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 본 게시글은 가정폭력, 폭력, 강간 등의 트리거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언니는 늘 없는 죄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2.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지 마

한강, 밝아지기 전에 中

3.
불 꺼진 6인실 병실에선 옆 침대의 환자가 소곤소곤 통화를 하는 소리만 들렸다. 벌써 한 시간째였다.

아연은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깍지를 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두 손으로 이연의 손 하나를 꼭 붙잡고서, 눈을 감은 얼굴은, 지쳐있는 것도 같았고 어딘가에 불만이 있는 것도 같았다. 살짝 구겨져 한동안 부동이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어둠 속에서 검은 눈동자가 찰나의 빛을 냈다. 이연의 손은 거칠었다.

싸구려 운전 장갑을 끼고 내내 핸들을 돌리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게다가 말이 좋아 운전 담당이지 남는 시간에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같았으니까. 아연은 제 언니의 거칠어진 손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끝이 그 거친 피부에 닿을 때마다 이유 모를 죄책감이 스멀스멀 그녀의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붕대를 감은 얼굴 위로 올렸던 시선은 다시 잡은 손을 향해 떨어트렸다.

이런 어두운 밤에는, 게다가 이런 잊지 못할 밤에는 으레 과거 생각을 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가 하면 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이럴 때의 아연은 그저 들숨으로 삼킨 맑은 공기에 감정 찌꺼기를 섞어 날숨으로 내보내기만 했다. 끈덕진 우울의 시간이 찾아온다. 다른 모든 것은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으나, 집을 뛰쳐나오던 날의 기억만큼은 잊을 수도, 묻어둘 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의 ‘가출’이란 건 하나도 통쾌하지 않았다.

4.
이 기억은 우리 자매의 성씨가 한 씨였던 시절의 마지막 기억이다. 마지막이란 표현에서 유추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이 성씨는, 별로 달갑지 않았고, 오히려 역겨운 선물이었다.

언니네 엄마가 집을 나간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는 계산 같은 걸 해본 적 없어서 모르겠고, 하여간 그 날도 별다를 것 없이, 내 머리를 향해 가장 먼저 날아온 건 리모컨이었다. 뭐가 날아오거나 깨지거나, 내게 휘두르는 그 팔이 시야에 가까이 보이면 겁먹어 눈을 감아버리거나, 그런 일들이 나에겐 일상이었다. 지랄 맞은 한 신표 씨 딸들에게는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그런 일상.

정확히 무슨 말들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아저씨는 사람을 짐승 취급 하는 걸 좋아했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거나 때리면서 소리를 질렀고, 너 같은 년은 사람새끼도 아니라는 말이 입버릇이었다. 그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얻어터져 뒤질 것 같으면서도 그럼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낳았는데 사람새끼겠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걸 꾸역꾸역 참았다. 그런 말을 했다가 머리채를 잡혀 벽에 들이박히기라도 하면 피가 날 만큼 맞을 것을 알았다. 그 때 내가 왜 얻어터졌냐면, (애초에 맞는 데에 특별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출을 하려고 짐을 싸던 걸 그 아저씨한테 딱 걸렸기 때문이었다.

5.
키워준 은혜니 뭐니 배은망덕하다고, 머리 검은 짐승 거둬봤자 하등 쓸모가 없다더니 사실이라고 그런 말들을 쌍욕을 섞어가며 내뱉는 남자의 손에 잡히지 않으려 아연이 도망을 쳤다. 도망이래 봤자 집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붙잡히겠지만, 그 움직임은 공포에 따른 무의식적인 반응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대상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에선 그 꿈틀대는 움직임이 죽기 직전의 쓸모도 없는 발악이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남자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저 자신을 피해 도망치거나 소리 내어 울거나 이따금씩 눈이 마주칠 때 증오하듯 노려보는 시선을 채 숨기지 못하는 ‘딸’이란 존재였지, 그 도망이, 비명과 증오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꿈틀, 하는 것만 중요할 뿐.

어차피 밟힌 지렁이가 발악 따위를 해봤자 끝은 죽음이든지 몸이 끊어지든지 둘 중 하나였다. 다시 멀쩡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연은 자기가 사람새끼도 아니라는 저 남자의 말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가끔씩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밟힌 지렁이 꼴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지금이 딱 그랬다.

