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L(MF) 

🏵 스포일러 주의 : 온달x로드 마도대전 이후의 스토리

🏵 뇌절주의 : 어떻게든 엮어먹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날조함

🏵 본 글에 사용된 설정은 모두 가상으로, 실존 했던 국가 혹은 인물, 또는 1차 작품의 설정과 무관하거나 다를 수 있습니다. 고증은 무시하고 모두 작가 편의대로 끼워맞췄으니 불편하시다면 어쩔항마곤





六. 동상이몽

同床異夢 ; 같은 침대에 누워 다른 꿈을 꾸다







해가 아슴아슴 지고 있었다. 밤어귀는 하늘의 농도도 다른 모양, 지평선에 휘이 번져 녹는 저녁 볕 아래서 윤영후가 아쉬운 얼굴을 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보여드릴 것이 남았는데..."

"이러다 날 새겠다."


약조한 일정 있어 먼저 길 떠나야 한다는 모양이었다. 뒤에서 일행인 듯한 자가 보채어도 한참을 평강 앞에서 어물쩡대더니 뒤에서 흰소리나 하는 온달을 팩 쏘아본다. 


"저녀석이 어디 장 구경이나 제대로 해드리겠습니까? 여흥이라곤 모르는 따분한 놈이..."

"그래, 길바닥 노숙도 나쁘지 않지."

"간다, 가!"


윤영후는 끝까지 낭자를 잘 뫼셔야 한다며 온달에게 거듭 당부했으나 온달은 들은척 만척 했다. 로드는 손이나 흔들며 하하 웃었다. 애초 극진한 수행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구경이나 실컷 했으면 좋으련만.'

그 때 맘 읽은듯 온달이 돌아보았다.


"슬슬 야장 시간인데. 돌아볼 건가?"

"예!"


눈 반짝이며 끄덕이는게 천진하여 온달은 픽 웃었다. 빛돌처럼 빛나는 안광 눈에 띄일까 걸친 행장에 달린 모자 푹 눌러 씌워주는데, 사람무리가 우르르 치고 지나갔다.


"!"


큰 손이 어깨를 감싸고 끌어당겼다. 로드는 삽시간에 사내의 품으로 섭슬렸다. 등 뒤로 왁자지껄 인파가 밀고 지난다. 악단을 따르는 모양인지 노랫소리가 흥겹게 돋았다.


가련다, 가련다, 물길 따라 구름 따라

구비구비 산고개 넘고 넘어 가면은


남자의 가슴팍에 얼굴 파묻은 꼴로 로드는 꼼짝도 못하고 어깨만 움츠렸다. 등을 단단히 감은 팔이 억셌다. 끄덕 없는 성벽처럼 버티고 선 품에 심장이 무너질듯 뛰었다. 

낯선 땅서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를 지켜주는 이가.


"번잡하군."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귓머리서 울렸다. 움츠린 손을 떼어 제 팔을 감아준다.


"소맷부리보단 이게 낫겠지. 휩쓸리지 마라."


손 안에 감기고도 남는 사내의 팔은 나무등치만큼 두껍고 단단했다. 발걸음 떼는 남자를 따라 평강은 뒤를 따랐다. 꾹 깨문 입술이 붉었다. 유랑악단들의 노랫소리와 흥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 돌연 발장구 치는 심장소리가 뒤섞였다.


피련다, 피련다, 물길 따라 바람 따라

아른 아른 꽃무리 동산 가득 날련다


온달은 제 팔뚝을 구명줄처럼 꼭 잡은 작은 손을 흘긋 곁눈질했다. 행장모 푹 눌러쓰고도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누가 어깨 치고 갈까 싶으면 얼른 제 쪽으로 붙는다. 가는 어깨가 부딪히고 말랑한 체구가 닿는다. 그러다 여자가 시선을 느끼고 올려다보자 못 본 척 고갤 돌렸다. 붉어진 낯은 피했으나 짧게 올려친 머리덕에 발개진 귀끝은 가리지 못하였다.




"자."


로드는 온달이 내미는 메추리꼬지를 보곤 눈 동그랗게 떴다. 이걸 눈 여겨 봤느냐는 눈빛에 온달이 겸연쩍어 되려 면박주었다.


