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니 형!"


지하철역 앞에서 기다리는데 저~쪽에서 형이 오는게 보였다. 두 손을 번쩍 들고 붕붕 흔들었다. 형이 날 보고 살짝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해준다. 이 순간이 제일 좋다. 아침에 지민이 형 기다릴때, 기다리고 있으면 형이 오고, 저렇게 손 들어서 인사해줄 때. 아, 물론 좋은 순간은 이때 말고도 많이 있다. 같이 걸을 때, 얘기할 때, 밥먹을 때, 형 웃을 때, 가끔 나한테 화낼 때, 또...하여간 다 좋다.


나는 지민이 형이 진짜 너무 좋다.


"형 이거 먹어여."


"고마워. 니껀?"


"저능 집에서 밥 먹어써여."


들고 있던 달콤한맛 베지밀을 형한테 줬다. 나는 매일 지하철역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형 먹을 간식을 사온다. 지민이 형은 아침을 거의 안먹고 온다. 매일 늦잠을 자거나, 아니면 시간 있어도 귀찮아서 잘 안먹는다. 아침밥 잘 먹어야 하는데. 안그래도 입도 짧은데 밥도 잘 안먹어서 나는 요즘 그게 걱정이다.


"형 살 더 빠진거 같아요."


"음? 아닌데?"


"아니에여. 저번까지는 여기 팔꿈치 뒤에 뼈가 동그랬는데 지금은 바바여, 엄청 뾰족해졌어요, 튀어나와 갖고."


"...넌 그런것까지 관찰해?"


"아..그냥 눈에 보여서.. 기분 나빠요?"


"아냐 기분 나쁜거는 아니구. 넌 진짜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싶어서."


"그거야.."


그거야 형을 좋아하니까요. 이 말은 못했다. 지민이 형은 내 대답을 딱히 기다린건 아닌지 평소랑 똑같이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꾹아, 안와?"


"녜? 아아! 가고 이써요!"


먼저 계단 내려가는 형 옆에 얼른 가서 같이 걸었다.


아, 지금 이것도 엄청 좋은 순간이다. 형이 나를 꾹이라고 부를 때. 그럴 때 살짝 웃는 입술이 진짜 이뻤다.






"야 정꾸, 이따 올거지?"


"어디를?"


"오늘 신입생 환영회, 몇 번 말하냐고."


"나 못가는데."


"뭐어? 왜 또!"


"오늘 지미니 형이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야 넌 그 형이랑 저녁 그거 맨날 먹는거 그게 중요하냐, 아니면 평생 한 번뿐인 신입생 환영회가 중요하냐."


"지미니 형이랑 저녁."


왜 그런걸 물어봐, 당연한걸. 내 대답에 김준은 완전 질렸다는 표정인데. 저 표정 자주 봐서 별로 아무 생각 안든다. 김준이 한숨 한번 팍 쉬고 말했다.


"전정국아, 제대로 함 얘기 좀 해봐봐."


"뭐를?"


"너랑 그 형, 그 지미니 형,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 그 말에 나는 잠깐 할 말이 생각 안났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귀는 사인데.


"사귀는 사이라고?"


대답도 안했는데 김준이 먼저 말한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형이 너한테 사귀자고 그랬어?"


"어...아니. 내가 했는데."


"너가 사귀자니까 그 형이 사귄대?"


"응. 아.. 딱 그렇게 말한거는 아닌데.. 근데 사귀는거 맞아."


"정국아, 내가 진짜 너를 오래봐온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김준이 갑자기 엄청 진지하게 말한다. 얘가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이삼년에 한번 볼까 말까하다. 지금이 그만큼 진지한 상황인 모양이다.


"너랑 그 형 사귀는거 아니야."


"뭐어?!! 왜!"


진짜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사귀는거 아니라니 그게 무슨 하늘 무너지는 소리야. 말도 안된다. 우리가 안사귄다고? 아닌데, 완전완전 사귀는데!


"너 그럼 한 번 대답해봐."


"뭐를!"


"너 그 형이랑 잤어?"


"엉."


"...아니, 같이 영화보다가 깜빡 잠든거 말고. 그 형은 침대에서, 너는 땅바닥에서 따로 잔거 말고. 내 말은 그거 했냐고 그거!"


"그,그거..?"


혹시 내가 생각하는 낯뜨거운 그거 말하는건가. 김준 얼굴 보니까 그 뜻 맞나보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했는데.. 김준은 역시나, 하는 표정이다.