뒷목의 옷자락을 잡혔다. 몇 가닥 머리칼도 마찬가지였고. 꽤 익숙한 일이었다. 앞으로 발버둥을 쳐봤자 목만 졸릴 뿐이었다. 이럴 땐 반항하지 않고 뒤로 끌려가야 했다. 그래야만 살았다. 좆같네. 그렇게 살아봤자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 건데 그래도 죽기는 싫은가보지, 그러니까 이게 딱 그거다. 밟힌 지렁이. 그래서 아연은 발버둥을 쳤다. 의식하지 못한 새에 손이 올라가 자기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놓으라는 듯이. 몸을 휘적이고, 땅을 때리듯 버둥대느라 쿵, 소리가 났다. 다 끝내고 싶다. 저 남자보다 일찍 부엌으로 달려가 싱크대 아래의 찬장을 열고 식칼을 꺼내 심장에 콱, 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반쯤 성공했다. 딱 반만. 옷깃을 놓친 남자로부터 도망친 아연이 부엌의 오래 쓴 식탁을 지나쳤고, 이번에는 머리채를 잡혔다. 버티려 잡았던 의자 하나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씨발.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조금만 손을 뻗었어도 칼을 꺼낼 수 있었을 거다. 그 다음엔 온 힘을 다해 저 인간 심장을 내리찍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껏 당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비명 지르는 것뿐이었다.

이연은 딱 그 때 들어왔다. 밖에서부터 동생의 비명을 듣고 급하게 뛰어온 참이었다.

6.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에 무언가 쥐여져 있었다. 고개는 이음새가 녹슬어 움직임이 뻑뻑한 인형처럼 숙여졌고 주먹쥔 손이, 반 깨진 소주병을 쥐고 있음을 깨닫는다.

떨어트린다. 소주병 모가지가 데루룩 굴러 한쪽 벽에 퉁, 소리를 내며 멈췄다. 나, 지금. 뭐 했어? 눈앞에 쓰러진 아버지가 보였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피가, 양말 신은 내 발치에까지 와 있었다. 둥글게, 조금씩 넓게. 퍼져간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언니……!”

―그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이 급하게 돌아갔다. 아연이도 나만큼 놀란 것처럼 보였다.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내가 파도치는 바다 위의 달처럼 부서지며 담기는 걸 보았다. 당장 입을 열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나 지금 뭐 했냐는 말이나 괜찮냐는 말 대신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은 건,

‘죽은 거 맞지?’

미친 생각인 것 같았다. 사람 머리를 후려쳐놓고 확실히 죽었는지부터 궁금해 한다니, 아연이가 저렇게까지 얻어맞았는데. 아팠을 텐데. 그러나 차마 입을 열지 못해서, 대신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건, 동생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초겨울이었다. 한 손엔 동생의 손목을, 다른 한 손엔 재작년 겨울에 산 부츠를 꽉 쥐고 피 묻은 양말만 신은 채로 나는 뛰쳐나갔다.

우리는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지옥에서 도망치는 중이었던 거다. 전봇대 아래 쓰레기봉투를 뒤지던 고양이가 뛰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걸 보고 내가 급하게 발을 세우자 손을 잡혀 뛰던 아연이도 급정거한 버스에 탄 승객처럼 몇 걸음 주춤대다 섰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뒤부터 돌아보았다.

사는 동네에서 한참은 멀어져 있었다. 버스 정류장을 세 개는 지나친 것 같았다. 서있는 곳이 밤까지 문을 열어둔 어느 식당 앞이라는 걸 알아챘고, 혹여 식당 안쪽으로부터 나오는 환한 빛이 우리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줄까―그래서 아버지가 우리 얼굴을 알아보고 쫓아오지는 않을까 덜컥 겁이 나 아연일 끌고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동생의 발에 부츠를 신겨주고, 아직까지 입고 있었던 겉옷을 어깨에 걸쳐줄 수 있었다. 우린 돌아갈 곳이 없어 한동안 찜질방을 집 삼아 살다가, 그 돈마저 떨어졌을 땐 거리에 내앉아야 했다.

7.
살아있다는 이 화사한 공포

장수진, 개와 물 中

8.
우리 인생에 좋았던 시절이 언제 있었다고, 처음부터 어그러진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희망을 가졌다. 특히나 언니는 더 그랬다. 어떤 책임감과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한 부풀린 감정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손에 잡히는 대로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웃기게도, 손에 잡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거리에 내앉게 되었을 때. 나는 지쳐 있었고, 배가 고팠다. 굶은 건 아닌데 먹었다고 하기도 애매한 식사가 며칠째 이어진 탓이었다. 우린 공원 벤치에 앉아 노숙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마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 밤에 추운 공원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가끔 난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마저 배부른 소리일까? 복에 겨울 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아저씬 그렇게 험상궂게 생기진 않은 얼굴로 서글한 미소를 지어가며 다가왔다. 옷도 좀 말쑥하게 차려입은 편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에겐, 서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 또한 그랬다.

그는 소위 말하는 ‘술 팔고 여자 파는 업소’에 여자를 알선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럴듯하게 빙 둘러가며 말했지만 나도 언니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날이 곤두서있었기 때문일까? 시린 바람이 뺨을 몇 번이고 때렸기 때문일까. 아저씨가 하던 말을 멈춘 채 한참이고 가만 서 있다가 입을 열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때마침 저어쪽 공원 화장실 쪽의 가로등 불빛이 나간 때였으니까.