"그렇게 침을 뚝뚝 흘리며 보는데 눈 달려선 어찌 모르려고. 어서 받아. 팔 떨어진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평강이 꼬치 하나를 겨우 먹을 사이 온달은 세개를 삽시간에 말끔히 먹어치우곤 옆 좌판서 식혜며 과일까지 한아름 사서 늘어놓았다. 애기 주먹만한 돌배 아삭거리며 온달은 메추리 꼬지 다리를 들고 야무지게 오물거리는 평강을 물끄러미 보았다.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팔은 기억에 한 아귀로 쥐고도 남았다. 

'부러지겠군.'

궁에서는 산해진미만 먹는다지 않는가. 그 좋은 음식 먹고도 왜 저리 말랐지. 생각할 때 여자가 양념 입가에 묻히곤 웃었다.


"여기 음식, 정말 맛있습니다. 특히 이 매콤한 양념이 입에 잘 맞아요. 할 수만 있으면 매일 먹고 싶네요."

"더 좋은 음식 드셨던 분이 고작 새꼬지 하나에 이리 감명을 받나?"


로드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입술을 감물었다. 

공주는 팔려갈 재물, 누릴 것 다 누리는 팔자완 거리가 멀어 매양 화초인양 곱다시 가꾸어야 했다. 혼례 한 달 전부터는 떨기꽃처럼 하늘하늘 해야 한다며 끼니는 봉밀 세숟갈에 약차가 전부였다. 

여자는 조용히 고갤 저었다. 어두워진 표정에 온달은 더 묻지 않고 들고 있던 살구 한바구니를 여자 쪽으로 밀어놓았다.


"먹고 더 먹어라."

"예? 저 혼자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그럼 고루 먹고 남겨. 내가 처리할테니. 메추리 다리, 더 먹을텐가?"

"...네."

"그래. 잘 먹어야 쑥 쑥 크지."

"세살배기 아니라니까요..."


결국 로드는 온달이 건네주는 대로 메추리 다리 두개와 살구 세개까지 해치워버렸다. 부른 배 두드리며 걸으니 인파는 좀 빠져 좌판 돌아보며 걸을 정도는 되었다. 

개중 로드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색실 꼬아 만든 댕기며 팔찌 파는 가판대였다. 손님 냄새 맡은 주인장이 냉큼 일어나선 이것 저것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서오시어요. 생김새가 특이하지요? 이것들은 저 바다건너 유시란이란 나라 전통공예품인데, 실을 여러색으로 물들여 꼬아 만든 것이랍니다. 꼬을 적에 한땀 한땀 소원을 빌어서 만들어 부적의 의미도 있지요. 항간에는, 실이 끊어지는 날에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도 합니다요. 자, 여기는 무병, 여기는 장수, 여기는 순산, 여기는 연애. 골라보시지요!"


따라오질 않으니 또 뭐에 눈이 팔렸나 싶어 뒤따른 온달이 여자의 어깨 너머로 장신구들을 들여다 보았다. 알록달록 한 것이 이국적이고 신선하기는 하였다. 여자가 그중서도 흰 실에 월석 꿰어 만든 실팔찌를 짚으며 물었다. 달 닮은 빛돌이 실에 꿰어 달랑이는 것이 곱긴 했다.


"이건 얼마입니까?"

"안목 있으시구만. 하나에 일십전이요."

"예에?!"

"이 월석 하나하나 다듬은 모양새를 보시오. 가운데 구멍 뚫고 모서리 안나게 다듬고 광내고 하는것도 알알이 정성이지요. 게다가 실은 또 그냥 실인가? 이 하드르르한 광은 어떻고. 목화실만으로 이 광은 어림도 없지. 귀한 명주를 무려 반을 섞어-"

"...그건 되었고요. 그냥 이거, 실팔찌 한묶음이나 주세요."

"왜애? 정인 선물하기는 저게 딱인데."

"정인은 없고, 동무들 선물이나 하렵니다."


상인이 아쉬운듯 입맛 쩝 쩝 다시며 색동 팔찌 묶음 값을 치렀다. 봇짐에 넣고는 여자는 또 뭐가 그리 신기한지 눈 빛내며 종종걸음이었다. 


