이를 찬 건달을 머리로 콱 들이박았다. 곧 난장판이 되었다. 밥그릇은 엎어지고 물컵은 날아가고 고양이들은 도망치고 이치마츠는 진흙탕에 나뒹굴었다. 카라마츠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건달들을 향해 돌진했다.

 

 

 

3

 

“그래서 그 꼴이라고?”

 

쵸로마츠가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기막힘과 난감함이 한데 뒤섞여 애매한 표정이었다. 카라마츠가 엉망이 된 꼴의 이유(공원의 고양이와 새끼 다섯 마리를 둘러싼 양아치와의 대혈투 운운)를 나불나불 떠들고 난 다음이었다. 오소마츠가 말미에 물었다.

 

“그래서, 이겼냐?”

 

이치마츠는 퉷, 침을 뱉었고 카라마츠는 크게 웃었다. 눈은 밤탱이가 됐고 여기저기 멍들고 입술은 찢어지고 옷도 너덜너덜, 아침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와일드풍의 미남자(자칭)’의 차림새는 사라졌으나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부심에 넘쳐 어깨를 넓게 폈다.

 

“무승부라고 해두지. 핫핫핫!”

“대단하긴 한데, 그럴 거면 깽값이라도 벌어오지 그랬냐.”

 

오소마츠가 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장하다, 나의 아우들아. 물론 도망치는 게 더 잘하는 거였겠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오소마츠여! 사나이가 도망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난 저 하늘에 맹세코 그처럼 비겁한 겁쟁이가 아니다!”

“카라마츠, 네 마초남 컨셉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사실 넌 새끼고양이만큼 겁쟁이잖아. 어떻게 싸움까지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기양양해지지 마라. 눈꼴사나우니까.”

 

오소마츠가 혀를 끌끌 찼고, 토도마츠가 “그러고 보니,” 하고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이치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보단 덜 다쳤네? 어떻게 된 거야? 분명 이치마츠 형이 시비 걸었을 텐데. 아니야?”

“아, 그건 아니야.”

 

기다렸다는 듯이 카라마츠가 착, 멋진 포즈를 취했다.

 

“시비 걸린 건 우리다. 그리고 내가 이 한 몸 바쳐 나의 아우를 지켰지! 그것이 나의 마땅히 할 소임이니 말이다.”

 

자기 몸으로 땜빵해 줬다는 뜻이었다. 쥬시마츠가 박수를 쳤다.

 

“카라마츠 형, 대단하네!”

 

하면서 이치마츠 쪽을 쳐다봤다.

 

“이치마츠 형, 잘됐네!”

 

이치마츠는 부어터진 눈으로 듣는지 안 듣는지 바닥만 꼴아보더니, 다시 피 섞인 침을 퉷, 뱉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소마츠가 그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어이, 이치마츠! 당분간은 조심히 다녀! 복수라도 당하면 골치 아프니까.”

“시끄러워.”

“야, 형 말 새겨 들어라. 웬만하면 당분간 죽어 지내!”

 

대답 없이 장지문이 탁 닫혔다.

 

 

 

4

 

그날 밤, 마당에서의 대화.

 

“오, 여기 있었구나, 나의 넷째 동생이여.”

 

“……왜 나왔냐.”

 

“잠에서 깼는데 네가 없지 뭐냐. 담배라도 피우러 갔나 했지.”

 

“다 피웠어. 들어갈 거야.”

 

“좀 더 바람 쐬고 가는 건 어떠냐. 좋은 달밤이구나.”

 

“……칫.”

 

“오늘 같은 날 밤술이 맛있을 텐데 말이지. 하하, 그렇지만 입술이 터져서 아프겠군. 아니지, 오히려 알코올 소독될지도 모르겠다. 어떠냐, 이 형님과 한 잔 하러 가겠냐?”

 

“새벽 네시야, 멍청아.”

 

“앗차, 안타깝구나. 하지만 네 꼴도 내 꼴도 말이 아니니 술집에서 신고라도 받으면 곤란하겠지. 아우여, 다친 덴 괜찮으냐? 일단 뼈가 부러지거나 뇌진탕은 아니니 다행이지만.”

 

“……왜.”

 

“응?”

 

“왜 그랬냐, 너는.”

 

“음? 혹시, 싸운 거 말하는 거냐?”

 

“도망치는 게 나았을지도.”

 

“핫핫핫. 약한 소리 하는 거냐, 동생아. 동생을 지켜주는 게 형의 역할이지 않으냐!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마라.”

 

“누가 걱정했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 참, 북풍같이 무정한 나의 넷째 아우가 귀여울 때도 있군!”