"그럼 키스는 했어?"


"그거는, 어... 아니."


"후..."


"아 근데근데! 뽀뽀는 했어. 한번 아니고 일곱번이나 했는데? 그럼 사귀는거 맞자나."


"정국아.."


"그리고 짐니형 핸드폰에 내 이름 울보토끼라고 저장돼있어."


"...그게 뭔데."


"짐니형 원래 엄청 친한 사이 아니면 번호 저장 안해주거든?"


나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의기양양해졌다. 생각해보니까 그렇다. 지민이 형은 학교에서 핵인싸고 형이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엄청 많다. 근데 형은 자기 번호 웬만해선 안알려준다. 전에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 봤는데 저장된 번호 50개 밖에 안됐다. 나는 그 50명 중에 한 명인거다. 이것봐, 그러니까 우리 사귀는 사이지!


"딱딱하게 이름으로 저장 안하고 별명으로 저장해줬다니까? 이래도 안사귀는거냐!"


말해봐라 김준. 


김준이 말했다.


"그 형이랑 뽀뽀하고 핸드폰 번호 저장됐던 사람 못해도 삼십명은 될껄."


"무슨 말이야 그게."


"내 말은, 그 형은 너 그냥 귀여워하는 동생인데 너만 지금 사귀고 있는거라니까?"


뭔데 이거 유사연애야? 연애시물레이션 게임이야? 정신차려 전정국. 


김준이 웃음기 다 빼고 하는 말에 나는 뭔가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대답할 말이 생각이 안났다. 지금 얘가 하는 말 사실은 나도 요즘 한번씩 고민하고 있는거라서. 김준한텐 아닌척 했지만, 우리는 무조건 사귀는거라고 그랬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 지민이 형이랑 나, 진짜 사귀는건가.






형이 처음에 그랬었다. 


내가 사귀자고 했었을 때-그때 난 고3이었다-아직 애기라 안된다고 했다. 그래봐야 우리 두 살 차이밖에 안나지만. 그래도 애기라서 안된다고. 대신 내가 대학가면 생각해본다 그랬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 엄청 열심히 했다. 형 한마디에 죽을둥 살둥 했다. 형이랑 같은 학교 들어오려고. 


합격발표 되던 날 나 합격한거 알고 형도 엄청 기뻐해줬다. 그 때 우리는 뽀뽀도 했다. 나는 당연히 그 때부터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했다. 형이 대학가면 생각해본다고.. 아.. 맞다, 생각해본다고 했지 사귄다고 한건 아니었다. 근데 그후로 다시 물어보진 못했다. 그니까 좀 이런거다. 묵시적갱신 같은거? 서로 말 안하면 당연히 사귀는건데 혹시나 싶어서 '저..우리 사귀는거죠?' 이렇게 물어봤다가 형이 '응? 아닌데?' 이래버리면. 그러면 나만 손해다. 


그래서 나는 행복회로를 돌렸다. 우리는 지금 사귀고 있다고. 근데 김준이 이렇게 팩폭하면 나도 좀 겁난다.


진짜로 나혼자 사귀고 있는걸까봐. 

지민이 형은 아직도 나를 그냥 애기라고 생각할까봐.






하루종일 기분이 별로 안좋았다. 아침에 김준한테 들은 얘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귄다, 안사귄다. 이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나는 자꾸 한숨만 푹푹 쉬었다. 


오후 세 시, 지금 지민이 형네 과방 가서 기다리면 형을 잠깐 볼 수 있다. 이 시간이면 형 교양수업 하나 끝나고 과방 사물함 와서 책 정리하는 시간이라서. 마음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형 얼굴 보고 싶어서 후다닥 예술관까지 뛰어갔다. 체교과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있고 예술관은 저기 제일 아래 있어서 계단을 이백개 내려가야 한다. 한번에 세 개씩 뛰어서 내려갔다.




어...형.


예술관 앞까지 갔는데 저 앞에 지민이 형 뒷모습이 보였다. 반가워서 뛰어가는데 형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이 형 머리카락에 손을 댄다. 그러더니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형을 요리조리 본다. 입술이 자꾸 다가간다. 진짜 금방이라도 형 입술에 닿을 것처럼 가깝다. 형은 싫다고 하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 


아..안돼..! 