“나랑 가서 일 하나 안 할래? 그냥 뭐, 바텐더랑 하는 일도 비슷해~ 술 마시러 온 사람 말동무 해주고 그러는 거지 뭐. 일단 우리 아가씨들 잘 데도 없고 배도 고플 거 아냐. 응?”

그 새끼가 그 말을 하며 내 쪽을 쳐다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추워도, 얼어 죽을 거 같아도 언니 앞에서 조금 더 괜찮은 척을 했어야 했다. 이렇게 또 없는 죄에 대한 후회를 하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가난한 사람들의 취미 같은 건가보다.

언니는 운전기사 일을, 나는 업소로 출장 가는 일을 하게 됐다. 좀 허름해 보이는 지하 사무실에서 전기난로에 손을 녹여가며 결정한 일이었다. 언 손이 가려워 긁고 싶을 지경이었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업소로 나가는 일을 차라리 자기가 하겠다고 자원하던 언니의 옆얼굴과 내 쪽을 가리키던 아저씨의 손가락.

언니는 간절해 보였다. 죽어도 나한테 그런 일은 시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고집피울 거면 차나 한 잔 뽑아들고 나가서 잘 살아보라는 아저씨의 말이 너무도 차갑게 들려서, 나는 그냥 손을 들었다. 그땐, 그러니까,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알았어요, 제가 할게요, 그 말에 언니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9.
이젠 커튼 너머 옆 침대의 환자가 통화를 하던 소리도 사라져 오로지 적막뿐인 병실 안, 이연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아연은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뜬 건 이연 쪽이었다. 고개를 움직여 제 동생을 보진 못하면서도, 잡은 손의 익숙함으로부터 동생이 곁에 있다는 걸 알아챈 이연이 작은 숨을 뱉었다. 입끝 하나 올리는 것도 퍽이나 힘들었는지.

꿈을 꾸었다. 가출을 하던 날의 기억부터 시작된 꿈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일부는 흐려진 시야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좋은 추억 따위는 없었다. 나쁜 기억과 더 나쁜 기억, 조금 덜 나쁜 기억뿐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나, 겨우겨우 생긴 돈을 모아 밖에서 붕어빵 한 봉지를 사오던 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살 때도 종종 없는 돈 모아 붕어빵 몇 개를 갖다 주곤 했었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날은 여전히 추웠다. 그냥 보기에도 얇아 보이는 검정 컨버스화는 가출을 했던 다음날 지하상가에서 가장 싼 값에 샀던 것.

우린 사무실 아래 고시원만큼 작은 방을 하나 받았다. 둘이서 지낼 방이었다. 싸구려 화려한 벽지가 군데군데 뜯어져 있거나 화장품 자국에 더럽혀져 있었고, 미미하게 향수 냄새도 났다. 며칠 전 여자 하나가 아예 비싼 값에 어디 재벌 옆구리 채우는 용으로 팔려나갔다고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이제 아연이도 종종 향수를 뿌려야 했기에 한 달쯤 지나자 전에 살던 여자의 향수 냄새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동생의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방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 손이 그대로 허공에서 뚝 멈췄다. 숨죽인 울음이었다. 그앤 그게 습관이었고, 가끔은 나도 그렇게 울었다. 우는 소리가 아버지의 심기를 거슬릴까봐 제대로 소리 내어 운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눈치 봐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소리 내어 우는 게 어려웠다. 울음은 나날이 조용해져 갔지만 그 농도는 숨이 막힐 만큼 짙었다.

어림짐작이니 뭐니 할 것도 없이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문득 스치며 봐온 멍 같은 자욱을 절대 잊을 수 없었으니까. 소매 사이로 얼핏 보이던 검푸르던 멍은 예전의 악몽(그러니까, 아버지의 흔적)이 아니었다. 아연처럼 업소로 출장을 나가는 옆방 진아 언니가 이 일 하다보면 그 정도 폭력은 비일비재하다며 손목에 팔찌처럼 남은 푸른 멍자욱을 보여주었다. 얼굴과 목 사이에도 검붉은 멍이 있었다. 그렇게 얻어맞고 기절을 했을 때에도 깨어난 다음날 곧바로 출근을 했다고, 마지막엔 맥락 없이 힘내라는 말을 어설프게 미소 지으며 해주었다.

진아 언니의 그 말들이 위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위로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도망치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말끝에 흐르듯 ‘너흰 둘이잖아’ 라는 사족을 덧붙였던 걸 보면. 그러나 그땐 그러지 못했다. 지쳐 있었기 때문일까? 아주 조금은, 이렇게 사는 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란 거냐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을 비롯해 숱한 날동안 방문 너머로 새어나오던 희미한 울음소리들은 이제 내 온몸을 가득 채워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죄책감이 되어 있었다.