 

“죽여버린다.”

 

“하하하. 농담, 농담이다, 이치마츠여! 캑, 멱살 잡지 마라. 흔들지 마라! 어지럽다! 기브 업! 기브 업!”

 

“…….”

 

“휴, 그래도 이만해서 끝난 게 다행이지. 지나가던 경비원 씨가 아니었으면 끝장이 났을지도……. 그나저나 고양이들이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옮겨야지.”

 

“역시 그래야겠지. 나도 도와주마. 새 보금자리를 어디에 만들어 주면 좋을까.”

 

“글쎄.”

 

“음……. 여기 아래는 어떨까.”

 

“…….”

 

“하하, 고양이들에겐 너무 깊겠지. 보금자리라기보다는…….”

 

“……기분 나쁘게 쪼개지 마.”

 

“이 화단 아래 네가 파놓은 구덩이, 방공호만큼 깊지 않냐. 전쟁이라도 나면 여기 숨으면 될 만큼. 아마 미사일 소리도 안 들릴 거다, 하하하.”

 

“…….”

 

“달이 밝구나.”

 

“…….”

 

“꼭 그날 같다.”

 

“…….”

 

“그러고 보니 내 물건이 더 없어지질 않는데.”

 

“……입 다물어라.”

 

“크하하하하. 부끄러워하는 거냐?”

 

“죽여버리기 전에 입 다물라고 했다.”

 

“하하하. 알겠다, 알겠어. 그만 노려봐라.”

 

“칫.”

 

“오, 좀 추워지는데. 이제 슬슬 들어갈까.”

 

“……어?”

 

“왜 그러냐, 이치마츠.”

 

“아니, 아까, 창가에…….”

 

“창가에 누가 있었나?”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

 

 

 

5


두 사람이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잘 찾아주었다고 했다. 어디에? 공원 어딘가에. 오소마츠가 밥상머리에서 한마디 했다.

 

“공원에 또 갔냐? 내가 당분간 조심하랬잖아, 그 양아치들 눈에 안 띄게.”

“괜찮아. 안 마주쳤어.”

“엇, 또 우리 동네다.”

 

텔레비전 지역 방송에서 낯익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공원에서 발견된 그 고고학 현장을 발굴 개시했다는 소식이었다. “고양이들 잘 옮겼네.” 쵸로마츠가 토란 조림을 집어 먹으며 한마디 했다. “거기에 그냥 뒀으면 쫓겨났을 거 아니야.” 다른 형제가 편을 들어주자 오소마츠는 일단 입을 다물었지만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토도마츠가 끼어들었다.

 

“고양이들, 어디로 옮겼어? 나도 보러 가고 싶어.”

“다른 구석에 적당히.”

“나도 데려가 줘. 아~ 우리 집에서 키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얼마나 귀여울까?”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는 무리지. 귀엽기는 하겠지만. 감당이 안 되잖아.”

 

쵸로마츠가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니트 다섯 명을 부양 중인 부모님께 어미 고양이 한 마리에 더해 다섯 마리의 새끼고양이까지 차마 더 얹어드릴 수는 없는 양심의 아슬아슬한 적정선을 (이래 봬도)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런 까닭에 형제들은 두세 번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따라가서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왔다. 먹을 것을 사다 주기도 하고, 새록새록 정이 붙어가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고양이가 사라졌다.

 

 

 

6

 

분명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사료가 소복이 담겨 있던 밥그릇이 날아가 내용물이 쏟아져 있었고, 물컵도 마찬가지. 이치마츠가 깔아준 푹신한 쿠션과 담요에도 누가 짓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양이들이 스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아니었다.

 

짐승의 습격도 아닐 것이다.

 

“그 녀석들이야.”

 

이치마츠가 중얼거렸다.

 

형제들은 흩어져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일주일을 수색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목격자가 있었다. 근처에서 친구와 줄넘기를 하고 있던 한 어린아이가 말하기를, 그날로 추정되는 날 무서운 남자 무리가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걸 봤는데, 그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고양이는 괜찮을까요? 울 듯한 얼굴로 아이가 물었다.

 

이치마츠는 말이 없어졌다. 카라마츠는 불안한 표정으로 이치마츠를 살폈다. 이치마츠는 건조해지고 침울해졌으며 신경에 날이 섰다. 형제 중 누군가와 부딪치면 죽일 듯이 노려보거나 입속으로 욕지거리를 낮게 지껄였다. 급기야 막내 토도마츠가 사남을 무서워하기에 이르렀다. 밤중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다가 이치마츠와 마주쳐 아수라왕(阿修羅王)의 형상이라도 본 듯 경기를 일으킨 날엔 형제들이 참다못해 이치마츠를 둘러싸고 한마디씩 했다.

