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그렇다면, 이쪽도 해 줄 수밖에 없다고.”

세훈 역시 각오했다는 듯 말한다.

“이런 상황은 예전에 몇 번 겪어 봤거든. 내 능력으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세훈이 막 주먹을 쥐고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페넬로페와 에시모에게 막 뭔가 해 보려고 하는데...

“엇?”

이상하다.

페넬로페와 에시모는 약 10m 정도의 거리를 두고는, 세훈에게 더 다가가지 않는다.

“뭐 하는 거지, 너희들?”

“......”

세훈이 말해도 페넬로페와 에시모는 말없이 그냥 웃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냥 웃기만 하는 건 아니다. 확실히 저건 검을 숨긴 웃음이다. 그런데 뭘 숨겼기에 저러는 거지?

문득 세훈의 피부에 닿는다.

위험하다.

뭔가가 세훈을 포위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세훈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그때.

“흐흐흐...”

에시모가 어딘가를 엄지로 가리킨다. 세훈이 따라서 돌아보니, 문을 닫은 기념품 가게가 보이는데... 전시되어 있어야 할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저 가게가 뭐 어쨌다고...”

세훈이 막 따져 물으려던 그때.

후두두두-

뭔가가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 같기도 하는 소리가, 세훈의 귀를 때린다. 폭포 소리 같기도 하고, 모래를 쏟는 소리 같기도 한 이 소리...

“뭐야...”

뛰어오른다... 뭔지 모를 것들이!

순간 세훈의 눈에 보인다. 그 뛰어오른 것들, 다름아닌, 아까 그 기념품 가게에서 사라진 온갖 물건들이다! 하지만 왜, 저것들이 마치 의지라도 지닌 것처럼 저러는 건가?

그리고...

“우와아앗!”

달려든다. 그 기념품들이. 세훈을 향해서!


한편, 813호실.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AI폰으로 만화를 보며, 과자를 하나 둘 먹던 현애는 오랜 기다림에 짜증이 났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메시지를 넣어도 안 받고... 과자를 공장 가서 만들어 오나?”

어느새 테이블 위의 과자 한 봉지가 다 비워져 있다.

“내가 아무래도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막 나갈 준비를 하고, AI폰을 든다.

“저기, *프로도.”

“네, 무슨 일로?”

“세훈이 어때?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 같아?”

“네. 그런 것 같은데요. 전화해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받는데, 10분이나 계속 그러니까요.”

“하, 그래. 내가 역시 한번 가 봐야겠어.”

그 길로 방을 막 나서려는데...


♩♪♬


“응?”

방 앞에 누가 와 있다. 사람 2명이다. 얼른 문을 열어 본다.

“짜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 시저, 니라차! 웬일이야?”

“웬일이긴. 어제하고 마찬가지로, 그냥 심심해서 와 봤지.”

먼저 말하는 사람은 시저.

“역시 여기가 내 방보다 낫잖아.”

“그런데 말이지...”

니라차가 방 안을 스윽 보더니 말한다.

“세훈이 어디 갔어? 왜 안 보여?”

“아, 아까 과자 사러 갔는데, 아직 안 오네. 30분 정도 된 것 같은데...”

“몇 시에 나갔는데?”

“아까 9시에 나갔으니까... 그렇게 됐지?”

“아니, 왜 너희는 날마다 번갈아서 안 보이는 거야.”

시저가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거야? 아니면 뭔가 이상한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시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지금 현애와 세훈에게 일어나는 일은 충분히 이상하다. 여행을 갔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다른 누군가로 오해하고 공격해 오는 일이 어제부터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안 된다. 이 사실은 말하기 곤란하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여행의 흥이 다 깨져 버릴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다...!

“뭐, 멀리 간 건 아니겠지, 시저 오빠.”

“그래. 과자 사러 밑에 아케이드 가면 되지, 발 아프게 저기 밑에까지 다녀오지는 않을 테니까.”

“아... 그... 그래...”

현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이제 금방 돌아오겠지. 과자 사러 갔으면.”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시저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테이블을 본다. 거의 다 먹은 과자 봉지 하나가 바로 시저의 눈에 들어온다.

“우와, 이걸 혼자 다 먹은 거야?”

“아, 아니, 그건...”

“세훈이 이따가 올 때 과자 좀 더 사 오라고 해야겠다. 내가 전화 걸까?”

“뭐, 지금 굳이 전화는 안 걸어도... 되겠지.”

현애는 얼버무리며 말한다. 다행히 시저와 니라차가 눈치를 채지는 못한 듯하다.


“이거... 이게 대체 뭔데!”

마구 뛰어오르는 기념품들을, 세훈은 팔을 들어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작은 기념품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많지 않은가! 어림잡아도 100개는 훨씬 넘는 저것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막는단 말인가!

“그것 참 꼴 좋군.”

페넬로페가 쩔쩔매는 세훈을 보고는 꽤나 흡족했는지 미소까지 지으며 말한다.

“여태까지 너희 동료들한테도 보여 준 적 없고, 심지어 파울리하고 같이 일하면서도 한 번도 안 보여준 내 능력이거든. 이제 다들 알게 되겠지. 내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 아니, 됐고, 나는 그 파울리라는 사람하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거든? 왜 대체 나한테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시치미떼는 그 모습, 그리고 지금쯤이면 드러낼 만한 초능력을 굳이 꾹꾹 숨기는 그 모습, 역시 파울리의 친구다워.”

