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글을 리네이밍 & 수정하여 올립니다.









"오빠. 오빠 사귀는 사람있다면서요?"



차가운 겨울공기가 시끄러운 로비 매점을 찬찬히 감도는 오후, 늦잠으로 먹지 못한 아침겸 점심을 때우기 위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던 태형은 아뜨뜨- 거리면서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오빠 애인 있었다면서요!?"





아직 보송보송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1학년 후배 자영의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에 태형은 뭐...이러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난처하다기보다는 어린애는 몰라도 돼. 라는 식의 약올리기 말줄임표다. 가진자의 여유인 것인가. 솔로를 약올리는 커플링의 뻔뻔스런 위력인 것인가. 일부러 과장된 손짓으로 더이상 묻지 말고 저리 가란 식으로 손을 흔드는데, 왜 저렇게 손등으로 미는 것인가. 졸업반 언니들이 저거 티파니 밀그레인 이라고 거품을 물었던 커플링님께서 반짝반짝 빛나주신다. 



"궁금하잖아요. 예뻐요? "



"아...뭐...콩깍지라고 할꺼 안다.....몰라도 돼.."





말많고 입소문 빨리 내기로 유명한 예슬이가 유도심문에 들어오자, 태형은 별거아니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절대 콩깍지가 아니고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나도 잘생기고 섹시하고 퍼펙트하고 멋지고 똑똑하다고 사랑스럽고 깜찍하다고, 평소엔 입 꾹다물고 있다가 술만 들어가면 줄줄줄 내뱉는 감탄사와 형용사는 왜 진즉 경영학과따위 때려치고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통탄스러울정도로 단어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같은 술동무들은 태형의 리드미컬한 애인자랑 레파토리를 박자까지 맞춰가면서 추임새를 넣어(췌췌췌킷~) 랩으로 줄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만났어요?한눈에 반했어요? 어디서 봤어요?"





어린 여자후배들이 앙증맞게 줄줄줄 따라오자, 태형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매점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에서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눈망울을 똘망똘망 빛내는 어린 양들을 보자, 이제 100일 갓넘은 말랑말랑한 이시대의 연애모드 총각 김태형의 입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했어.그래서 바로 데쉬했지.."





"꺄아- 너무 멋있다...같은 수업이었어요?"





동글동글한 유진이의 귀여운 감탄사에 태형은 젓가락을 따면서 생긋- 가진자의 웃음을 날려주었다.



"옆집에 살았거든."











정확하게는 옆건물의 같은 층이었지.















"야- 태형아~! 김태형!!"





"응?"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태형은 같이 수업듣는 현우의 목소리에 퍼득 정신이 들었다. 따뜻한 초가을 햇살에 나뭇잎들은 짙어질때만큼 짙어진 푸른잎들을 농염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은 더운 바람이 분다. 검은색 먼지낀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공기는 아직도 여름의 빛이었다.





"너 오늘 이상하다? 계속 넋놓고 있고말야..아까 세법개론 교수님이 얼마나 너 째려보셨는지 알아? "



"어...어? 그랬냐? 몰랐는뎅.."





책과 노트를 가방에 허겁지겁 집어넣으면서 태형은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같이 수업듣던 아이들은 어느새 거의 다 나갔고, 몇몇 여학생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현우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옆 책상에 털썩 앉았다.





"너 무슨 일 있냐? 아까부터 입만 헤벌리고 멍하니 창밖만 보고..."



"훔......."





태형은 현우의 시선을 따라서 다시금 아까 내내 쳐다보고 있었던 창밖을 쳐다본다. 정확하게는 블라인드 사이로 쪼갠듯이 비춰드는 백금색 햇살을, 쪼갠 널판지처럼 그의 책상까지 길게 뻗친 햇살이 한줄로 늘어서 있고, 밝은 햇살안에 뿌연 먼지가 잔뜩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김현우. 너 자취하지?"



"응? 어..알면서 뭘 묻냐.."

 

 

 

그러자, 턱을 괴고 창을 보던 태형이 멀뚱히 묻는다. 



