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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택시를 타고

W. 몸





웃네, 저 사람.


백미러 앞으로만 보던 얼굴은 항상 무엇인가 짜증나 있고 신경질이 나 있었는데. 웃기도 하네, 저 사람.


“ 자, 됐어요. ”

“ 뭐가요? ”


냉큼 제 자리로 돌아와 밸트를 끌어매던 지훈이 제게 묻는 민규를 돌아다봤다.


“ 대한민국 택시기사들은 모르는 게 없거든요. 속된 말로 마누라 속사정 빼고는 다 안다. ”

“ 마누라... 속사정...? ”

“ 뭐 암튼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겠다고요. ”


벨트를 착, 끼워 넣고 핸드브레이크를 툭 풀던 지훈이 갑자기 휙 몸을 돌린다.


“ 그나저나, 여기 옆으로 앉는 거 어때요? 백미러 보는 거 목 아픈데. ”

“ 아, 네. ”


민규가 주섬주섬 일어나 택시 앞좌석으로 걸어온다. 그리고는 달각,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선뜻 타지는 못하고 멈칫, 택시 문의 열린 틈으로 지훈이 훅 문을 밀었다. 빨리 타요. 앞에 더욱이 활짝 열린 문 앞에, 민규는 더 이상 망설이지 못하고 의자에 몸을 앉혔다. 택시가 시내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바다였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한적한 바다. 맞아, 부산은 바다가 있었지. 그 생각을 못했네. 민규가 바다가 보이자 창문을 한가득 내렸다. 차 안으로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여기가 제일 사람이 없는 바다래요. 지훈이 바다가 드러난 도로의 끝을 보며 말했다. 정말이네. 사람이 별로 없네. 한낮이라 그런가.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지훈이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지점에 택시를 세웠다.


“ 다녀오세요. ”

“ 네? ”

“ 부산까지 왔는데, 바다 안 보고 돌아가면 바보에요. ”

“ 아... 네. ”


민규가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조금씩 멀어지는, 그리고 바다와 함께 너풀거리는 민규의 뒷모습을 지훈이 핸들에 팔을 괴고 바라보았다.

터벅터벅. 걷는 걸음이 점점 깊어진다. 푹푹, 들어가는 발걸음을 어렵사리 하나씩 내딛고, 솔솔 셔츠 안으로 들어오는 바다 바람을 느낀다. 운동화 속으로 모래알들이 침범해도 모르는 척 민규가 바다를 향해 걸었다.

어느새 민규가 손가락만큼 작아졌다. 지훈이 멀리 제 손가락을 눈 앞에 대어본다. 딱 엄지 손가락 크기만큼 작아진 민규. 민규가 멈추지 않고 걸어 들어가는, 멈추지 않고 작아드는 모습을 보고 지훈이 순간 몸을 세웠다. 어어? 스치는 예감으로 차문을 달각 연 순간, 민규가 풀썩 제자리에 주저앉아 지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아아... ”


민규가 목소리를 냈다.


“ 바다다... ”


사위를 광광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 한동안 제 목소리를 잊고 산 것 같았다. 정말 내 소리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따금씩 풍경의 소리들이 흘러들어오는 그 창가에 서서 멍하니 있다보면 으레 애인이 그리워졌다. 인사 못하게 해도 되니까 잠깐 손이라도 잡아봤으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해도 되니까 잠깐 눈이라도 맞춰봤으면.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밤이었고 애인이 돌아왔다.

오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시끄러운 건 싫어하니까. 아무 말도 없이 웃어줘야지, 하던 것이 정작 애인의 얼굴만 보면 입꼬리가 벌어졌다. 말을 건네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다. 나 여기 있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그렇게 푹 숙인 고개를 하고 저를 모른 체 방으로 들어가는 애인은 말릴 수 없을 것 같아서.


“ 바다... 바다아...! ”


애인이 잠들면 그 등에 대고 몇 마디인가 속삭인 적도 있었다. 오늘 어땠어? 점심은 맛있었어? 회사 밥 맛 없다고 또 안 먹은 건 아니지? 오늘은 낮에 부모님 전화왔어 곧 연말이니까 한 번 얼굴 보자고. 어때? 같이 갈까? 우리 부모님 궁금하지 않아?

그러나 돌아오는 침묵을 부둥켜 안고 민규는 집을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택시를 탔다. 어디론가 가버릴까. 그런데 막상 갈 곳이 없네. 아는 곳도 없고, 그래서 앞 사거리에서... 세 바퀴만 돌아주세요 라고 했다. 택시기사들은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곧 쉬운 운전길에 말 없이 차를 몰았다.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말이란 게 하고 싶어서. 갑자기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학 싶어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시작했다.