속으로 외치면서 나는 눈을 꽉 감았다. 나도 모르게 뒤로 돌아서서 건물 옆 안보이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혹시 형이 나 볼까봐서 숨었다. '그 형이랑 뽀뽀한 사람 삼십명은 될껄.' 김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들렸다. 뽀뽀는 아무나랑 다 할 수 있는건가. 그냥 친하면 할 수도 있는거..?


눈이 따갑다. 눈물이 났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다. 누가 볼까봐 얼른 손으로 슥슥 닦았는데도 계속 나왔다.


오늘은 지민이 형 얼굴을 못볼 것 같다. 보면 또 울것 같아서. 형 앞에서는 울면 안된다. 울면 더 애기라고 생각할거니까. 울보토끼랑은 사귀기 싫을지도 모른다. 


형 핸드폰에는 여전히 내가 울보토끼라고 입력되어 있다. 






<정국아, 어디야?>


"형, 저 오늘 신입생 환영회 한대요."


<아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못봐?>


"네.. 오늘은 못봐여."


<글쿠나. 알았어, 술 너무 먹지 말구 집에 잘 들어가.>


"네.."


달칵. 전화 끊겼다. 


지민이 형은 항상 용건 다 말하면 전화를 곧장 끊는다. 나는 좀더 목소리 듣고 싶은데. 아. 김준이 이 말도 했었다. 사귀는 사이면 전화통화도 막 두 시간씩 한다고. 말 할거 없으면 그냥 숨소리라도 듣고 있는다고. 너 그 형이랑 그런적 있어? 숨소리만 들으면서 핸드폰 뜨거울때까지 붙잡고 있은적 있어? 아니 없는데.. 형이랑 통화 제일 길게 한거 2분? 그것도 안되는 것 같다. 


근데 숨소리만 듣고 있는 거 힘들 것 같다. 이상한 상상할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차라리 전화는 빨리 끊는게 나은 것 같다. 형 상대로 못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실은 몰래 하고 있긴 하지만...






"뭔데 전정국, 안온다더니?"


저녁에 학교 앞 술집. 우리과 신입생들 다 모였다. 2학년, 3학년 선배들도 거의 참석한 것 같다. 이 자리는 절대 빠지면 안된다고 1학년 과대가 신신당부 했었던게 생각난다. 여기서 빠지면 앞으로 학교생활 내내 찍힌다고 했나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 학교 온것도 지민이 형이 있어서 온거라. 내 관심은 그것뿐이었다. 형이랑 학교 재밌게 다니는거. 물론 사귀면서. 하아... 또 한숨이 나온다.


"너 무슨 일 있어? 왜이렇게 시작부터 들이부어?"


"아닌데. 무슨 일 없는데."


술이 하나도 쓰지가 않다. 아무맛도 안난다. 소주 아니고 그냥 맹물인가? 내 속이 더 써서 입은 별로 쓰지가 않다. 


사람들이 따라주는 술 다 받아 먹었다. 원래 술자리 잘 안오다가 와서 그런지 다들 한마디씩 아는척을 한다. 학교 입학하고 내내 지민이 형 따라 다니느라 같은 과 애들한테는 별로 관심 없었다. 여자애들이 말을 많이 시킨다.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지, 가족관계 어떻게 되는지, 무슨 운동 좋아하는지 뭐 이런거 자꾸 묻는다. 그런게 왜 궁금하지.


"근데 정국이 너 사귀는 사람 있어?"


동기 여자애 하나가 물었다. 그 질문에 심장이 쿡 찔리는 느낌이다. 지금 내 인생 최대 난제가 이건데. 나는 정말로 지민이 형이랑 사귀는건가, 안사귀는건가. 무서워서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정말로 혼자 사귄다고 착각하고 있는걸까봐 그것도 무섭고. 무서워서 미치겠다.


"응? 있어?"


대답 못하고 있었더니 또 묻는다. 진짜 잔인한 애다. 안그래도 속상한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가 또 술만 들이부었다. 옆에서 김준이 쯧쯧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 저기 지민이형.."


"뭐?! 어디!"


지민이 형이라는 말에 번쩍 눈이 떠졌다. 어디어디! 


김준이 가리키는 곳을 봤더니 형네 과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중이었다. 형네 과방 자주 가서 나도 지민이 형 친구들 거의 다 안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로 태태형도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같이 들어오는 지민이 형.. 


