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카아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꽃단장하고 나왔으니까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 원래도 연락할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리 서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오늘 같은 날 불러낼 이가 아무도 없다니. 조금 슬펐다. 인생 헛살았나 봐. 그렇지. 헛살았던 게 맞지. 마음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을 베어내고 나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다면 잘못 살아도 한참 잘못 살았다.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밤하늘의 별 대신 빛을 내는 네온사인이 속삭이며 웅성거린다. 아카아시는 걸었다.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갈 곳이 없지만 가야 했으며 가고 싶은 곳이 없지만 어디든 갔다. 방향은 이미 옛날 옛적에 잃었다. 그 날 이후 이정표 없이 무작정 달리고 있으니까.

“하아….”

결국, 정한 목적지는 술이었다. 자주 가는 바에 가서 술을 마시고 아무나 유혹해서 어떤 생각도 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사람이 미치면 정말 아무 짓이나 할 수 있구나. 아카아시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혼자 피식 피식 웃었다. 흔히들 말하는 문란한 생활 자체를 진심으로 역겨워하고, 싫어했는데. 이젠 그런 거고 나발이고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마약에라도 손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끔찍하게 썩어버린 상처가 드러났다. 숨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처를 다시 쳐다봐야 한다. 그마저도 고통이었다.
제가 자주 가는 술집은 밤 11시부터 문을 연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니. 끔찍했다. 그는 몸을 돌려 영화관을 향했다. 슬픈 버릇이었다. 울고 싶은 날이 되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눈물을 펑펑 쏟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어떤 영화든 상관없지만 멜로 영화면 더욱 좋다. 다 같이 울고 있으니 속이기도 쉬우니까.

“‘Love pain' 한 장 주세요.”

창구에 현금을 내민다. 마침 상영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이다. 아카아시는 북적거리는 영화관 근처에 기대서서 팔짱을 꼈다. 보쿠토의 눈동자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애처로운 금빛. 상처받은 황금의 눈. 머리를 휘휘 저었다. 떠올리면 뭘 해. 다시 만날 사람이 아닌데.
자리는 맨 가운데였다. 사전 조사도 없이 무작정 끊은 티켓이었는데, 우연치곤 꽤 괜찮은 결과였는지 상영관 안에는 관객이 꽤 있었다. 중앙보다 약간 위쪽 좌석에 앉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인제야 오롯이 혼자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공간. 그래서 아카아시는 영화관이 좋았다. 상영하는 내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막힌 울음을 흘려도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으니까.
오프닝이 시작한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슬픈 장면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아카아시는 닦는 것도 잊은 채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괜찮아.

영화 속 여주인공이 말했다. 괜찮다고. 무엇이 괜찮은지 몰랐지만 아카아시는 그 말이 제게 하는 위로처럼 들렸다. 아무도 저를 위로해 주지도, 안아주지도 않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늘 저를 위로했다. 더운 눈물이 식기도 전 또 눈물이 흘러 뺨을 덥혔다.
그래도 잘 했어 케이지. 그 앞에서 엉망진창 무너지진 않았잖아.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어. 그것만으로도 잘한 거야. 형편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어. 그래. 잘 했어. 여주인공이 운다. 울며 말했다. 괜찮아. 아카아시는 흐느끼며 손바닥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화면을 눈에 억지로 꾸역꾸역 담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를, 보쿠토를 다시 보면 돌아버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잖아. 그래. 괴로운 건 금방 지나갈 거다. 참는 건 잘 하니까 괜찮다. 그래.

“흐, 윽….”

여태 내내 참지 않았던가. 참다가 견디지 못하면 도망가고. 또 그렇게 참고. 그러니까….

“…괜찮아.”

