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가서 탔던 관람차는 십오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었는데, 민 솔과 탔던 관람차는 시간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졌다.


대화할 때도 그랬지만, 입을 맞추고 난 이후로는 시간 감각이 이상해진 것만 같았다.


키스를 했던 건 워크숍에서 취한 민 솔에게 당했던 때 이후에는 없었으니, 제대로 된 맨정신으로 입을 맞춘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민 솔이 스킨십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시작한 관계였다. 먼저 선을 그었던 그녀가 먼저 다가와서 입을 맞출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아무리 경험이 없다고 해도… 키스, 엄청 능숙했지 민 솔…!!!


자연스럽게 뺨을 감싸와선 입을 맞출 때부터 분위기도 잘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마자 허리를 감싸 안고 잡아먹을 듯이 다가왔다.


키스 경험이 없다 보니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옷자락만 꽉 잡고 있는 내 손을 잡아다가 자기 목에 둘러주는 것도 그렇고…


숨을 쉬는 방법도 몰라서 가슴이 답답해졌을 무렵이 되었을 땐 관람차가 지면과 가까워져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관람차에서 내린 이후에 어색한 공기를 지우지 못했다. 입술을 떨어트렸을 때 마주 보았던 눈빛과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살 쓸어주던 상냥함에 아직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벌써 해도 저물었는데, 집까지 거리 생각하면 슬슬 해산해야겠네요.”

“…아, 그렇네요. 벌써 시간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광장을 정처 없이 걷던 중, 하늘을 올려다보던 민 솔이 먼저 말을 꺼냈다.


키스를 해서 그럴까, 입을 맞춘 후에 후끈 달아오른 감각이 금세 식지 않았다.


해가 저물고 나서 날씨는 제법 서늘해졌는데 귀와 뺨이 뜨거운 건 계속되어서, 화장으로 붉은 얼굴이 잘 감추어졌길 바랄 뿐이었다.


“슬슬 퇴장하고… 각자 집에 도착하면 빨라도 아홉 시나 열시는 되겠네요.”


핸드폰을 꺼내지도 어플을 켜서 돌아가는 경로를 체크한 민 솔은 나를 흘끔 봐왔다.


“저랑 같은 버스 타시나요?”

“아,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는 길은 체크해뒀지만, 가는 길은 크게 봐두지 않았던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민 솔과 나는 둘 다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사는 곳이 꽤 떨어져 있는 거리였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경로가 다른 버스가 나왔다.


돌아가는 길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진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거의 두 시간 정도 걸리긴 하네요.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야 하고…”


내 옆에 착 달라붙은 민 솔은 핸드폰 화면 안에 떠 있는 경로와 자기 핸드폰에 있는 경로를 번갈아보았다.


“이슬 씨, 중간에서 환승하시네요.”

“아, 네 버스 타고 여기서 내려서 전철로 타고 가면 일직선이라서요.”

“그러면 저도 그 버스 타고 가야겠네요.”


민 솔은 곧바로 경로를 바꾸어 검색을 해보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탄다면, 집까지 조금은 돌아가야 하면서.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된 내가 묻자, 민 솔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살짝 웃으며 나를 봐왔다. 


“내가 조금 더 있고 싶어서 그래요. 헤어지기 아쉬워서, 싫어요?”

“…시, 싫을 리가 없잖아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툭툭 내뱉는 건지, 키스까지 먼저 해놓고 헤어지기 아쉬워하고 그러면…


나랑 똑같이,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잖아.






*****





폭풍 같았던 주말이 지나갔다. 민 솔과 보낸 하루가 너무너무 즐거웠던 데다 키스까지 해버린 정식 연인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정작 그날 이후 민 솔은 묘하게 나에게 거리를 뒀다.


