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간도>의 설정을 일부 차용하였습니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01. 우장훈


장훈은 수사부장의 영결식에 기꺼이 참석했다. 특별한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다. 영결식에 오라고 부른 사람도 없었다. 순전히 장훈의 의지였다. 검은 넥타이를 매려다 거울 속 무덤덤한 얼굴과 마주 보았다. 제가 죽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그저 정장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입구와 떨어진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후, 일부러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고 연기를 뱉어냈다. 이럴 때 아니면 하늘을 볼 일이 없다. 두 개비째 입에 무는데 성모마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무해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 저게 다들 말하는 성스러운 얼굴 이라지. 신이라는게 정말 존재할까. 나도 구원 받을 수 있나.

멀찍이 서서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흰 천을 덧씌운 관이 예배당 밖으로 옮겨지는걸 지켜보았다. 평소에 덕망을 쌓았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훌쩍이며 뒤를 따른다. 장훈도 담배 연기에 애도를 실어 보냈다. 흩어지는 연기 끝에 강원철 형사국장의 모습도 보인다. 비통한 얼굴로 유족을 위로하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네가 여길 왜 왔어. 눈으로 장훈을 책망했다. 필터 끝에 바짝 붙은 마지막 남은 불씨를 발로 비벼 껐다. 씨발거, 죽은 사람 추모도 마음대로 못 하나.

세상 유일하게 장훈의 존재를 아는 사람, 단 두명 중 한명이 죽었다. 그 죽음은 장훈의 생의 절반이 죽은 것과도 같다. 그러니까 오늘 그의 절반이 한줌의 재가 되어 무존재로 돌아갈 예정이다. 남은 절반이 다시 눈짓을 하며 고개를 까딱, 예배당 뒷편을 가리켰다. 



후미진 곳에 세운 원철의 차. 블랙박스를 끄고 메모리카드를 빼는 와중에 누군가 조수석 창문을 똑똑,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똑똑 두드렸다. 장훈은 문 손잡이를 잡고 다시 한 번 주위를 일별한 뒤 조수석에 올랐다. 조금 전 동료의 마지막을 지켰던 원철의 얼굴이 버석했다. 

"겁도 없이, 사방이 경찰인데, 얼굴 팔리면 어쩌려고. 여길 왜 와."

"겸사겸사요."

장훈이 내미는 USB를 향해 뻗은 손이 조금은 주저한다. 원철은 장훈에게서 받아든 USB를 괜히 손 안에서 굴리기만 했다.

"정부장 저렇게 간거, 교통사고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아. ...너네쪽은 개입된거 아니지?"

"너네요?"

이어지는 잠깐의 침묵. 

"국장님. 내도 경찰입니다."

일그러진 입매로 겨우 뱉어내느라 구겨진 말. 창 밖의 아무 곳이나 응시하며 다시 한 번 되뇌었다. 

경찰이라고요. 

두어 번 마른 세수로 얼굴을 쓸어 내리는 장훈을 보고 원철은 작게 혀를 찼다. 

"잠은 좀 자냐? 얼굴이 많이 상했다."

시선을 돌려 원철의 얼굴에 머무는 장훈의 눈에서 원철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침잠을 엿본다. 그 곳으로 밀어 넣은 것은 자신이다. 3년, 아니 2년이면 꺼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3년이 다시 3년이 되고, 또 다시 3년이 되는 동안 장훈도 스스로의 구원을 포기했다. 

대답 대신 내미는 작은 종이가방. 과한 핑크색으로 포장된 무언가가 들어있다.

"수진이 생일 얼마 안 남았잖아요. 뭐, 요새 고딩들 좋아한다 카는걸로 골랐는데 맘에 들라나 모르겠네."

"새끼야, 너는 네 몸이나 좀 챙겨. 남의 딸래미 생일은 왜... 쯧."

원철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짓이기다 결국 종이가방을 받아든다.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선물을 내미는 손에서 10년 전 생기 넘치던 20살 장훈의 다정과 유쾌함이 겹쳐 보인다. 장훈을 향한 동정도, 연민도 결코 아니다. 제 자신에 대한 죄책감. 수석으로 경찰대에 입학했던 그 영민함을 '잠입수사'라는 허울 좋은 굴레를 씌워 끝없는 침잠으로 밀어넣고 이용하고 굴리는 동안 장훈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그 죄책감을 덜고자 결국 원철은 또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뱉는다.

"우장훈아. 이번은 진짜, 끝장을 보자."

"......"