"온달님! 여기 말린 버찌 팝니다. 아이들 좋아하겠어요!"


빨리 오라며 손짓인데 온달은 알았다고 눈짓하곤 몸을 돌렸다. 팔척장신 사내가 쏘아보고 있으니 상인이 식은땀 뻘 뻘 흘리며 옴싹달싹 눈치만 보았다. 온달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구석만 노려보았다. 아까 여자가 들었다 놓은 팔찌가 눈에 걸리는 참이었다.


"...일십전이라고?"



 



-





"........"

"........"


온달은 침묵했다. 정적속에서 로드는 난감하게 눈을 굴렸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을 적부터 예상 했어야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프라우가 보았다면 클리셰가 그럼 그리 만만할 줄 알았냐고 혀를 찼을 거다. 

'그래도 이 정도 일줄은 몰랐지!'

클리셰의 굴레는 지독했다. 가는 여관마다 만실 직전이요, 그나마 남은 방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처음 두 곳 들를 적만 해도 온달은 그럼 다른 곳 묵자며 발길을 돌렸지만 다섯번째 여관까지 남은 방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같은 대사를 치자 얼굴이 돌처럼 굳더니 지금의 침묵에 이른 것이다. 

팔짱 떡 끼고 눈 내리깐 사내가 뿜는 살벌한 기운에 주인장이 달달 떨기 시작하자 뒤에서 난감하게 머리나 긁던 로드가 마지 못해 나섰다.


"저, 주인장. 괜찮으니 그 방이라도..."

"되기는 무어가!"


온달이 버럭 호통쳤다. 주인장이 깜짝 놀라 반쯤 튀어오르든 말든 온달이 버럭거렸다.


"거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한 방을-"

"온달님! 온달님. 저 지금 변복중이잖아요. 예??"


매달리다시피 입 틀어막고 급히 속삭이자 잘생긴 미간에 금이 짙어진다. 여차하다간 산길에서 자겠다고 할 기세라 로드가 급기야 우는 소리 했다.


"온달님. 저 진짜 너어무 곤하고 발도 아프고 하여 오늘은 침상 있고 벽 있는 곳에서 좀 마음 편하게 머리 베고 묵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일 산 오를 때 안징징거리고 따라갈 것 아닙니까? 뭐, 노숙을 해도 상관 없지만서도 십리도 못가서 제가 발아프다 무릎 아프다 징징대면 그 험암괴벽을 온달님이 업고 오르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알았으니까 좀."


온달이 얼굴이 벌개져선 제게 거의 밀착하다시피 한 여자를 어깨 밀어 떼놓았다. 그제야 안심한듯 여자가 싱긋 웃으며 주인과 흥정한다. 한박에 팔전이네 육전이네 실랑이하는 뒤에 서서 온달이 달아오른 눈 밑을 가렸다. 

'혼례도 안올린 처자가 저리 자각이 없어서야.'

닿은 감촉이 생생했다.

'...말랑말랑....'

정확히는 제 배쪽에 닿은, 몰캉한 가슴팍의...


철썩!

싸대기 갈기는 소리에 여관 주인과 로드가 놀라서 뒤돌았다. 제 뺨 제가 내리친 온달이 시침 뚝 떼고 턱 치켜들었다. 


"빨리 주시오. 어서 짐 풀고 쉬고 싶으니."


눈이라도 붙여야 애먼 생각이 안들듯 했다.




"........."


이번에도 처참한 오판이었다. 온달은 머리라도 붙들어 매고 싶은 심정이 되어 애꿎은 짐보따리만 노려보았다. 

방은 생각보다 비좁았고 침상 또한 그랬다. 고운 짚으로 속 채우고 포 씌운 침상은 한사람은 가당한듯 했으나 두 사람 자기엔 턱도 없었다. 척 보기에도 온달 하나만 누워도 정강이까지 튀어나올 판이다. 이건 안될 말이다. 저 혼자 계산 끝마치고 온달이 등 뒤의 여자에게 통보했다.


"침상에서 자. 나는 나가서 노숙을 하든 할테니."