신경을 써주는 건 여전했지만, 오히려 가까이하지 않는 것 같달지… 그런 행동이 나를 조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연락의 빈도도 조금은 줄어들었고. 사무실에서 일이 끝나고 나서 식사를 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정확히 놀이공원을 다녀온 이후부터다. 처음엔 내가 괜히 의식해서 오해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니 확실했다.


아주 살짝 생긴 묘한 거리감은 이상하게 좁혀지지 않는 거 같았다.


[오늘 연차예요. 출근 안 하고 놀 거니까 진짜 중요한 업무 아니면 절대 연락 금지.]

[팀장님은 끝내주게 자고 끝내주고 놀 거예요. 부러우면 업무 열심히 하시고 월차 쓰세요. 한이슬 사원]


평소라면 성격답다고 느낄만한 메시지일 텐데, 마음이 쓰이는 건 내 착각일지. 


민 솔과 일은 민 솔과 일이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시즌이 시작되려고 하자 부서는 꽤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가을 시즌이 시작되면 바로 겨울 시즌도 연달아 준비를 해야 하니, 옐로우 픽과 진행하기로 한 가을 준비와 더불어 겨울 콜라보 대상까지 찾느라 부서는 정신이 없었다.


지금 쓰지 않으면 겨울 이벤트가 런칭될 때까지 제대로 여유가 나지 않을 거 같다며 연차를 사용한 민 솔은 온전히 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민 솔은 부재에 크게 할 일은 없었고. 가을 전까지 진행해야 하는 업체 리스트업도 일찍 끝냈다.


나는 오후 시간은 여유롭게 쉬엄쉬엄 쉬며 타 사이트들의 벤치마킹을 진행해볼까 싶어 웹페이지를 켰다. 슬슬 몇개월 근무했으니, 부서의 눈치를 보며 웹서핑을 할 수 있는 짬밥은 쌓였으니.


“이슬 씨, 바빠요?”


웹사이트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켜자마자, 등 뒤에서 들린 과장님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업무용 워드를 바탕화면에 띄웠다.


“아, 아뇨…! 무슨 일이세요?”

“아니, 대표님이 회의 부르셔서~”

“회의요?”


느닷없는 회의에 내가 되묻자 과장님이 생긋 웃었다.


“응, 워커홀릭 부서 관련으로 말 하실 게 생기셨다나 봐. 민 팀장은 오늘 연차였죠?”

“네, 연차라고 하셨어요.”

“민 팀장 빼고 회의 들어가야겠네, 지금 회의실로 따라와 줘요.”


과장님은 내 어깨를 톡톡 치곤 건너 앉아있던 유진 씨에게로 다가갔다. 다행스럽게도 놀고 있던 건 안 들킨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갑작스러운 회의라니 무슨 일인지… 민 솔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짧게 고민했지만 쉬는 날에 괜히 연락하는 거 같아 회의 내용은 정리해서 내일 전해주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들어서자, 대표님 외에도 워커홀릭에 중요한 인사들은 전부 앉아 있었다. 그 탓에 설마, 큰일이라도 난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이슬 씨도 왔고. 유진 씨만 오면 이제 워커홀릭 팀은 웬만해서 다 모인 거죠?”


대표님은 서류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뒤로 유진 씨와 과장님이 들어오며 회의실 문이 닫혔다.


빈자리를 대충 눈치껏 앉자, 대표님은 회의실을 한 번 훑어보곤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전부 모인 느낌이네요. 갑자기 회의를 불러서 놀라셨죠?”


대표님의 상큼한 질문에 회의실 인원들은 각자 서로의 눈치를 살펴댔다.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모인 이유는 모두 모르는 거 같았다.


“곧 가을 시즌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끼는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식이 있어요.”


조용한 침묵 속에서도 대표님은 상큼한 미소를 이어가며 말했다.


“워커홀릭 이번 여름 매출이 작년 대비 대폭 상승했습니다. 옐로우 픽과 여름 콜라보 영향도 컸지만, 잡지사 표지와 함께 실린 게 아주 좋은 성적을 가져다줬어요. 이슬 씨 덕이 참 크지만 각자 자리에서 노력해준 덕분이겠지요.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에요.”


