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트윗: 🏀님 ( https://twitter.com/SD_616/status/1661922233357594624?s=20)

뱀수인이 나옵니다. 병찬이가 대학생입니다.

캐해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싶은 장면을 이어 붙인 거라 개연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장마철도 아닌데 하늘이 꼭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괜히 오른쪽 다리를 한번 접었다 편다.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보챈다. 뭐지 저게? 길가에 검은 그림자가 있다. 고양이인가 싶지만 그것치고는 많이 작은 무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공...? 자세히 보니 뱀인 듯하다. 비늘 색이 갈색이라 말려있으니 꼭 농구공 같았다. 공비단뱀인가. 왜 여기서 비를 맞고 있지? 한국에서 사는 종은 아니니까 누가 애완 뱀으로 키우다 버렸나. 쪼그려 앉아 그 뱀과 눈을 맞추면 꼭 울고 있는 것 같이 날 올려다보고 있다. 으으, 이런 눈빛엔 약한데. 흠. 요즘 뱀에 대한 관심사가 높아져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긴 한데... 뭐, 널 만난 것도 운명이겠지. 외투를 벗어 뱀을 조심히 감싸 안는다. 이러면 체온 보존이 좀 되려나. 우리 집으로 가자.



-



눈을 뜨자마자 뱀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왔다. 사육장이랑 나무 베딩, 은신처. 열선도 필요하고. 온도계랑 습도계도 사야 하고 물그릇은 집에 있는 스테인 그릇 주면 되지 않을까. 아, 먹이도... 내가 쥐를... 하. 냉동 쥐라면 괜찮지 않을까... 핀셋 긴 거 사야겠다....

두 손이 모자랄 정도의 짐을 부엌에 두고 뱀이 잘 있나 확인부터 하려 방에 간다. 뱀아 잘 있었니~? 혼잣말을 하며 담요 쪽으로 가면 뭔가 허전한 부피가 보인다. 설마 하고 담요를 들추면 없다. 어디 갔지? 무서워서 도망갔나? 집을 구석구석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옷장 밑, 침대 밑, 부엌 베란다, 화장실 아무 데도 없는데 대체 어디 있지... 문이 열린 곳은 없어서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을 텐데. 내가 모르는 곳으로 탈출 했을까, 그래도 밖보다는 여기가 안전할 텐데. 고작 반나절 본 뱀이지만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걱정으로 미간 사이가 좁아진다.

[부스럭]

그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인가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 침대에서 들리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 설마. 침대로 가서 이불을 살짝 들추면 보이는 갈색 비단뱀. 하. 여기 있었구나. 갑자기 찾아온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앉았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당연히 어두운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지 따지고 보면 이불 속도 어두운 곳이구나 하하. 뱀을 바라보니 그래도 어제보다는 편한지 공을 풀고 널어져 있다. 몸통의 비단 모양이 예뻐 검지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니 또 놀랐는지 금세 공 모양이 되어버렸지만. 뱀아, 내가 네 집 사 왔어. 조금만 기다려. 몸을 일으켜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왔다. 흠, 이름은 뭐로 하지?

사온 물건들로 뚝딱뚝딱 집을 설치했다. 뭐야 쉽네. 맘에 들어 해줬으면 좋겠다. 방에서 뱀을 살포시 안아 사육장 안에 내려놔 주었다. 좀 큰가... 금방 자라지 않을까? 아직 아기 같은데. 뱀은 어리둥절한지 둘러보라는 집은 보지도 않고 날 올려다보기만 했다. 여기가 이제 네 집이야. 라고 말해주니 알아들었는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닥재를 느끼는 듯 꼬물거려보기도, 은신처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귀엽네. 어제는 꼭 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눈에 빛이 나는 것 같다.


"뱀아, 네 이름 정했어. 상호, 기상호 어때? 나 되게 열심히 지었어."


상호가 나와 눈을 맞춘다. 맘에 든다는 뜻인가? 아닌가?