형 얼굴을 잘 못보겠다. 아까 건물 앞에서 봤던 장면 또 떠올라서. 아까 형이랑 뽀뽀한 그 새끼는 누구였을까. 그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속이 상한다. 고개 푹 숙이고 술이나 먹었다.


"야 전정국, 뭐하냐."


"뭐가."


"왜 고개 숙이고 있어? 죄지은거 있어?"


"놔둬.."


"짐니형이 너 자꾸 쳐다보는데? 인사 안해?"


나 쳐다본다고? 형도 나 본건가. 김준 말에 슬쩍 고개를 들고 형이 앉아 있는 쪽을 봤다. 저쪽 긴 테이블에 과 사람들이랑 앉아 있는데. 아... 아까 형한테 뽀뽀한 그 새끼가 언제 왔는지 형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도 엄청 다정하게 웃으면서 얘기 나누고 있다. 지민이 형이 깔깔 웃는다. 엄청 재밌어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내 앞에서만 저렇게 웃는거 아니었구나. 하긴 당연하지. 당연히 그런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쓰렸다. 


뭐 웃을 수도 있지. 그럴수도 있지. 그럴수도...


"정국아, 내 술은 아직 한번도 안받았지? 섭섭하다 너."


"녜..?"


정확하게 내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딴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3학년 여자 선배였다. 잘 모르겠지만 애들 사이에선 체교과 마녀랬나, 암튼 여자애들 사이에서 군기 엄청 잡는 무서운 누나라고 했다. 진짜 좀 무섭게 생겼다. 내 앞의 빈잔을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빨리 잔 들라고 재촉한다. 잔 들었더니 소주를 찰랑찰랑하게 따라준다.


"앞으로 잘 지내자 우리."


"녜.."


주는 술을 받아마셨다. 어쩐지 지금꺼는 좀 쓴 것 같다. 잔 비우고 내려놨는데. 이 누나가 내 입 앞으로 사과 하나를 찍어서 내민다. 예 감사합...


"그냥 먹어, 손 부끄럽잖아."


사과만 빼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포크에 찍은채로 받아먹으라고 한다. 말 안들으면 한 대 칠 것 같아서 시키는대로 했다. 옆에 있던 김준이 괜히 천장봤다가 핸드폰 봤다가 그러는 것 같다. 왜이렇게 산만해. 그때 저쪽 테이블 있던 지민이 형이랑 눈이 마주쳤다. 형이 나를 빤히 보고 있다가 내가 그쪽을 보니까 잠시 후 고개를 돌렸다. 


방금 눈 마주치고 나니까 그때부턴 또 형한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좀전까진 안마주치려고 일부러 시선 피했는데. 막상 형 보고 나니까 딴데를 못보겠다. 살짝 대각선 위치라 형 옆얼굴만 조금 보이는데 중간에 가려서 안보이면 괜히 안절부절 하게 된다.


지민이 형이 한쪽 팔을 테이블에 괴고 있다. 반팔 입어서 팔꿈치가 보인다. 형 팔꿈치 엄청 뾰족해서 저렇게 팔 괴면 아플텐데. 내 손으로 받쳐주고 싶은데. 손이 근질근질하다. 당장 가서 해주고 싶어서. 근데 형은 지금 형네 과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또...우리는 사귀는건지 아닌건지 애매한 사이고... 그러면 형이 싫어할지도 몰라서 진짜로 할 수는 없었다. 


원래는 안그랬는데. 나는 지민이 형 앞에서는 망설이는 일들이 참 많다. 참아야 하는 일도, 괜찮은척 해야 하는 일도. 




안되겠다. 나가서 바람좀 쐬야겠다. 


일어나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간판 불빛이 눈을 찌르는 것 같다. 가게 옆 좁은 골목이 있길래 거기 가서 벽에 기대섰다. 여기까진 불빛이 별로 안들어와서 한결 나았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같은 골목, 그 틈 사이로 밤하늘이 빼꼼 보였다. 별도 없고 달도 없다. 그냥 검은 밤하늘만 보였다.


"정국아."


가까이에서 갑자기 지민이 형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봤더니. 형이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가까이 와서 내 맞은편 벽에 형도 기대섰다. 하늘에 없던 별이 형 눈 속에 있었다. 너무 예뻐서 한참 말없이 봤다. 형이 다시 말했다.


"술 많이 먹었어?"


"어...아니여, 별로.."


"술냄새 엄청 나는데?"


"아..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술 괜히 먹었다. 술 먹은거 취소하고 싶다. 