"네 10년, 이제 제대로 보상 받아야지."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대답을 대신한다. 차 문을 열고 나가는 장훈을 붙잡는 목소리. 우산, 비 올 것 같다. 원철이 건네는 검은 장우산을 받아 챙겼다. 장마철의 날씨는 갑자기 돌변하기 마련이다. 비를 쏟았다가, 해를 띄웠다가. 누구든 갑자기 인생이 돌변할 수 있다. 경찰이었다가, 마약 무기 밀매조직 깡패 조폭 이었다가. 비는 우산으로 막을 수 있고. 내 인생은 ... 


원철의 차가 나간 반대편 길을 택해 성당 앞마당으로 빠져나왔다. 투둑 어깨를 적시는 빗방울에 우산을 펼쳐 받쳐들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인파가 빠져나간 성당은 조용했다. 아까 본 성모마리아상을 지나는데 건너편에서 인영이 도드라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무언가를 태우는 모습. 연신 라이터를 찰칵거리다가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잔해까지 발로 짓이기더니 그제서야 우산을 펼쳐든다. 고개를 든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정성들여 매만진 정돈된 머리, 틈 없이 꽉 올려채운 넥타이. 무감한 표정으로 장훈을 응시하던 사내는 이내 젖은 구두굽 소리를 내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비에 젖어 우중충한 배경 속에서도 날카로운 눈매는 형형했다. 

경찰인가. 설마 날 의심하나.

뒷목을 훅 훑으며 끼쳐오는 소름. 한기로 부르르 온 몸을 떨었다. 이제는 마주치는 모든 이들을 두려워 하게 된 제 처지가 가엽다. 


내도 경찰인데. 






02. 황시목


이 날은 왠지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은 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의 시목 답지 않게 회식을 거절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자신의 경감 진급과 본청 형사국 마약조직범죄수사과로 발령난 것을 축하해주는 자리니까. 소주잔을 너댓번 연속으로 비웠더니 나른한 기운이 퍼진다. 시목은 가만히 등을 뒤로 기대어 앉았다. 저를 위해 모인 자리. 마치 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떠들어주는 것 같다. 시목은 사람들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무감한 눈동자로 좌우를 훑는다. 

"황시목 경감, 한 잔 받지."

강원철 형사국장의 목소리에 나른함을 접어두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두 손으로 받쳐 드는 술잔에 채워지는 투명 액체. 병을 이어 받아 원철의 잔을 채우는 손길에도 각이 잡혀있다. 

"서울청에서 아주 날렸다지? 본청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낯이 좀 익은데."

"경찰대 시절에 국장님의 형사학개론 수업을 들었습니다."

아아. 원철은 소소한 의문이 해소되어 완연히 미소를 띄며 잔을 비웠다. 이어지는 사담들, 키우는 개 부터 본청 간부들 이야기까지 범위를 극단적으로 넘나드는 동안 술잔이 비워지는 횟수도 쌓여간다. 조금만 취하려던 계획이 빗나갔다. 하긴, 시목에게는 언제인가부터 계획에서 약간씩 비틀린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는 위험하다. 취기에 실수라도 할까봐 미간에 힘을 주며 풀어진 정신을 컨트롤했다. 




"어후, 술냄새."

"응. 미안." 

"그래도 환영 회식이라 기분 좋았나봐요? 선배답지않게 좀 마셨네, 오늘은."

시목이 품에 안은 동그란 머리를 어루만졌다. 품에서 얼굴을 떼고 마주보는 영은수의 눈동자 속 비치는 자신이 만족스러워 옅게 웃었다. 

이렇게 안겨 있는 은수도 실은 어긋난 계획 중 하나였다. 결단코 누군가와 결혼을 약속하게 될 일은 없어야 했는데. 충만함. 만족감. 완성된 인간이 된 기분. 시목에게 다가오는 은수를 향해 느끼는 제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서야 깨달았다. 탐스러운 꽃송이가 제 눈 앞에서 망울을 터트린다. 날 봐달라고.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시목은 수술 후 감정을 쉽게 느끼진 못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의 가치를 높게 평가 할 줄은 안다. 다른 누군가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 기꺼이 시목의 청혼을 받아들인 은수의 뺨이 뜨거웠다. 그 열기는 다시 시목을 만족스럽게 했다. 

"얼른 씻어요."

으응, 살짝 비척대는 걸음으로 욕실로 들어가는 시목의 뒷모습. 은수는 살풋 미소지었다. 흐트러진 모습, 오랜만이네. 옅은 술냄새가 나는 시목의 재킷을 정돈하려고 들어올렸다. 주머니에 든 물건들을 빼서 협탁 위에 올려둔다. 휴대폰, 또 휴대폰, 못 보던 라이터.

담배도 안 피는데 라이터는 왜?