"상호야? 맘에 안 들어? 다시 생각해볼까?"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작게 고개를 저은 듯하다. 그럼 맘에 드는가 봐!


"상호야, 나는 박병찬이라고 해. 이제 내가 네 가족이야. 잘 부탁해."



-



상호는 엄청 순했다. 종 자체가 순한 편인데 상호는 진짜 순했다. 집에 누가오면 은신처에 들어가 있다가도 내가 부르면 얼굴을 비춰줬고, 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고개를 내밀고 날 반겨줬다. 먹이를 줄 때도 내가 징그러워 하는걸 아는 지 최대한 빨리 물어가 은신처로 숨겨서 먹었다. 핸들링 할 때도 한 번도 문 적 없고 오히려 더 감겨왔다. 내가 손으로 몸통 만지는 걸 좋아하고, 눈 마주치고 얘기하는걸 좋아했다. 그새 몇 번 탈피도 해서 크기도 좀 커졌다.


"상호야, 사육장 뚜껑 열어 놓을까? 답답하지 않아? 내가 학교 가고 없을 때 집 돌아 다녀도 돼. 물론 내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해! 아, 밤에도 여기서 자야 해. 너 추우면 안되니까."

[끄덕끄덕]


신기하단 말이지. 상호는 진짜 내 말을 다 알아 듣는 것 같아. 무언가 말을 하면 고개로 대답을 해줬다. 기특해 아주. 뱀이랑 대화하기 콘테스트가 있다면 우리 상호가 분명 1등 할 것이다.


"하아... 상호야, 나 학교 가기 싫다. 널 두고 내가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니 세상이 너무 가혹해. 물론 너는 잠을 많이 자야 하니까 나랑 못 놀아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은 너를 어떻게 혼자 두니. 나 없을 때 네가 울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끄덕끄덕]

"헉 나 없을 때 울어!? 아냐 울지마, 수업 마치면 당장 달려올 테니까! 그냥 상호도 혼자 할 일이 있을 테니까 뭐라도 좀 하고 있어, 알겠지?"

[끄덕끄덕]

"아구 착하다 우리 상호. 오늘도 잘 자."


상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몇 번 쓸어주고 온도계와 습도계를 체크하고 방에 들어간다.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 마치자마자 집에 온다.



-



"상호야! 이 형님 왔다!"


어제 결심한 대로 수업이 끝나고 붙잡는 동기들의 손을 피해 바로 집으로 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사람? 인어? 갈색 머리의 살짝 날카로운 눈매와 그 밑에 눈물점, 체격은 살짝 마른 듯한. 그리고 군데군 보이는 비늘들과 하체는 꼭 인어 같은 지느러미가 있었다. 그리고 나와 마주친 눈이 흔들리고 있다.


"저기... 누구세요?"

"아... 햄. 저 상호예요."

"네?"

"상호라구요... 얼마 전에 주워 오신 뱀."

"상호라고...?"


서둘러 신발을 벗고 자기를 상호라고 소개하는 사람? 을 지나쳐 사육장을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다. 은신처 속으로 숨었나 싶어 살짝 들어봐도 없다. 근데 상호라고 말하는 저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어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뱀의 비늘이다. 인어라면 다리 끝에 삼각형의 지느러미가 있을 건데 상호는 진짜 뱀의 지느러미였다. 내가 그날 주워온 뱀이 수인이라니, 꼭 어디 소설 제목 같네. 비늘이 갈색이더니 머리칼도 갈색이네.


"상호야."

"네 햄."

"왜 자꾸 햄이라고 불러? 내가 모르는 애칭이야?"

"어, 아니요 형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 너 고향이 어디냐."

"부산이요."

"하... 대체 부산 애가 왜 경기도 길바닥에 있었던 거야."

"그러게요 하하."

"근데 왜 내가 네 형이야?"

"햄 대학생이잖아요. 나는 음,, 인간 나이로 16살인데요."

"형 맞구나. 그러면 왜 이때까지는 인간 모습으로 있지 않았어?"

