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포함 약 6천자 / 여생 산규

급하게 준비한다고 문장도 퇴고 상태도 영 엉망이지마는...😅 (다음엔 더 빨리 말해주시기!)

생일 축하해요 팜님~! 남을 올 한해도 내내 즐거운 일만 가득하세요!


“슬슬 사귀는 게 좋지 않겠냐?”


우즈이가 텅 빈 술잔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사귀어? 누가?”


자연스럽게 빈 술잔에 술병을 기울이던 시나즈가와가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그러자, 가볍게 잔을 채운 술잔이 휘휘 움직이며 두 사람을 콕콕 집어낸다. 첫 번째 손짓에 지목된 것은 처음 맛보는 과일주의 맛에 발그스레하게 취해버린 토미오카. 거기서 시나즈가와의 조그마한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어지는 우즈이의 두 번째 손짓은 은근슬쩍 토미오카의 앞을 가로막은 한 남자의 단단한 팔을 가리킨다. 참 내, 모르는 척하기는.


“너네말야.”


우즈이가 씩 웃었다.


“웃기지,”

“시나즈가와, 시나즈가와.”


단번에 반박하려던 말소리는 곁에 앉은 토미오카에 의해 불발된다. 시나즈가와의 옷자락을 힘없이 잡아끈 토미오카는 술병 위에 동동 띄운 체리를 손가락으로 집은 채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이거 봐라. 체리다.”


나도 알아, 망할. 체리 처음 보냐고. 더러우니까 맨손으로 집지 마. 야, 야! 그거 함부로 먹지 마! 안쪽까지 술이 스며들어서 쉽게 취한다고, 이 주정뱅이야. 줄줄이 이어지는 잔소리에 뭇, 하고 볼을 부풀린 토미오카가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아?”

“시나즈가와는 바보인가. 내가 어딜 봐서 주정뱅이냔 말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멍청아. 너 제대로 서지도 못하잖아?”

“너는 바보인 것뿐만 아니라 눈까지 이상한 게 틀림없다.”


그리곤 자기가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이리저리 휘청이며 아무리 봐도 곤드레만드레인 토미오카의 옹고집에 시나즈가와가 뿌득 이를 갈았다. 바람과 물의 충돌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그 사이의 우즈이는 태연하게 안주를 집어 먹을 뿐이다. 우즈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과거였다면 진즉에 뒤집혔을 술판이 앞으로는 늘 멀쩡하리라는 것을.

여기서부터가 바로 우즈이가 흥미로워하는 부분이다. 토미오카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시나즈가와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으로 토미오카의 볼을 꼬집었다. 당연히 주먹부터 올라갔을 예전과는 분명 다른 점이다. “아흐아.”하며 찔끔 눈물을 짜내는 토미오카를 보면 곧바로 손을 떼어내는 것 또한 그렇다. 아직 분이 덜 풀렸음이 분명할 텐데도 더 화내지 않고 겉옷을 둘러주는 것은?


“어라, 벌써 끝이야?”

“이 새끼 취한 꼴 좀 봐라. 더 마실 수야 있겠냐.”

“그런 말이 아닌데.”

“우즈이. 너 그딴 눈으로 보지 마라아…….”


시나즈가와는 반달로 휘어진 눈매 속 엉큼한 생각이 다분한 우즈이를 애써 무시하며 토미오카에게 귀가 의사를 표한다. 토미오카, 야.


“정신 차려봐. 돌아가자.”

“으응……, 싫다.”

“싫긴 뭐가 싫어? 여기서 잘 순 없잖아. 집에 가야지.”

“집…….”

“어, 우리 집.”


얼씨구, 우리이~? 우즈이가 시나즈가와의 단어를 되풀이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의 조롱에 시나즈가와는 망할 새끼, 하는 욕을 뱉어보지만, 위협 없이 시답잖게 뱉은 욕 따위 두렵지도 않다. 억세게 표현하자면 그저 같잖은 것이다, 건드릴 때마다 고양이처럼 컁컁대기나 하는 꼴이. 이미 동거까지 하는 주제에 무엇을 더 가릴 것이 있단 말인가. 하여튼, 귀찮은 녀석들아.


“빨리 사귀고 좋은 소식이나 들려달라고.”


우즈이의 독촉에 반응이 온 것은 시나즈가와의 손에 갈 채비가 완료된 토미오카 쪽에서였다. 무후, 하고 독특한 웃음을 흘린 토미오카가 “그럴까.”하고 시나즈가와의 뺨을 쓸어낸 것이다.


“무슨……!”


화들짝 놀란 시나즈가와가 토미오카의 손을 쳐내고 뒤로 주춤 물러선다. 하얀 머리카락이 굳은살 배긴 손가락에 잠시 머물렀다, 이내 곧 흩어진다. 토미오카의 시선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간 머리카락의 잔향을 뒤따른다. 노을이 스며든 방 안의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그래서, 그러하여서. 식은땀이 조금 흘렀는지도 모른다.