잔잔한 피아노 음악과 함께 스크린 속 마지막 장면이 흘러나왔다. 여주인공은 결국 남주인공을 떠났다. 안녕히, 사랑했던 사람이여. 여인은 돌아보지 않았다. 스탭롤이 올라간다. 저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아카아시는 황급히 주머니에 갖고 온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축축하게 젖은 휴지를 손에 들고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다. 영화관이 밝아진다. 눈이 부셨다. 빛이 버거웠다. 눈이 아프다. 눈꺼풀 끝이 짓무르기라도 했는지 따끔거렸다,
이렇게 울어본 게 대체 얼마 만이더라. 아카아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관엔 어느덧 저 혼자였다. 극장 밖으로 나서자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휴대폰을 들었다. 쿠로오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만났어? 만났으면 연락 좀 해 줘. 아카아시는 답장을 하지 않고 다시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영화를 한 편 다 봤는데 아직도 시간이 남는다. 허기가 지긴커녕 식욕 하나 없다. 갈 곳도, 머물 곳도 없는 제 처지가 우스웠다. 하지만 이렇게 헤매기만 하다간 언제 생각에 삼켜질지 모른다. 그건 무서웠다. 사양이다. 아카아시는 상가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여기서 조금 멀리 떨어진 커다란 서점 빌딩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펼쳤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였다. 오늘은 어째 집는 것마다 전부 꽝이다. 한숨을 쉬며 다시 집어넣으려다 저도 모르게 다음 책에 시선을 주었다.

-아카아시, 이거 재밌어!

보쿠토가 재밌다 말했던 소설책이다. 무슨 내용이었더라. 읽었던 듯한데 기억은 없다. 손끝이 조심스럽게 책등을 더듬었다. 추억이 샘솟는다. 그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렸다. 내내 책을 골랐다 덮었다 반복했다.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른다. 서점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불행한 건 저 혼자였다.




* * *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됐다. 아카아시는 으슬으슬거리는 몸을 손으로 문질렀다. 밤이 되니 꽤 쌀쌀했다. 그래도 술을 마시면 분명 몸이 데워질 터였다. 그리고 오늘은…. 옆에 사람을 둘 거니까. 꿈을 꾸지도 않겠지. 익숙한 길을 걸어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간다. 네온사인이 푸르게 빛난다.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텐더가 씨익 웃었다. 아카아시, 오랜만이잖아. 웬일이야? 오픈 하자마자. 아카아시는 대꾸도 귀찮아 손을 까딱 흔들곤 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트레이트로 주실래요.”
“음?”

바텐더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지만, 더 묻지 않았다. 호박색 술이 가득 담긴 잔을 앞에 내밀었다. 단숨에 비웠다. 목이 타들어 가는 듯 화끈거렸다. 절로 밭은 숨이 튀어나온다. 아카아시는 흘러내린 술 몇 방울을 닦으며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한 잔 더 부탁드려요. 그러자 바텐더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빨라. 시작하자마자 여기 엎어져서 잘 거야?

“무슨 일 있어?”
“….”

웃었다. 웃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웃었다.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카아시가 다시 잔을 바텐더에게 밀었다. 빨리 달라는 무언의 독촉이었다. 고집하고는…. 그가 한숨을 쉬며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혀에 독한 술이 닿는다. 입 전부가 타들어 가는 듯 화끈거리고 아프다. 아카아시가 이번에도 단숨에 들이켠다. 콜록, 콜록. 기침이 터져 나왔다. 숨이 덥다. 머리가 어질어질 세상이 돈다.

“한 잔, 더 주세요….”
“아카아시, 너무 빨라.”
“…그냥 주세요.”

왜 그러는 거야? 아카아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유. 이유를 묻는 건가. 입을 열면 몸속에 꽉 억눌러 둔 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올까 두려웠다. 상처와 고름, 썩어버린 아픔이. 바텐더가 술을 채웠다. 이게 마지막이라 말하는 것도 잊지 않고.

“고맙습니다.”
“힘들어 보이니까…, 주는 거다.”
“…하하.”

