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그리고 최고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왕녀 루시

그 왕녀의 곁엔 언제나 묵묵하게 지켜주던 드래곤이 있었다.

신수라 칭송받던 반신반인의 나츠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이야기


왕녀님은 드래곤을 사랑했다

드래곤 역시 왕녀님을 사랑했다


서로를 사랑했기에

더욱 아름다운 둘의 이야기가 지금 막을 내렸다.


제2화_왕녀, 루시


신탁을 받은 지도 언 한 달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회임(懷妊) 소식이 없자 초조해지는 건 왕도 왕비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딱 한 달하고도 하루가 지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입덧을 하는 레이나 왕비로 하여금 태의가 부리나케 뛰어와 진맥을 짚어보았으니 걱정 반 기대반으로 쥬드가 그에게 물었다.


회임(懷妊):임신



"어떠한가?"

"경하 드리옵니다! 폐하! 왕후 마마께서 회임을 하셨나이다."

"참말인가!"

"예! 폐하! 진심으로 경하 드리옵니다. 왕후 마마."

"아... 폐하!"

"레이라!"



있는 힘껏 안아주는 쥬드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레이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지 20년을 넘긴 이들 사이에 생겨난 아가씨를 축복하였다.


*


그 다음날, 사랑하는 왕후께서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에 쥬드는 국민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먹을 것과

진귀한 것들을 나눠 주었으며 20년 만에 아이를 갖은 것을 기념하여 파티를 열었다.



"레이라!"

"아이린!"



파티의 초청받은 이들 중 레이라 왕비와 오랜 절친인 티페스토리아 제국의 황후인 아이린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아이를 가졌다니! 정말 축하해!"

"고마워. 그런데 와도 괜찮겠니?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거의 만삭의 몸으로 온 친구가 당연히 걱정이 안 될 일도 없었다. 이리 걱정해주는 레이라의 양쪽 어깨를

내리치며 경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린은 볼록 튀어난 배를 살살 문지르며 말한다.



"내 아기는 날 닮아서 아주! 튼튼하다고 이번엔 제발 딸을 낳았으면 하는 눈치셔 폐하는~ 그럴 만도~

황자들만 줄줄이 다섯이나 낳았으니 이번엔 제발 날 닮아 예쁜 황녀님이 낳기를 바라시며 매일 신전에 찾아가

기도를 올리신다니까~"

"후후. 그러니? 아마 이번엔 꼭 딸을 낳을 거야. 폐하의 지극정성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어~ 이번에도 아들이라면 난 또...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아이린이 노고를 잘 알 것 같은 레이라는 힘내라는 말 대신 등을 쓸어주었다.



"아무튼! 레이라 정말 축하해. 이제 행복한 일만 남았다!"

"응.. 행복해질 거야. 행복하게 만들 거야.. 폐하도 이 아이도."

"너도 행복해야지!"

"응."



웃는 얼굴에서 살짝 엿보이는 불안함을 거의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온 아이린이 눈치 차리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고로 따스히 품 안을 껴안아주며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해준다.



"괜찮아, 레이라. 너라면 반드시 건강하게 국왕 폐하의 대를 이을 멋진 아기씨를 잉태할 수 있을 거니까. 

자신감을 가져."

"고마워, 아이린 정말-"



레이라는 아이린에게조차 이제 곧 태어날 아기에게 내려진 신탁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었고,

그저 간절히 바랐다. 다른 때보다 더 아름다운 달빛이 비치는 그날 밤, 부디 건강하게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을 수 있기를 그리고, 첫아이에게 세상의 빛을 보일 수 있기만을 아주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요즘 들어 부쩍 드래곤들의 영역 싸움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싸움엔 언제나 드래곤들의 왕인 이그닐과

그의 유일한 적수가 될 수 있는 아크놀로기아.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인 염룡왕 이그닐 그리고 그의 영원한

라이벌인 온몸이 단단한 쇳덩이로 되어 있는 아크놀로기아.



"아버지!!"

"저 녀석이 또!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한심하구나. 이그닐. 천한 인간의 피를 가진 놈에게 아버지라 불리다니"

"시끄럽다! 저 녀석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드래곤들보다 더 위험하게 될 지도... 하지만 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처럼만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계집애에게 홀려 드래곤의 긍지를 더럽힌 놈과는 도저히 싸울 맛이 안 나는군."

"도망치는 것이냐? 아크놀로기아. 너도 이제 늙어빠졌구나."

"웃기는 소리 마라. 난 저 인간 놈이 꼴도 보기 싫어 가는 것뿐이다."