손에 들린 평범한 반투명 초록색의 라이터. 필요한 일이 있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두 대의 휴대폰 옆에 라이터를 올려두었다. 욕실에서 들리는 물줄기 소리를 배경음악삼아 다시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목이 오기 전까지 보고 있던 잡지로 시선을 돌린다. 머릿속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의 얼굴 자리에 제 얼굴을 대입시켜보고, 어느 한 드레스에 유독 오래 머무르다가 페이지 오른쪽 귀퉁이를 살짝 접어 표시 해두었다. 

지이잉-

협탁에 올려둔 시목의 휴대폰 중 하나가 울렸다. 업무용 휴대폰. 시목은 업무용 휴대폰에 남의 손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주 예민하게 변한다. 세상 모든 일에 무감하면서, 개인 휴대폰으로는 은수가 무슨 짓을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전화를 안 받으면 걸다가 말겠지, 은수는 진동을 무시하고 다시 웨딩드레스의 세계로 들어갔다.

지이잉-

벌써 세 텀째 울리는 진동. 몹시 신경쓰인다. 이렇게까지 계속 전화를 할 일이면, 아주 급한 사건이면 어쩌지? 이제 욕실에서는 머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한창이다. 은수는 망설이다가 팔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초록색 통화 버튼을 옆으로 슬쩍 밀었다. 시목의 부재만 알리고 끊을 심산이었다.

"여보세-"

휙, 힘으로 거칠게 낚아 꿰어진 전화는 어느 새 시목의 손에 들려있다. 갑작스러운 기척에 헉 소리가 났다. 술기운에 살짝 붉었던 홍조는 흔적도 없다. 차갑게 은수를 내려다보는 시목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황시목 입니다."

전화를 받으며 서재로 들어가는 시목의 뒷모습까지 잔뜩 날이 서 있다. 은수는 오른손 엄지를 입으로 가져가 까득, 깨물었다. 기분 나빴으려나, 신경쓰이네. 오해를 풀어야 할까, 고민했지만 비수처럼 날카로웠던 시목의 표정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시목의 통화가 길어진다. 은수는 잡지를 덮고 수면등을 껐다. 



- 아이고 황시목 경.감.님. 진급 하시더니 동작이 굼떠졌어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전화 받은건 누구? 여자 목소리 들려서 깜짝 놀랐자네.

"......"

- 아아, 그 여자 검사. 뭐, 진짜로다가 결혼 하실라고?

상대가 은수의 신상을 이미 알고 있다. 이를 은연중에 드러내며 우위를 과시한다. 시목에게는 일종의 경고로 들린다. 넌 내 손을 못 벗어나. 뺨근육이 긴장으로 경직되었다.

"...곧 인사 드리겠습니다."

- 궁금은 허네. 나가 그래도 명색이 황시목이 생명의 은인 아녀? 애인 소개 받고 그 정도 끕은 되자네.

"예."

- 아이 혓바닥이 길었네. 시목아, 여기 아무래도 쥐새끼가 있는 것 같다.

"연합 안에 말입니까? 아니면 레이븐 말씀이십니까."

- 거까지는 아즉. 두루두루 살펴봐야 쓰겠다. 조심해서 나쁠거 없제.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 그랴. 본청은 물 맛이 달라? 

"접근 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확실히 많습니다."

- 강원철이는 신수 훤하던가? 어휴 씨벌놈. 그짝도 곧 끝장을 봐야 쓰는디. 여튼 시목이 니는 당분간은 쥐새끼 찾는거에 좀 더 집중하고, 러시아 손님 오시면 길 좀 닦아주고. 

"예.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서재를 나서려다 거울 속 무덤덤한 얼굴과 마주 보았다. 편하게 차려입은 보송한 면셔츠가 잘 어울린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온기 서린 집에서 따뜻한 물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 내는 이 안온함, 평범한 삶,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시목의 계획에서 가장 크게 어긋난 부분. 3년, 길면 5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경찰 행세를 하게 되었다. 그래, 경찰대를 간 순간부터 어쩌면 시목도 이 지난한 '잠입'이 끝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외면했을 뿐. 

시목아, 너 경찰 혀라. 보통 경찰 말고, 이왕 하는거 기깔나게 저어기 윗대가리까지 가보자.

