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ousand questions



궁금한 것들은 언제나 많았다. 어릴 땐 다들 그런 법이고 어떤 이들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그는 부모를 귀찮게 하며 질문을 퍼붓는 꼬마가 아니었으나 그것 또한 평균보다 못한 가족관계의 책임만은 아니었다. 질문을 삼키고 혼자 답을 찾아내는 것이 더 편한 성격이었다. 때로는 말해줄 사람이 없어서, 때로는 말해줄 사람을 위해서. 나이가 들면서 말수가 늘어난 뒤에도 큰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요란한 목소리와 과장된 물음표는 입 밖으로 하는 되새김에 가까웠다.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알아낼 수 있었다. 무한한 만큼 조잡한 온라인의 세계가 부족할 때 그는 책을 읽었고 글자를 보기 지겨울 때 그는 사람을 쳐다봤다. 거리의 풍경이 난잡할 때면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따라갔고 목적지가 없는 날에는 술병의 바닥에 비치는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알고 싶지 않은 것이지. 유치하게 만들어낸 믿음은 시간과 함께 진실이 되었다. 원하는 것이 적은 만큼 한번 꽂히면 바닥을 보고 마는 성격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골라내는 취향이었고.


커크는 정말로 언제나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력의 대가와 눈 먼 행운의 조화는 그럭저럭 버틸만한 인생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나이로 이만큼의 만족을 얻어내다니 제법 대단하다고 누군가는 칭찬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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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짐 커크는 마인드 멜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직접 경험도 있었고 간접 경험도 많았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도 보았으며 등 뒤에서 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기억과 감정이 압축되고 정제되어 전달되는 예식은 무례할 만큼 간단했으며 익숙해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어쩌면 도덕적으로 조심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그가 할 것이 아니었다. 필요에 따른 판단은 실패한 적이 없었고 결과를 얻어낸 방법을 재고할 이유 역시 생긴 적 없었다. 스팍의 마인드 멜드는 특별함만큼이나 평범했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더라도 존재를 알고 있는 개성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물갈퀴가 있었고 누군가는 꼬리가 달려있지. 우주를 함께 하는 다양한 우주인중 벌칸만의 특징으로 대변되는 것들은 적지 않았고, 정말로 진짜 솔직하게 말하자면 커크에게는 스팍의 눈꺼풀이 두개라는 사실이 간편한 정신감응의 능력보다 열배는 신기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막으로 감춰져 몽롱해지는 다갈색 눈동자는 여러 이유로 보게 되는 순간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은 분명하지 못했다. 대략적으로 삼만 명의 생명이 위험한 위기의 한복판에서 스팍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디가 시작인지 알기 힘든 출혈로 어린 육체에 달라붙은 옷자락은 쇳덩이처럼 무거운 색이었다. 낯선 종족의 피는 새까만 색이었고 마른 등을 지탱해준 손이 만들어낸 대조는 고요했다. 그 아이는 죽어선 안 되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모든 아이는 죽어선 안 될 테지만 그 하나는 더했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는 판이었고 중요한 갈등을 해결해줄 더 중요한 정보가 그곳에 있었다. 두 명의 대원을 잃고 이제 곧 전쟁에 휘말리게 된 엔터프라이즈의 선발대는 헛수고를 하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온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아니, 절망으로 물들지 않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법이 없어 모두가 말을 잃은 어느 순간 스팍의 손이 죽어가는 아이의 머리카락 없는 이마를 헤집었다. 전부를 해결하는 열쇠는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얻어졌다. 그들은 임무를 성공했으며, 아이는 살아남았고, 행성 두개와 삼만 몇 천의 생명도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지나치게 확실했다. 과도한 친절에 짜증이 날만큼 강압적인 상황이었다. 행성 디디카피오의 여왕은 벌칸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비극적인 과거와 현재에 관해 엄청난 양의 질문을 퍼부었다. 거북할 만큼 솔직하다고 다 무례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문화의 차이라는 둔탁한 칼날은 어지간한 방패는 다 뚫을 수 있었다. 집요하게 캐묻는 더듬이에 붙들린 스팍의 대응은 모범적인 반응이었다. 디디카피오의 특산자원이나 기타 등등의 가치가 연방의 흥미를 유지시킬 만큼 거창하지 않은 것에 커크는 아무런 유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스팍의 손가락을 빨아보려는 그녀의 노력은 적극적인 매력의 범위를 넘어 소름끼치는 무엇이었다.


