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십삼 년 전에는 앨범 나올 때마다 멤버들이랑 언론사를 돌았다. 방송사엔 인터뷰 해주십사 매번 오디션 같았고 신문, 잡지사도 그나 마찬가지였다. 삼 년쯤 흐른 후엔 카메라도 기자들도 사옥에 찾아왔고, 더 후엔 장소를 대관해 기자회견으로 대신한 기억이 난다. 모쪼록 사람을 착각하게 두질 않는 매니저 최 실장이 '유행의 흐름이 아니라 급의 흐름'이라고 꼬집었다. 분장실 거울로 뒤의 최 실장이 보인다. 내가 쳐다보는 건 모르고 폰만 들여다보는 형이 '화보야 어차피 광고 문젠데 인터뷰 급이랑은 상관없지' 덧붙였다. 이걸 위로랍시고? 줄기차게 노려보는 시선을 샵 누나가 고데기 쥐고 막는다. 반깐 괜찮죠. 내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고, 분주한 에디터가 심각하게 보더니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주고 밖으로 사라진다. 

그룹 활동으로 한창 바빴을 땐 서면 인터뷰도 엄청 했었지. 이게 기사나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다는 체감이 제대로 안 돼 너무 졸릴 때는 장난식으로 동문서답을 자주 했다. 후회하면서도 또 체력에 못 이기는 정신력. 그래도 그땐 브레이크로 제어할 수 없는 열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촬영은 해가 중천일 때부터 시작이다. 창 하나 없는 지하 스튜디오에 빛이 들어오는 구석이라곤 한켠에 연결된 비상계단이다. 옥외에 난 비상계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볕이 잘 들어 장시간 촬영 중 광합성이 절실할 때면 거기로 갔다. 그룹 활동 때 열 명이 주르륵 계단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도시락 까먹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화보 촬영 전에 잡지에 들어갈 짤막한 인터뷰가 먼저다. 분주하게 세팅되는 촬영장을 등지고 앉아 기자를 마주봤다. 오 년여 전에도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고 하는데... 저 기억 안 나시죠? 은근 기대하는 물음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런 쪽엔 약해서. 어쩌죠, 제가 사람 기억을 왜 이렇게 못하는지.... 자기를 깎아내리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정국 씨가 연기에 도전하는 거 솔직히 전 예상을 못했어요. 솔로앨범이 아닐까 했는데."

"아 네 제가 원래 연기에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 보니...."

"그쵸, 오히려 멤버 중엔 태형 씨가 연기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잠시 정적이 있었다. 상대도 나도 이유를 아는 정적. 이래서 대화의 흐름이 중요하다. 곤란할 때면, 혹은 곤란해질 것을 예감한 때면 내 눈동자는 아이처럼 매니저 최 형을 찾는다. 최 형이 없으면 내 편이 돼줄 것 같은 사람을 누구라도 찾는다. 서른 되는 올초에 절대 이러지 말자 다짐했는데 습관이란 게 무서워서 고쳐질 기미가 안 보여. 익숙한 얼굴은 아마 아티스트의 내공 하나만 믿고 본인은 소파에 누워 폰게임 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을 것이다. 황망하게 스튜디오 벽이나 더듬던 시선이 시계에 박힌다. PM 12:30. 

사람 인연이 이렇게 무섭다. 그룹 활동 끝나고 열 명 다 제각각 다른 회사로 흩어진 게 언제적 일인데 인터뷰 방송 막론하고 꼭 나한테 멤버들 안부를 묻고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냐 묻고. 사람들은 뭘까. 퇴사를 한 후에도 전 직장동료와 매일같이 연락하고 지내는 것이 그들의 판타지인가?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었든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멤버들과 아주 사이좋기를 바라는 것이 일부의 바람이란 건 알겠다. 혈육과도 걸핏하면 찢어진다는 세상에. 자기들 추억이 부정당하는 건... 싫을 만도 하겠다.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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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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