"이때까지는 몸 상태가 안좋아가... 오늘도 변신하려고 연습하고 있었는데 이케 되뿟네요."


상호는 그 말을 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뱀일 때는 작다고 느꼈는데 반쯤 수인화 된 상호는 그 나이의 학생보다 살짝 작아 보였다. 더 크면 나랑 비슷하겠는데. 하체를 동그랗게 말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꼭 어렸을 적 그*스로마신화에 나오던 티폰 같았다.


"언제 뱀으로 돌아가?"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수인된 모습이 너무 오랜만이라 조절도 안되가...."

"그... 사람 모습일 때는 사람 밥 먹지...?"

"당연하죠. 저도 쥐 징그럽다구요."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내 옷 줄 테니까 뭐라도 걸치고 있어."

"넵."



-



내가 드디어 미쳤을까. 며칠째 내 머리에서 상호의 그 모습이 떠나가질 않는다. 밥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수업 들을 때도, 잘 때도. 내가 살면서 처음 본 수인의 모습이라 너무 충격이 강했던 걸까. 그 모습이 아니라 나와 마주할 때 날 빤히 보던 그 갈색 눈일지도. 에이 모르겠다. 생각나면 생각하면 되지.

그 날 상호는 저녁 먹고 얼마 안 되어 뱀으로 돌아갔고, 그 후로는 수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조절이 안된다더니 진짜인가. 아님 변하기 싫은가. 그러고 보니 내 말을 알아 듣는다고 신나 했던 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지 않나, 수인이니까 당연히 말을 다 알아들었을 텐데. 상호는 앞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음에 인간 모습은 언제 볼 수 있지? 생각 그만하고 학교나 가야지. 수업 듣기 싫다.


"형, 저번에 저한테 빌려 간 아대 들고 왔어요?"

"아 가방에 있을걸? 가져가~"

"형... 병찬형...!"

"왜? 거기 없어?"

"아니 형...! 가방에 뱀...!"

"뭐!?"


준수의 말에 놀란 눈으로 다급히 가방을 보면, 상호야 네가 왜 여깄어? 일단 준수에게 별일 아니라며 아대를 주고 돌려보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뭘까. 일단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본관 뒤 벤치로 이동했다.


"상호야, 상호야 일어나봐."

[부시럭]

"상호야, 왜 여기 있어? 어제 사육장에 들어갔던 거 아녔어?"

[끄덕끄덕]

"근데 왜 여기 있어? 새벽에 깼어? 그때 여기로 들어온 거야?"

[끄덕끄덕]

"놀랬잖아 상호야. 다음부터는 확인하고 지퍼 닫아야겠다. 날이 춥진 않은데 너는 괜찮아?"

[끄덕끄덕]

"다행이다. 나 수업 한 개 더 남아서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줘. 할 수 있지?"

[끄덕끄덕]


수업내내 집중? 당연히 될 리가 없다. 사람들이 놀랄까 봐 닫아 놓은 지퍼에 혹시나 상호가 답답할까 봐 신경 쓰여 죽겠다. 평소에도 75분은 길었는데 오늘은 진짜 150분 같다. 다리가 자꾸 덜덜덜 떨린다. 상호 춥진 않나, 물 먹을 때가 지나진 않았나, 숨은 쉬어지나. 수업 쨀까?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정신 차려 박병찬.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하시는 교수님 말이 들리자 책상 위의 짐과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선다. 지나가는 길에 사물함에 짐을 넣고 최대한 발을 놀린다. 상호야 조금만 참아.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내 가방 안에 있는 물건에 상호가 치이면!? 갑자기 우뚝 서서 가방을 안고 지퍼를 살짝 열어본다. 상호가 고개를 들어 날 본다. 상호야 괜찮아? 하고 작게 물어보면 끄덕여온다. 다행이다. 꼭 아기 들듯이 가방을 두손으로 꼬옥 안고 다시 서둘러 집에 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두고 지퍼를 열어 상호를 들어 올렸다. 혹시나 물건에 긁혔을까 봐 구석구석 살펴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나보다.