그러니 세 번째가 진짜였다. 사정의 여운에 잠겨 있던 커크의 몸은 아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팍은 그렇지 않았다. 벌칸의 육체란 탁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침대를 벗어나는 움직임은 평소의 우아함을 잃은 상태였고 벗은 등을 바라보던 커크는 흔들린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게으르게 누워있는 상태로도 그는 미소 지었고 저 밑의 어딘가에서 뿌듯해하는 스스로를 말리지 못했다. 제대로 된 생각이 불가능했으며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양심의 가책 또한 없었다. 환상적인데 현실이 맞는 섹스의 끝에서 남자는 가끔 멍해지곤 했다. 공허한 마음이 아닌 몽롱한 기분으로 그는 한참이나 눈앞의 세상을 바라봤다. 조명이 어두운 함장의 방에서 스팍이 옷을 입는 모습은 지루한 광경이 아니었다. 평소의 균형을 상실해도 익숙한 모양의 어깨를 바라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느슨해진 손가락을 감상하던 커크는 다음 순간 격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스팍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섣불리 물음표를 붙이지 못하며 가만히 자라난 마음이었다. 그는 그때 당시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조차 모르는 처지였지만 그건 무시해도 될 일이었다. 그 순간 알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눈앞의 남자였다.


그래서 제임스 T 커크는, 어째서 이제껏 기회가 없었는지를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벌칸의 연인은 서로의 영혼에 손을 담근다며 수다 떨던 어딘가의 교만한 여왕 탓도 조금은 있을지 모른다. 시작된 생각은 멈출 줄 모르며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다.


그들은 그런 사이가 아니었지만, 어떤 관계이기는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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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 과연 어떤 관계일까?


이제껏 모르는 척 해온 질문을 떠올린 커크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다. 목적이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바라보던 것에서 눈을 떼어낸 것에 불과했다. 함교의 느슨한 공기 속에서 잘 아는 얼굴들을 둘러본 그의 눈이 곧이어 흠 없는 표면 위에서 반짝이며 움직이는 숫자와 기호를 향한다. 모르는 눈에는 의미 없을 표식들이 그에게는 생생하게 읽히는 이야기였다. 교실에 앉아 배운 것과 경험으로 얻어진 것들이 뒤섞여 이제는 원천을 모르는 지식이 되어있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많았다.


생활이 곧 경험이고 경험이 곧 교육이 되는 직업에서 대부분의 경력자는 그럴 수 있었다. 연륜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할 테지만 어떻게 보자면 태생부터 엮여있던 운명의 책임이었다. 관심이 없을 수 없었고, 달리 할 일도 많지 않던 청년은 결국 우주에 발을 들이고 말았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는 준비운동을 할 여유도 없이 실전에 던져졌으니까.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는 자들도 많았으며 지루한 얼굴로 보고서를 던지는 자도 많았으나 그런 이들에게도 커크의 경력은 과한 것이었다. 졸업도 하지 않고 함장이 된 놀라운 기록은 함장이 되자마자 지구를 구해낸 화려함에 묻혀버렸다. 잠깐 동안은. 사건과 사고가 과거가 될 때 기록만이 증거로 남지는 않는 법이었지만, 구해진 이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대중의 소란은 잦아들기 쉬웠다. 정말로 모든 것이 일상이 된 이후로 그에게는 무시하지 못할 상부의 관심만이 남아있었다. 물리적인 거리를 위안 삼아 버티던 커크 함장의 가장 큰 장애는, 그들의 걱정과 염려를, 그런 이름아래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그가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최대한 좋게 말해보자면 마음으로도 그럴지 모르지만 육체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곱 시간에 걸친 회의를-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회의를 가장한 상부의 심문을 살아남은 커크는 임시로 배정받은 호텔에 돌아와 힘겹게 잠을 청했다. 오년의 임무는 반년의 평화가 고작이었다. 지구가 그리워질 새도 없이 불려온 엔터프라이즈는 수리를 위해 일주일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분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무거운 죄책감이었다. 그의 책임을 묻는 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던 지구의 하늘은 그새 낯선 색으로 변해 있던 것도 같다.


시체와 다를 것 없던 그를 깨운 것은 메시지를 알리는 반복적인 신호음이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작은 화면을 찾아 초점을 맞춘 커크는, 고향에 도착했으며 내일 모레 볼 때까지 조용히 있으라는 본즈의 메시지를 세 번 읽고 나서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떠들고 교실에서 수군거리며 커크 함장의 또 다른 실수와 무모함을 기자에게 흘리는 입이, 그들을 제외한 전원인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죽은 듯이 지내라는 친구의 태연한 인사는 예상한대로 피곤한 것이었다. 어느 소위의 한탄처럼 우주가 함장님을 잡으려 난리란 것은, 순진하게 과장된 말이었지만, 말단의 대원마저 걱정할 만큼의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충고에 반발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어야 할 필요성은 그도 알았다. 어느 정도는 유일한 길이었다. 불친절한 걱정으로 이어져있는 메시지에 커크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잠시 뒤 그의 입술엔 미소가 생길 수 있었다. 본즈의 다짐이 아니라 해도 그에게는 이미 조용한 휴식의 계획이 있었고, 그건 상당히 기대할만한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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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커크스팍 앤솔로지에 참여했던 원고입니다 전체분량은 약 사만자 19금 

키워드는 "마인드 멜드" 


100's @mcback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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