"아니 미안할건 없구."


"아.."


지민이 형이 이렇게 말하면 나는 대답을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럴 필요는 없어, 안그래도 돼, 괜찮아 신경쓰지 마. 형은 이런 말을 잘 한다. 나는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형이 그럴때마다 멀어지는 느낌이라 그게 싫었다. 아니. 그전에.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맞는걸까 한번씩 알 수 없어진다. 


맞다. 나도 알고 있다. 우리는, 형이랑 나는, 진짜로 사귀는건 아니라는거. 확실하게 그러자고 말한적도 없고 또..우리는 뽀뽀는 했지만, 형은 다른 사람이랑도 뽀뽀 같은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


"정국아, 왜그래, 왜 울어?"


"...안우는데여.."


"무슨 일 있었어? 말해봐, 어?"


"안우러여..."


흐엉-


눈물이 계속 나왔다. 미치겠다. 안울고 싶은데 눈물이 막 후두둑 떨어졌다. 형은 우는거 싫어할텐데. 이것봐라 너는 아직도 애기다 이럴텐데. 나는 그 말이 싫은데.


"속상한 일 있었어? 괜찮아, 얘기해봐."


속상한,일 없,어여. 


이 말도 중간중간 울면서 겨우 했다. 형이 나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해줬다. 나보다 쪼끄만 형이, 쪼끄만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는데. 그게 그렇게 또 서럽고 속상했다. 나도 모르게 형을 꽉 끌어안았다. 형 쪼끄만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괜찮아 정국아, 울지마, 형 있잖아, 쉬- 형이 토닥토닥 하면서 말했다. 


나는 얼굴을 묻은채로 말했다.


"지미니형."


"응 정국아."


"아까 누구에여?"


"아까 누구?"


"아까요.. 형이랑 뽀뽀한 사람이여.."


"뭐?"


갑자기 형이 내 몸을 좀 밀어내면서 물었다.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본건 몰랐을테니까.. 나는 지금 엄청 용기내서 이 얘길 꺼낸거다. 형이 무슨 대답을 할지 겁나 죽겠지만, 술기운 빌어서 물어봤다. 안물어보면 오늘도 내일도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을 것 같다.


"저 아까 바써여.."


"뭘 봐?"


"형이 어떤 남자랑 뽀뽀하는거요."


"무슨 얘기..."


"예대 건물 앞에서요. 아까 낮에.."


형이 모른척 하니까 더 서럽고 속상했다. 나한테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서 더 슬펐다. 


"지미니형, 진짜 형이랑 뽀뽀한 사람 삼십명 넘어요..?"


"야 전정국, 너 뭔 말하는거야."


"나는 형 하나뿐인데요.."


"..야.."


형이 뭐라고 말할것처럼 입을 열었는데. 갑자기 한쪽 눈을 찌푸렸다. 아야...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어디 아파여 형?"


"눈에 눈썹 들어갔나봐.. 아..엄청 따가워.."


"어디여?"


형 한쪽 볼을 붙잡고 찡그린 눈가를 살펴봤다. 골목 어두워서 확실히 안보이지만 뾰족한 속눈썹 한가닥이 눈 아래에 콕 박혀 있는 것 같다. 


"있어봐여, 제가 빼보께요."


"응, 살살해."


"녜."


아래 눈꺼풀을 조금 벌리고 후, 바람을 살짝 불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눈썹이 빠져나왔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아까도 걔가 눈썹 빼준거야."


"녜...예?"


너무 가까워진 거리에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형 입술만 보고 있었는데. 오늘도 곰젤리같이 말랑해보이는 입술이 오물오물. 형이 한 말이 한박자 늦게 이해됐다. 


"아까 그 새끼!...가 아니고, 형 친구도 눈썹 빼줬어여?"


"응. 요즘 속눈썹이 자주 빠져가지구."


"아..."


"그리고 삼십명 안돼."


"...아...그럼 몇 명인데여?"


"...암튼 삼십명은 한참 안돼."


"녜..."


"너 그래서 삐져갖구 아까 나 잘 쳐다보지도 않고 그랬어?"


"안삐져써요! 그게 아니고.. 형 친구들이랑 있으니까..방해될까봐서.."


나는 그냥 그래서... 사실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우리가 사귀는건지 안사귀는건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느라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속상하고 서럽고..아..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아까 그게 뽀뽀한거 아닌거는 너무 다행이지만, 여전히 속은 상해서.