".........."

"왜. 방이 맘에 안차나?"


답 들리지 않아 뒤 돌았더니 여자가 얼굴이 굳어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입 틀어 막은 꼴이 무언가에 심히 놀란 듯 했다. 온달이 무어냐 물으려 다가서니 평강이 질겁하며 손 내저었다.


"오, 오지 마세요."


흡사 불한당 내치는 듯한 투였다. 그예 온달은 심기가 불편해졌다가, 이내 부아가 치밀었다. 방 하나 상관없다 한 것이 누군데.


"왜,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 거 같은가?"

"그것이 아니고...."

"그럼 그리 귀신 본 낯 할 일이 뭐 있다고. 아까 호기롭게 한 방 쓰겠다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후회되나보지?"


비아냥대는 말에도 여자는 밀랍처럼 굳어선 답이 없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눈치 챈 온달이 무슨 일이냐 물으려다 무언가 발견하고 굳었다.

여자의 흰 무명 바지 안무릎쪽에 핏기가 비치고 있었다.

난 또 무어라고. 한숨 푹 쉰 온달이 여자 앞에 한 무릎 꿇고 앉았다.


"어딜 또 다친 건가? 이리 내봐."

"아니, 이건 다친 게 아니라...!"

"그럼 피 비치는 게 무언데."


칠칠치 못하게 아까 또 장마당에서 어딜 긁힌 모양인건가, 생각하며 살피려 하니 여자가 또 질겁하여 물러나는 것이다. 


"온달님, 그게 아니라. 이건..."


낯빛 허얘져서는 뒷걸음치는 여자를 보며 온달이 미간에 줄 그었다. 


"다친 건 빨리 내보이고 치료를 받아. 괜히 짐된다 하여 싸매다가 나중 더 큰일이 된다. 의원에게는 지금 못보일테니 응급처치라도 하고-"

"그게 아니라!! 다친게 아니고요."


카랑하니 소리치는 여자를 온달이 놀란 눈으로 보았다. 여자는 곤란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리입니다."

"무어라고? 알아듣게 말해봐."

"...달거리라고요. 달거리요." 


온달은 여자가 한 말에 그예 굳었다가, 하얘졌다가, 벌개지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침상서 이불을 죄 끌어다가 여자를 칭칭 동여다놓고 방을 나섰다. 문 닫기 직전 돌아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꼼짝 말고 있어."


타악. 닫힌 문 앞에 누에고치처럼 선 채 로드만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 

로드는 로드 대로 패닉이었다. 

'월경이라니....'

아발론에서는 솔피가 만들어준 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안한 적이 꽤 되어서 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몸도 여자였었지. 새삼 통감하며 로드가 돌돌 말린 이불 속을 흘끔 내려다보고 울상지었다. 이전에는 시중 들어주는 두리가 있어 몸만 맡기면 되었는데. 

'게다가 내일 산행은 어쩌고.'

앞이 깜깜하였다. 

그때 문 밖에서 똑똑 두들기더니만 벌컥 열렸다.


"!"

"자, 들어갑니다요."


시비 아이 둘이서 더운 김 폴폴 나는 목간 욕조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로드는 놀란 눈으로 선 채 그네들이 광목 천이며 속곳과 갈아입을 옷들을 옆에 한움큼 쌓아 두는 것까지 보고있다가, 문 닫고 나서려 할 즈음에야 붙들었다.


"아, 저기! 온달님은-"

"일 있어 나가신다 하셨는데요? 편히 목간 하시라 하셨습니다요."


타악. 다시 문 닫히고, 김 모락 모락 나는 목간통 옆에 서있던 로드가 한숨 폭 내쉬었다. 이 시간에 일은 무슨 일이 있다고. 진짜, 말은 안해도 엄청 챙겨준다니까. 






조르륵, 조륵.

물 끼얹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왔다. 혹여 애먼놈이라도 들이닥칠까 문 등짝으로 밀어 지키고 선 채 온달은 천장과 땅만 번갈아 노려보았다. 

'젠장.'

벌개진 뺨 쓸다가 머리 긁다가 마른세수 했다가, 발만 안동동거렸지 안절부절 난리를 치며 온달이 제 이마를 퍽퍽 내리쳤다.