“사귀는 것이 좋겠다.”


시나즈가와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은지 모른다. 다만, 토미오카의 얼굴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그시 자신을 보는 호수 같은 눈망울이 오로지 자신을 바라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응시하고 있자면 왠지 심장 한구석이 간지럽고, 묘하게 호흡이 벅차서. 목소리가 마저 이어진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발발 떨리는 목소리가.


“사귀어?”


끄덕.


“너랑, 내가?”


끄덕끄덕.


“왜?”


토미오카가 고개를 갸우뚱 흔들었다.


“시나즈가와는,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는 건가.”

“망할, 멋대로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좋아하기 때문이지.”

“네가? 나를?”

“우리가, 서로를.”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럴 리가 없다, 는 것이다. 하지만 시나즈가와는 특유의 짐승적 직감으로, 지금은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토미오카에 대한 것을 좋다 싫다로 가르자면 이제는 좋아하는 편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이놈이 편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거 따위를 하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좋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차려진 밥상 토미오카를 앞에 두고도 한참 대답이 없는 시나즈가와를 보며, 우즈이는 생각한다. 아, 지금이 바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렷다.


“야아, 시나즈가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시끄러워, 우즈이. 말하지 마.”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방패를 지키기 위해 털을 세우는 시나즈가와를 보며 푸핫, 하는 웃음이 새었다.


“잘 봐.”


우즈이는 손에 든 술잔을 슬그머니 기울였다. 작은 술잔 속 투명한 액체 위로 시나즈가와의 얼굴이 비쳐 보인다. 상처투성이의 날카로운 얼굴이 연신 새빨갰다. 틀림없이 술기운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친구는 절대로 그런 얼굴 안 하니까 말이지?”


찰랑, 찰랑. 우즈이의 손짓을 따라 얕게 파도치는 투명한 액체 위로 은은한 빛이 내려앉는다. 좋은 술이네, 하며 잔을 홀짝이는 그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새들이 지저귄다. 고요해진 방안에 다시금 우즈이가 속살댄다. 설마, 몰랐어? 그렇게 티를 팍팍 냈으면서?


“어찌나 알기 쉽던지, 그 눈치 없는 까마귀 할아버지까지 너희가 사귀는 줄 알던데.”

“…….”

“그렇구나, 그게 다 무의식이었구나.”

“……우즈이!”


시나즈가와의 호통에 우즈이는 아, 네에, 네에. 하며 귀를 후볐다. 여태껏 시나즈가와의 대답을 기다리며 서 있던 토미오카는 이쯤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그렇군.”하며 고민하는 체를 했다. 그 작고 똘똘한 머리로 열심히 고민한 결과란 결국 이것이었다.


“잘 모르겠다면, 키스해보면 된다.”


아내를 셋 둔 입장에서 조언하자면, 그것은 절대 정답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편법이고, 도리어 화를 부르게 될지도 모를 선택이다. 하지만 토미오카는 우즈이가 말릴 새도 없이 돌진해버리고 만다. 앞으로, 거칠 것 없이 앞으로. 우즈이를 보고 있던 시나즈가와의 볼까지, 쪽.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입술에 시나즈가와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토미오카가 그 모습을 손가락질했다.


“우즈이. 이것 좀 봐라. 체리다.”


글쎄. 우즈이가 보기에는 토미오카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텅 빈 술잔을 탁상에 내려놓으며, 우즈이가 답했다.


“그래. 잘 어울리는 체리 한 쌍이네.”


어쩌면, 너무할 정도로 솔직하지 못한 시나즈가와에게는 저것이 정답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후, 무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왔는지 마냥 어렴풋하다. 시나즈가와가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이었고, 두 사람은 깨끗하게 씻은 몸으로 이불에 누워있었다. 긴 속눈썹을 가지런히 정돈한 채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토미오카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인 양 말끔해 보였다. 분명 모든 일을 다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사귀자는 말을 한 것도, 키스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만큼 사소했던 입맞춤도.

아마도 한순간 끓어오른 열기에 취기가 몸을 덮쳤던 거겠지. 시나즈가와는 그 모든 일이 취기에 의한 충동이었으리라 자신을 달래고, 자신 또한 취했던 척 모든 일을 잊고자 했다. 단 한 번도 취해본 적 없는 몸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즈이의 집에서 있었던 일은 없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토미오카 기유란 사내는 시나즈가와의 상상 이상으로 집요한 남자였다.

아침이라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이른 오후 무렵이었다. 두통을 호소하며 느지막이 몸을 일으킨 토미오카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요란을 떠는 것이다. 팔도 하나 모자란 놈이 무엇이 그리 급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 바로 이것이다.


“데이트할 것이다.”

“하아?”


어이가 없었다.


“어울리고 있는 사람도 없으면서 데이트는 무슨.”

“왜 없지? 우리는 어제부터 사귀는 사이였지 않나.”

“아아? 누구 마음대로?”

“마음대로가 아닐 것이다. 어제 분명히…….”