10.
다음으로 보았던 기억은 작년 초가을의 조각. 바뀐 나날이 쌓여 꽤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을 즈음의 이야기. 작년의 가을은 낮하늘이 그렇게도 맑았다는데, 두 자매에겐 꿈같은 얘기였다. 주로 밤에 일을 하느라 낮에는 잠을 자야 했으니까. 그들에겐 푸른 하늘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뒷좌석 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열리자 두어 명의 여자들이 옷이나 머리를 정리해가며 내렸고, 운전석에 앉은 이연이 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내린 아연이 문을 닫고선 열린 조수석 창문 쪽으로 손을 흔들면 이연은 짧은 인사를 끝으로 차를 몰아 나섰다. 언니가 모는 봉고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고 좁은 거리를 쳐다보던 아연의 얼굴에선 차츰 미소가 사라져갔다. 이연이 옆에 없을 때의 아연은, 짙게 화장을 하고 별로 자기 취향도 아닌 옷을 입은 채 밤의 시작에 선 그녀는 신아연이 아닌 ‘영’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나눠버려야 했다. 누군가의 혈육인 아연, 그녀가 그나마 영으로서의 삶보다는 나았으니까, 돌아가야 할 ‘또 다른 나’를 만들어두는 셈이었다.

쌍꺼풀 짙은 두 눈 위로 올린 화려한 섀도, 가지런히 그린 눈썹도, 붉게 칠한 입술도 모두 아연의 손끝을 거친 화장이었지만 그 행위에 그녀의 의지는 들어있지 않았다. 기껏 라인을 맞춰 칠한 입술이 입끝으로 번질 때마다 불쾌함에 몸을 떨곤 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다. 복합적이면서도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돈이 없으니까. 안 그래? 솔직하게 얘기해서 돈만 많았으면 하기 싫은 일 따위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거다. 알선을 해주는 값이며 방 같지도 않은 그 작은 것도 방이라고 값을 또 챙겨가서 벌어도 벌어도 도통 여유란 게 생기질 않았다. 심지어 손님이 만족하지 못했단 얘기가 들어오면 그 값까지 떼어가려 들었다.

아연을 부르는―아니지, 영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립스틱을 클러치 백에 집어넣은 그녀가 또각대는 구두 소리와 함께 좁은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이른 밤쯤 되었을 때에서야 이연은 마지막 업소까지 모두 들른 후 차를 돌려 아연을 내려주었던 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무슨 이윤지 해야 할 잡일이 없어 조금 여유로웠고, 운전석 창문을 열면 조금 쌀쌀한 바람이 차안으로 화악 들어오며 갖가지 화장품과 향수가 섞인 달갑잖은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대충 자른 짧은 머리칼이 바람에 한껏 흔들리면 그녀는 턱을 괴고 묵묵히 핸들을 돌렸다. 그 차가 다시 멈춘 건 아연이 들어간 업소 가까운 곳의 포장마차 옆이었다. 벗어놓은 갈색 운전 장갑이 핸들 위로 놓였다. 문이 열렸다가 닫힐 때마다 자그마한 끼이익 소리가 났다. 장사도 잘 안 되는 그 포장마차는 그래도 오뎅 국물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맛있었는데 두 자매가 이 구질구질한 삶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였다. 나아진 건지 악화된 건지 알 수 없을 어그러진 길을 너무 오래 걸어와 이제는 힘을 내는 것조차 어렵고 겁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누가 베풀어준 적도 없는 싸구려 위안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마시며 이연은 동생을 기다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름인 것 같았는데, 변덕을 부리는 날씨에 이젠 옷을 단단히 껴입어야 했다. 2분씩 느리게 가는 손목시계가 곧있을 아연의 등장을 예고하자 이연이 비닐 천막을 살짝 걷곤 업소의 입구를 한참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며 두어 명의 여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아연은 제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해사하게 웃으며 하이힐 신은 두 발로 뛰다시피 걸어 다가왔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밤의 허공을 울렸다.

“언니!”
“얼른 들어와, 빨리!”

11.
꽤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날도 아연인 마음에도 없는 가벼운 투정만 장난스레 던지며 속을 감췄다. 왜였을까, 한 번쯤은 아연이가 내게 깊은 속에 감춰뒀던 이야기까지 털어놓아주기를 바란 것도 같다. 그 밤이 그랬다. 그래서 나도 장난스런 목소리로 얘기했었다.

“고민거리 있으면 이 언니한테 다 얘기해도 돼!”