'그것도 모르고 무릎이나 꿇어 들여다 보았으니.'

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내새끼들 사이서만 커와서 그런 것 알 턱이 없었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까 시비 아이에게 동전 몇닢 쥐여주며 필요한 것 다 가져다 달라 하긴 했으나 충분하긴 할는지 몰라 갑갑했다. 

그 때 문지기 노릇 하고 선 온달에게 아까 그 시비 아이가 종종 다가와 무언가 들려주었다. 받아드니 조약돌과 두꺼운 가죽 주머니였다.


"안에 화로에서 돌을 알맞게 달구어, 이 주머니에 넣고 탕파처럼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 알았다. 그리하지."

"아내분 하복부에 대어주시면 됩니다. 아시지요?'


안다 모른다 답 못하고 온달이 얼굴만 벌겋게 태웠다. 아내라니. 아니라고 하기도 무엇하여 미적이는 사이 시비 아이는 꾸벅 절하곤 다시 내려가버린다. 온달은 주머니 들곤 멀거니 서서 허, 헛웃음지었다.

 새삼 혼기 찬 여인이라는 사실이 와닿은 까닭이었다. 사내의 씨를 받아 아이를 배고, 어미가 될 수 있는...

기겁한 온달이 또 제 뺨 내리치기 직전에 또 안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젠장할....'

눈만 질끈 감는다. 오늘 잠 자기는 텄구나 생각이 들었다. 






-





그날 밤.

여자는 또 제가 아래서 자겠다 되도 않는 고집을 피웠다. 온달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묵살했다. 때마침 여관 주인이 요를 하나 더 가져와 깔아주어 거기 아예 자리 피고 누워 어서 눈 감고 잠이나 자자 뻐기니, 여자는 한숨 푹 쉬더니 미적미적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바스락. 바스락. 잘 말린 침구가 내는 소리 듣고 있던 온달이 눈 꾹 감았다. 내일 새벽 같이 일어나 산행 하려면 어서 눈 붙여야 했다.

잠이 올 턱이 있나.

타닥 타닥, 화로 타는 소리 벗삼아 온달은 벌개진 눈으로 어둠 속만 쏘아보았다. 젠장할. 그냥 노숙을 할 것을 그랬다. 이리 신경쓰일 줄을 알았으면 한방 쓰겠다 할 때 뛰쳐나올 것을. 

그 때 어깨 너머에서 소리가 돋았다.


"온달님. 주무십니까?" 


무시할까. 갈등하다가 또 어깨 축 처진 표정이 생각나 온달이 마지 못해 답했다.


"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넣어둬."

"제가 계속 마을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


정적이 내려앉았다. 로드는 온달이 품에 안겨준 따끈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꾸물꾸물 말 이었다.


"물론 온달님이 신의를 지키는 분인 것은 압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온달님이, 나아가 적벽이 곤란해질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이렇게 물건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하면요."

"별 걱정을 다 한다. 영후놈 시켜 처리하라 일렀으니 신경쓰지 마."

"아. 그런 겁니까? 역시 온달님은 계획이 다 있으시군요."


여자가 활짝 웃으며 제쪽으로 돌아눕는다. 그 기척에 말린 꽃 내가 화악 풍긴다. 

온달은 잠시 숨을 참았다. 얼토당토 않은 상상이 뇌리에 떠올라서였다. 가령, 저 옷저고리 안쪽도 같은 내가 나려나 하는.

머리란 놈이 제 멋대로 앞서나가 하는 망상도 하다보니 익은 모양, 이제 제 싸대기 내려치지 않아도 평정 찾을 계제가 된 온달이 끙 혼자 앓곤 곁눈질 했다. 어둠 속에서 팔 괸채 절 보는 여인의 얼굴이 달처럼 피어있었다.


"몸은 좀 괜찮나."

"아,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인인 것이 때론 불편하기도 해요."


여자가 멋쩍게 웃었다. 온달은 아까 돌 주머니 품에 안곤 얼굴 풀어지던 것 떠올리곤 물었다.


"내일 산 탈 수는 있겠나?"