제 생명의 은인임을 자처하는 안상구의 부탁이자 권고였다. 경찰? 생에 대한 애착 조차 없던 어린 그에게는 요원한 이상. 뇌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 조차 버린 시목에게 생의 연연함이 생길리 없었다. 고아원에 살면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같은반 친구가 너무나 시끄러워서 목을 졸라 시끄러움을 멈췄고, 때문에 고아원과 학교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전전했다. 우연히 안상구의 눈에 띄어 그 밑으로 데려가 먹여주고 재워주더니 미국까지 보내서 뇌수술을 시켜줬다. 이 부분에서 시목은 늘 상구의 의중이 궁금하다. 우월감에서 비롯된 동정심이었을까, 약자를 돌보는 자신의 모습이 심히 보기 좋아서 그랬을까. 어쨌든 그런 상구의 의견대로 시목은 착실한 경찰이 되었다. 경찰대 4년 내내 수석도 놓치지 않았고. 지원하는 부서는 늘 마약, 조직 범죄 수사 관련. 그래야 상구의 사업에 도움이 되니까. 투자자에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얼마만큼 더 가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쥐새끼. 쥐새끼라.

마른 세수를 하는 손 끝이 차다. 쥐새끼가 쥐새끼를 찾아야한다, 거울 속 쥐새끼에게 실소를 날려주었다.






03. 우장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궜다. 온 몸의 피가 돌아가는게 느껴진다. 장훈은 어깨, 목을 지나 천천히 얼굴이 완전히 잠길 때 까지 욕조에 몸을 넣었다. 물 속 웅웅대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적막. 잠시 후 멈췄던 호흡을 다시 푸흐, 뱉고 얼굴을 꺼내 공기를 들이마신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물 속에서 계속 잠겨 있고만 싶은데. 이미 조직에서 숨도 편히 못 쉬면서 살고 있는 처지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사부장의 죽음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를 처음 본건 경찰대 교수연구동 회의실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가 한창이던 여름, 장훈은 원철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갈등했었다. 아직 내일 시험범위를 다 못봤는데, 갑자기 왜 찾으시노. 그냥 그 때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10년째 발목을 잡고 있다. 

회의실 안에서는 원철과 수사부장이 나란히 서서 담배를 뻑뻑 피고 있었다. 매캐한 연초향에 미간이 찌푸러들었다. 

얘가 성적도 운동도 수석이라던 걔야? 

원철의 옆에 선 초면의 수사부장이 뜬금없이 장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자신과 원철을 마약 카르텔 TF 소속이라고 밝히더니, 장훈의 프로필을 읊었다. 부모도 친척도 없는 천애고아, 장학금으로 학비는 해결 하겠지만 생활비 때문에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사연, 돌아가신 부모가 남긴 막대한 빚. 사찰이라도 했는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다. 알몸으로 군중들에게 던져진 기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었다. 이토록 장훈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수치스럽게 하더니 제안을 했다. TF의 일원이 되지 않겠냐, 언더커버 임무가 있는데, 지원하면 지금 너의 어려움을 나라에서 해결 해줄 수 있다. ... 씨발, 지금 생각하니 수법이 고약하네. 20살 순진한 대학생은 신중히 따져 볼 역량이 없었다. 기말고사 성적 결과도 보지 못하고 1학기만에 장훈은 경찰대학에서 자퇴 처리 되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경찰대 자퇴 신청서에 제 손으로 서명하고 온 날 술을 잔뜩 마시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조직의 가장 끝단에서 양아치로 살 때에도 장훈은 사명감이 있었다. 책임감도 있었다. 원철도 몰랐을거다. 그야말로 들키면 죽음 뿐인 이 바닥에서 단 한번의 위기도 없이 잘 버텨왔다. 장훈 덕분에 막은 마약 거래가 몇 건인지, 무기 수입이 또 얼마나 되는지도 사람들은 모르겠지. 근데 이 짓을 10년째 하다보니 오늘처럼 이렇게 무너지는 날이 점점 잦아온다. 

우장훈아. 이번은 진짜, 끝장을 보자.

의미없는 약속이라는거 아는데도 귓가에 맴도는 말. 그 누구보다도 진짜 끝장을 보고 싶은 것은 장훈이다. 이번 러시아 거래 건만 잘 엮어서 조직의 배후를 확실히 밝혀야한다. 물 밖에서 자유롭게, 편하게 숨 쉬고 싶다.


욕조 바깥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장훈은 욕조에 몸을 걸치고 손을 뻗었다. 

"예, 회장님."

- 바쁘냐.

"아입니다. 괘얀습니다."

- 지금 좀 볼까. 적적허네. 와서 술 상대나 좀 해줘야.

"바로 가겠습니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머리를 털었다. 거울 속 비치는 제 몸의 가득 들어찬 크고 작은 흉터들이 오늘따라 흉하다. 쇄골에 작게 새겨진 문신으로 시선이 옮아갔다. 'R', 레이븐Raven 소속 이라는 의미. 혐오스러움에 메스꺼운 속을 부여잡고 안상구 회장의 술 시중을 들러 서둘러 집을 나섰다.








경찰 우장훈과 황시목의 언더커버 이야기, 영은수와 삼각관계를 곁들인. 

길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잡식에 죠필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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