“웃기지 마, 술에 취한 고백 따위 나는 인정 못 해.”

“네가 인정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키스를 했으니까.”

“아, 그게 무슨 키스야, 미친! 그건 그냥 뽀뽀…….”

“뽀뽀?”


토미오카가 갸웃, 하고 고개를 흔든다. 다 큰 남자가 저런 귀여운 동작을 해봤자 귀여워 보일 턱이 없을 텐데도. 시나즈가와는 별 무리 없이 토미오카의 행동을 받아들이곤 마저 한숨을 쉬었다.


“볼에 입술 좀 닿은 건 키스가 아니야. 키스는 조금 더, 뭐랄까, …진한 놈이지.”

“……그래서?”

“아무튼 우리는 키스를 한 게 아니니까, 나한텐 책임이 없다고.”

“당치도 않은 소리!!”


지극히 당연하게도, 토미오카는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시나즈가와가 제 입술의 처음을 가져간 것은 틀림없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동거할 정도로 가까워진 지금 상태에서야 깨닫게 된 것은, 이 망할 토미오카 기유가 더럽게도 똥고집을 피우는 놈이란 거였다. 시나즈가와는 이런 상태의 토미오카가 어디까지 미련하게 굴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일주일을 넘게 단식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이쪽에서 먼저 한발을 물러설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럼 딱 한 번만 더 해봐. 진짜 키스를 해보고, 그래도 내가 좋으면 사귀는 거야.”

“좋다.”

“……괜찮겠냐? 처음이라며.”

“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 하지 않는다.”

“배짱하고는.”


토미오카는 어서 해라, 하며 시나즈가와를 재촉했다. 그러나 시나즈가와는 처음이라며 어색하게 자리 잡은 토미오카의 모습을 본 순간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긴장으로 눈은 질끈 감은 채, 꽉 쥔 주먹만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정자세로 목석같이 앉아있는 토미오카를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 시나즈가와가 슬그머니 입술을 가까이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당장이라도 입이 닿을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인다. 숨결을 의식하듯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위에 입을 맞추고, 장난치지 말라며 옹알대는 조그마한 입술에도 쪽쪽 입을 맞춘다.

토미오카는 이대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고작해야 입술일 뿐인데. 이 부드럽고, 따뜻한 체온이 시나즈가와의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몸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토미오카에게 시나즈가와가 다시금 소근거렸다. “토미오카.”


“힘 좀 빼볼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유린하는 기분이었다. 탁하고 힘이 빠져버린 몸이 뒤로 늘어진다. 시나즈가와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토미오카의 허리 위로 팔을 둘렀다. 상냥하지만 단단한 손길, 맞닿은 체온, 풍겨오는 체향에 머리가 아찔하다.

입술이 닿는다. 부드러운 재촉에 슬그머니 벌어지는 입술 속으로 혀가 엉켜 든다. 토미오카를 달래듯이 스치고 지나가는 나긋한 혀 놀림에 토미오카의 몸이 바짝 곤두섰다. 도망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시나즈가와가 허리를 붙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토미오카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이, 그저 시나즈가와에게 몸을 맡긴 채 입속의 모든 여린 살을 내주었다.

혀와 혀의 부드러운 만남이 낯뜨겁게 이어진다. 오늘은 술 한 모금 마신 적 없는데도. 달콤하고 씁쓸했던 과일주의 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맞붙은 서로의 몸이 아주 뜨거웠다. 닿은 부분마다 몸이 달아올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간질간질한 입맞춤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코로 들이켠 서로의 향기에 기도가 전부 타버릴 것 같다.


“하아…….”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낸다. 가느다란 실타래가 길게 이어진다. 입을 맞추었던 증거다. 빛을 받아 반짝이던 타액이 얼마 못 가 끊어진다. 툭 끊어진 연결이 아쉬운 듯, 시나즈가와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평소와는 다른 낯이다. 나른하게 풀린 자색 눈동자, 상기된 얼굴. 상대를 부르는 목소리. “기유.”


“……어때?”

“읏.”


그런, 눈동자로, 보는, 것은. 반칙이다.

토미오카는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힘없이 툭 늘어져, 시나즈가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시원한 비누 향기에 연신 머리가 끓었다. 새하얘진 머릿속에 점차 생각이 차오른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사실은, 이렇게 좋아도 될까 싶어서…….

시나즈가와는 제 품에 안긴 토미오카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귀 끝이 새빨갛게 익었다. 그 인형 같은 토미오카가. 키스 한 번으로 이렇게 반응을 해주었다. 부끄러움에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나의 옷자락만 잡고 있는 것이다.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것이 아니고서야 다른 무엇을 사랑스럽다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

“…….”

“좋아해, 사네미…….”


말없이. 시나즈가와가 토미오카를 품에 안는다. 콩닥, 콩닥. 아직도 마구 뒤엉켜서. 누가 더 빠른지 내기라도 하듯 뛰어대는 심장이 연신 시끄러웠다.

아, 이대로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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