날개를 펼치고 하늘 위로 오르는 아크놀로기아는 이그닐을 내려다보며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외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드래곤들의 싸움은 네놈이 500년 전 인간 놈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을

명심해라. 염룡왕 이그닐. 네놈에게 홀려 인간 놈들을 옹호하는 드래곤들이 늘어나 나와 같은 인간을

멸시하는 놈들이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을 명심해라! 그리고 똑똑히 들어라! 언젠가 너도! 인간을

옹호하는 놈들도 그리고 네 옆에 있는 그 인간의 피를 가진 놈도 소멸하게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묵묵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이그닐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아들 나츠에게 고갤 두었다.



"난 역시 인간인 거야? 아버지처럼 용감한 용이 될 수 없는 거지?"

"넌 나의 자식이다."

"하지만! 난 아버지와 다른 걸! 이그니어 형님과도 다르고! 형님도 아버지와 같은 용인데 나는.. 나만..

인간이야.."



풀이 잔뜩 죽어 있는 나츠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그닐은 급 표정을 굳히고 작은 머리통 위에

작은 동산을 얹어 주었다.



"끄아아악! 아프잖아! 아버지!! 무슨 짓이야!"

"아프라고 때린 거다.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더 똑바로 직시해라. 그리고 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뭘?"

"네가 내 피를 이어받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그리고 때가 되면 너에게 알려줄 것이 있으니 지금은 잠자코

있어라."

"알았어. 아버지."

"돌아가자."

"응!"



웅장한 날개를 펼친 이그닐은 몸을 최대한 낮게 낮추었고 말은 하지 않아도 생글생글 웃는 나츠는 아버지의

등판에 올랐다.



"우아아! 높다!! 아버지! 높아!"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라."

"응!! 우아아악!! 아버지! 너무 빨라! 떨어진다! 떨어진다고! 으아아악~"

"떨어져 죽고 싶지 않다면 꽉 잡아라. 나츠."

"히이익!"



필사적으로 등판에 붙들려 있는 아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그닐은 피식 웃어 보인다. 



"그래, 나츠 죽기 싫은 그 마음으로 앞으로를 살아가는 거다 어떤 일이 있든 간에 말이다."



이 말은 떨어질까 무서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들 나츠에겐 들리지 않은 듯싶더라.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열 달 동안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며 태어난 아기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던 레이나는

새벽녘 극한의 진통을 느끼게 되었다.



"레이라!"

"폐하 들어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제기랄!"



안에서 들려오는 귀를 찢을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에 긴 복도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쥬드의 귓가에

아주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말리는 병사들을 죄다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폐하! 경하 드리옵니다! 아주 건강한 공주님이시옵니다!"

"아... 레.. 레이라! 레이라는!"

"왕후 마마께서도 무사하십니다."

"하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는 스패트에게 다가가는 쥬드.



"폐하."

"어디 얼굴 좀 보여다오."



살짝 얼굴을 보여주자 쥬드는 감격의 눈물부터 쏟아내었다.



"아, 참으로 곱고 예쁘구나. 레이라를 닮아 아주 예쁜 아이가 태어났어!"

"그러하옵니다. 폐하. 진심으로 경하 드리옵나이다."

"경하 드리옵니다! 폐하! 경하 드리옵니다! 왕후 마마!"



모두를 내보내고 아이를 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레이라 곁으로 다가온 쥬드는 아이를 품에

안겨주었다.



"어떻소? 레이라. 아이를 본 소감이."

"너무... 너무 예쁘옵니다.. 폐하.. 정말.. 기쁘옵니다."

"내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보았소. 루시. 이 아이의 이름은 루시오. 루시 하트필리아."

"루시라.. 정말 예쁘옵니다. 루시.. 내 아가."

"아웅~"



딸을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따스히 보듬어주는 쥬드는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준다.



"수고 많았소, 레이라. 앞으로 우리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보아요."

"예.. 폐하.. 저도... 꼭."

"레이라? 레이라! 왜 이러는 거요! 레이라!! 게 아무도 없느냐! 레이라!!"

"우아앙~"



원채 몸이 약했던 레이라에겐 출산은 더욱 몸을 쇠약하게 만들고 만 것이었다.



루시 왕녀가 태어난 그날 이후, 레이라 왕비는 병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그 누구도 감히 슬퍼할 수 없었다고 한다.



to be continued~


FT와 루시 나츠루시를 사랑하는 개성무한점! 글쟁이랍니다! (하핫!)

찐구르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