"너 니 이불 말려?"



"그건 또 뭔소리야?"



멍하니 묻는 태형의 목소리에 현우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햇볕에 이불 말리냔 말야. 아침에.."



"내가 성가시게 그짓을 왜 하냐? 이불빨래도 안하는 내가 잘도 그런짓을 하겠네. 우리 엄마도 잘 안해.그런거 할머니들이나 하는 거잖아..."

 

 

요즘은 층간 클레임도 많고, 바깥 공기도 안좋아서 털어봤자 더 안좋은 공기를 쐴 뿐이고...쏼라쏼라 고나리가 많은 현우의 말에 태형은 턱을 괸 자세로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삐딱하니 그런다.



"....그래서 너는 성공을 못하는거야..."



"뭔 헛소리냐 또.."





원래도 이상한 애지만 이건 왜 또 쥐약처먹었나...싶어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현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늘 어떻게 시간표에 맞춰서 수업에 들어온건지가 스스로도 신기한 태형은 계속해서 햇살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 예쁘다. 먼지까지 스왈롭스키마냥 예쁘고 쾌쾌한 강의실 공기마저 설탕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괴로움에 찼다기보단 군대간 남친을 그리는 18세 소녀처럼 달달한 시름에 찬 숨을 쉬며 되먹지못한 꽃받침자세로 현우를 돌아보았다. 





"야...나 이상형 좀 물어봐..."



"니 이상형? 너 섹시하고 글래머한 사람이 좋다면서..."



"아씨..빨리 물어봐."



새로운 안정제를 처방해야 하나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현우는 미운놈 엿하나 더준다는 식으로 친절하게 물어봐 준다.





"김태형 어린이.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일요일 아침마다 이불 말리는 사람이요..."



"뭬라?"

 

 

현우의 저도 모를 격한 감탄사에 태형은 요염한 꽃받침자세를 풀지않고 가재눈을 뜨면서 버럭 샤우팅을 질러줬다. 



"귓구멍을 송곳으로 뚫어주랴. 일요일 아침마다 이불말리는 사람!"





 

 

 

 

 

 









"우우우우- 머리아파..."





다음날이 일요일임을 모든 이유로 삼아 미친듯이 술을 마신것이 죄라면 죄였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온몸은 구석구석 쑤셨고, 머리는 누가 망치로 두들기는 것처럼 아팠다. 돈없는 청춘들끼리 격하게 섞었던 맥주와 소주에 누군가 에너지음료도 탔던거 같고, 술이 모자란다고 사이다도 부었던거 같기도 했다. 그와중에도 쓴맛이 싫어서 커피도 못마시는 김태형 어린이는 그속에 과일 소주 세병쯤 부었던 기억이 마지막. 그런 개같은 폭탄주를 들이부은 결과 남은 건 짐승소리나는 숙취뿐이다. 

 

 가늘게 눈을 뜨고 주위를 훑어보니 옷들은 이래저래 찢어발기듯 벗어서 팽개쳤고, 장만한지 한달밖에 안된 최신형 아이폰이 박살이 나서 흩어져 있다. 술김에 모 핸드폰 CF 광고를 흉내낸답시고(폰은 아이폰인데 흉내는 갤럭시) 있지도 않은 애인을 향해 핸드폰 놓고 기타치고 난리를 피웠던거같다. 그러다 실사애인이 없어 잘 안된다며 홧김에 던지고,안주감도 못된다며 물어뜯었나, 기타로 안된다며 섹스폰 가져오라고 폭풍랩핑도 했던거같은데?부서진 액정에 붙어있었던 필름에 난 처철한 이빨자국을 보니 얼마나 열심히 맛나게 물어뜯었는지 알것 같다. 




"아..씨...젠장..."