“ 좋다... 좋아... ”


민규의 뒷말이 파도에 파묻혔다. 어느새 지훈이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민규의 옆에 서 있었다.


“ 좋아요? ”

“ 좋아... ”

“ 아니 왜 반말을 하고 그래요. ”

“ 좋아요... 씨발... ”

“ 허? 돌아버리겠네. 욕했어요 지금? ”

“ 미안... 해요... ”


그러더니 왈칵 울어버린다. ...하아, 울어요, 울어.


누군가 그랬다. 바다는 신이 세상을 만들고 나니 너무 적적해서, 외로워서 왈칵 울어버렸더니 생긴 게 바다라고. 그래서 파도도 저렇게 시끄럽게 치는 거고. 모래는 푹푹 슬픔이 잠기라고 발목마다 휘감기는 거라고.


웁시다. 울어. 지훈이 툭툭, 모래사장을 발로 찼다. 훌쩍, 민규가 소매로 제 코를 쓸었다. 아 드러. 지훈이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 다 울었어요? ”

“ 네... ”

“ 갑시다. ”

“ 어디요? ”

“ 배고파요... 오늘 먹는 건 다 내준다고 했죠? ”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규를 뒤로 지훈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얼마 달리지 않아 작고 스러져가는 횟집에 멈춰세웠다.


“ 이모. 여기 오늘자 싱싱한 회 한 사라 주세요. ”

“ 서울 사람인갑네. ”

“ 네, 저희 서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더 싱싱한 거 주셔야 돼요. 저 택시 몰아요. 택시기사들 소문 무서운 거 아시죠? ”


익숙하다는 듯이 가게 아주머니에게 너스레를 떠는 지훈을 두고 민규가 휙 주변을 둘러보았다.


“ 여기 맛집이에요? ”

“ 택시 드라이버피셜, 믿어보세요. 아차, 이모 소주도 하나요. ”

“ 술 먹게요? ”

“ 상도덕이란 거 알아요? 원래 다른 지역 가서는 택시 몰면 안 되는 겁니다. 돌아갈 때만 운전해 주면 되잖아요. 오늘 쉬는 날도 아니고. ”

“ 그건 그런데... ”


어느새 차려진 단출한 기본 상차림에서 가볍게 오이 한 조각을 집어든 지훈이 톡톡 씹어먹으며 말했다.


“ 그래서 택시는 언제부터 몰았어요? ”

“ 음... 대학 졸업하고 나서 바로? ”

“ 일찍이네. 학교에서 공부는 잘 했고? ”

“ 잘하진 않았는데... 아니 근데 언제부터 반말이지? ”

“ 언제 반말 했어요. ”

“ 지금 했잖아. ”

“ 지금 너도 했잖아. ”

“ 아, 나 돌아버리겠네. ”

“ 뭘 돌아. 술이나 마셔. ”


그리고 입에 술 잔을 털어넣는 민규. 취했구나. 우리 둘 다 취했네.


“ 그리고 너, 왜 아저씨라고 해. ”

“ 아저씨 뭐. ”

“ 계속 아저씨, 아저씨 그랬잖아. 나이 비슷한 거 뻔히 알면서. ”

“ 택시 모는 분들은 대부분 아저씨잖아. 아저씨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표명사야. 아.저.씨! ”


다시 종알종알 말이 많아지고 꿍얼꿍얼 입술을 움직이는 것이 평소 심야에 보아왔던 민규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기력이 좀 보나 보네. 에너지 충전이 알코올로 되는 타입이세요?


“ 기분 나빴잖아. ”

“ 그럼 그때 얘기를 하지. ”

“ 그 때는 니가, 막 울고 입 터져 있고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해? ”


그 말에 또 민규가 입을 닫았다. 입가에 핏자국은 지워졌어도 입꼬리는 점점 푸르게 번져가고 있는 그 입으로 또 다시 소주 한 잔을 털어넣는 민규.


“ 아저씨. ”

“ 왜 또 아저씨야 새ㄲ, ”

“ 오늘 나랑 잘래요? ”

“ 네? ”


지훈이 입에 털어넣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대로 동작 정지.


“ 자러 갑시다. ”


그리고는 자신있게 일어나는 민규. 가게 밖까지 성큼성큼 걸어나갔던 민규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아직까지 잔을 든 채 멈춰있는 지훈을 일으켜세웠다. 가자구요.

