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화 댓글 하나~)







새벽같이 일어나 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새 생각해봐도 율에게 점수를 딸 방법이 마땅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드디어 율이 들어오고 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재희는 시간 맞추어 내려놓은 커피를 율이 안 보이는 사이 가져다놓고 다시 몸을 숨겼다. 저에게 화난 사람 앞에서 알짱대는 건 화를 돋구는 것이기에 최대한 제가 보이지 않도록 해야했다.



분명 건드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율이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안 마시면 따뜻한 우유를 줘봐야지 계획해두었는데 마시면 어찌 해야할지 생각해둔 것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속으로 되뇌였다. 고마웠다.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다.




"치사하게 네 꺼만 내렸냐.. 나도 반 줘"

"금방 해올게요"

"아냐.. 얘기 좀 하자. 앉아봐"



재희는 기둥에 몸을 숨긴채 숨죽여 둘의 대화를 들었다. 처음부터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율이 제가 커피 내린 거라고 말하지 않은 탓에 해준은 제가 일어난 줄 모르테고 그래서 둘 앞에 몸을 내보일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었다.




"궁상 떠는 거 안 지쳤어? 어제 점심도 굶는 것 같던데 돈 다 떨어졌나봐~"

"며칠 굶어도 안 죽어요"


"율아.. 율아.. 이율아... 제발 이제 항복 좀 해주면 안되겠니? 비싼 집 싫대서 17평 1.5룸으로 준비했다니까.. 그 정도도 안돼? 강이 이제 사춘기라 너랑 같이 방 못 써. 걔도 사생활을 존중해줘야지"

"그냥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안된다니까.. 나도 이제 편하게 좀 살자!"





뜬금없이 아파트 구해놨다며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할 때의 황당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일은 다 제쳐놓고 온갖 살림살이를 사대며 집을 꾸미는데 열중하더니 그 집이 저와 강이 이사할 집이라고 했다. 뭔가 큰 잘못을 해서 화가 난 해준이 내쫓은 거였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까. 해준은 불안해보였다. 평상시 제가 알던 해준이 아니었다. 그런 해준을 두고 기다렸다는 듯이 새 집으로 이사할 수는 없었다.




"재희는 왜 데려왔어요?"

"율아"


"저 형이 왜 그랬는지 알아요"

"율아"




몰래 들을 생각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젠 어쩔 수가 없었다. 뜬금 제 이야기가 나오니 귀가 더 쫑긋 세워졌다. 이 집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저는 아직 모르는데 율은 알고 있다니 처음부터 그냥 율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저랑 강이랑 안 보이는데로 사라지면 돼요?"

"응?"



"강이가 타겟인거예요? 누가 협박한거죠? 뭐라고 한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냐"



"우리가 먼 곳으로 가버리면.... 재희도 내보낼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율! 헛소리 그만하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제 심장 소리가 거실까지 들릴까봐 두 손으로 심장을 눌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율이형과 강이가 해준의 곁을 떠나면 저도 내보낸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은데 그러다 소리가 날까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너 무슨 오해한 것 같은데.. 너 우리집에 올 때랑 재희랑 다르지 않거든? 너희 나가니까 외로워서 데려온거야. 나 이제 재희랑 재미있게 잘 살거야. 질투나 하지마"


"그럼 다시 들어오게 해주세요. 나 못살겠어요. 어제 쌀 떨어져서 강이 밥도 굶었어요"


"야! 자라나는 청소년한테 밥을 안 먹이면 어떡해. 너 미쳤어!!"


"따뜻한 집 놔두고 나가서 생고생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아.. 누가 내쫓았지"


"하아.. 내가 구해준 아파트에 안 들어간다고 버티고 있는 건 너거든!"


"내쫓기면 내 힘으로 살아야죠.. 근데 좀 힘드네.. 아직 학생이라 알바하는 중인데 사장님이 월급을 안 줘서요..."