 

쵸로마츠는 측은함과 질린 기분이 뒤섞인 표정으로 “이치마츠, 슬슬 기운 내라.”라고 내뱉었다. 토도마츠는 “이치마츠 형! 무섭다고! 누구라도 죽일 것 같다고!” 하며 쥬시마츠의 등 뒤에 숨어서 외쳤고, 쥬시마츠는 목 끝까지 올린 저지에 얼굴 반을 파묻은 채 빤히 이치마츠를 주시했다. 카라마츠는 평소의 허세 발언도 내뱉지 않고 어쩐지 초조한 표정이었으며, 드디어 오소마츠가 한마디 이렇게 타일렀다.

 

“이치마츠, 가만있어라.”

 

이치마츠가 매서운 표정으로 장남을 노려봤다. 장남은 그 야차(夜叉)의 박력에 흠칫하면서도 애써 여유 있는 체 장남의 권위를 되찾아 이렇게 충고했다.

 

“위험한 짓은 저지르지 마.”

 

그러나 이치마츠는 핏발 선 눈으로 등을 팩 돌렸다.

 

“어이, 이치마츠, 어디 가냐!”

“형! 경찰서에 잡혀갈 일은 저지르면 안 돼!”

 

형제들의 다급하고 절박한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고 이치마츠는 집을 나가 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 이치마츠는 매일같이 집을 비웠다.

 

 

 

7

 

마츠노 이치마츠는 매일 밤늦게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새벽 늦게야 집에 돌아와, 점심 즈음 느즈막히 일어나 남은 밥을 퍼먹고는 다시 쓰레빠를 꿰어 신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 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지쳤는지 입을 꾹 다물고 대화도 하는 일 없이 잠들었고, 형제들의 바보 같은 놀이에도 끼는 일 없이 극심한 고독을 유지했다. 그러고는 또 밤에 나갔다가 새벽 늦게 돌아오는 기이한 생활이 이어졌다. 탈선이라도 한 건 아닐까. 물론 니트니까 본래부터 건전한 사회인은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집에서 매끼 나오는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을 정도의 생활 리듬은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은 그를 걱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츠노 가의 사남은 시한폭탄처럼 위험한 어둠을 끌어안고 있는 존재였으므로 마츠노 가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지 않으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닐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후에 이치마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의 생활로 돌아왔다. 다시 아침밥을 먹을 때 일어나고 점심밥을 먹고 나서 슬슬 집을 나섰다가 저녁밥을 먹을 때 돌아와서 형제들과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고 게임을 하고 이부자리를 펴고 형제들 사이에 끼어서 잤다. 그때 그에게서는 묘하게 상쾌한―이 단어가 그의 평생에 붙을 수식어일 수가 있다니―기운이 풍겼다. 산뜻하다고 할까, 만족스럽다고 할까, 개운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형제들은 어리둥절했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겼다. 그중에서 카라마츠는 왠지 초조한 모습으로 자주 넷째 동생에게 말을 걸었으나 무시당하곤 했는데, 그래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전만큼 면박 주거나 멱살을 잡지 않았다.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묘하게 가뿐한 기색을 지켜보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한 달째 되는 날, 늦은 새벽에 들어와 이부자리에 끼어 들어온 이치마츠 형에게서 희미하게……,

 

 

 

8

 

평상시 리듬으로 돌아온 사흘 후 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와 함께 편의점엘 갔다. 집 근처 편의점이 웬일로 문을 닫아서 좀 먼 데까지 걸어서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를 건너고 하천길을 따라서. 이치마츠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고, 쥬시마츠는 감귤맛 하드를 집어 들었다. 포장을 까서 한 입 먹고 쥬시마츠는 “맛있어!”라며 포도를 처음 먹어본 네 살 아이처럼 난리를 쳤다. 이치마츠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꼬나물고 피식 웃었다. 쥬시마츠가 하드 바를 한 입 한 입 아껴 먹으며 말했다.

 

“이 아이스, 나 좋아하는데 우리 편의점에선 안 팔았거든.”

“그럼 또 오면 되지.”

“응!”

 

쥬시마츠는 후드티의 긴 소매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이스 한 입, 춤추는 듯한 세 걸음, 그리고 또 한 입. 폴짝폴짝 두 걸음, 다시 한 입. 그리고 쥬시마츠가 말을 던졌다. 야구공 던지듯이.

 

“형아, 요즘 기분 좋아 보이네.”

“응.”

 

이치마츠가 순순히 대답했다. 야구공 받아내듯이.