그랬더니 아연이가 힘없이 웃었다. 진하게 섀도를 올린 눈을 휘어가며 시선을 떨궜다. 아주 찰나였지만 똑똑히 두 눈에 새겨진 그 웃는 얼굴이 목구멍을 꽉 막고 넘기려는 술을 자꾸 입 밖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다음 잔을 넘기고 나서는 나라는 인간이 참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그 애 손목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나아지지 않은 생활에 대한 직시가 찬바람처럼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괜찮아, 우리 이제 행복해질 수 있어, 잘 살 수 있을 거야. 동생에게 해준 그런 말들은 일종의 자기최면이었을지도 몰랐다.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까지 희망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을 입에 담았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 뭐라도 붙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했으니까.

지나서 생각해보니 동생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기보단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밑바닥일 리 없다는 부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간절히 빌고 끝까지 믿으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그러나 달라지긴 커녕 우리의 위치는 지독히도 제자리였고 나는 그 날 순대 하나를 집어먹으며 내가 그래선 안 되는 거였을까, 조용한 반성 같은 걸 했다. 고민마저 참 싸구려 같았다.

아연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걔도 말이 없었다. 소주병을 기울여 술을 가득 따르더니 묵묵히 제 입가로 가져갈 뿐이었다. 다음으론 내 잔에 적당히 채워주면서 턱을 괴고는 오늘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을 던졌다. 드러내지 않는 그 애의 한숨이 포장마차의 비닐 천막처럼 얇은 막 너머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난 이상할 만큼 오늘 참 한가하게 있었단 얘길 했다. 할 만한 잡일도 없었고 길도 막히지 않았고, 누구한테 시비를 걸린 일도 없다고 말하며 오뎅 국물을 떠 마셨다. 동생은 그런 따분한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들어주었는데,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그나마 그 시선이 거짓된 미소를 띠지는 않았단 것 정도였다.

조금 직설적으로 물어봤으면 대답을 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질문마저 아연이를 상처 주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비어버린 동생의 술잔을 채워주려고 소주병을 들었을 때 아연이 날 쳐다보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자긴 이제 그만 마셔도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들었던 술병을 내 잔 앞으로 기울였고, 우리는 주문한 만큼의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먹을 때까지 소소한 얘기를 했다. 이제 날씨가 추워진 걸 보면 가을이 맞긴 맞다거나, 시간 괜찮으면 기분전환도 할 겸 아이쇼핑이나 하러 나가자는 얘기, 그러다 여기 오뎅 국물은 올 때마다 더 맛있어지는 것 같다는 내 말을 끝으로 접시가 모두 비었다. 다 마셨으면 일어날까? 아연이가 웃으며 내 팔을 잡았다.

“우리 언니 덕분에 오늘 배부르게 먹었네~”

그러나 다시 원점이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12.
붕대를 감은 한쪽 눈의 시야가 어둡게 가려져 이연은 하나 남은 눈으로만 병실 천장을 쳐다봐야 했다. 옆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핸드폰 불빛이 커튼 사이 희미하게 번졌다. 전화라도 왔을까, 소곤소곤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든 아연의 꼭 부여잡은 손은 제 손에 비하면 훨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연은 거칠어진 손만이 고생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진하게 덧그린 화장, 꽉 조이게 입은 불편한 옷차림, 어울리지 않는 향수 냄새 같은 것들이 아연에겐 있었다. 오래 쌓인 우울과 피로는 입을 열어도 쉬이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그걸 알면서도 한 번쯤 (―이기적인 걸지는 몰라도) 제게 모든 걸 털어놔주길 바랐는데.

틀어진 인생은 뭐 하나 순탄하게 흘러가는 일이 없었다. 만약 아연이 조금이라도 일찍 얘기해줬다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주변 지리에 빠삭해진 자신이 아연의 손을 붙잡고 예전처럼 멀고 먼 곳까지 도망을 쳤을지도 모르지. 늦은 후회는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이연의 인생에서 늦지 않은 후회 따위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아연을 괴롭히는 업소가 하나 있었다. 힐스라는 이름의 그 업소는 대출은행이 있는 건물의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거길 다녀오면 아연이 꼭 열병을 앓았다.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힘을 잃고선 희미한 미소를 짓는 일이 허다했고 멀쩡히 식사를 하다가도 속이 안 좋다며 먹던 걸 그만두기도 했다. 폭언은 기본이요 거절 의사를 내비쳐도 무력으로 스킨십을 강요하는데다 심한 폭행까지 곁들이는 질 나쁜 진상 고객이 한 명 있어서, 듣자하니 어디 중소기업의 사장이라는 그가 아연을, 영을 제법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서너 달쯤 연락이 없어 이제 떨어져나갔나 싶었지만 그건 기나긴 폭풍전야일 뿐이었다.