개가 물어뜯었다고 그러고 보험처리 받을까..라고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던 우리의 김태형군은 스스로를 개같은 놈으로 만드는 것에 왈칵 짜증나서 우아악-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두통은 찌르찌르하게 아프고, 집에 먹을것도 없단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원룸으로 처음 자취 살림 날때 가재도구 사라고 준 어머니가 준 돈은 벌써 애저녁에  절반 넘게 떼먹는 바람에 커튼을 달지도 못해 여과없이 통과하는 햇살에 눈도 못뜰만큼 부셨다. 







"아...일어나기 싫어..."







베개로 머리를 누르면서 이대로 다시 잠들어버리게 해주세요..하고 천사님께 중얼중얼 되먹잖은 아침기도를 중얼거리던 태형은 고요한 아침공기속에 규칙적으로 꾸준히 탁탁-하는 소리가 들리는것을 깨달았다.





"누구야..또..."





작은 소리였지만, 두통으로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태형에게는 모든것이 자신의 잠을 방해하려는 공작같아 짜증이 이빠이 치밀었다. 베개로 머리를 힘껏 눌러보았지만, 자기 팔만 아프다는것을 깨달은 태형은 신경질을 부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떤 쉑이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잠 안처자고 소음질이야..소음질은.."





머리맡에 꾸겨진 담배갑을 꺼내 한쪽으로 잔뜩 몰려 빙어튀김마냥 찌그러진 담배한대를 꺼내 툭툭 펴서 입에 물고 베란다로 나가서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어떤 새끼인지 면전에 대고 담배연기를 뿜어주리라.





'탁탁-'









바로 옆집이었다. 정확하게는 옆건물의 같은 층 옆집. 옅은 갈색을 띈 까만머리칼이 보송보송이라는 단어를 단것처럼 귀엽게 구불거리며 목덜미까지 늘어져 있었다. 늘씬한 기럭지에 하얗고 티끌하나 없는 얼굴은 잘생기다 못해 청순하기까지 했다. 하도 빨아서 소매끝이 쭈글쭈글해진 까만색 반팔티를 입고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에 걸쳐놓은 노란 이불을 배드민턴채로 툭툭 털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여?"





뭐라 말하려던 입이 딱 붙어 그저 멍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인식했는지 어색하게 인사를 해왔다. 어색함을 지우진 못했어도 수줍기보단 낯가림이었고, 투명하게 청순한 목소리에는 아직 사투리를 지우지 못한 'th'발음이 섞여 있었지만 영롱했다. 그말이 나오는 유난히 윤기가 도는 도톰한 입술도  예뻤다. 흰색으로 프린트된 '제 43회  체육교육학과 체육대회 기념'이라고 쓴 까만 티에는 태형과 같은 학교이름이 새겨진 것이 아침나절 숙취에 세수도 안한 눈으로 뚜렷하게 스캔되었다. 





"지난주에 이사왔어여"





인사만 하고 입을 다물어버리기엔 조금 무안했는지, 그는 어색한 공기를 달래보고자 더더욱 어색하게 이사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다가 태형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는 우물쭈물 이불을 만지던 손을 내밀었다.





"전정국....입니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하얀 손이 넘어왔다. 먼지터는 작업과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예쁜 손이다. 불법건축에 가까울만큼 붙어있는 건물인지라  덜깬 시야 안으로 딱 태형의 취향인게 너무 잘 들어왔다. 공중으로 내밀어지는 손을 본 태형은 그제서야 깨어난듯 황급히 츄리닝바지에 적당히 손을 닦고 그 고귀하신 전정국님의 손을 황송하게 잡았다. 





"김태형입니다. 저야말로.."



어색하게 잡힌 손에 어정쩡하게 웃던 정국이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태형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을 어찌해야될까 몰라 난처해하던 정국이 할수없이 살짝 힘을 주어 손을 빼자, 태형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어 들이면서 경련을 일으키려는 입꼬리를 달랬다. 





"아....잠시만요..."





그가 무언가 생각난듯 방안으로 몸을 돌리자, 태형은 얼른 고개를 삐꼼히 내밀고 그의 방안을 구경했다. 손이 잡힐만큼 가까운 방안은 아직 정리가 덜 됐는지 박스가 수북히 쌓여있고 이부자리와 동그란 밥상 하나만 펼쳐져 있었다. 미닫이 문사이로 그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찾는것이 보인다.