 

육교에 다다르자 쥬시마츠가 계단을 타다다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그 뒤를 선선히 느긋하게 따랐다. 가을밤의 공기가 기분 좋다. 먼저 육교에 오른 쥬시마츠는 난간에 두 팔을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애 위로는 둥글고 큰 달. 이치마츠가 다가서자 그 애가 난간에 한 손을 얹고서 춤추듯이 빙글 돌았다.

 

“이치마츠 형아, 그거 들었어?”

“뭐를?”

“유물이 발굴됐대. 공원에서 말이야.”

“그야 나오겠지. 그러려고 땅을 판 거니까.”

“근데 한 시대가 아니라 에도, 무로마치, 가마쿠라, 헤이안까지 층층이 유물이 나왔대. 이러다가 야마토 시대 유물까지 발굴되는 거 아닐까?”

“……쥬시마츠, 역사 시간에 안 졸았냐? 용케 기억하고 있네, 연대.”

“하하. 나 이래 봬도 기억력 좋아.”

 

쥬시마츠는 난간에 두 팔을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기하다. 우리는 무덤 위에서 사는 거네.”

“그러게.”

 

이치마츠도 함께 육교 아래를 내려다본다. 지나가는 차들. 현대인도 종사자가 아니면 원리를 알 수 없는 저 자동차란 게 굴러다니기까지 그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 짐승, 물건, 사건들이 층층이 파묻혀 있는 것일까.

 

“우리 발아래 나라가 차례차례 포개져 있는 거야.”

“음.”

“왕이 된 기분이네!”

 

쥬시마츠가 난간에 엎어져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내가 왕이 되면 아이스크림 백 개 먹을 거야! 야구장을 백 개 만들고. 내가 전부 선발로 나갈 거야!”

“쥬시마츠, 너 실은 야심이 있는 놈이었구나.”

 

이치마츠가 감탄했다.

 

“왕이 되면 우리 한 자리씩 해줘.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걸로다가.”

 

쥬시마츠가 씩 웃었다.

 

“이치마츠 형은 왕이 되면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딱히…….”

 

이치마츠는 육교 아래 시선을 주었다. 담배 끄트머리의 불티가 바람에 날아가고.

 

마츠노 이치마츠는 그다지 욕심이 없다. 야망도 없다. 매일의 평안이면 만족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수를 줄일 거야.”

“아하~ 형아, 사람 싫어하니까. 다 교수대에 매달 거지?”

 

쥬시마츠가 킬킬거렸다. 이 다섯째 동생은 그를 잘 안다. 이치마츠가 말을 계속했다.

 

“나랑 고양이들만 살 거야.”

“나는?”

“너도. 형이 선심 쓴다.”

 

둘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쥬시마츠가 또 물었다.

 

“다른 형들은?”

“시끄러우니까 안 돼.”

“카라마츠 형도?”

“……안 돼.”

“어째서?”

“성가시니까.”

 

이치마츠는 다 탄 담배의 필터 꽁무니를 교각 밑으로 내던졌다. 불티가 나방처럼 떨어져 내린다.

 

“거짓말.”

 

쥬시마츠가 다 먹은 하드 막대를 아래로 내던졌다. 형이 버린 담배 끄트머리처럼.

 

“이치마츠 형, 거짓말 못 하네.”

“……네가 너무 잘 아는 거야.”

 

이치마츠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쥬시마츠는 헤헤 웃고는 난간으로부터 손을 떼었다. 먼저 훌쩍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빨리 와, 형아!”

“그러다 넘어져.”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그에게 만족스러운 삶의 속도로.

 

내가 세울 왕국은.

 

어두운 밤, 오래된 집의 현관으로 들어서며 이치마츠는 자신의 왕국을 생각한다. 안온하고 아늑하고 좁고 따스하고 평안한 세계. 형제들이 모여 있는 방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위쪽에 닫힌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쥬시마츠가 문득 어둠 속에 멈춰 섰다. 층계참이다. 고양이 이마만큼 좁은 뒷마당이 내다보이는 위치.

 

쥬시마츠가 창밖을 내다보며 불쑥 말했다.

 

“흙냄새가 났었어.”

“응?”

“사흘 전 밤에, 형이 새벽에 방에 돌아왔을 때.”

“안 자고 있었냐.”

“응.”

 

빈약한 감나무 아래 화단을 흘끗 내려다본다. 감나무뿐, 아무것도 심지 않은 화단.

 

“이치마츠 형아.”

“응.”

“그대로 둘 거야?”

“……응.”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누가 또 알아?”

“카라마츠 형.”

“음.”