"휴... 상호야 이제 가방에 들어있지 마. 나 오늘 진짜 놀랐어."

"네 안 그럴게요. 죄삼다 햄."


응? 하고 숙였던 고개를 올리면 인간 모습의 상호가 보였다. 저번 같은 반수인화 된 모습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의 모습. 인간이 된 상호는 이런 모습이구나. 또다.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는 갈색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두근. 뭐야 방금 심장이 뛰지 않았나? 부정맥인가, 건강검진 예약 잡아야겠네.



-



이제는 2명이 사는 것처럼 상호는 잘 때만 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뱀은 잠이 많다 했던 것 같은데 상호는 나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차리고 있지 않은가.


"상호, 뭐해?"

"햄 일어나셨어여? 저 계란후라이해요! 먹고 나가실 거죠?"

"응 고마워."


왜인지 상호는 요리를 꽤 했다. 처음 해줄 때는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 한입 먹고서 그 의심은 한치도 없이 날아갔다. 나는 요리에는 재주가 없어 보통 사 먹거나 시켜 먹었는데, 부엌에서 누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아직도 조금 낯설다. 상호가 해준 맛난 계란후라이를 먹고 또 수업을... 하 다음 학기는 진짜 휴학한다.



-



"상호야 형 왔어. 뭐 하고 있었어?"


왜 대답이 없지? 나오면 꼭 강아지처럼 쪼르륵 달려왔는데. 상호야? 거실에는 없고 방에 있나?


"상호 여깄어?"

"햄!? 햄 오늘 일찍 오셨네요...?"


방에 들어가니 꼭 뭔가를 잘못한 강아지처럼 동그래진 눈으로 뒷짐을 지고서 날 바라보는 상호가 보인다. 나 몰래 뭐 할게 있나? 혹시 날 위한 서프라이즈!? 아 그면 모른 척 해줘야겠는데. 아 뭘까 궁금한데. 선물인가? 손재주가 좋은 것 같으니 무언가를 만들었나? 뭘 샀나? 상호가 돈이 있던가?


"그... 햄! 배고프시죠? 씻고 오시면 제가 밥 해드릴게요."

"흐음 그래! 먼저 씻을게."


숨기고 싶은 것 같으니 모른 척 해줄까나. 입에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니 근데 같은 집에 사는데 숨길게 뭐가 있어? 어차피 곧 알게 될 거 아냐? 살며시 다시 방문을 열고 상호 뒤로 걸어가면 하얀 무언가를 가방 안에 넣고 있다. 저게 뭐지?


"햄이 본 거 아니겠지? 들키고 싶지 않은데."

"상호야, 이게 뭐야?"

"헉. 햄!? 바... 방금 씻으러 가신다고...?"

"응. 근데 숨기는 게 뭔지 너무 궁금해서 다시 왔어."

"아, 저기 그게 음..."

"뭔데 그래?"


상호가 잡고 있던 것을 손을 뻗어 슬쩍 잡아 뺀다. 이게 뭐야. 허물이잖아. 이걸 숨기고 있었다고? 내가 본 것만 해도 몇 개인데? 직접 벗겨준 적도 있었는데. 얘는 뭐가 다른가? 두 손으로 제대로 들고 살펴보기 시작한다. 푸흡. 이래서 숨겼나보다.


"상호야ㅋㅋㅋㅋㅋㅋ 혹시 여기가 얼굴이야? 아 웃겨 이거 너무 베개에 눈물 적은 모습 같지 않아?"

"아 햄요!"

"아 너무 웃겨서 눈물 나. 우리 상호 이거 보여주기 싫어서 숨긴 거야?"

"하... 넵...."

"아 진짜 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너 진짜 귀엽다고."


아 진짜 너무 귀엽잖아. 이런걸 보여주기싫어서 숨긴다는게. 잠깐 귀엽다고? 웃음이 뚝 멈췄다. 애완뱀한테 느끼는 귀여움이 맞나? 어..?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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