"왜 울어 정국아. 형 속상하다, 너 자꾸 울어서."


"안우는데여..."


"어떻게 하면 안울래?"


형이 어떻게 해줄까, 응?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와 눈을 맞추려고 형이 몸을 숙여 요리조리 나를 본다. 피하려는 나와 시선을 맞추려는 형.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때. 나는 형을 꽉 끌어안고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너무 갑자기라 형이 놀랐는지 눈이 커진다. 그 안에 또 별이 있다. 


평소라면 여기까지 하고 입술을 떼야하는데 지금은 그게 안된다.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 하고 싶다. 형 생각하면서 나혼자 했던 못된 상상처럼. 진짜로 하고 싶다. 


끌어안은 형 몸을 벽으로 밀쳤다. 너무 세게 밀었는지 형이 작게 소리를 냈다. 그때 벌어진 입술사이로 혀를 넣었다. 이렇게 하는거 맞는지 모르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무작정 밀어 넣었다. 형은 입술도 달고 말랑한데. 그 안은 더 달고, 뜨겁고, 부드럽고 매끈매끈. 


...미칠 것 같다.


"정구가...아...전정국..."


지금 형이 내 이름 부르는 것 같은데.. 나는 한박자, 아니, 한 열박자 늦게 정신을 겨우 차렸다.  


너무 세게 안고 있었나보다. 온몸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서 지민이 형을 끌어 안고 있었는데. 형이 아픈지 얼굴을 찌푸렸다. 놀라서 얼른 몸을 좀 뗐다. 


떨어져서 보니까 형 볼이 좀 빨갛다. 화난걸까, 갑자기 이래버려서.. 또 안절부절 못하겠다. 형 입술 보는데 좀전보다 더 통통한 것 같고, 젖어서 반들반들..아..안돼. 그만 보자. 더 보면 안될 것 같다.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밑에를 내려다봤는데.


"헙..!"


너무 놀라서 육성으로 소리가 나왔다. 그냥 몸에 힘들어가서 뻣뻣한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러면 안되는데.. 아래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누가 봐도 눈치챌만큼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엄청.. 흥분해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아 정국아.. 뭐 어때."


"..저능.. 안괜찮은데요.."


"우리 좀이따 들어가자. 너 좀 진정되면."


"아니 저..."


"술 좀 깨고."


여기 좀 앉아봐. 형이 바닥에 앉으면서 내 손을 끌었다. 형 옆에 나란히 앉았다. 심장이 자꾸 팔딱팔딱거린다. 


"근데 형.."


"응."


"물어볼거 있는데여.. 솔직히 대답해줘요."


"알았어, 뭔데?"


내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다.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 그냥 나왔다. 술은 위험하다. 술때문에 이러는게 분명하다.


"형이랑 저요.. 사귀는거에요?"


"..어?"


이것봐, 진짜 하면 안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형이 뭐라고 대답할지 무서워 죽겠는데, 그렇다고 안물어볼 수도 없었다. 여기서 안물어보면 앞으로 진짜 절대 못물어볼 것 같아서. 그러면 나는 또 나혼자 사귀는건지 아닌건지 고민하느라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저는요, 형이랑 사귄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형은 그게 아닌거면.."


"아닌거면?"


"아...그니까..."


지민이 형이 좀 냉한 목소리로 그런다. 아닌거면? 아닌거면... 


"정국아. 울지마. 울지 말고 형 말 들어봐."


"안우러여..."


"전에 너 형이 뭐라 그랬어."


"뭐라고..했는데요.."


울지 않으려고 나는 숨도 안쉬고 있었다. 숨이 안쉬어진다. 형이 뭐라고 했더라. 빨리 정답 말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생각이 더 안났다.


지민이 형은 그런 내 얼굴을 한동안 보고만 있었다. 형 쪼끄만 손이 내 눈가를 닦아준다. 그리고 똑바로 눈을 맞춰왔다.


"나는 사귀는 사람이랑만 뽀뽀한다구. 알려줬잖아 저번에."


이어 말캉하고 보드라운, 깃털같은 입맞춤이 내 입술에 닿았다. 


이번에도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생각을 하기 전에, 나는 지민이 형 몸을 다시 꽉 끌어 안았다. 형 손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입술을 열어준다. 




확실하다.

우리는 사귀는게 맞다.

















잠깐의 휴식☕️

맥심모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