둘의 기싸움이 팽팽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도 느꼈던 건데 해준은 항상 율에게 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겉으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내 율에게 말리고 있어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율이 결국 이겨서 율과 강이 이 집으로 들어오는 건 찬성이지만 그러면 저는 이 집에서 나가야 되는게 아닌지 자꾸만 절 내보낸다는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형.. 우리 얼굴 안 보고 못 살아요.. 아니 나는 안 보면 속 편할지 모르지만 강이는 안되잖아요. 내보내고서도 맨날 보고싶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불러제끼는 거잖아요"


"그니까 가... 내가 부를 수 없게 좀 먼 데로.. 한 1년만이라도 가 있어.. 내가 불러도 수신차단하고 모른 척 하면 되잖아..."


"부재중 전화 한 통만 만들어도 엉덩이 때리면서 교육하던 누구때문에 못할 것 같아요"





처음 해준이 저와 강을 집에서 내보내려고 할 땐 해준이 누군가에게 협박받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준은 제가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감정기복이 커지고 잠도 잘 못자며 잠꼬대가 늘어날 때부터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하는 말을 어깨 너머로 듣고 짐작했다.


저와 강만 안전하겠다고 위험에 처한 해준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해준이 구해주는 좋은 아파트에 무임승차할 생각 따윈 없었지만 율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 나가라니 나가겠다고 짐싸들고 나와 해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최대한 허름한 월세를 구하고 보란듯이 시위했다. 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 해준이 항복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해준의 행보는 제 예상을 벗어났다. 불안한 모습이 점차 늘어다더니 언젠가부터 매일 지하철을 헤매며 강이 또래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재희를 데려온 것을 보고 율은 깨달았다. 해준만이 아니라 저나 강이도 협박의 대상이란 걸.. 아니 해준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강이가 저들의 눈에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타겟이란 것을...


재희는 해준이 찾아낸 그들이 먹잇감이었다. 강이를 위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대신 만들어낸 타겟이었따.




"강이가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 너한테 강이밖에 없잖아.. 당장 뛰쳐 나가야하는거 아냐?"

"저한텐.. 형도 있어요. 옆에 같이 있을 거예요"



"너나 강이가 다치면 난.. 이제 정말.. 못 살 것 같아.."

"안 다쳐요. 형도 내가 지켜줄테니까 경호학과 다닐 수 있게나.. 좀... 해주던가요.."




커피가 식어버렸다. 식은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며칠동안 생각했다. 쉬지 않고 생각했다. 강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 후 너무 무서웠다. 당장 안전한 곳으로 강이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다. 꼭꼭 숨어 아무도 강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해준을 떠날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아니 사람의 도리 따윈 무시하면 되는데 가슴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럴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재희랑 강이랑 운동 좀 가르쳐. 일주일에 3번. 2시간씩 어때?"

"운동이요?"


"애들이 너무 비실비실해. 태권도든 검도든 네가 하는 운동들 다 짬뽕으로 해서 튼튼하게 좀 만들어"

"둘 다... 말하는거죠?"


"공짜 아냐. 2명 교습비로 한 학기 등록금 퉁치자. 난 부자니까 입학금도 내줄게. 그건 계약금이라고 치지 뭐"

"이 집에 다시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2층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따로 만들게. 그리로만 다녀"

"알았어요"




율은 해준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준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 모두 함께 이겨내면 된다고 언젠가 해준이 했던 말을 저도 다시 해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재혁이형이 대외적인 일은 다 했어서 난 노출이 거의 안 되었어.. 걔네도 나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는게 없는데 하필.. 15~16세 정도의 동생이 있다 이런게 수집 정보에 있더라구.. 강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냐. 그건 확실해"

"네"


"주민등록 주소지도 여기가 아니고 내 거주지도 회사로 되어있어서 따라붙는 사람들이 이 쪽까지 오는게 보인 적은 없어. 하지만 언젠간 이 집이 오픈이 될 거야. 강이는 특히 조심시켜야 해. 회사엔 절대로 못 오게 하고"

"네"





"고맙다..."