날은 다시금 추워져 12월의 끝자락이었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라고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열거나 장식을 하느라 바빴고 이연도 동생 몰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계획에 조금 들떠 있었다. 그러나 제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오늘은 힐스로 갈 거라면서 새로 산 귀걸이를 들고 거울을 쳐다보는 아연의 모습에 그 소소한 기쁨마저 깨져버리고 말았다. 거울과 귀걸이를 번갈아 쳐다보는 아연의 옆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덤덤해 보여 꼭 일부러 참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줬다.

“잠깐, 거기…… 그 남자가 부른 거야? 너 또 오라고 했어?”

아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이연이 급하게 동생의 옆에 와 앉았다. 거울을 쳐다보는 아연의 시선을 맞추려 애를 썼다.

“아연아, 안 가면 안 돼? 너 거기 다녀올 때마다 힘들어하잖아, 밥도 잘 못 먹고. 응?”

거울에 비친 언니의 옆얼굴을 흘깃 살핀 아연이 귀걸이를 귀에 걸었다. 뭐라 말을 하려 입술을 떼었으나 대답을 뱉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냥 날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무슨. 괜찮아. 거기 다녀와서 그랬던 거 아니야. 오늘 다녀올 때 뭐 맛있는 거 사올까?”
“아연아,”
“기분도 낼 겸 고기 먹으러 갈까?”
“오늘은, 오늘은 쉬겠다고 해보자. 응? 내가 어떻게든 할게. 아저씨한테 내가 얘기 잘……”

언니! 이연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연이 말을 가로막았다. 어, 응? 당황한 듯 반쯤 자동으로 튀어나온 대답에 아연은 생글 웃었다. 화려하게 올린 펄 가득한 섀도가 눈가에서 반짝였다.

“나 갈비 먹고 싶어, 오늘은 갈비 먹자. 고깃집 알아봐 줄 거지?”

그러곤 벌떡, 일어섰다. 방구석에 있는 서랍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고생해야 했고, 이연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안 그래도 겨울엔 난방비니 뭐니 하며 돈을 잔뜩 걷어가서 물불 가릴 것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런 생각을 억지로 해 가며 아연은 자꾸만 꾸밀 걸 찾았다. 전에 손님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비싼 향수를 찾아 꺼내더니 손목에 한 번 뿌리곤 향을 맡아보는 거다. 아직 거울 앞에 주저앉아있던 이연은 아연이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치고자 했지만 계속 시선이 엇갈리고 있었다.

아연아, 이름을 다시 부르려던 입이 결국은 굳게 닫혔다. 허울뿐인 말로 들릴까봐 그랬다. 쭉 그래왔잖아, 가출을 하고 나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놓고.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아저씰 어떻게든 설득해보겠다는 말도, 계획 하나 없는 무책임한 말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심지어 동생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자기 자신이 쪽팔리고 한심해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연은 그냥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있을 법 하면 아연이 발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다. 선물 받았던 것들을 꺼내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알았어.”

마지못해 끄덕인 고개. 주섬주섬 일어나서는 벽에 걸려 있던 모자를 집으며 문을 열었고, 불안을 감춘 걸음은 문밖으로 이어졌다. 목걸이를 고르던 손짓이 멈춘 건 그 뒤였다.

13.
“아…… 윽, -앗…, 그만, ㅅ, 사장님……!”

신음…… 소리. 그러나 저 속에서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아슬한 동아줄을 잡고 몸을 떠는, 고통뿐인 신음. 살짝 열린 문 너머로 차마 시선을 두는 것조차 겁이 났다.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나오기로 한 시간이 30분은 넘도록 아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살금 안쪽으로 발을 들여왔던 거다.


없는 죄의 죄책감이 또 다시 이연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두통이라도 올 것처럼 가벼운 통증이 일었다. 조금씩 커지는 고통 섞인 신음에도 불구하고 안을 살펴보지 못하는 자신이 겁쟁이처럼 느껴졌다. 꽉 쥔 주먹이 제 옷자락을 잡았고, 옷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남자의 강압적인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어라 하는지 따위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들리는 건 제 동생의 목소리, 떠오르는 것들은 동생을 괴롭게 하는 무력하고 멍청한 스스로에 대한 자학. 다시 한 번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했고, 퇴근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ㅈ, 죄송해, 요… 아, -악, 흐윽…-!”

처음 한 번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듣지 못했다. 이를테면 갑자기 눈앞에 과거의 광경이 스쳐지나갔다. 가출을 하던 날 뿐 아니라, 숱한 나날 내내 두 자매를 폭행하던, 인두겁 뒤집어 쓴 그 아버지란 사람의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그 끔찍하던 기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져 무의식적으로 겁난 마음에 눈을 꽉 감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용히 내쉬었다. 진정, 진정해야 한다. 얼굴로 열이 올랐다. 언제까지 있느니만 못한 혈육으로 살아야 하느냔 무력감이 들었다.

