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튼!”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가 장 내에 울려퍼졌다. 그에 뒤돌아본 소년은 순수하고도 짖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 장난기 어린 표정이 그의 여우같은 눈매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헉헉거리면서 뒤따라온 지젤이 그의 표정을 보고는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아니, 그렇게 소리치고 나가버리면 어떡해! 선생님이 화나셨잖아!”

 “에이, 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어른에게 그렇게 대들면 안 되지!”

 지젤의 목소리가 안 그래도 가냘픈 톤이라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르자 하이튼이 귀를 틀어막으며 딴 청을 피웠다. 하이튼이 그녀를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자 그녀가 뒤따라 가면서 물었다.

 “이튼, 뭐가 그렇게 화가 난거야?”

 “뭐가?”

 “너 선생님이 하신 말에 화가 난 거잖아.”

 “…지젤.”

 하이튼이 진지한 목소리로 표정을 굳히자 지젤이 약간은 움찔한 채로 그에게 물었다.

 “왜?”

 “넌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해?”

 “응? 뭐, 나름대로 잘 굴러가는 거 같은데.”

 그녀의 대답에 그가 그럴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며 대답했다.

 “…그래.”

 그의 반응에 떨떠름해진 지젤이 하이튼의 남색 옷소매를 붙들고선 물었다.

 “안 얘기 해줄 거야?”

 “뭘?”

 “화가 난 이유. 난 너처럼 똑똑하지 않아서 네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건지 모르겠어. 그리고 왜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도.”

 “그게 왜 궁금해?”

 “그야!…”

 “응?”

 하이튼의 맑은 적안이 그녀에게 향하자 그녀는 자신의 적안을 숨기며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널 이해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풉.”

 “뭐야! 왜 웃어!”

 지젤의 반응에 하이튼이 너무 귀엽다는 듯 낄낄댔다. 그 모습에 지젤의 볼이 조금 붉어져서는 몸을 획 돌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하이튼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에 뒤따라간 하이튼이 웃음기 어린 말로 변명을 해왔다.

 “아이참, 지젤! 너가 너무 귀여워서 웃은 거야!”

 “흥.”

 “알았어. 얘기 해줄게.”

 “정말?”

 하이튼의 승낙에 지젤이 눈을 빛내며 묻자 그가 한번 더 웃음을 참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 오늘 우리가 배운 내용이 뭐였어?”

 “왕국의 도래와 신성국가의 기원?”

 “맞아. 그 중에서도 오늘 배운 이야기를 생각해봐.”

 “음, 신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왕의 이야기?”

 “그래. 거기서 이상한 점 못느꼈어?”

 “…왕에게 자의식이 없다는 것?”

 “응. 그 부분이야.”

 “그게 왜? 공정한 통치를 하려면 신의 의지가 가장 잘 통하는 상태여야 하잖아.”

 “그 이유만으로 그녀가 자의식 없이 태어나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음…”

 “…심지어 왕들은 대대로 리우루스 가문에서만 배출되지.”

 “그건 리우루스 가문이 신의 피를 이어받아서잖아?”

 “진실은 언제나 묻히기 마련이야. 인간의 자의식을 사라지게 한 것이 정말로 신인지는 알 수 없지.”

 “…그럼 어떻게 자의식을 없앤건데?”

 지젤의 뾰루퉁하고 불만 많은 얼굴에 하이튼이 웃으면서 연극톤으로 과장되게 말했다. 그의 연기는 마치 광대처럼 보였다.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네!” [햄릿 중에서]

*

“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백발에 자안을 지닌 소녀가 돌아보았다. 멍하니 거울을 보던 센이 대답을 해왔다. 표정은 두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에서도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응.”

 “…뭐하니?”

 “그냥 있어.”

 그렇게 말한 센이 다시 거울 속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렇게 생긴 것이 신기하다는 것 마냥 보았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리안이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 의식이야.”

 “응.”

 곧 바로 대답해온 센의 음성에 리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고통을 그가 대신 짊어질 수 없다. 왕이 되려면 어쩔 수 없는 절차라고 리안은 생각했다. 

 “오빠.”

 갑작스런 그녀의 부름에 놀란 리안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어?”

 자신을 오빠라고 부른 건 처음이었기에 꽤나 당황한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밖에 나가고 싶어.”

 “……”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센이 뒤를 돌아보며 리안의 자색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그에 리안은 흠칫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도 한몫을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그 어떠한 생명력도 온기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신의 동생이 살아 있는 사람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가 거북했던 리안이 시선을 내리며 물었다.

 “밖은 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하이튼을 말하는 거니?”

 “응.”

 하이튼에 관해 이야기 하자 그녀의 자안에 잠깐의 생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부탁에 리안이 잠깐 고민했다. 곧 있으면 성인식이다. 그녀가 나갔다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성인식이란 자아의 소멸을 의미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리안은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센은 자신의 동생이자 미래에 자신이 보호해야할 왕이다.

 "알았어. 나가자."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경험하고 싶은 세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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