"재희는요... 15~16살쯤 되는 동생 역할 계속 시키실 거예요...?"





해준이 답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그럼 제가 엿듣고 있었던 게 들킬 것 같아 재희는 당황했다. 얼른 머리를 헝클고 제 방 문을 열었다가 닫는 소리를 내며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버렸다. 제가 생각해도 정확한 타이밍에 탁월한 연기였다.




"아얏"

"재희....일어났어?"


"흐음... 냐... 안녕히 주무셨어요"

"(소곤소곤) 율이 왔어. 얼른 가서 인사해"

"네! 휴우...."




긴장한 티를 역력히 내며 머리를 정돈하고 율에게 인사했다. 율은 분명 제가 커피를 타서 준 걸 알고 있을텐데 지금 인사하는게 맞는지 헷갈렸리긴 했다. 하지만 그래야할 것 같았다. 저는 지금 일어난 것처럼 해야 율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1초.

2초.

3초.


꼴깍.

해준을 힐끔.



뭐라도 말하라고 해준이 손짓발짓 하는게 보이는데 재희는 머리가 더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저기.. 그니까... 오늘도 잘생기셨네요.."


"휴우... 재희야. 넌 진짜 안되겠다. 율이가 오늘부터 너 운동 가르쳐준대. 잘 배워야 해~"

"운동..이요...?"


"이제 선생님이야. 선생님 말 잘 들을 수 있지?"

"네"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

율이형이 선생님이면 더 안 좋아하게 될 것 같기도 한데....




"얘 치과 오늘 제가 데려가도 돼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맨날 혼자 갔는데요!!!"



"아.. 치과.. 너 어제 치과 다녀왔어?"

"..."


"월요일이랑 목요일에 가야한다고 하지 않았나? 월요일엔 가서 뭐 했어?"

"..."



짧은 시간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당연히 치과는 그 이후 한 번도 안 갔다. 그걸 이런 타이밍에 물어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의사 선생님이... 안 아프면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휴...."



"그래? 서재희.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해보시지~. 그 의사샘이랑 나랑 절친인데.. 지금 전화해볼거거든"

"헉. 진짜요? 의사쌤 아저씨였는데... 그니까 진짜로 많이 아저씨였는데... 친구.. 맞아요...?"

"휴...."




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꾸 한숨을 쉬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거짓말이 들킨 건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고백해야 조금이라도 덜 혼날 수 있을지 그게 중요할 뿐. 지금 제 머리가 너무 바빠서 좋은 답안이 잘 생각이 안 났다.




"근데 율아. 넌 얘 어제 치과 안 간 줄 어떻게 알았어?"

"어제 3시 예약이었는데 그때 강이랑 같이 놀고 있었어요"

"아... 그래?"


"보호자 연락처를 저로 해놨더니 알림 문자가 저한테도 와요. 아무래도 스스로는 안 갈 것 같아요"

"아... 너.. 재희 심리를 아주 잘 아는 구나~~"




슬금슬금 해준의 곁으로 다가가 엉덩이를 내밀 준비를 했다. 율이 형 앞에서 창피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번만 안 갔다고 하려고 했는데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준이 저를 쳐다보는 순간 얼른 엉덩이를 삐죽 내밀고 무릎을 잡았다.




"그걸로 되겠어?"

"안돼요..?"


"엉덩이 더 내밀어. 혼내기 힘들어"

"네!"


"그러고 10분 있어. 자세 흐트러지기만 해"


"헉. 매 가져올게요!!"