그 사이 안쪽에서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가 고함을 지르는 것도 같았다. 이윽고 이연의 귓가에 동생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똑똑히 와 닿았고, 그 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가 소파 앞, 립스틱이 다 번진 동생이 놀란 눈으로 절 쳐다보는 게, 너 뭐야! 소리 지르며 성큼 다가오는 반라의 남자가 제 뺨을 때릴 듯 손을 치켜드는 게 보였다. 동생이 울고 있었다. 소파도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래서,

이젠 아무것도 참고만 있을 순 없었다.

14.
“미안, 미안해, 아연아, 언니가…… 언니가,”

언니가 더 빨리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일을 시켜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언니는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모든 걸 잃은 사람 같았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그 인간 다리 사이를 겁날 만큼이나 강하게 걷어차 줬지만, 그로 인해 그 남자가 쓰러져 몸을 떠는데도 기쁘지는 않았다. 입술이 떨렸던 것 같다.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속옷까지 다 벗겨지기 직전이었던 몸 위로 언니의 패딩이 감싸졌을 땐 참았던 설움이 다 터질 것만 같았다. 패딩은 따뜻했지만, 묵직했다. 꼭 언니 자신 같았다. 그녀의 죄책감을 둘러 입은 것만 같았다.

손목을 잡혀 뛰는 동안 뒤에서, 저 년 잡으라거나, 당장 안 오냐는 말들이 수없이 내 머리채를 잡는데도, 언니는 뛰었다. 마찬가지로 도망은 하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언니의 운전은 평소보다 거칠었다. 잘 다니지 않는 도로로 몇 번이고 굽어 들어가더니 사람이 없는 공터 쪽의 큰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곤 조수석의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렇게 펑펑 울기 시작하더니, 미안하다는 말만, 수도 없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했다.

나도 울고 싶었고, 조금은 울었다. 이렇게 펑펑 우는 언니의 울음 속에선 살짝 묻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덮인 패딩도 끌어안은 두 팔도, 뭐가 들었는지 그렇게 무거웠다. 언니는 나를 향한 미안함에 온몸을 짓눌리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도 당연히 무거웠다. 입 밖으로, 그만 하고 싶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들이쉬는 숨과 함께 삼켰다. 모두 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가 있었고, 언니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고, 미안해하는 그 얼굴이, 비명을 지르듯 터트리는 울음이, 내게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자고 직접 얘기하진 못하면서, 아예 모든 걸 놔버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내가 한심하고 웃겼다.

언니가 사무실로 불려가 반쯤 죽을 만큼 얻어맞을 땐 더 그랬다. 한심해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여간 인간 말종 새끼들은 하나 같이 다 똑같았다. 인간 말종들 발에 밟혀 꿈틀대는 우리 삶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겠지. 구질구질하다. 이런 악몽의 반복이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언니가 무릎을 꿇고 울어가며 스스로를 내어버릴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언니는 한 쪽 눈을, 신장 하나를 팔았다.

15.
‘무슨 꿈을 꿨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뜬 시야가 흐릿했고, 눈을 잠깐 찌푸리다가 몸을 움직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누운 이연에게로 향했다. 퇴원한 지 나흘째, 이제 한 쪽 눈으로도 어렵지 않게 생활하는 것 같으니 이연은 놔두고 다시 출근을 하라던 그 말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들릴 수 있었는지. 보일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끊겨 바닥이 차게 식어 있었다. 이연의 몸이 회복될 때까지 만이라도, 돈이 더 들어도 좋으니 오래 보일러를 켜두라고 사정했는데도, 귓등으로 들었나. 아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이불을 제 언니에게로 두껍게 덮어주었다. 시야에 적응했을 뿐이지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곤 할 수 없었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앉은 무릎을 기어 화장대 앞에 앉은 아연은 민낯의 제 얼굴에 넋을 놓았다. 며칠 전의 멍자욱은 사라져 있었지만 오늘은 더 초췌한 모습이었고, 분명 화장도 잘 안 먹힐 게 뻔했다.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연이 영 걸렸다.

‘……그래도. 내가 일을 나가야 언니의 휴식이 좀 편해지겠지. 그 더러운 새끼들, 내가 일을 나갈 때까지 부탁이란 부탁은 싹 다 모른 척 할 생각인 거야. 뻔해.’

긴 머리칼을 쓸어 모아 한껏 위로 올리곤 옷장 문을 열어젖힌 아연의 손끝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드레스자락이 스쳐지나갔다.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이연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다음이었다.

“……아연아.”
“언니, 깼어?”

뒤돌아보는 아연의 얼굴이 퍽 무거워 보였다. 지쳤단 사실을 숨길 수 없는 사람처럼. 이연이 찬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자 아연은 그 앞에 마주앉았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괜찮아. ……일, 나가려고?”
“나가야지. 그래도 조금 걱정되네, 언니 혼자 괜찮겠어?”

