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들은 어머니가 차의 속도를 줄였다. 나는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꼿꼿하게 가누려 애썼다. 별 보람은 없었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동안 차체가 흔들리자 속이 울렁거렸다. 서둘러 뒷좌석의 창문을 내렸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병원에 다녀온 날에는 언제나 속이 좋지 않았다. 성인 알파들이 가득한 공간은 분위기부터 위압적이었다. 내가 알파가 아니었다면 발을 들이기조차 어려울 것이었다. 나를 본 어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페로몬을 조절하는 모습도, 고맙다기보다는 자존심 상했다.


게다가 오늘처럼 페로몬 농도 검사를 받은 날에는 속이 더 뒤집혔다. 평소에는 억누르는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서 페로몬을 발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작 앞자리의 보호자들은 내 상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걔도 참 안됐어.”

“누구?”

“유담이.”

“아, 걔.”


부모님의 시선이 동시에 룸미러로 향했다. 두 쌍의 눈이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멀뚱히 시선을 받아치자 피식 웃은 어머니가 핸들을 쥐었다.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잠자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부모님이 내 앞에서 유담의 이야기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 나와 부모님은 똑같은 요일, 똑같은 시간에 병원을 방문했다. 2주에 한 번, 토요일 오전 10시. 그게 내 담당의의 진료일과 부모님의 스케줄에 맞춘 예약 시간이었다.


그리고 유담은 바로 앞 시간대에 진료를 받는 환자였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약속한 것처럼 유담과 만났다. 보통은 대기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유담이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떤 날에는 접수를 하는데 뒤에서 “규식이 형.” 하고 부르기도 했다. 나와 같은 요일, 같은 간격으로, 나보다 조금 앞선 시간에 예약을 하는 듯했다.


몇 번 마주친 뒤부터 유담은 아예 대기 의자에 앉아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내 검사와 진료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있다가 나와 내 부모님의 뒤를 따라 병원을 나섰다.


그런 유담의 행동은 내게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병원은 새 친구를 사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어른 알파들 틈에 섞인 유담과 나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혼자 있어도 신기하다는 눈길을 받는데, 유담과 함께 있으면 따끔따끔한 시선이 더 많이 쏟아졌다. 원하지 않은 관심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비정상인 유담을 바라보며 비정상인 나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달랐다. 몇 번 대화를 나눈 뒤부터 부모님은 유담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그러고는 내 진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옆에 있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집 부모도 참 대단해. 아무리 바빠도 애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따라가 줘야지.”

“겉으로 보기에 어른 같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애잖아. 어디 열두 살을 혼자 알파 병원에 보내, 세상에. 저기가 소아과도 아니고.”


유담은 혼자였다.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유담의 보호자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랬던 게 아닌 듯, 유담은 혼자 병원을 누비는 일에 익숙해 보였다. 그 모습이 못내 부모님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내 부모님도 알파 아들을, 그것도 어린 나이부터 병원에 계속 다녀야 하는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니까.


“힘들 텐데 불평 한마디 안 하는 거 보면 애가 정말 착해.”

“애어른이지, 애어른.”

“처음에는 무슨 애가 이렇게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할까, 우리 규식이도 반만 닮으면 좋겠네 싶더라고.”

“걔는 벌써 2년째라며. 자연스럽게 티가 나는 거지.”

“그러니까. 애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철이 들어 버렸어. 에휴. 보고 있으면 딱하기도 하고.”


내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부모님은 본격적으로 유담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주로 유담이 얼마나 어른스럽게 행동하는지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안 들리는 척하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 비교하는 칭찬이 거슬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부모님의 평가는 언제나 동정으로 끝났다.


딱 한 번, 내 진료가 끝난 뒤에 유담과 함께 음식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이었지만 유담이 집에 가서 먹겠다며 거절했다. 그럼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겠다며 부모님이 유담을 근처 체인점으로 끌고 간 거였다. 타인의 호의가 낯선지 유담은 계속 난처해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유담이 먹고 싶은 맛을 골라 주문하고, 컵 하나를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헤어질 때는 극구 사양하는데도 커다란 패밀리 팩까지 사서 쥐여 주었다. 누가 당신들의 아들인지 모를 정성이었다.


엄마 아빠가 쟤를 왜 챙겨? 그날 볼이 부어 묻는 내게 부모님은 답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데, 우리라도 그렇게 해야지. 아리송한 이유였다. 그럼 엄마 아빠는 나도 불쌍하게 여긴다는 뜻이야? 의문이 일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동정은 그게 필요한 사람에게 향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동정을 유담에게 양보했다. 그 대가로 일정량의 관심과 칭찬을 지불하면서까지.


“걔가 뭐가 딱한데? 일찍 철드는 건 좋은 거 아냐?”


그래도 가끔은 부모님에 내게 관심을 돌리도록 지적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오늘처럼 속이 좋지 않은 날에는. 불퉁한 목소리로 끼어들자 앞자리의 대화가 멈추었다. 잠시 뒤 아버지가 말했다.


“규식아. 그 나이대의 아이가 어른스러운 건 슬픈 일이야.”

“뭐가 슬픈데?”

“너도 크면 다 알게 될 거다.”


미성년자 한정 마법의 답변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아버지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다다음 주에는 엄마도 아빠도 출장 있다. 병원에 너 혼자 가야 돼.”

“어? 왜? 싫어.”

“다음 예약일에는 검사도 없으니까 그냥 선생님 만나서 약 받아오면 돼. 아까 얘기 다 해 놨어. 엄마가 카드 줄 테니까 그걸로 결제하고.”

“아, 진짜 싫은데. 그냥 예약을 다른 날로 바꾸면 안 돼?”

“토요일 아니면 언제 가게. 평일은 너도 학교 가고 엄마 아빠도 회사 가는데.”

“그래도 혼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며 나는 입술을 내밀었다. 부모님 없이 어른 알파들 사이에 있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 왔다.


룸미러에 비친 어머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담이도 혼자 다니는데 네가 왜 못 다녀.”

“걔가 혼자 다니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아까는 어른스러운 건 안 좋은 거라며.”

“너랑 걔가 같니? 이제 곧 고등학생인 녀석이.”

“너는 안 든 철도 들어야 하는 나이야.”


항의할수록 돌아오는 훈계만 늘어날 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불만을 표시하다가는 위험할지도 몰랐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것. 그게 담당의가 정한 첫 번째 생활 규칙이었다. 감정이 폭주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렇다고 이미 상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나는 일부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뒤쪽을 돌아본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그날 유담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오고 그래. 유담이가 우리는 껄끄러워도 너는 워낙 잘 따르잖니.”

“긴말하지 말고 그냥 형이 살 테니까 먹으러 가자, 오늘 용돈 받았으니까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그래서 둘이 먹고 와. 알았지?”

“유담이 앞에서는 페로몬 특히 더 조심하고.”


어째서인지 다시 유담에게로 돌아온 화제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의자에 뒤통수를 기댔다. 부모님도 없이 둘이서 잘 있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그날 갑자기 유담의 부모가 오면 어떡하지. 인사만 하고 따로 앉아 있어야 하나. 털어놓지 못한 불만을 섞어서 쓸데없는 고민을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의문 하나가 솟아났다.


근데 걔네 가족은 왜 병원에 안 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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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완결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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