“공범이야.”

“응.”

 

작게 킬킬거렸다.

 

내 왕국의 구성원들은 선량하다.

 

고양이들처럼.

 

잔인무도하고 사악한 왕만 제외하고.

 

 

 

9

 

깊은 새벽, 카라마츠가 감나무 아래 화단 앞에 선 것을 지켜보았다. 카라마츠는 흙을 치웠고, 그 아래 비닐 시트를 걷었다. 얇은 널판이 나타났다. 카라마츠의 굳은 어깨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가 널판을 떨리는 손으로 치우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이 층계참에서는 그 구덩이 안쪽까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카라마츠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은 아주 잘 보였다. 카라마츠는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대경실색한 모습이다.

 

그가 그 안에서 발견했을 모습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수건으로 눈과 입이 틀어막힌 채 손발이 묶여 덜덜 떨고 있는 금발의 양아치 한 마리.

 

꼬여내느라 아주 고생했다. 우선 그 양아치들이 어딘가에 던져 버리거나 죽여 버렸을 고양이와 아주 비슷한 고양이를 찾아냈다. 그러고 나서 그 건달들이 자주 가는 장소, 모이는 시간, 흩어지는 길목을 알아냈다. 한 달 내내 집념을 가지고 이루어낸 작업이었다. 며칠을 불쑥불쑥 고양이가 그 자식들의 눈앞을 가로질러 가게 했다.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꼴이 매우 보기 좋았다. 마침내 주범이 쫓아오게 만들어서 어두운 골목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기절시킨 후에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해치웠다. 다행히 목격자는 없었다. 눈을 가리고 입에 수건을 틀어막고 손발을 꽁꽁 묶어 구덩이 속에 던져놨다. 그 후에 영영 잊을 생각이었다.

 

카라마츠가 마침내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리고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어 쥬시마츠가 훌쩍 나타났다. 그야 공범이라니까, 사실은 방조범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니 망이라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카라마츠가 양아치를 구덩이 위로 끌어 올렸다. 쥬시마츠가 받아 안아, 아직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 물린 금발의 양아치를 데리고 사라졌다. 쥬시마츠라면 적당한 곳에서 풀어주겠지. 아무 증거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보기만큼 단순하지 않은 그 애라면.

 

창가를 떠나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엌 쪽 뒷문으로 나와 마당에 나선다. 카라마츠가 망연자실하게 구덩이 아래 주저앉아 있었다.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깊고 좁은 구덩이 속, 함정, 우물, 일인용의 감옥에 빠진 너를 내려다본다.

 

반짝이던 비취빛 반지.

 

“숨겼던 건 왜 다시 돌려준 거냐.”

“……전당포에 팔아버렸어야 했는데.”

“못 그랬을 거잖아.”

 

하하.

 

“돌려줘서 고맙다.”

 

멍청한 자식.

 

카라마츠가 그를 올려다봤다. 카라마츠는 울고 있었다. “이치마츠.” 그가 흐느꼈다.

 

“그래서는 안 돼.”

“…….”

“그래서는, 안 돼.”

 

띄엄띄엄 울음 섞인 말이 사체처럼 토막났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돼. 이치마츠는 그를 말없이 바라본다. 왜 안 될까? 나는 내 왕국을 지키려는 것뿐인데. 너희면 족하다. 나는 나의 국민을 보호하고, 원수를 갚아 주고, 지켜주려는 것뿐인데. 그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 네 울음만 빼고.

 

카라마츠, 들어봐. 내가 왕이 된다면 쥬시마츠에게 새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선사해줄 거야. 매일 공을 던져줄 거고, 기꺼이 그 애가 휘두르는 배트가 되어줄 거고, 그 애를 위해서 야구장을 백 개라도 지어주겠어. 그 애가 좋아하는 아이스를 매일 백 개씩 먹게 해줄 거야.

 

그렇다면 너에게는 무얼 줄까. 나를 줄까. 내 손목을 잘라 줄까. 두 눈알과 머리통과 심장과 발목뼈, 손톱과 발톱 끄트머리까지도 내어줄까. 너는 받지 않을까.

 

싫다면 내가 어떻게 할 줄 알고.

 

넌 지금 내 뱃속에 파묻혀 있는데.

 

결국 언젠가는 모두 발밑으로 파묻힐 것이다. 모든 망국이 발아래 스러져 가듯이. 그것이 층층이 쌓여 유해가 백 년 후, 천 년 후, 만 년 후, 일억 년 후에야 발견될 거야. 나는 망국의 왕이 되겠지.

 

너를 나의 구덩이에 처넣고.

 

내가 바라는 왕국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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