 

"어디있더라..."

 




 연한 보라색 합지 벽지까지 모가지를 쭉 빼고 구경하던 태형은 그가 무언가를 찾은 듯 일어서자, 황급히 기찰보냈던 모가지를 거둬들이고 서둘러 옷차림과 얼굴표정을 고쳤다. 같은 과 여자후배들이 환장하는 '입만 다물면 슈퍼모델포스' 선배 김태형님의 자세로 돌아오는 그에게 생긋 미소를 지었다. 




"이거...이사떡인데...."




 

 

 


아줌마들이 좋아할법한 짝퉁포트메리온 꽃무늬가 그려진 하얀 접시에 랩을 깔끔하게 씌워진 시루떡이었다. 떡 밑으로 개업기념 어쩌구라고 써있는 까만 글씨가 강렬했다. 태형은 이해를 못해 멀뚱멀뚱 떡을 바라보다가 똘망한 눈으로 떡을 내미는 정국의 의도를 겨우 알아차리고 떡을 받아들였다.





"자..잘먹겠습니다..."





태형은 고개를 꾸벅숙여보이면서 공중에 뜬 떡을 받자,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말리던 이불을 거둬들이고 베란다창을 닫았다.







"전정국....이라고?"







 

어느새 그의 입에 물려있었던 담배가 공중분신한 것도 잊어버린 태형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노란색 토끼이불을 배경으로 베란다에 몸을 내밀고 있던 그의 뽀얗던 상반신, 먼지나는 공기속에 그의 미소는 참으로 눈부셨다.









"그래서. 홀랑 반했다고?"





"응."





"취향도 특이해요..참...하필이면 이불말리는 모습에 폴링 인 러브라니...역시 너는 취향도 외계인 팔자였던 게지.."



"시끄러. 이상형은 변하게 마련이야."





그렇다. 그리고 사람이 변하는 것도 한순간. 과사무실에 여드름투성이 김정국조교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어찌나 황송스러운지, 평소에 존나 개싸가지라고 거품물고 욕하던 선배 이정국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이기에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눈앞을 아른거리는 강렬한 병아리색 토끼이불과 사랑스럽게 웃던 그의 미소. 









"옆집이라면서, 잘 구슬러봐."



"정확하게는 옆건물이지. 사범대 같던데 공부만 하는지, 학교생활에 몸바친건지 생전 문열리는 꼴을 못봐."





태형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종일 그의 미소만 생각하며 살순 없는걸까. 세상에는 전정국이라는 옆집남자만 생각하고 살기엔 태클이 너무 많다. 

   





"역시 안되겠다. 나 집에 갈래."



"뭐? 야..너 이따 3시에 수업 한개 더 남았잖아."





현우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딱벌렸지만, 태형은 가방을 둘러맸다.





"나의 스위트 홈으로 갈련다. 이때만큼 내 집을 사랑해본적이 없으이. 갑자기 그리워서 미치겠다."





"쇼하네. 주인아줌마 관리비 많이 뜯는다고 지랄할때는 언제고."



"됐어- 나 간다. 출석은 니가 알아서 해. 지져먹던 구워먹던 삶아먹던."



"야야!! 김태형!!"









현우의 고함이 뒤통수에 꽂혔지만, 태형은 발걸음도 가-비얍게 슬리퍼를 짝짝 끌며 강의실을 홀랑 빠져나왔다. 

 

 

 

"마이홈~ 스위트홈~스위트가이~ 마이 러버~베란다 창 열어놓고 기타를 치면 돌아봐주려나?"







햇살은 충만했다. 싸늘한 날씨도 따뜻이 감싸는 태양. 태형은 폴짝폴짝 뛰어 집으로 가면서 이불말리기 기똥찬 날씨라고 생각했다.





"나도 가서 이불이나 말려야지~" 


MARIA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