대표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서류를 펼쳐 놓았다.


“슬슬 가을 시즌에 들어가야 하는데, 일이 작년보다 많아져서 많이 힘들죠? 특히 기획도 같이 하는 웹 관리팀은 더요.”


과장님과 내가 있는 쪽을 보는 대표님은 의견을 말해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대놓고 관심을 주시면 조금은 부담스러운데요…


민 솔이 있었다면 분명히 이 분위기 속에서 ‘네, 엄청 힘듭니다.’ 하고 받아쳤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짬밥도 얼마 안 되는 내가 말을 할 수는 없고…


“사실 저는 올해 입사해서 업무가 전부 처음이다 보니, 뭐가 힘든지 잘 모르겠어요…”


손을 살짝 들며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 대표님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네요. 그래도 보통 MD는 기본적으로 몇 명은 뽑아둬야 하는데 이슬 씨 한 명만 둔 거 같아서 마음이 쓰였어요. 민 팀장님도 과도하게 일이 몰려서 힘들었을 거 같고.”


대표님은 가벼운 웃음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바꾸며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사내 회의 결과 유능한 신입사원을 한 명 뽑기로 했습니다. 웹 관리팀 소속으로 들어갈 거고 경력직이라서 이슬 씨가 고생이 덜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가을 콜라보 이벤트를 맞아서 이슬 씨를 우리 회사 간판으로 밀어볼까 싶어요.”


그 말에 사원들이 살짝 술렁이는 게 보였다. 


“민 팀장님 상의하에 진행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먼저 말을 꺼낸 건 홍보팀 쪽 사원이었다.


“민 팀장에겐 넌지시 말은 해뒀었어요. 민 팀장 역시, 업무 고충이 꽤 있었다고 해줬었고… 워커홀릭 매출이 높아지면서 규모도 조금 더 키울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대답하며 곁에 앉아있던 부장님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곽 부장님도 같은 의견이에요. 워커홀릭은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부서니까 조금 더 과감하게 발전시키기로 했어요. 유능한 사원이 들어올 테니, 가을 콜라보 이벤트가 제대로 성공하면 겨울쯤 부서를 재구축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때요?”


부장님과 대표님이 추진하는 일인데, 여기서 반기를 들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부서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덕에 워커홀릭 부서가 성장했으니, 새로운 사원이 들어온다는 부분 외에는 기뻐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자, 중요한 사항은 이게 전부고… 매출이 성공적으로 늘어난 기념으로 조만간 워크숍을 한 번 더 갈까 생각 중입니다! 이번 워크숍은 저번처럼 빠지는 사람이 많으면 안 돼요~”


대표님은 이것이 본 목적이었다는 것처럼, 매출 기록 서류 뒤에 숨겨져 있던 종이를 꺼내선 펜을 집어 들었다.


“워크숍 갈 사람 이름 미리 적겠습니다. 다들 안 빠질 거죠?”


조금 전까지 분위기가 좋았던 회의실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식었다. 


“저, 그…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최근 바빠서…”

“가을에 놀러 가는 거면… 바베큐 쏘시는 거죠?”


워크숍을 반기는 사람과 반기지 않는 사원들이 손을 들며 말을 꺼냈다.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며 떼를 쓰는 대표님과 말리는 부장님을 보니, 이제야 긴장이 풀렸다.


처음 들어온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고 나날이 부서가 성장하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최근 회사 일이 전부 즐거워서 워크숍도 새로 올 직원도 기대됐다.


왠지 이번 가을은 일이 많을 거 같아.



한이슬은 주인공 답게 클리셰 발언을 해버렸습니다 어쩌고

슬슬 2부의 마지막이 머지 않았습니다! 3부는 호다닥 진행될 예정이니

가능하다면 연참을 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낡고지친 백합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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