"문제 없습니다."

"힘에 부칠 거 같거들랑 얼른 말해. 그래야 대비라도 하니."

"예..."

"그리고 그건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친다.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돼. 그 산이 누가 들어오려고 한들 마음대로 들어와지는 산이던가? 쓸데 없는 걱정 말고 잠이나 자라. 내일 반도 못가서 드러눕지 말고."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달님."

"......"

"이리 조건 없이 받아주시니, 어찌 보답해야 할지...."

"그 또한 염려할 일 아니니, 잠이나 자."


여자는 한번에 말을 듣는 적이 없었다. 기어코 말을 더 꺼내었다.


"온달님은 저를 믿으십니까?"

"세살배기 댓살배기 하였더니, 진짜로 어린아이인가? 잠 안온다 칭얼대게."

"제가 벌이는 일이 죄 수상한 일들 뿐인데. 왜 취조하지 않으십니까?"

"......."


온달은 입을 닫았다.


타닥, 타닥. 

구우우, 구우.

화롯불과 산새가 번갈아 답했다. 한참이 지나도 답이 없자 여자가 자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온달님. 주무십니까?"

"......."

"안녕히 주무세요."

"......"

"오늘은 정말... 감사했어요."


온달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로드는 우직하게 눈 감은 남자의 옆모습을 잠시 보다가, 다시 돌아누웠다.

'그래도 너무 늦기전에 떠나야 해.'

언제까지고 있어서는 안되었다. 언제고 싹 날 수 있는 화근은 사라져주어야 했다. 그를 받아준 온달과 적벽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돌아가야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두고 온 이들이 밟혀 마음이 무거웠으나, 머지 않았다는 희망이 들어 그나마 견딜만 하였다.

로드는 애써 잠을 청했다. 이제 하나만 더 찾으면 된다. 하나만 더.



여자는 조금 뒤척이다가, 곤했는지 금새 잠들었다. 색색 잠든 숨소리가 난다. 눈 멀거니 뜨고 온달은 팔 벤 채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속이 시끄러워 잠이 오지 않았다.


'취조라니.'

그녀가 벌이는 일은 수상한 일들이 아니다. 신묘한 일들이지. 

갑자기 금은보화와 함께 뚝 떨어지더니. 산주인 영물 호랑이를 길들이고. 본 적 없는 신기를 무기로 들고다니고, 이젠 자신에게 찾아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제 사람이 되어달라고 한다. 

온달은 세상 모질게 겪은 만큼 경계심 많은 이 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늘의 뜻이나 금제니 운명이니 하는 미신들을 거스르지 않으려 눈치보는 자이기도 했다. 전장 전전하던 용병 근성이 남은 탓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는, 본인 말대로 경계의 대상이라기보단-

'...운명이면 운명, 이라고 여길테지.'

아등바등이는 걸 딱히 여기신 하늘님이 제게 점지해 준 짝인양. 그리 짜맞추어 생각해버리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주제도 넘지.'

외려 그의 고슴도치 같은 경계심이, 일련의 정황이 운명이라고 포장하는 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안간힘을 쓰고 있기에 이만치 선도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라고 설명하는 건 역시 관두었다. 온달은 침묵을 택했다. 그게 잘 한 일인지는 확신이 없다만.

 

그때 여자가 돌아눕는다. 꼭 감은 눈꺼풀 아래 속눈썹이 부챗살처럼 하늘거린다. 입술 오물거리는게 진짜 다섯살배기 같군. 픽 웃으며 보는데,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잠들어선 잠꼬대나 웅얼거린다.

 

"...뮤."

"......."

"나... 여기. 뮤.... 가지 마..."


끙끙거린다. 몸이 안좋아 그러나 싶어 온달은 몸을 일으켰다. 열이라도 나는 것인지 반드레한 이마 짚어보는데, 어둠 속 유성처럼 눈물 한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보고 싶...어."


엉겁결에 온달은 그 눈물을 손 끝으로 훔쳤다.


"다들... 어디에. 나만..."

"........."

"보고 싶어....."


 

온달은 착잡한 눈으로 잠든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구우우, 구우. 

밤새가 구슬프게도 울었다.







七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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