"율아. 얘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 보고 있어. 나 샤워한다~"

"네"




샤워는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하는지.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자세가 창피하기도 하지만 오래 있으려니 허리도 아파왔다. 조금만 무릎을 굽히거나 허리를 움직이기만 해도 율이 자세를 지적하는 바람에 재희는 낑낑대며 10분을 그러고 있었다. 분명 저는 안 쳐다보고 있는데 눈이 옆, 뒤에도 있는 건지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율과 치과 가는 길은 어색.. 어색... 어색의 총집합 그자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정말 난감했다. 어제 강이랑 있었던 일을 사과해야할지.. 아님 아침에 있었던 해준과의 대화에 대해 물어봐야 할지. 둘 다 용기가 나지 않아 가만히 있었더니 율은 진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혼자 가도...되는데...........요"



"치료받고 있어. 나 일 좀 보고 올게"


"같이... 안 가주고요?"

"혼자 가도 된다며"

"아... 맞다... 문제없어요! 제가 7살 어린이도 아니고.. 이깟 치과... 형이랑 같이 가면 원래 쪽팔릴 뻔 했어요"



"울 거야?"

"아니요!! 불소.. 그것 때문에 매워가지고 눈물이 좀 나온거지.. 운 건 절대로 아니거든요!"

"그래"


"빨리 올 거죠...? 무서운 건 아닌데...기다리기는 거 잘 못해서요..."

"그래"




같이 가준다고 해놓구선.... 저를 혼자 들여보내는 율에게 섭섭했지만 혼자 치과 가는 모습을 보인게 1점이라도 딸 수 있었으면 싶었다. 접수하는 것부터 생소한 일 투성이라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지만 꾹 참았다. 지난 번엔 의사샘이 '입 헹구세요~'라고 할때 뭐해야할지 몰라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가 선생님이 물컵을 집어줘 물을 열심히 먹었었는데 오늘은 그런 창피한 일은 하지 않았다.


이깟 일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열심히 입을 헹구다가 피가 왈칵 나오는 바람에 소리를 한 번 지르긴 했지만 지난번처럼 의사샘이나 간호사샘이 웃지는 않았다. 다음 번엔 피가 많이 나와도 절대 놀라지 않기로 다짐했다.




힘든 치료를 마치고 나왔는데 아직 율이 없었다. 치과에서 기다리다가 치료를 마쳤는데 왜 안 가냐고 쳐다보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와 또 한참을 기다렸다. 전화를 걸어보려고 핸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문득 율이 가지고 있으라고 했던 가방이 생각났다. 핸드폰도 두고 간게 아닌지 보려고 살짝 열어본 가방엔 돈이 있었다.


이게 얼마인지...

겁이 덜컥 나서 가방을 닫았다.


세보진 않았지만 소매치기 경력이 10년인데 언뜻 100만원이 넘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큰 돈을 저에게 맡겨놓고 어디 간건지.... 누가 혹 훔쳐갈까 가방을 꼭 끌어안고 1시간쯤 기다리고 나서야 율은 나타났다.




"형!!"


"왜 안 갔어"

"형 기다렸죠!!"


"재희야..나 일부러 늦게 온 거야..."

"으으으... 추워~~~ 왜요... 내가 미워서요?"


"그 가방도 일부러 너한테 맡긴 거야.. 나 다시 10분동안 일 보러 갈 건데.."

"가지 마세요!! 이거... 이거 빨리 가져가세요. 휴우... 심장 떨려 죽을 뻔 했네.. "




팔짱을 끼고 몸을 최대한 움츠린 채 춥다고 두 발을 동동거려 보았다. 가방을 건네주려고 했는데 율은 받지 않았다. 어서 집에나 갔으면 좋겠는데 율은 추운 길 한 복판에서 자꾸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생각해봐"

"뭘요!"



"아침에 너 다 들었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했어?"




해준에게 당장 입학금이 필요하다고 졸라 입학금을 받은 후 치과에 들리기전 현금을 뽑아 덜컥 재희에게 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가라고. 그 돈 가지고 멀리 가라고. 그게 제가 재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믿었다.