있잖아, 아연아. 이연의 목소리는 동생의 걱정과는 다르게 담담하고 고요했다. 뜨이지 않는 한쪽 눈꺼풀을 그대로 내리 닫은 채 좁아진 시야에 자길 걱정하는, 또 미안해하는 아연의 얼굴을 담다가, 그대로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손을 찾아 잡고는, 한 번 내뱉은 묵직한 한숨. 그 숨이 이불을 타고 흘러내려가 찬 바닥에 눌어붙었다.

“있잖아.”
“……응?”
“우리 이제, 이렇게 사는 거. 그만 두자.”

16.
이기적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이거, 이렇게 사는 거…… 너무 힘들잖아, 내가 너, 아연아, 내가 두 번이나 너 데리고 도망치면서 책임감 없게 굴었지만, 그래도, 아연아.”

언니는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응, 하고 대답도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거울을 못 봐서 통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한테서의 가출도, 저번의 그 일도, 네가 맞고 있었어. 위험한 당장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망이었어. 그래서…… 계획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잖아. 그렇지.”
“……응.”

다른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목구멍이 꽉 막혔다. 그저, 익숙한 목소리에 묵묵히 귀 기울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쫓기고 있지 않아. 많지 않지만 돈도 있고, 위험한 상황도― 일단은 아니야. 이제 확신하지는 않을게,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거란 말은…… 못 하겠어. 그래도, 이렇게 사는 건, 우리 그만두자. 아연아, 그만하자. 언니가 어떻게든,”

17.
“……어떻게든.”

어떻게든 할게, 얘기하려던 이연의 입술이 꾹 닫혔다. 저도 모르는 새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강해지기 위해 숨겨두었던 약하고 위태로운 시선이 아연의 손에만 하염없이 머물렀다. 매번 그런 말로 책임감 없이 사고만 쳤던 것 같아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에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동생에게 괜한 희망만 품어준 것 같아서. 어느새 함부로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그러나 아연은 그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제 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무언갈 꽉 눌러 담은 굳건한 음성. 평소에 이연이 아연에게 들려주는 목소리, 강해보이기 위해, 믿음직한 언니여야 해서 힘을 주었던 그런 음성.

“우리 어떻게든 하자.”

한 마디 말끝에 찾아온 침묵. 밖을 걸어 다니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툭 건드리면 펑 터질 것만 같은, 울음을 참는 들숨과 날숨. 이연이 먼저 웃음꽃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아연의 손을 잡았던 두 팔이 훌쩍 위로 올라와 그녀를 끌어안았고, 시야를 잃은 왼쪽 눈마저 시큰하게 저려왔다. 고마워, 이제 이연은 그런 말을 했다.

“진짜, 아, 흐- 아연아, 진짜, 정말로. 정말……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리고 미안해. 지금껏 이렇게…… 이렇게, 고생, 시킨 거, 너무 미안하고,”

뚝뚝 끊기는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아연은 용케 알아들었다. 끌어안긴 후로 제 눈가에도 눈물이 슬쩍 고이는 걸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고마워, 고맙고 또…… 또, 고마워. 내가, 너 하나만큼은……”

숨을 들이키듯 이연이 문장을 쉬어두고는 동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소중한 동생인데, 하나 뿐인 내 편인데, 그동안 널 괴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말을 한 번 더 하고 나서야 앞섰던 말을 이었다.

“너 하나만큼은 전보다 훨씬, 훨씬 나은 인생 살게 해 줄게. 약속이야, 이건 꼭 지킬 거야, 이건, 아…… 미안해, 그리고, 그리고 고마워. 언니를 믿어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연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그게 끝이었다. 이후로도 울음에 젖은 목소리로 이연이 뭔가 비슷한 말을 반복했지만, 뭉개진 발음이 영 알아듣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연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해서. 결국은 그녀도 제 언니를 끌어안고는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두 번의 도망은 절대 통쾌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기뻤다. 나 말고, 언니까지 행복해지자, 우리 그러고 살자, 그런 대답을 해야 하는데도 기쁨에 목이 막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바닥은 한참 전에 식어 있었는데 두터운 이불 위로 떨어지는 눈물은 꽃을 틔울 만큼 따뜻했다.

이 곳 싸구려 벽지 위로 없는 죄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 다 남겨두고 가야지, 선택할 수 없었던 불행과 가난의 순환은 모두 여기 버리고 가야지. 그 날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울음을 멎지 못한 두 자매가 서로를 도닥이며 한 다짐이었다.


*본 소설의 저작권은 저자 이라(@ira1144)에게 있으며 상업적 이용과 2차 가공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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