있잖아요. 오늘 정말 최악이었어요. 정말 끝내줄 정도로요. 이런 하루는 다시 겪을 수 없을 거예요. 아카아시가 손으로 눈 끝을 눌렀다. 급히 천장을 바라봤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목 놓아 울 것 같았다. 이번에도 술을 단숨에 마시려 했지만 연거푸 마셔서인가 목구멍에 턱 하니 걸려버렸다. 매운 기침을 수차례 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괜찮아요?”

언제 온 사람인지. 누가 저에게 손수건을 내민다. 굳이 가게에 비치된 티슈가 아니라 자신의 손수건을 내밀다니. 아카아시가 풀린 눈으로 위를 바라봤다. 흐릿하다. 핑글핑글 어지럽다. 손수건을 받으려 살며시 일으킨 순간 몸이 휘청 흔들렸다. 어어, 조심하셔야지. 아카아시는 단단히 제 가슴 아래를 받쳐 든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옅은 갈색 눈동자. 날카롭고 산이 높은 눈썹. 운동한 듯한 몸. 아카아시가 그의 팔뚝을 잡았다. 이 와중에도, 보쿠토를 닮은 사람에게 눈이 간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혼자 왔어요?”
“…네.”

그가 웃었다. 그렇구나. 저 여기 단골이거든요, 거의 매일 왔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남자가 손을 뻗어 아카아시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술 때문에 열이 올라 벌겋게 달아오른 뺨에 손바닥을 댄다. 아카아시가 살며시 인상을 쓰며 손을 피했다. 그러자 남자가 웃는다. 귀엽네.

“벌써 취했어요?”
“…많이 안 취했습니다….”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향수 냄새가 짙다. 아카아시가 머리를 흔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바텐더가 혀를 차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남자가 허리를 살며시 굽혀 아카아시를 바라본다. 눈 색이 예쁘네. 녹색? 파란색 같기도 하고. 쉬고 싶지 않아요? 이 근처가 내 오피스텔인데. 아카아시가 멀뚱히 그를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쉬러 갈래요?”
“….”

쉬러 가면, 뭐 하나요? 그랬더니 남자가 아카아시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 쥐었다. 음. 저랑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술이 좀 깨면 같이 맥주를 마셔도 좋고. 집에 와인도 있고. 다 좋아요. 그리고 우리 집 침대도 크고 말이죠. 어깨를 감싸 쥔 손길이 천천히 팔 부근을 지나 허리로 간다. 손끝이 척추를 가볍게 누르며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갔다 쓰다듬듯 올라온다. 낯선 손길에 몸이 떨렸다. 아주 명백하고 노골적인 신호를 담은 손이었다. 남자가 바텐더에게 카드를 내민다. 술 석 잔 이걸로 계산해 줘요. 바텐더가 남자와 아카아시를 번갈아 바라본다.

“걔는 원나잇 안 할 텐데.”
“그래요?”

아카아시는 반쯤 그에게 기대 있었다. 남자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아카아시를 가리켰다. 가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남자가 슬그머니 귓가에 속삭인다. 싫으면 집에 보내 줄게요. 택시 잡아 줄까? 아카아시의 손이 조심스레 그의 옷깃을 잡아 쥐었다.

“…아무 생각 안 하게 해 주세요….”
“내 전문이지.”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난다. 아카아시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이 어지럽다. 어쩐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바텐더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그는 깨끗한 유리컵에 물을 따라 아카아시에게 내밀었다. 그가 웃으며 아카아시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확 넘어간다. 쿵. 등 뒤에 단단한 가슴이 닿는다.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누군지 알아차리는 것 보다, 기억이 먼저 속삭였다. 이 향기는 보쿠토의 향기라고.

“미안합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일행?”

남자가 보쿠토를 바라보며 아카아시에게 손짓한다. 보쿠토의 팔은 아카아시의 허리를 단단히 감고 있었다. 아. 이런.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일행이 있었다니…. 아깝네. 하고 두 손을 털며 건너편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시선은 여전히 둘에게 고정 된 채로. 보쿠토는 남자를 말없이 노려보다 아카아시를 부축해 술집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홱 밀치며 비틀비틀 걸었다. 30분도 채 있지 않았던 거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저기까지 온 거지 저 사람은.