"나 내쫓는다구요...? 근데 해준이 아저씨가요... 내가 나가고 싶을 때까지 안 나가도 된다고 그랬어요.. 진짜로 그랬어요.. 녹음은 못해놨지만 나한테 확실하게 그렇게 말했어요"


"멍청한 척 하지마. 다 이해했잖아. 너 이 집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어.. 강이가 위험할것 같으니까 강이 대신 표적 만들려고 너 데려온거야. 너 강이 대타라고.. 알아?"


"우와... 영광이다.... 헤헤~~~"



"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 형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우스운 사람들 아냐. 중국에서 사람 우습게 죽이는 사람들이래"



"형이 지켜줄 거라면서요.. 그리고 나랑 강이도 운동할 거잖아요. 운동해서 같이 지켜주면 돼요"


"야! 너 지금 이게 무슨... 파워레인저같은 건 줄 알아? 운동하고 훈련해서 지구를 지키자 뭐 그런거라도 하는 줄 알고 신났어?"


"그건 아니지만... 형도 뭐.. 지금 경호학과 가서 언제 아저씨 경호해줄건데요... 피차 똑같..."




가방을 받을 생각이 없길래 율의 품에 어거지로 낑겨 넘겨주었다. 돈이 있는 걸 안 이상 그걸 제 품에 더 이상 갖고 있는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어디서 난 돈인지 뻔한데 정말 제가 이 돈을 가지고 날랐으면 해준이 아저씨한테 엄청 혼났을 거면서 나한테 고마워나 할 것이지 혀를 끌끌 찰 뻔 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데 안 무서워?"

"어차피 한 번은 가는 인생... 가기 전까지 좋은 집에서 배불리 먹다가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아저씨 노리는 사람들한테 죽으면.. 뉴스에도 나올 수 있지 않나? 히히... 그럼 더 좋고요"


"웃을 일 아니야. 정말 심각한 거란 말야"

"저 갈데... 없어요... 소매치긴 다시 안 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평생.. 놀이로도.. 장난으로도... 그 비슷한 것도 절대로 절대로 안 하기로 굳세게 맹세했단 말이에요"



"은근슬쩍.. 어제 이야기 하네"

"어젠..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치과에 오는 길엔 율이 어색해 숨쉬기도 어려웠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편해졌다. 추운데 왜 지퍼 안 올렸냐고 후리스 지퍼를 올려줄 땐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할 뻔 했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다. 형이 운동을 무섭게 가르쳐도 열심히 배워야지 다짐해보았다.




"강이가 장난으로 가르쳐 달라고 해도 그런건 하지 말았어야지 무슨 자랑이라고~"

"글게요. 제가 너무 멍청했어요. 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는지 순간 강이 괴롭히는 인간들한테서.."


"강이를 괴롭혀? 누가?"

"네???"


"너 방금.. 강이 괴롭히는 인간들이라고 했잖아.. "

"제가요?? 아니 그게.. 혹시!! 만약에!! 아주 혹시 만약에 누가 강이를 괴롭히면..... 그 나쁜 인간들한테 그니까 돈 같은거... 뺏기면.. 그거 다시... "


"휴...."




망했다.

망했다.

진심 망했다.

아저씨를 걱정했는데 걱정해야할 사람은 진정 따로 있었다.


재희는 몸을 돌려 제 입을 열심히 때렸다. 정말 맞아도 맞아도 쌌다.




"이강... 나하곤 목욕 안 간다더니..."

"제가 목욕 같이 가줄게요!!"


"오늘부터 같이 운동하고 목욕가자"

"흡!!"





율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상한 이야기 그만하고 빨리 집에나 갔으면 싶었는데 이제 천천히 갔으면 싶었다. 제 입이 저지른 죄를 혹 강이 알게 되면 어쩔지 걱정이 밀려왔다. 너무나 큰 걱정이 생겨서 다른 걱정은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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