세훈은 한숨을 내쉬고 싶을 정도다. 미켈과의 관계를 오해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세훈의 초능력은 안 보여 주고 싶어서 보여 주는 게 아니다. 고작해야 타인의 능력을 증폭시켜 줄 뿐이고, 그것도 함부로 썼다가는 세훈 자신만 불리하게 될 뿐인데! 이런 모습도 눈앞에 있는 페넬로페와 에시모는 또 어떻게든 미켈과 연결시키려 할 테니, 세훈은 그저 답답하고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나 묻지.”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에시모가 입을 연다.

“카이린이 잡혔을 때, 너도 그 자리에 있었지?”

“그런 거 모른다니까!”

아뿔싸.

‘카이린’이라는 이름이 불릴 때 세훈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떠 버렸다.

“호오, 왜 거기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거짓말해도 다 알지. 300년 넘게 살아 온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나?”

“아니, 그게 아니라고!”

“순순히 말을 해 주거나 하면 그래도 기념품 선에서 끝날 수 있었겠지만...”

에시모의 목소리에서, 독기가 흘러나온다. 조금 더 세진 독기가.

“좀 더 큰 걸로 상대해 줘야겠군. 파울리와 네 그 망할 친구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에시모가 신속히 페넬로페를 돌아본다.

“페넬로페!”

“알았어. 지금 바로 준비하지!”

페넬로페의 말이 끝난 그 순간...

또다시, 세훈의 피부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 뭔가가 엄습한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리고 그 예감이 세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지 3초도 안 되어...

“우... 우왓!”

세훈의 눈에 보인다.

수많은 화분들, 그 중에도 가시 달린 식물들이 담긴 화분들이, 일제히 세훈의 눈앞에서 뛰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이... 이 자식들!”


세훈은 온몸을 가득 덮고 있던 기념품, 화분들을 팔을 휘저어 치운다. 화분과 기념품에 파묻혀 있던 세훈의 얼굴과 온몸 여기저기에는 생채기가 나 있고, 가시 돋친 식물에서 나온 가시도 박혀 있다.

“아... 아윽...”

일어나려고 해도, 손으로 짚는 곳마다 기념품 조각, 식물의 가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일어나기도 힘들다.

“자, 기회를 주도록 하지.”

“기회? 무슨 기회?”

“지금이라도 우리한테 협력한다면 네 목숨은 보장해 줄 수 있어. 그렇지 않고 계속 우리한테 허튼짓을 계속한다면, 네 목숨을 빼앗아 파울리 녀석과 네 그 망할 친구들에게 본보기로 삼을 거다.”

페넬로페는 말 한마디 한마디 독기를 머금고 말한다.

“자, 선택해! 기회는 지금뿐!”

“아니,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 건데.”

세훈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말했잖아.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아무리 뭐라고 해 봐도 세훈은 페넬로페와 에시모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에시모가 다시 세훈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해 보려는데...

“잠깐.”

페넬로페가 막 세훈에게 다가가려던 에시모를 제지한다.

“왜 그래?”

“조심하라고.”

“아니, 왜? 저 녀석은 그저 쓰러져 있을 뿐이잖아.”

“얼핏 보였어. 저 녀석은 초능력의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그걸 숨기고 있을 뿐이야.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다가가지 마!”

“그, 그래...”

에시모가 한발 물러서려다가, 다시 페넬로페를 보고 말한다.

“잠깐, 왜 다가가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페넬로페는 막상 에시모가 그렇게 말하니 잠시 망설인다.

“한 방 더 먹여 줘야지!”

에시모는 주먹까지 들어 보이며 말한다.

“오늘 아침에 카이린이 말한 거 생각 안 나? 우리는 막아야 해. 저 녀석들이 태양석을 가져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서로 말다툼을 하려던 페넬로페와 에시모의 사이를 비집고, 세훈이 끼어든다.

“이봐, 너희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나는 그냥 여기 여행 왔을 뿐이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응?”

“하, 하!”

페넬로페와 에시모 막 말다툼을 하려던 걸 멈추고 세훈을 돌아보며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 겉으로 번지르르하게 속여 놓고 뒤통수 치는 녀석들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봐 왔는지, 알기나 해?”

“.....”

세훈은 지그시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노려본다.

“왜 그렇게 보나? 그런다고 우리가 착해지기라도 할 줄 알아?”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뭔가 해 주는 수밖에.”

“하, 뭘 해 주게? 했으면 진작에 하지 그랬나!”

여전히 에시모는 세훈을 경멸하는 눈으로 내려다본다.

“설마 네 녀석이 반격을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어. 네 녀석에게 더 이상 선택지는 없고, 네 녀석을 위한 공격이 더 많이 준비되어 있거든! 그것도 네 녀석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해 줄 수 있지!”

“그만 자극해라. 너희가 더 이상 했다가는, 너희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으니...”

페넬로페와 에시모의 눈에도 이제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세훈에게서 나오는 초능력의 아우라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안 되겠어, 이 녀석. 지금 바로 처치해야 해!”

에시모가 페넬로페를 돌아본다.

“이미 준비했지, 에시모.”

페넬로페의 뒤로 보인다.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의자, 쓰레기통, 그리고 조각상들!

“좋아, 됐다!”

에시모가 기다렸다는 듯 큰 소리로 외친다.

“네 녀석은 이걸로 끝이다!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봐라!”

세훈의 머리 위로 보인다.

세훈을 향해, 일제히 뛰어올라, 세훈을 향해 뛰어드는, 의자, 쓰레기통, 조각상들이!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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