“아카아시.”

보쿠토가 한달음에 다가와 아카아시를 부축했다. 저도 모르게 갈지자로 걷고 있었던 모양이다. 뿌리치려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짜증이 솟구쳤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응? 그 말에 또 화가 차올랐다. 왜 이렇게 마셨냐고? 지금 그걸…. 당신이 몰라서 묻는 건가?

“…놔주세요.”

얼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 그러자 몸을 부축하고 있던 팔을 천천히 떼어낸다. 아카아시는 전봇대를 붙잡았다. 울렁거린다. 속이 좋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고 구역질을 하자, 토하려는 건 줄 알았는지 보쿠토가 득달같이 달려와 등을 쓸어 준다. 이런 친절 반갑지 않다. 달갑지 않아. 빨리. 돌아가라고 해야지. 꺼지라고 해야지. 내 인생에서 사라지라고 해야지. 있는 힘껏 그의 가슴을 밀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습니까.”
“…쿠로오에게 물어, 봤지.”

이젠 그마저 짜증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쿠로오를 어떻게 해버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지. 허탈하고 허무했다. 등 뒤에서 보쿠토가 안절부절 못 하며 맴도는 게 느껴졌다. 발소리가 부산스럽다. 아카아시는 막무가내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그가 다시 달려와 어깨와 등을 붙잡는다. 혼자서 몸도 못 가누잖아. 응? 데려다 줄게. 아카아시. 목소리는 다정했고, 손은 뜨거웠다. 그를 밀어내려던 아카아시의 손이 툭, 힘을 잃고 떨어졌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와 제 사이는 어찌 됐을지 상상 한 적 있었다. 19살 때였다. 낯선 대학 기숙사 침대에 누워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 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보쿠토 코타로를 그리워했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그때처럼 자주 연락했을까. 가끔 만나 사는 얘기를 하며 술잔이라도 기울였을까. 아니면 아예 같은 대학 다른 과에 입학했을까. 그의 경기는 보러 갔을까. 같이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하기도 했을 거다. 아카아시는 마른세수를 했다. 화가 점점 차갑게 식어 배 아래에 고였다. 안 돼. 아카아시가 입을 막았다. 안 돼. 돌아보지 마.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면 안 돼.

“…아카아시. 괜찮아?”
“….”

저를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제 마음에, 사무치도록 묻어두었던 그 얼굴. 잊고 싶어 수도 없이 발악 했지만 지워지긴 커녕 도리어 또렷해지던 그 사람. 아카아시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미워하라고, 원망하라고, 다시는 마주치지 말라고 이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귀가 멍멍하다.

“선배가 무슨, 상관입니까.”

조금, 상처받은 얼굴에. 오히려 제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 젠장. 보쿠토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비틀거리며 약간 더 뒤로 물러났다. 눈이 마주친다. 심장이 뛰었다. 모두 술 때문이다. 전부 취한 탓이다. 입과 머리와 가슴이 전부 따로 논다. 입은 가시 돋친 말을 하는데 머리는 도망가자고 외치며 가슴은 그가 그리웠다고 말한다.

“아직도 우리가 그 때 같으신 줄 압니까?”
“….”
“그 관계는 선배가, 먼저 깨셨습니다.”

아니야. 사실은 제가 먼저 깼습니다. 제가 고백만 하지 않았더라도.

보쿠토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카아시가 뒤로 물러나는 것 보다 빨랐다. 보쿠토가 어깨를 잡았다. 올곧은 금빛 눈이 걱정과 다정을 담아 저를 본다. 코가 아프다. 안된다고 아무리 외쳐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가슴이 제 멋대로 군다. 눈물이 한 두 방울씩 흘러내렸다. 보쿠토가 조심스레 아카아시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무어라 말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 끝내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놓으세요. 안 놓으시면, 후려 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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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은 느리지만 늘 마음과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진도가 조금씩 조금씩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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