그리고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아저씨, 카드 있죠. 좀 줘봐요. 두 명이요.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버스 뒷좌석으로 몸을 쏟는 두 청년을 버스기사가 백미러로 흘겨보았다. 버스가 말 없이 달렸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마치 택시 같았다. 바다가 멀어져 가고, 바다에서 풍겨져 나온 바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지훈이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었다. 매일 앞에서만 보던 풍경을 옆에서 보니까 좋네. 민규는 그런 지훈의 옆모습이 담기 풍경을 바라다보았다.

버스는 잠시 시내로 들어섰다. 하교길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버스에 올랐다. 야, 어디서 술 냄새 안 나냐? 미친, 대낮에 무슨 술 냄새야. 니가 마신 거 아니야? 돌았냐? 맞을래? 그런 쓸데없는 수다 속에 맨 뒷자석에 앉은 두 청년이 더욱 몸을 쭈그러트렸다.


“ 술 냄새 나나 봐요. 어떻게 해봐요. ”

“ 나는 걸 어떻게 해요.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면 술 냄새 더 다니까. ”


어느새 존대로 돌아간 민규와 지훈이 더욱 서로에게 바짝 붙어 버스 안의 소란이 사그러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버스는 다리를 건넜다. 짧은 다리였지만 버스의 좌우가 온통 바다뿐이어서, 그 위로 붉은 해가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처럼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어 더욱 신기했다.


“ 우와... ”


민규가 작게 말했다.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굽이진 언덕길을 올랐다. 올라갈수록 멀찍이 소란스럽게 지나온 시내의 불빛들이 번져갔다.


“ 예쁘네요 ”

“ 그러게요. 시티투어가 따로 없네요. ”

“ 우리집에서도 동네가 잘 보여요. 창 밖으로 내다보면 불빛들이 반짝반짝 거려요. 네온사인도 잘 보이고. ”

“ 언덕집이에요? ”

“ 그런 건 아닌데 집 앞이 트여있어서 그런가 봐요. 밤이 되면 좋아요. 생각 없이 창 밖만 보아도 좋아요. 그리고 난 매일... 고민해요. ”


버스는 더욱 높은 산복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끝이 없을 것처럼.


“ 왜 애인이 나에게 등을 돌릴까. 왜 애인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을까. 그래,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을 거야. 내가 뭔가를 잘못했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사과를 해보자. 빌고 또 빌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

“ 그 쪽 잘못, 아니지 않을까요? 안 그래 보이는데. ”

“ 그쪽이 저를 잘 알아요? ”

“ 택시기사들은 모르는 게 없다니까요. ”


순간, 눈이 마주쳤다.


“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


덜컹이며 멈춘 버스. 기사가 차고지에 도착하자 잽싸게 내리며 말했다. 민규와 지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 어디일까요. 글쎄요.

차고지를 나오니 언덕의 끝이었다. 그 아래로 바닥 펼쳐져있고 높다란 아파트와 치밀하게 들어선 주택가의 불빛들이 바다 위를 적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깊은 바다의 심연 속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 그 섬의 꼭대기에서 민규와 지훈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 춥다. ”

“ 춥네요. ”

“ 근데 우리 또 왜 존댓말해요? ”

“ 글쎄요. 반말하고 싶어요? ”

“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

“ 아니지만 뭐요. ”

“ 아저씨라고는 하지 마요. ”


풉. 민규가 웃었다. 슥 올라가는 뺨이나 휘어지는 눈꼬리가 밤 아래에서도 잘만 보였다. 내가 이렇게 눈이 좋았나. 바로 코 앞에서 웃는 것처럼 환했다. 민규는 저만치 서로 다른 도로의 끝을 걷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 시간을 걸었을까. 버스가 지나왔던 작은 다리에 도착했지만, 둘 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잠깐 서성이던 지훈이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담배 피는 남자들의 무리 안으로 사라졌다. 민규는 그 옆으로 늘어진 택시를 보고 안도했다.

곧 낮과 같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지훈.


“ 제가 정말 끝내주는 숙소를 알아왔어요. ”

“ 어딘데요? ”

“ 데려다 주신데요. 가요. ”


담배를 짓이겨 끈 남자가 택시에 올라타고 뒷좌석으로 나란히 민규와 지훈이 자리를 잡았다. 이내 택시가 다시 바닷가를 향하기 시작했다.





*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어딘가에서 벗어난 민규와 지훈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해가는 편이었습니다. 

쓰면서 생각이 정말 많아졌던 기억이 나네요. 

둘이 걷고, 보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상상해낼 수 있게. 소소하지만 서로로 꽉 찬 이들의 감정을 표현하려 애썼습니다.

다음 편은 내일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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